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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여자들 끼리 술 마시면서 하는 말
작가 : 아브락사스
작품등록일 : 2019.9.11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한다는 건 참 어렵고도 험난한 여정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12화 똥구멍을 파내는 남자
작성일 : 19-09-21 17:27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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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똥구멍을 파내는 남자

 

 

 

 

 

 

 - 혜숙씨! 아이고 이러다 큰일 나겠는데........ 병원으로 갈 걸.......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 봐요.

 

 차에서 내린 혜숙이 방향을 잃고 쓰러질 듯 비틀거리자 김현이 달려와 부축한다.

 

 - 병원은 무슨 병원.

 

 - 이렇게 힘들어 하시면서 어떻게 혼자 집에 계신다는 거예요.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병원에서는 알아서 하란 말 밖에 안 해요.

 

 - 다른 병원에 가보면 되죠. 제가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갈게요. 아니면 서울로 가시든지요. 제 친구가 병원에 있어요.

 

 - 교수님 말씀은 고맙지만 변비약 먹어도 안 되고 관장을 해도 안 되는데 뭘 어떡하겠어요.

 

 혜숙은 앓는 소리를 내며 가까스로 허리를 펴고 웃음 짓는다.

 

 - 그래도 한 번 가봐요.

 

 하지만 김현이 보기엔 혜숙의 억지스런 웃음이 위태롭기 짝이 없다.

 

 -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환자 똥구멍을 파주겠어요. 의학이 이렇게 발달했는데 똥구멍 막힌 거 하나 못 뚫는다는 게 말이 돼요.

 

 혜숙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 제가 집까지 부축해드릴게요.

 

 김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혜숙을 부축하고 따라간다.

 

 - 고마워요. 저 혼자 올라갈 수 있으니까 어서 가 보세요.

 

 혜숙은 손사래를 치면서도 김현의 팔에 의지해서 걸음을 뗀다.

 

 - 언니, 어디 아프세요.

 

 여자아이 셋이 달려와서 근심어린 얼굴로 혜숙 앞을 가로막는다.

 

 - 응, 아냐. 언니가 똥을 못 싸서 그래.

 

 혜숙이 웃으며 말한다.

 

 - 얼른 똥을 싸세요.

 

 다정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혜숙을 바라본다.

 

 - 그래 어서 가서 똥을 싸야지. 오늘은 언니가 몸이 안 좋으니까 그냥 가서 놀아. 나중에 과자 사줄게.

 

 - 과자 안 사주셔도 돼요.

 

 채린이가 말한다.

 

 - 아냐, 오늘은 내가 사줄게.

 

 김현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 안 주셔도 돼요.

 

 예슬이가 말한다.

 

 - 자 받아, 이거 가지고 맛있는 거 사먹어.

 

 김현은 채린이에게 만 원짜리를 건넨다.

 

 - 너무 많아요.

 

 채린이가 돈을 받지 않고 망설인다.

 

 - 셋이서 나눠가져.

 

 김현이 채린의 손에 지폐를 쥐어주는데 슈퍼 여자가 다가온다.

 

 - 언니 무슨 일이에요? 어디 편찮으세요?

 

 슈퍼여자는 김현에게 인사를 꾸벅하고 혜숙의 얼굴을 살핀다.

 

 - 응, 별일은 아니고, 내가 똥을 못 싸서 그래.

 

 혜숙이 말하고 씁쓸하게 웃는다.

 

 - 언니, 잠깐만.

 

 슈퍼 여자가 돌아서서 가게로 뛰어 들어갔다가 뭔가를 한 봉지 가지고 나온다.

 

 - 뭘 가져와.

 

 - 언니, 이거 군고구마하고 비피더스예요. 저도 변비가 심한데 이거 먹으면 금방 효과 봐요. 제 말 믿고 드셔보세요. 언니니까 제가 드리는 거예요.

 

 - 고맙긴한데 가루로 된 유산균은 달고 살고 변비약이란 변비약은 다 먹었는데도 벌써 보름 넘게 이러는데 이것 먹는다고 되겠어.

 

 - 언니, 그러지 말고 무조건 드셔보세요.

 

 - 고마워.

 

 - 언니,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어요?

 

 다정이 엄마가 다가와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 엄마, 언니가 똥을 못 싸서 그런데. 벌써 백십오일이나 됐는데 고구마를 먹어도 소용이 없데.

 

 - 어머, 백십오일. 보통 사람 같으면 죽는 거 아니에요.

 

 새댁이 놀라서 소리친다.

 

 - 보름쯤 됐다니까, 애는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하더라.

 

 채린이가 말한다.

 

 - 그러니까 백십오일이잖아.

 

 다정이가 말한다.

 

 - 언니, 힘들어서 어떡해요.

 

 새댁이 울먹이며 말한다.

 

 - 새댁이 왜 울어. 울지 마.

 

 - 언니같이 좋은 분이 왜 그런 더러운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나님은 너무 하세요.

 

 새댁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 엄마 울지 마.

 

 다정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흔든다.

 

 - 무슨 일이야. 언니, 어디 다쳤어요.

 

 청소부 아주머니가 놀란 얼굴로 다가와 묻는다.

 

 - 아니에요, 아주머니. 제가 똥을 못 싸서 그래요.

 

 - 아이고, 그러면 진즉에 나한테 말하지. 잠깐만 기다려봐.

 

 청소부 아주머니는 말릴 겨를도 없이 관리사무실로 뛰어 들어가더니 까만 알약이 가득 들어 있는 병을 가지고 나온다.

 

 - 이거 내가 똥을 못 싸서 용한 한약방에 가서 지어온 거야. 가져가서 드셔 봐요.

 

 - 별별 약을 다 먹어도 소용이 없어요. 똥구멍을 파내야 할 것 같아요.

 

 혜숙이 말한다.

 

 - 언니, 내 말 믿고 올라가서 열 알만 먹고 누워 있어 봐요. 소식이 올 거니까.

 

 - 고맙긴 하지만, 아주머니 드시는 걸 내가 어떻게 받아요.

 

 - 언니, 내가 언니니까 드리는 거야. 그리고 집에 가면 또 있어요. 그러니까 걱정 말고 가지고 가서 드셔보세요.

 

 청소부 아주머니가 약병을 혜숙의 손에 쥐어준다.

 

 - 고마워요. 내가 똥 싸고 나면 똥 싼 기념으로 시루떡해서 돌릴게요.

 

 혜숙이 말하며 웃는다.

 

 - 똥 싼 기념으로 시루떡 돌린다는 소리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 듣네요. 어쨌거나 언니가 똥이나 시원하게 쌌으면 좋겠네요.

 

 - 무슨 일이입니까? 언니한테 무슨 일이 있었어요? 언니 얼굴이 왜 그래요. 많이 상했어요.

 

 언제 왔는지 아파트 관리소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혜숙의 손을 잡는다.

 

 - 내가 똥을 못 싸서 그래요.

 

 혜숙이 말한다.

 

 그렇게 모여든 사람이 한 스무 명쯤 되었을 때다. 혜숙은 똥이 나올 것 같아서 항문에 힘을 주고 다리를 꼬다가 손사래를 치며 아파트 현관으로 어기적 어기적 걸어간다. 김현은 혜숙의 손가방을 들고 또 혜숙의 팔을 부축하고 따라붙는다.

 

 - 언니, 얼른 올라가서 시원하게 똥 싸버리세요.

 

 누군가 외친다.

 

 - 똥 싸고 나면 꼭 시루떡 돌려야 돼요.

 

 또 누군가 소리친다.

 

 - 알았어. 알았어. 똥만 싸면 시루떡 아니라 돼지라도 잡을 게.

 

 혜숙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

 

 - 혜숙 씨가 인기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습니다.

 

 4층쯤 올라갔을 때 김현이 말한다.

 

 - 혼자서 지내는 게 차츰 외로워지더라고요.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친해지려고 음료수 사주고 과자 사주고 그러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예요.

 

 - 그런다고 저렇게 걱정해주나요. 혜숙 씨 심성이 워낙 곱고 순수하고 아름다우니까 그런 거죠.

 

 - 교수님 지금은 그런 칭찬이 귀에 하나도 안 들어와요. 죽기 전에 얼른 똥이나 쌌으면 좋겠어요.

 

 - 죽긴 왜 죽어요. 걱정 마세요. 만약 똥 못 싸면 제가 파줄게요.

 

 - 그런 소리 마세요.

 

 - 진짜예요.

 

 김현이 혜숙의 손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연다.

 

 마침내 집안으로 들어선 혜숙은 김현의 팔을 놓고 사력을 다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다. 덩달아 김현도 뛰다시피 따라가다가 혜숙이 문을 쾅 닫자 그 앞에 멈춰 선다.

 

 혜숙은 미친 여자처럼 치마를 들어 올리고 팬티를 끌어내린다. 그리고 동시에 좌변기에 털썩 주저앉는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던 똥은 한참이 지나도록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진땀만 비 오듯이 흘러내려 얼굴을 적신다.

 

 - 아아아아아아아..........

 

 혜숙은 미친 듯 머리를 흔들고 소리를 지르다 울음을 터트린다.

 

 - 혜숙씨, 괜찮으세요.

 

 화장실 앞에서 서성이고 있던 김현이 문 앞으로 다가가 소리친다.

 

 - 저, 이대로 죽을 것 같아요.

 

 혜숙은 숫제 엉엉 운다.

 

 - 119를 부를까요?

 

 - 소용없어요. 119라고 제 똥구멍을 파주겠어요. 의사가 이런 건 본인이 알아서 해야 된다잖아요.

 

 - ........

 

 - 우리 아들한테 나 죽으면 염은 하지 말라고 해주세요. 닦아 준다고 내 몸에 손대는 것 싫어요. 유골도 선산 납골당에다 놓지 말고 그냥 아무데나 뿌려달라고 전해주세요. 꼭 좀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교수님, 정말 고맙고 죄송해요.

 

 - 혜숙씨, 약한 소리하면 안 돼요.

 

 김현은 화장실 문을 확 열어젖힌다. 혜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땀에 흠뻑 젖은 혜숙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혜숙씨, 제가 파 볼게요. 죽는 거 보다는 낫잖아요.

 

 - 아아아아아아...........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죽는 게 나아요. 저를 죽게 그냥 내버려두세요. 나가세요. 나가. 제발 나가세요.

 

 혜숙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소리를 지르며 애원한다.

 

 - 욕조 잡고 엎드려 보세요. 혜숙씨를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어요.

 

 - 안 돼요. 제발 나가주세요. 부탁이에요. 제발. 이대로 죽는 게 차라리 낫다고요.

 

 - 혜숙씨! 혜숙씨! 정신 차리고 제 말 들으세요.

 

 김현은 혜숙의 어깨를 끌어당겨 욕조 앞에 엎드리게 한다.

 

 - 혜숙씨, 손을 짚고 엉덩이를 쳐드세요. 어서요.

 

 - 못해요. 그렇게는 못해요. 차라리 죽고 말지. 그렇게는 못해요.

 

 - 창피한 건 순간이에요. 수치심 따위는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요.

 

 김현은 혜숙의 손을 잡아당겨 욕조 전두리에 갖다 올린다. 그리고 혜숙의 엉덩이를 끌어올린다.

 

 - 혜숙씨, 그러지 말고 다리를 벌려요. 어서 벌려 봐요.

 

 김현은 혜숙의 엉덩이 아래 쪼그려 앉아서 강제로 혜숙의 다리를 벌린다. 그리고 오른발을 걸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 혜숙씨, 조금만 참으세요. 제가 구해드릴게요.

 

 김현은 손가락을 혜숙의 똥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하지만 혜숙이 자꾸 엉덩이를 오므리고 피해서 잘 되지 않는다.

 

 - 아아, 안 돼요. 그러지 말고....... 젓가락 젓가락.........

 

 혜숙은 고통스럽게 내뱉는다.

 

 - 아, 그래요.

 

 김현이 주방으로 뛰쳐나간다. 혜숙은 김현이 자세를 잡아 준 그대로 엎드려 엉엉 운다. 마치 굳어버린 것처럼.

 

 - 혜숙씨, 죄송하지만 제가 엉덩이를 벌릴 테니까 힘을 주세요. 네네. 좀더. 예, 보여요. 막힌 게 보여요. 이렇게 콱 막고 있으니 사람이 죽지 살겠어요.

 며칠이나 됐어요. 보름! 보름도 넘었다고요. 아휴, 미치겠다. 혜숙씨가 드시는 건 또 얼마나 잘 드시는데....... 아, 죄송합니다. 혜숙씨 드시는 모습이 너무 복스러워보였어요.

 계속 그러고 계세요. 힘을 빼면 안 돼요. 이제 그만 울고 힘을 주시라니까요. 울음소리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뚝 그치고 힘주는 데만 온 신경을 쓰세요. 더더더더........

 조금 파냈어요. 똥이 어쩌면 이렇게 향기로워요. 사향이 따로 없네요. 그렇게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 나는 거 아시죠. 하긴 털이 조금 나긴 났네요.

 자, 다시 힘을 줘보세요. 아니 아예 욕조에 엎드려서 엉덩이를 바짝 쳐들어보세요. 그렇죠. 그렇죠. 이제 됐어요. 힘들어도 그 자세를 유지하세요. 훨씬 파내기 좋아요. 힘은 계속주고요.

 

 - 그만, 그만 됐어요. 잠깐 나가 계세요. 좌변기에 앉아볼게요.

 

 혜숙이 다급하게 소리친다.

 

 - 뭐 어때요. 볼 거 다 봤는데 그냥 앉아서 똥 싸요.

 

 한 시간 남짓 땀을 뻘뻘 흘리며 젓가락으로 똥을 한 점씩 파내고 있던 김현이 허리를 편다.

 

 - 제발 나가서 문 좀 닫아주세요. 똥이 다시 들어가려고 해요. 어서 나가요.

 

 혜숙은 반쯤 몸을 일으켜 엉거주춤한 자세로 김현을 문밖으로 떠밀어낸다.

 

 - 알았어요. 그럼 어서 볼일 보세요.

 

 김현이 문을 닫기도 전에 팡팡팡 푸드드득 소리가 요란하게 난다. 혜숙의 서러운 울음도 들린다.

 *

 

 한참만이다. 김현이 나가는 기척을 느낀 혜숙은 몸을 씻고 거실로 나온다. 소파 앞 테이블에 메모가 놓여 있다.

 

 ‘아름다운 혜숙씨, 급한 약속이 있어서 올라가요. 주말에 내려올게요. 사랑해요.’

 

 혜숙은 메모를 찢어 휴지통에 넣는다.

 

 ‘교수님, 정말 죄송합니다. 뵐 면목이 없습니다. 교수님께 평생 보여줄 수 없는 꼴을 두 번씩이나 보이고 말았습니다. 가족이라고 해도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차라리 죽는 게 나았습니다. 제가 살기를 원하신다면 앞으로 연구소에 오시더라도 저한테 전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전화하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다른 변명이나 교수님의 설득은 듣지 않고 싶습니다. 안녕히........’

 

 혜숙은 김현에게 카톡을 보내놓고 멍하니 앉아 있다.

 

 술과 방구와 똥으로 더럽혀지고 무너진 자존심을 되찾는 길은 그 방법 밖에 없다. 결별을 선언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현이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현을 똥하고 바꿨다는 자괴감 탓에 설움이 밀려온다. 거기다 어떤 수치심이 뒤섞이면서 마음의 회오리가 일어난다.

 

 혜숙은 마침내 엉엉 소리 내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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