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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괴물이 준 꽃을 먹는다면
작가 : 해뜨다
작품등록일 : 2019.9.14

페터 숲에 있는 성에는 절대 가까이 가지마렴.
만약 그 성에서 헤매게 됐다면 숨을 죽이고 조용히 숨어있으렴.
너를 죽이려는 괴물의 발소리가 없어질 때까지.

만약 괴물에게 들켰더라도 숨을 꾹 참으렴.
괴물의 눈은 아주 나쁘니까 네가 있는지 모를 거야.

 
이야기의 존속 (1)
작성일 : 19-09-19 22:38     조회 : 156     추천 : 0     분량 : 6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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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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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녀를 잡아먹을 화마는 태어나지 않았다. 불을 붙여야할 성냥의 불씨가 사그러들었기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떨어지던 성냥이 꽁꽁 얼어붙은 채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울분이 불을 지핀, 그 사나운 감정이 무색할 만큼 너무나도 쉽게.

 

 

 “루니아 님.”

 

 

 바닥에 떨어진 성냥에 쏠려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옮겨갔다.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 그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하나 같이 똑같은 로브를 걸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하기도 전에, 리제의 뒤쪽에서 힘없이 웅크리고 있던 레몬이 리제를 살포시 껴안았다.

 

 

 “아가.”

 

 

 눈송이가 땅에 가라앉는 소리처럼 아주 작게. 집중해서, 숨소리를 조심해서 듣지 않으면 제대로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레몬은 제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말했다.

 

 

 “아그리드를 믿지 말아라.”

 

 

 아그리드?

 

 뜻을 알 수 없는 말이 끝나자, 마을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온 이들이 딱 한발자국만 들어갈 수 있는 거리를 남겨둔 채 리제와 레몬을 내려다 보았다.

 

 쪽빛 로브의 후드로 감추고 가장 앞에 선 이를 리제의 눈이 따라갔다. 밑에서 올려다 본 그의 얼굴은 섬뜩함, 그 하나로 정의할 수 있었다.

 

 그림자진 새카만 눈, 입을 비스듬하게 가로지른 무서운 흉터.

 

 반사적으로 레몬을 지키기 위해 양 팔을 벌리고서 그를 막아서는 듯한 자세를 취하자, 그의 뒤에 서있던 네명의 사람들 중 한 명이 웃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났다.

 

 

 “웃지마라, 에프겐.”

 

 “그치만, 너무 귀엽잖아요. 어린 아이가 지키겠다고 용쓰는 모습이….”

 

 “루니아 님 앞에서 무슨 추태지.”

 

 “그치만…저 애가 루니아 님은 아니잖아요? 젊을 거라고는 했지만, 저렇게 젊을 리는….”

 

 

 둥근 안경을 쓴 남자가 머금고 있던 웃음을 찬찬히 지워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엔 좀 당황한 듯한 목소리였다.

 

 

 “에이, 설마. 진짜로?”

 

 “….”

 

 “그치만 뮤랑 씨가 그랬잖아요. 루니아 님이 아그리드를 나갔을 때, 26살이었다고. 시간이 거꾸로 가지 않는 한 저럴 리가….”

 

 

 뭐야? 응? 진짜? 정말?

 

 혼자서 물음표를 가득 띄우며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에프겐을 놔두고, 입가에 흉터를 가진 남자가 리제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니, 리제의 뒤에 있는 레몬에게.

 

 

 “연락을 받고 왔습니다. 뮤랑입니다.”

 

 “…용케도 알았군, 그래.”

 

 “시간을 거스르는 꽃 같은 건 아직 없으니까요.”

 

 

 레몬은 리제로 숨기고 있던 고개를 들고서 그와 마주했다.

 

 뮤랑은 예의상 내밀었던 손을 뒤로 빼며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서늘한 공기가 새어나오는 듯 했다.

 

 

 “주변 시선이 따갑군요. 자리를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 집으로 가세.”

 

 

 제 뒤쪽에서 저들끼리 웅성거리는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와 눈초리를 느낀 그가 그리 말하자, 레몬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머니?”

 

 

 아무것도 모르겠다. 제 앞에 있는 사람들도. 그 사람들과 아는 사이로 보이는 듯한 할머니도.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리제의 머리를 레몬이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안심해도 괜찮다는 듯, 따스한 손길이었다.

 

 리제가 레몬의 옷깃을 붙잡고서 두 다리를 세워 일어나자, 멀뚱히 보고만 있던 마을 사람 중 하나가 급하게 리제의 팔을 잡아 끌었다.

 

 

 “잠, 잠깐만요. 당신들은 대체 뭐죠? 누군데 감히….”

 

 “감히?”

 

 “괴물의, 마녀를….”

 

 

 인상이 험악한 이가 후드로 인해 그림자진 얼굴로 저를 노려보며 뒷말을 따라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남자는 점차 주눅이 들며 목소리를 줄여나갔다.

 

 입가에 커다란 흉터가 있으니 그 위압갑은 더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리제의 팔을 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갔고, 그 아픔에 결국 리제가 작은 신음을 터트린 순간, 뮤랑의 뒤에서 가만히 있던 이가 몸을 움직였다.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가 어찌나 박력 있던지, 쓰고 있던 후드가 뒤로 젖혀졌고. 불꽃처럼 타오르는 붉은 머리칼이 들어났다.

 

 가위로 마음대로 자른 것처럼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짧은 머리카락. 하지만 그보다 시선을 이끄는 건 오른쪽 눈을 완전히 뒤덮은 화상자국이었다.

 

 

 “야, 다시 떠들어봐.”

 

 

 그녀는 제 머리칼만큼이나 강렬한 붉은 눈동자를 사납게 뜨며 리제의 팔을 붙잡은 남자의 손목을 붙들었다.

 

 자신보다 두배는 큰 것 같은 거구에 남자는 흡, 하고 신음을 들이켰다.

 

 

 “마녀, 뭐.”

 

 “히익!”

 

 “말을 해, 이 새끼야.”

 

 

 억센 아귀 힘에 남자는 억, 소리를 내며 리제의 팔을 놓았다. 하지만 여자는 손을 놓지 않았다.

 

 남자는 제 잡힌 손을 빼내보려 안간힘을 썼다. 그래봤자 소용은 없었지만 말이다.

 

 

 “이거 놔, 놓으라고!”

 

 “….”

 

 “이, 놔, 놔주, 세요!”

 

 

 반말은 어느새 존댓말로 바뀌고, 남자는 그저 차갑기만 했던 제 손목이 점점 감각을 잃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한겨울에, 차디찬 얼음을 피부에 밀착시킨 것처럼 차가웠던 게, 이제는 긴가민가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반항하는 것이 점점 줄어들고, 주변 이들은 숨을 삼키며 매마른 입술을 꾹 씹었다.

 

 조용히 하려 했더니, 점점 일이 커져만 간다.

 

 

 “하아….”

 

 

 작게 한숨을 쉰 뮤랑은 여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에비게일, 거기까지만 해.”

 

 “마녀라잖아요.”

 

 “에비게일.”

 

 “마녀라잖아!”

 

 

 커다란 짐승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굵직하고 커다란 목소리였지만, 에비게일은 순순히 붙잡고 있던 팔을 풀어주었다.

 

 화가 풀리지 않은 것은 여전하기에 그녀는 화를 풀 곳을 찾다, 결국 제 머리를 이리저리 헤집는 것을 택했다.

 

 세게 쥐어뜯는 모양새를 보니, 그녀의 머리가 왜 저리 됐는지 알 것만 같았다.

 

 비록 폭력적이었지만 에비게일이란 사람은 자신을 도왔다. 딱히 돕지 않았어도 결국 리제 스스로 그를 바닥에 내팽겨쳤을 테지만, 저 여자가 먼저 나서서 마녀라는 말에 화를 내주었다.

 

 리제는 이제 아픔 하나 느껴지지 않는 손목을 좀 어루만지다 에비게일의 로브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제 허벅지 쪽에서 이상한 기척을 느낀 에비게일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로 리제를 내려다 봤다.

 

 

 “감사해요.”

 

 

 무덤덤하게 내뱉은 작은 감사인사.

 

 에비게일은 머리를 헤집던 손을 내리고 리제와 눈을 마주하기 위해 무릎을 굽혔다.

 

 

 “마녀는 없어.”

 

 “네.”

 

 “마법을 쓰는 마법사는 있어.”

 

 

 에비게일은 그 말을 하며 뭔가를 보여줄까 하다, 자신이 꽝꽝 얼렸던 성냥을 가리켰다.

 

 마법. 아, 저걸 마법이라고 부르는구나.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해내는, 그런 힘을.

 

 더이상 불씨 같은 건 머금고 있지 않은 성냥을 바라보던 리제는 문득 꿈을 떠올렸다. 괴물이 쫓아올 때 주변을 집어삼키며 따라오던 식물들.

 

 괴물의 눈물로 피어난 꽃. 그가 제 목에, 목에….

 

 다시금, 그때의 감각이 되살아나며 리제의 손이 목에 올려졌다. 손톱이 붕대를 긁었다.

 

 

 “할머니.”

 

 

 리제가 고개를 돌려 레몬을 바라봤다. 작은 아이의 눈동자에 공포가 담겼다.

 

 ‘나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모든 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앤톤과 릭은 죽었고, 자신은 괴물에게 뭔지 모를 짓을 당한 뒤 눈을 떴다. 지금 자신이 살아있다고는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일까.

 

 괴물은 대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심으로 얼룩진 아이의 얼굴을 보자, 레몬은 심장이 덜컥였다.

 

 ‘루니아, 나는 괜찮아. 별 거 아니야.’

 

 왼손 약지에 반지처럼 새겨진 꽃송이를 제게 보여주며 말하던 친구가 떠오른 탓이었다. 별 거 아니라고 했지만, 그 아이는.

 

 

 “괜찮아, 아가. 이리오련.”

 

 

 레몬은 리제보다 동요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리제를 제 품으로 불렀다.

 

 

 “우선 집으로 가자꾸나.”

 

 “…네.”

 

 “자네들도 따라오시게.”

 

 

 레몬은 살짝 비틀거리는 몸을 리제에게 기댄 채 걸음을 옮겼다. 그 둘을 로브를 걸친 이들이 뒤따랐고, 주민들은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무어라 말을 붙이고 싶어도 에비게일이 크게 벌인 일이 있어 겁이 났다. 하지만 그게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다. 아무말도 않고 있던 두명.

 

 그 둘이 침묵하라는 의미를 담은 무서운 눈으로 자신들을 노려본 것이, 마을 사람들이 입을 닫게 만들었다.

 

 

 * * *

 

 

 레몬은 리제가 잘 알지도 모르는 이들을 집안으로 들였다.

 

 바람대로 조용한 곳에 들어오게 된 뮤랑은 드디어 살겠다는 듯, 숨을 내쉬며 후드를 벗었다.

 

 그가 후드를 뒤로 넘기자 에비게일을 제외한 다른 이들도 갑갑한 후드에서 벗어났다.

 

 

 “그럼 정식으로 다시 소개하죠.”

 

 

 뮤랑이라고 소개해놓고 정식으로 소개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리제는 레몬 옆에 착 달라붙은 채 그들을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라봤다.

 

 

 “아그리드 제 1군 소속, 뮤랑이라고 합니다. 루니아 님의 긴급 연락을 듣고 왔습니다.”

 

 

 아그리드. 그 말을 듣자마자 리제는 레몬이 그들을 믿지 말라고 했던 말을 되새겼다.

 

 아그리드가 뭐길래?

 

 루니아가 레몬이 버리고 왔다던 이름이라는 것은 이미 눈치챘다. 근데 아그리드는, 뭔지 몰랐다. 고대어로 징벌자라는 뜻을 가졌다는 것밖에.

 

 괜스레 경계를 하며 레몬의 곁에 붙어있는 리제를 흘끗 바라보던 뮤랑은 제 왼편에 있는 에프겐에게로 시선을 넘겼다.

 

 소개를 하라는 의미였다.

 

 

 “안녕하세요, 루니아 님. 만나뵙는 건 처음이네요. 아, 루니아 님에 대한 건 이것저것 많이 들었어요. 괴물에게 친구를 팔아넘겼다는 말이라든지, 아끼던 친구를 버리고 도망쳤다는 말이라든지….”

 

 “서론이 길다.”

 

 “죄송해요. 무성한 소문의 주인공을 뵀더니 신나버렸네요. 저는 뮤랑 씨와 같은 제 1군 소속 에프겐이라고 합니다.”

 

 

 얼굴 반을 가리는 커다란 둥근 안경. 그 너머로 물결처럼 넘실거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그 청량한 눈이 곱게 반으로 접히며 에프겐이 리제를 향해 손을 흔들려했을까, 에비게일이 아주 간단히 그 손을 뒤로 꺾으며 입을 열었다.

 

 

 “에비게일입니다. 제 뒤에 있는 얘네는, 남자가 벨. 여자가 벨라입니다.”

 

 “악! 아파! 아프다고! 아! 에비게일!”

 

 

 사람의 손이라는 게 원래 저렇게 인형처럼 자유자재로 꺾인다는 것을 처음 목격한 리제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전부 못 본 것으로 치부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사탕 먹을래?”

 

 “과자도 있어.”

 

 

 은발을 높게 묶고 길이감이 애매한 앞머리는 옆으로 내린 이들이 각자 과일 향이 나는 사탕과 동물 모양으로 만들어진 쿠키를 내밀었다.

 

 선의가 깃든 진한 녹색 눈동자가 동시에 리제를 응시했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체구. 똑같은 머리 스타일.

 

 목소리까지 똑같아 리제는 쉽사리 누가 벨이고 누가 벨라인지 구분을 하지 못했다.

 

 모르는 사람이 준 것을 받아먹기도 싫고, 아직 경계가 허물어진 것도 아니니 리제가 우물쭈물하고 있자, 벨라와 벨이 동시에 리제를 안아올렸다.

 

 

 “아이는 저희가 돌보고 있을테니까 뮤랑 님은 루니아 님과 얘기 나누세요.”

 

 “가자, 얘. 누가 벨이고, 누가 벨라인지 알아맞추는 게임을 통과할 때까지 놔주지 않을 거야.”

 

 “어, 나도 같이 놀아줄래! 에비게일 너도 가자. 네 또래잖아.”

 

 “닥쳐, 말도 못 가리는 놈아.”

 

 “우웅, 에프겐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 걸?”

 

 

 벨과 벨라가 계단을 올라가고, 에프겐은 볼을 부풀리며 같잖은 애교를 시전하다 에비게일의 발에 차이며 계단을 기어올라갔다.

 

 그들이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며 사라지고 나서야 레몬의 입이 열렸다.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 너는 여전하구나. 네 친우이자 부하였던 자들의 자리는 버젓이 다른 이들이 채우고 있는데.”

 

 “루니아 님께서 아시는 제 부하들은 모두, 나이가 먹어 은퇴했습니다. 몇몇은 이미 세상을 떴고요.”

 

 

 뮤랑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이가 같았던 부하도 있었고, 저보다 한참 어린 부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나이를 먹고 노화가 진행되어 쇠약해질 때, 오직 뮤랑만이 그대로였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처럼.

 

 레몬은 입꼬리를 삐뚤게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가?”

 

 “루니아 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황가의 핏줄입니다. 몸 안에 용의 피가….”

 

 “그따위 거짓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아그리드를 나온 이유를 다 아는 네가.”

 

 

 레몬의 눈이 뮤랑을 사납게 응시했다. 그에 뮤랑은 무어라 말을 하려 입술을 달싹였지만 할 말을 잃어버린 건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황족은 금룡의 피가 흘러 인간과 수명이 다르다, 라는 것이 이 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다.

 

 실제로 현 황제는 스물 초반에 즉위하여 100년이 넘도록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의 외모는 고작 서른을 좀 넘긴 외양이었다.

 

 용의 피를 이은 자. 용이 비호하는 나라.

 

 하지만 그 진실을 아는 레몬에게 그따위 말은 통하지 않았다.

 

 

 “브렌다를 갉아먹고 큰 것들이 말은 많구나.”

 

 

 하나뿐이던 자신의 친구. 레몬향주머니를 무척 좋아하던, 언제나 그 향이 물씬 풍기던 아이.

 

 레몬이 공격적으로 날을 세우며 말하자 뮤랑 또한 좋게만 봐주던 말본새를 지워냈다.

 

 

 “그런 친우를 구하지도 않고 홀로 도망친 분이 말도 많으시군요.”

 

 “….”

 

 “죽음이 두려웠던 건 저나 당신이나 별반 다를 거 없지 않습니까.”

 

 

 악의는 없었다. 다만, 자조적일 뿐이었다.

 

 

 “저는 살아서 걸어나가는 걸 택했고, 당신은 침묵하고 뒤로 돌아서는 걸 택했을 뿐이죠.”

 

 

 진실을 눈으로, 몸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받아들인 자신과, 그것을 거부하고 모른 체 하는 것을 택한 레몬.

 

 그것을 이야기하는 뮤랑의 태도에서 레몬은 안도했다.

 

 너나, 나나. 한결같이 악을 택한 자라 다행이라고.

 

 

 “몇십년이나 지났는데도 아그리드의 통신구를 가지고 계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뭐든 챙겨놓는 버릇이 도움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네.”

 

 “그래서, 대체 무슨 일로 아그리드를 부르셨습니까.”

 

 

 “부를 때 말하지 않았나. 히몬에 관한 이야기가 사라져가고 있고,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믿을만한 일이 나지 않는 한 히몬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레몬의 눈길이 뮤랑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로 향했다. 로브 사이로 보이는 칼자루에 그녀의 시선이 닿아있다는 걸 눈치챈 뮤랑은 자연스럽게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로브로 검을 가렸다.

 

 장검 하나와 단검 하나.

 

 혈향이 짙다. 향을 배합하여 향주머니를 훌륭한 솜씨로 만들어내는 레몬의 코를 속일 수 없었다.

 

 

 “그게 다가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래. 다가 아니지.”

 

 “….”

 

 “내 아이가, 히몬의 계약자일세. 자네 덕분에 히몬의 꿈을 그 아이 혼자서 독차지 할 수 있게 되었고.”

 

 

 숲속의 성.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괴물의 계약자.

 

 아. 뮤랑은 그제야 깨달았다.

 

 [히몬에 대한 이야기가 약해지고 있다. 강화 시킬 필요가 있어.]

 

 한 번 들어오면 죽기 전까지 나갈 수 없다는 아그리드를 아주 손쉽게 빠져나간 그녀는,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머리가 무척 좋았던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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