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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여자들 끼리 술 마시면서 하는 말
작가 : 아브락사스
작품등록일 : 2019.9.11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한다는 건 참 어렵고도 험난한 여정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10화 키스하는데만 1년
작성일 : 19-09-21 17:24     조회 : 221     추천 : 0     분량 : 7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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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키스하는데만 1년

 

 

 

 

 

 청남대 정문 앞이다. 김현은 정문 가까이 차를 세우고 내려서 빠른 걸음으로 자동차 앞을 돌아 뒷문으로 다가간다. 하지만 혜숙이 벌써 자동차 문을 열고 내린 후다.

 

 - 교수님, 저한텐 그런 배려가 익숙하지 않아요. 그렇게까지 바라지도 않고요. 그러니까 너무 애쓰지 마세요.

 

 혜숙은 수줍고 미안한 웃음을 짓는다.

 

 - 이 외투 걸치세요.

 

 김현은 들고 내린 자신의 외투를 혜숙의 어깨 위에 걸쳐준다.

 

 - 교수님도 추우실 텐데. 교수님 입으세요. 전 괜찮아요.

 

 혜숙은 못 이기는 척 김현의 외투를 걸친 채 청남대 정문을 바라본다. 어깨를 감싸는 기분 좋은 무게와 따뜻함을 느끼면서.

 

 - 문 닫은 거 아니에요. 우리가 너무 늦은 거 같아요.

 

 혜숙은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다는 것은 추위와 더위 혹은 어떤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과 같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 벌써요. 아직 다섯 시 밖에 안 됐는데.

 

 김현은 성큼성큼 걸어서 반쯤 닫힌 철대문을 지나 수위실처럼 생긴 곳으로 올라선다.

 

 - 끝났습니다. 12월부턴 5시에 문을 닫아요.

 

 김현이 묻기도 전에 안에서 남자가 쪽 창문을 열고 외친다.

 

 *

 

 - 교수님은 언제 청남대에 가보셨어요?

 

 청남대 정문 앞을 돌아 나오면서 저녁 어스름으로 뒤덮이기 시작한 대청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던 혜숙이 문득 생각난 듯 묻는다. 그런데 사실은 어색한 침묵이 계속되고 있어서 무슨 말이라도 한 것이다.

 

 - 한 번 가보고 싶긴 했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김현은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사무적으로 대답하고 그만이다. 그래서 혜숙은 또 다시 계속되는 침묵과 어색함을 견디느라 차창 밖을 내다본다.

 

 훈훈한 난방 탓에 살을 에는 칼바람을 느낄 수는 없지만 호수와 나무들은 이미 꽁꽁 얼어버린 것만 같다.

 

 - 혜숙 씨, 미안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현이 사과를 한다.

 

 - .........

 

 영문도 모를 사과를 받은 혜숙은 어리둥절하다. 혹시 이제 그만 만나자고 말하려는 걸까! 집필하러 오는 건데 내가 방해를 한 건가!

 

 - 이렇게 계획도 없이 불쑥 모시고 나와서........

 

 - 괜찮아요. 교수님 바쁘신데....... 제가 갑자기 바람 쐬러 가고 싶다고 했는걸요.

 

 - 그래도 청남대가 언제 문 닫는지 정도는 출발 전에 알아봤어야 했는데....... 준비성 없는 제 자신을 나무라고 있었습니다.

 

 - 그러지 마세요. 빈틈이 없는 사람 저는 싫어요.

 

 - 저는 빈틈이 너무 많아요..

 

 - 그러세요? 저는 몰랐네요.

 

 - 차츰 알게 되실 걸요,

 

 - 어떤 면에서 보면 빈틈이 많은 사람이 인간적이지 않나요. 그래서 전 어렸을 때부터 빈틈이 많은 친구를 좋아한 것도 같아요. 좀 부족하다 싶은 친구들에게 마음이 끌리곤 했었어요, 전.

 

 - 그래서 저한테 끌리시는 건가요.

 

 - 제가 끌려간 건가요? 교수님이 저한테 끌려오신 것 같은데요.

 

 환하게 웃음 짓는 목소리다.

 

 - 지금까진 그랬는데 이제부턴 혜숙씨가 저한테 끌려올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아~ 마음이 한결 놓입니다.

 

 - 두고 봐야죠.

 

 - 혜숙씨를 좋아하게 되니까 자꾸 긴장하게 되고 제 자신을 살피고 엄격해졌거든요.

 

 - 어머, 전혀 안 그런 거 같은데요.

 

 - 아까도 문 닫는 시간도 안 알아보고 무작정 간 게 너무 자책이 됐어요. 제가 그렇게 소심한 사람은 아닌데 좋아하니까 사소한 실수도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 우리가 애들도 아니고, 서로 마음 편히 가지기로 해요.

 

 - 혜숙씨가 워낙 자존심이 강해서 그게 마음에 걸려요. 제가 지금껏 본 혜숙씨는 남한테는 너그러운데 자신한테는 아주 엄격한 것 같더라고요.

 

 - 제가요!

 

 - 이번에 큰 거 계약 성사됐다고, 이 사장이 저한테 계좌번호 알려달라고 해서 어머니께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했는데 혜숙씨가 기어코 거절을 했다고 들었어요.

 

 - 그 이야기라면 안 하는 게 좋겠어요.

 

 - 이 사장이 잘 챙겨 드리긴 하겠지만 저도 혜숙씨한테 힘이 되고 싶습니다.

 

 - 마음은 고맙게 받을게요. 하지만 돈은 크든 작든 받지 않겠어요.

 

 - ........

 

 - 저 조만간에 김치 공장에서 일할지 몰라요. 그러면 생활비 걱정 안 해도 돼요.

 

 - 제가 혜숙 씨 생활비 정도는 드릴 수 있어요.

 

 - 교수님! 자꾸 그러시면 저 교수님 안 볼 거예요. 전 제 삶을 찾고 싶어요. 제가 공장에 나가는 게 창피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면 저를 지켜봐 주세요.

 

 - ..........

 

  *

 

 - 연구소에서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는 건 처음이죠!

 

 김현이 시장 본 것들을 냉장고에 넣고 있다.

 

 - 이게 다 무슨 책이에요. 전부 부동산 관련 책들인가요? 연구소가 아니라 무슨 도서관 같아요.

 

 혜숙은 책장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 교수님이 쓴 책은 어디에 있어요?

 

 혜숙이 문득 김현을 바라보고 묻는다.

 

 - 책상 뒤에 있는 책꽂이에 있습니다. 회의용 테이블 말고 컴퓨터가 있는 책상 뒤요.

 

 김현은 냉장고 문을 닫으면서 혜숙을 바라본다.

 

 - 알겠어요, 교수님.

 

 혜숙이 성큼성큼 그쪽으로 다가간다.

 

 - 이게 다 교수님이 쓰신 것들이에요?

 

 - 제가 쓴 건 몇 권 안 돼요.

 

 - 부동산 경매 실전, 부동산 권리분석의 실제, 부동산학개론........ 인구가 자꾸 줄어들 거라는데, 젊은 사람들이 아기를 낳지 않아서........ 지금은 집이 부족한 거 같아도 머지않아 집이 남아돌면....... 그래서 도시가 텅 비면........ 그때가 되면 도시를 허물고 다시 산을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 그러게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도시를 허물고 산을 만드는 일에 대해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기타도 치시나 봐요.

 

 혜숙은 귀퉁이에 세워둔 기타와 악보를 발견하고 김현을 바라본다.

 

 - 잘 치진 못해요.

 

 김현은 컴퓨터를 켜고 플레이어를 작동시킨다. 연구소 벽 곳곳에 숨겨진 스피커를 통해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 제가 파전을 만들어 올 테니까 혜숙씬 소파에 앉아서 음악 듣고 계세요.

 

 - 저도 도울게요.

 

 - 아니에요. 오늘은 그냥 저한테 맡겨주세요.

 

 - 그럼 그럴까요.

 

 - 막걸리 먼저 드릴까요?

 

 - 예, 주세요. 한 잔 마시고 싶어요.

 

 *

 

 혜숙은 막걸리를 마시고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어먹는다. 눈을 감고 음악을 따라 흥얼거리기도 하고 다리를 흔들기도 한다. 까딱까딱.......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난다.

 

 혜숙은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간다.

 

 - 파를 더 많이 넣어요. 아주 많이. 전 파가 많이 들어간 파전을 좋아해요. 밀가루 반죽이 거의 없는 파전을 만들어 주세요.

 

 혜숙은 김현의 옆에 바짝 다가가 잔소리를 한다.

 

 - 아, 그러십니까. 밀가루 반죽은 이미 넣었는데, 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듬뿍 넣어드리겠습니다.

 

 김현은 파를 한 줌 집어 프라이팬에 넣고 또 한 줌 집어넣는다. 파로 프라이팬이 넘친다.

 

 - 불이 너무 세요. 불을 낮추고 파가 어느 정도 익을 때까지 우리는 춤을 춰요.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음악이 너무 좋잖아요.

 

 혜숙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김현의 목에 매달린다.

 

 - 전 춤 출 줄 몰라요.

 

 손에 들고 있던 뒤집개를 내려놓은 김현은 조심스럽게 혜숙의 허리를 껴안는다.

 

  -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나도 춤 출 줄 몰라요. 이렇게 남자의 목에 매달리는 것도 난생 처음이고요.

 ......... 그냥 리듬에 몸을 맡겨요. 이렇게 살살....... 아, 이 냄새 너무 좋다.

 

 - 집에서 나올 때 혹시나 해서 향수를 살짝 뿌렸는데 아직도 나나 보죠.

 

 - 혹시나라뇨!

 

 - 만에 하나 혜숙씨가 이렇게 안겨올 때를 대비한 거죠.

 

 - 이 응큼한 남자.

 

 - 제가 그런 기대를 하면 안 됩니까?

 

 - 아뇨, 선견지명이 있는, 아니 아니 유비무환의 자세가 좋아요. 아주 잘 했어요.

 

 혜숙은 김현의 이마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춘다.

 

 - 제가 교수님 이마에 도장 찍어준 거예요.

 

 - 하하........ 혜숙씬 정말 아름다운 여자예요.

 

 김현이 음악에 맞춰 몸을 조금씩 흔들면서 말한다.

 

 - 호호호호...... 교수님은 왜 그렇게 저한테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해요. 처음 들을 땐 그 말이 너무너무 황홀했는데....... 어쩌면 그 말 때문에 제가 사랑에 빠진 건지도 모르겠어요.

 ......... 교수님이 아름다워요 이렇게 말하면 제 몸에 어떤 황홀한 꽃이 피는 것 같았어요. 어지러울 정도로 황홀한.

 .......... 제가 정말로 아름다운가요. 전 몰랐어요. 아니면 거짓말인가요. 아니면 그냥 여자를 꼬시는 멘트인가요.

 

 - 제가 아름답다고 말할 땐 혜숙씨가 정말로.

 

 - 잠깐.

 

 혜숙은 김현의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댄다.

 

 - 저 오줌 싸고 올 테니까 교수님은 파전을 뒤집어주세요.

 

 혜숙은 김현의 목을 놓고 한걸음 물러난다. 그리고 뒤돌아 걸음을 옮긴다.

 

 - 막걸리가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가까워질 질 수 있게 마음의 오작교를 샥,하고 놓은 거라고요.

 .........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흠흠흠

 

 - 오줌이라는 말을 그렇게 자유롭게 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김현이 뒤집개를 집어 들고 혜숙의 등을 바라보며 말한다.

 

 - 소변이라고 안 하고 오줌이라고 해서 제가 무식해 보여요.

 

 혜숙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본다.

 

 -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럽게 오줌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라고요.

 

 - 어떤 사람은 제가 오줌 싼다, 똥마렵다, 이렇게 말하면 저를 경멸해요. 무식해서 그렇다나. 하지만 전 소변, 대변, 이런 말보다 오줌, 똥 이 말이 좋은 걸 어떡해요.

 제가 어렸을 때 엄마는 항상 그렇게 말했거든요. 혜숙아 오줌 쌌니! 자기 전에 오줌을 싸야 된단다. 혜숙아 배가 아프면 똥을 싸봐. 우리 혜숙이 똥은 좀 쌌니! 이렇게요.

 제가 누구한테 이런 얘기를 한 건 교수님이 처음이에요. 아들한테도 그런 말 안했어요.

 ......... 앗, 음악이 바뀌었어요. 아까 그 노래로 다시 바꿔주세요.

 제가 오줌 싸고(혜숙은 ‘오줌 싸고’에 힘을 주고 씨익 웃는다.)나왔을 때, 그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면 참 잘했어요, 도장을 또 찍어줄게요. 이번엔 입술에다 쾅 찍어줄지도 몰라요. 아니 꾸욱 눌러줄지도.......

 

 혜숙은 뒤돌아서 화장실로 모습을 감춘다.

 

 *

 

 - ....... 난 당신을 생각해요....... 흠흠흠

 

 혜숙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화장실에서 나온다.

 

 - 아까 하려던 말이 뭐였죠. 아름답다고 할 땐 정말로 내가 얄밉다고 말하려던 건 아니었죠.

 

 - 제가 혜숙씨한테 아름답다고 말할 땐 한없이 깊고 한없이 넓은 사랑을 느낄 때입니다. 사랑스럽다거나 사랑한다는 말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혜숙씨한텐 더 잘 어울려요.

 

 - 참 잘했어요, 도장 찍어줄게요.

 

 혜숙은 김현의 목에 매달려 눈웃음 짓는다. 그리고 김현의 입술에 자기의 입술을 대고 꾸욱 누른다.

 

 - 안 돼요.

 

 하지만 김현이 입술을 열려고 하자 혜숙이 입술을 뗀다.

 

 - 왜요!

 

 - 전 우리가 아주 오래 타는 굵고 커다란 통나무였으면 좋겠어요.

 

 - .........그건 뭐죠!

 

 - 제가 대학 다닐 때 캠프를 갔는데 선배 하나가 굵기만도 한 아름이나 되는 우리 키 절반 정도 크기의 통나무를 가져왔어요. 물론 남학생 여럿이서 끙끙 들고 왔죠. 너무 크고 단단해서 쪼갤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냥 불을 붙이기로 했어요.

 불을 붙이는데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긴 했지만 한 번 붙은 불은 좀처럼 꺼지질 않았어요. 덕분에 우리는 꺼지지 않는 불 앞에 앉아 밤새 이야길 나눌 수 있었죠.

 하지만 다른 캠프의 모닥불은 뜨겁게 타오르다 금방 꺼졌어요. 잘 쪼개 놓은 장작은 불이 잘 붙고 금방 타올라 뜨겁지만 그만큼 빨리 타버리고 말잖아요.

 그때부터 저는 누군가를 만나면 커다란 통나무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남자들은 불도 붙기 전에 지쳐서 가버리더라고요. 그러다 저도 포기하게 되었고 아들을 얻었어요.

 하지만 교수님과는 천천히 오래오래 밤이 새도록 타는 통나무이고 싶어요.

 

 - 키스 하는 데만 1년, 뭐 이렇게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 그럴지도 모르죠.

 

 - 이미 불은 붙은 거 같으니까 10년까지는 기다려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늙어버리겠는데요.

 

 - 우리는 늙겠지만 사랑은 늙지 않아요.

 

 - 혜숙씨는 참 아름다운 여자입니다. 늙지 않는 사랑이라면 영원이라도 기다릴게요.

 

 - 교수님은 제가 꿈꾸던 그런 남자예요.

 

 *

 

 김현은 파전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혜숙의 입에 넣어준다. 혜숙은 취기 오른 얼굴로 함박웃음을 짓는다.

 

 - 혜숙씨는 어떻게 춤을 추면서도 파전을 뒤집어야 할 때를 정확히 알아요.

 

 김현은 생각난 듯 묻는다.

 

 - 주부 경력 사십 년 가까이 되는데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세요. 음식은 시간을 갖고 낮은 불로 오래 해야 건강에도 좋고 타거나 설익지 않아요. 특히 갈비처럼 두꺼운 음식을 할 때는 낮은 불이라야 해요. 센 불은 겉만 태우고 속은 익히지 못하거든요.

 

 - 하, 오늘 혜숙씨한테 좋은 거 많이 배웁니다. 도시를 허물고 산을 만드는 아이디어까지........

 

 - 이건 만약인데,........

 

 - 만약인데.........

 

 김현은 혜숙을 빤히 바라본다.

 

 - 만약에 우리가 서른 아니,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지금처럼 서로 사랑하게 될까요?

 

 - 그야 당연하죠.

 

 - 우리가 결혼하면 내 아들과 교수님 딸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해요. 그래도 괜찮아요?

 

 - 아~ 혜숙씨. 사실대로 말씀 드릴게요. 우린 지금도 스무 살로 돌아갈 수 있어요.

 

 - 어떻게요.

 

 - 우리의 사랑만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스무 살로 돌아갈 수 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오래 전에도 우린 이 맘 때쯤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나눴고 스무 살로 돌아갔었어요.

 그때 전 무슨 일이 있어도 혜숙씨를 선택하겠다고 약속을 했고, 혜숙씨도 저를 선택하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혜숙씨 아들과 제 딸이 이 세상에 생겨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린 서로를 선택하기로 굳게 약속을 하고 스무 살로 돌아갔던 거죠. 마법처럼.

 하지만 혜숙씨는 저를 버리고 아들을 선택했어요. 운명의 방향을 알고 있었던 저는 오늘 이 자리서 혜숙씨를 다시 만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딸을 선택해야 했고요.

 정리하자면 오래 전 그때도 우리는 같은 약속을 하고 스무 살로 돌아갔었지만 혜숙씨는 결국 아들을 만나기 위해 저를 버렸고 전 혜숙씨를 만나기 위해 또 다른 운명을 선택한 거지요. 그리고 또 다시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아름다움에 빠진 거고요.

 그러니까 만약 오늘 우리가 사랑의 힘으로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 같을 겁니다.

 

 - 교수님!

 

 혜숙은 갑자기 일어나 김현의 목에 매달려 얼굴을 파묻고 흐느낀다.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을지라도 아름답게 받아들여야 해요. 어찌 보면 시간이 길고 짧은 건 의미가 없어요. 늦게 만난 걸 안타까워할 필요는 더욱 없고요.

 매순간 아름답게 바라보고 아름답게 숨 쉬고 아름답게 기억하면 돼요. 우린 영원히 잊으면 안 되니까요. 잊혀 지면 안 되니까요.

 서로 다른 운명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우리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기억이 우리를 다시 오늘로 이끌어 줄 겁니다.

 이렇게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게요.

 

 혜숙은 알 수 없는 격정에 휩싸여 김현의 목덜미를 눈물로 적신다. 마치 김현의 말이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혜숙은 다시 스무 살 그 황홀한 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김현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슬프고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돌아가지 못하는 것 또한 슬프고 괴로운 것이다.

 

 - 미안해요. 미안해요........

 

 혜숙은 아예 김현의 목을 끌어안고 통곡한다.

 

 - 뭐가 미안하다는 거예요.

 

 - 교수님을 선택하지 못 해서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요.

 

 - 하하하........ 그렇다고 울긴 왜 울어요. 이러니까 제가 혜숙씨를 아름답다고 할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을 전 아직 본적 없습니다.

 - 저를 놀리면 깨물어 줄 거예요.

 

 혜숙은 김현의 목덜미를 깨무는 시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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