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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죽지 마
작가 : 이른
작품등록일 : 2019.9.18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순간 유령이 된다.
악마들에 꼬임에 빠져 유령이 된 소녀는 악마들이 창궐하는 천사들의 세계로 불려가 그들의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어떤 예언을 이루어주게 되는데. 그 예언의 결과는.....

 
4. 아지악의 악마들
작성일 : 19-09-19 16:00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8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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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지악의 악마들

 

 

 지난 밤 성역을 빠져나온 메이는 텅 빈 초원에 데라모타와 함께 모닥불을 피웠다.

 

 듬성듬성한 잡초와 엉겅퀴가 거슬리고 멀리 서트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그 정도면 성역의 밖에서는 나름 괜찮은 편이다.

 

 밤하늘엔 별들이 반짝이고 약간의 음식과 친구도 있으니까 말이다. 메이는 데라모타를 돌아본다. 그는 성역에서 사온 음식들로 대충 끼니를 때우더니 벌써 골아 떨어졌다.

 

 ‘도대체 뭐 하는 라그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메이가 그를 만난 것도 벌써 10년이다. 그러나 정작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가 부자들을 등쳐먹고 사는 모략꾼이라는 정도뿐이다.

 

 데라모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메이에게 그는 아버지였고 친구였으며 주인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메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친구의 옆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느새 여명이 밝아 오는 이그라의 가장 서쪽. 아킬라 연방의 베르 대평원에서부터 하늘을 향해 얇고 투명한 은막이 일렁인다. 바로 아킬라 연방의 결계다.

 

 메이는 자신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은막 안의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이상해진다. 그는 안주머니에서 데라모타가 만들어준 가짜 신분증을 꺼내 만지작거린다.

 

 “이딴 것만 있으면 성역에 갈 수 있는 걸...이 작은 게 뭐라고.”

 

 메이는 그 신분증을 가지기 위해 성역 밖의 노역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메이의 아버지는 외부자 출신으로 연방경계선 바로 밖에서 일했다. 그는 성역 바로 바깥쪽에 있는 안전 구역이라는 곳에 길을 닦는 잡부였다.

 

 그 길은 성역의 라그들이 다른 성역으로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한 길이었다. (성역의 밖에서는 윈더가 항로를 이탈해 추락하는 사고가 많이 생겨서 반드시 길이 필요했다.)

 

 몇몇 연방에서는 성역 사업에 20년 이상 근무하면 외부자들에게도 연방 신분증 비슷한 걸 줬다.

 

 메이의 손에 있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그게 있으면 성역 안에서 살 수 있다.

 

 메이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성역에서 살게 하려고 허리가 굽고 손가락관절이 휘도록 일을 했지만 결국 연방 신분증을 가지지 못하고 다리 붕괴사고로 세상을 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메이를 데리고 안전구역너머에 있는 비보호 구역까지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녔다.

 

 그 지역은 서트들이 출몰하는 위험한 지역이었다. 메이는 그곳에서 어머니를 잃었다.

 

 대신 작은 피벗 한 마리를 잡았지. 빌어먹을 그날 저녁 거리로. 메이는 작은 피벗을 손에 들고 어머니가 서트들에게 뜯어 먹히는 걸 덜덜 떨면서 지켜봐야 했다.

 

 데라모타가 아니었다면 서트들의 다음 먹이가 됐을 게 뻔했다. 그 뒤로 메이는 피벗이라면 이가 갈렸다.

 

 메이는 마침 분홍색 피벗무리들이 짧은 주둥이를 킁킁 거리며 나와 새벽공기를 맡는 걸 발견하고는 오만상을 쓰며 총을 겨눈다.

 

 “탕!”

 

 그 소리에 데라모타가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그의 손을 급하게 잡는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아지악의 울창한 숲 사이로 총성이 울려 퍼지고 지난 밤 사냥에 실패한 포식자 ‘서트’들이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파충류처럼 미끈거리는 피부. 네 개의 팔처럼 움직이는 네 개의 다리.

 

 그 섬뜩한 라겐의 피조물이 총성을 쫓아 빠르게 움직인다. 메이가 혼미백산해서 말에 오르고 데라모타는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검을 뽑아든다.

 

 “설마..그거 성검이야?”

 

 처음 보는 그의 능력에 메이가 입을 떡 벌리는데 데라모타가 설명할 틈이 없다는 듯 그의 말고삐를 낚아채 카란 강을 따라 아킬라의 결계가 세워져 있는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서트들이 무서운 속도로 뒤를 추격하고 있다. 번들거리는 검은 파충류 떼들은 마치 지옥에서 온 들개들 같다.

 

 “앞만 보고 달려!”

 

 데라모타가 뒤로 빠지며 메이를 향해 소리친다. 그가 빛나는 검을 휘둘러 서트 한 마리를 내려치는 게 보인다.

 

 “주인!”

 

 “달려! 멍청아!”

 

 서트 한 마리가 메이를 향해 몸을 날리고 있다. 그는 할 수 없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고삐를 힘껏 잡아당긴다.

 

 연방 경계선에 도착하자 바닥에 촘촘하게 박힌 피뢰침에서 얇은 막이 일렁이는 것이 보인다.

 

 “뒤 돌아 보지 마.”

 

 어느새 그를 따라온 데라모타의 목소리가 어때 너머로 들려온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다.

 

 그들은 서트들에게 완전히 포위되기 전 가까스로 아킬라의 결계를 지난다.

 

 서트들은 결계 앞에서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주춤거리다 햇볕에 피부가 마르기 전에 숲으로 서둘러 돌아간다.

 

 

 *

 

 

 정적 속에서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아리안타의 아침. 심판의 방에 3명의 모핸들이 들어선다.

 

 방으로 들어선 것은 포레스의 에렌과 타니야의 나단, 라이칸의 조르다. 그들은 징벌의 권좌에 앉아있는 모로를 보자 일제히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한다.

 

 “서트들이 기어이 아킬라의 안전구역까지 침범했다고?”

 

 모로는 다소 신경질적인 태도로 말하고는 모핸들의 반응을 천천히 살핀다. 모핸들은 말을 아낀 채 모로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5년간 서트들이 밀집된 아지악에 군대를 보내, 서트 사냥을 하고 망자의 혼을 씻어낼 소서러들은 수도 없이 파견했지만 그들의 수는 오히려 늘어났소.”

 

 “서트의 번식력이 남다른데다 망자의 혼이 아지악 주변에 살고 있는 외부자들에게 변이를 일으키고 있어, 상황을 수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에렌이 답한다. 모로가 눈썹을 씰룩거리며 그를 노려본다.

 

 “정말 그것이 서트가 늘어나는 이유의 전부요?”

 

 모로의 질문에 짧은 침묵이 흐른다. 아무도 말이 없자 에렌은 결국 침묵을 깨는 것이 자신의 몫임을 깨닫는다.

 

 “모르드, 아지악의 정화에 너무 많은 군력을 쓰시는 것은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내 질문과 동떨어진 대답이로군?”

 

 모로가 턱을 괴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아킬라 군사자금의 절반이 보수원로들의 지갑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은 땅을 위해 돈을 쏟아 붇는 것에 불만이 많습니다.”

 

  “혹시, 공의 지적은, 나는 성역의 밖이야 어찌돼든 관심 끄고 보수원로들의 비위나 맞추란 소리요?”

 

 모로의 음성이 차갑다. 에렌은 물러서지 않고 그를 마주본다.

 

 “일단은 그들을 달래는 것이 아지악의 정화보다 우선한다는 얘깁니다.”

 

 “그들을 달래라? 그래, 공께서는 내가 그들을 어찌 달래면 좋겠소?”

 

 “라리카스 출신의 결혼 예정자가 이미 5년 전에 궁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모로는 입 꼬리를 올리며 의자에 기댄다.

 

 “모르드, 제사장 선임은 성역의 필수 조건입니다.”

 

 “결혼을 해라?”

 

 모로가 신경질적으로 되묻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에렌의 앞에 선다.

 

 “아킬라를 삼두뱀에게 갖다 바칠 라리카스의 종마. 모두가 나를 그리 여기고 말을 삼가고, 내 눈을 가리려 한다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소?”

 

 연합 위원회가 추천한 라리카스의 결혼 예정자를 5년 째 만나지도 않았건만 그녀의 존재가 그 자리에서, 그것도 형제처럼 지내왔던 모핸들의 입에서 언급되자 참을 수가 없다.

 

 “모핸 에렌, 정말 내가 라리카스의 공녀와 결혼하기를 원하오?”

 

  둘 사이에 위태로운 침묵이 흐른다. 에렌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모로는 조금 누르러진 얼굴로 자신의 권좌로 돌아가 앉는다.

 

 “공들께 약속하건데 내가 어떤 피를 가졌든 아킬라는 라리카스를 견제하는 마지막 보루가 될 것이오. 그러니 다시 묻겠소. 아지악의 서트들이 늘어나는 진짜 이유가 뭐요?”

 

 모로가 모핸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묻는다. 그러나 그의 진심어린 약속에도 불구하고 모두 여전히 말을 아끼고 있다.

 

 침묵이 지나치게 팽팽해지자 아몬드 모양의 큰 눈에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모핸 조르가 자신의 품에서 황금 팬던트 하나를 꺼내 든다.

 

 거기에는 성벽 뒤로 사라진 사드 연방의 앰블럼이 새겨져 있었다. 흔히 감시자의 눈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것은 도카를 들락거리는 이교도 상인들에게서 뺏은 것입니다. 12연방에 남아있던 사드의 물건들은 이미 70년 전에 모두 소각되었다고 들었는데 비보호구역에서는 끊임없이 이런 물건들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조르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자 에렌이 심히 언짢은 시선으로 그를 돌아본다.

 

 “사도 에렌께서도 사드의 물건을 보는 안목이 상당하신 걸로 아는데.”

 

 모로가 팬던트를 가리키며 말하자 에렌은 탐탁지 않은 얼굴로 팬던트를 받아든다. 에렌은 침묵 속에서 조르가 가져온 팬던트를 만지작거리다 나단에게 보여준다.

 

 나단은 팬던트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에렌과 복잡한 감정이 담긴 시선을 주고받는다.

 

 “진품처럼 보이는군요.”

 

 에렌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팬던트를 돌려주며 말한다. 조르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 팬던트는 배달부들이(외부의 운반업자들)사드의 성벽 부근에서 아지악까지 데라모타의 물건을 배달해주고 받은 것입니다. 사방2미터 정도 되는 상자였다고 하는데 안에서는 서트의 악취가 풍겼다고 하더군요.”

 

 “서트들이 사드에서 빠져나왔다는 얘길 하시려는 것 같은데....”

 

 나단이 조심스럽게 끼어든다. 그는 조르가 과거에도 같은 주장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라리카스의 결계를 모욕하는 것이었고, 라리카스의 결계를 모욕하는 것은 그것을 검증하고 승인한 12제사장과 대연합위원회를 모욕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았다.

 

 아지악은 대가를 지불했고 아킬라가 아니었다면 조르 역시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또 그 이야기를 꺼내다니 나단은 조르가 어리석게 느껴진다.

 

 “모핸 조르께서는 아지악에 서식하는 서트들의 목을 자세히 살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사드의 종족들에게 있어야할 라겐의 표식이 없습니다.”

 

 나단이 더 이상 얘기를 꺼내지 말라는 뜻으로 단호하게 지적한다. 그의 말투가 어찌나 딱딱한지 거의 경고처럼 들린다.

 

 “그럼 공께서는 라겐의 표식이 없는 서트들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시오?”

 

 모로가 차분히 묻는다. 스스로의 분노에 지쳐버린 듯 더 이상 화를 내지도 격하게 흥분하지도 않는다.

 

 기다린 듯 그를 지치게 하는 침묵이 찾아온다. 에렌은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얼마 전 훈이 했던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지만 눈을 내리깔 뿐, 그 어떤 의견도 내놓지 않는다.

 

 *

 

 

 “일드발퀼이 보고한 지구의 최근 그래프를 보면 10년 사이 눈뜬 인간이 급격히 늘어났어. 그런데 그 일부가 감쪽같이 사라졌지. 얼마 전에 에렌에게 그 얘기를 했어.”

 

 훈이 홀딱 벗은 몸에 이불을 감으며 말한다. 테나의 허름한 침대는 별로 온기가 없고 그녀의 보잘 것 없는 집은 허름한 판자 사이로 바람이 숭숭 들어온다.

 

 “그래서요?”

 

 테나가 냉기가 도는 욕실 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머리를 털며 소리친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추운 기색이 하나도 없다.

 

 “관심이 없더군.”

 

 “저런...너무 하는군요.”

 

 테나가 욕실 안에서 가엾은 훈을 위해 추임새를 넣어준다.

 

 “다들 내 얘기를 무시하지. 내가 다른 세상에 산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가 협탁에 놓인 수정 구슬을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사실이잖아요?”

 

 테나가 속옷 바람으로 욕실에서 나오며 말한다.

 

 “아니. 난 다른 세상에 사는 게 아니라 차원의 연관성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야.”

 

 “오호. 그래요?”

 

 그녀가 진지하게 듣지 않자 훈은 뭔가 결심한 듯 자세를 고쳐 앉는다.

 

 “좋아 들어 봐. 모든 차원은 사실 밀접하게 연결 돼 있어. 하나의 차원에서 섭리가 깨어지면 다른 차원의 섭리도 깨어지기 쉽지. 포털은 모든 세상이 만나는 꼭지 점과 같거든. 그래서 이그라에서 지구를 지키는 거야.”

 

 “누구보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거 알아요.”

 

 테나가 수건 하나를 들고 훈의 옆에 눕는다. 그녀가 수건을 건네주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들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얘기를 이어간다.

 

 “차원의 섭리에 눈뜬 인간을 보통 유령이라고 하는데, 놈들이 라겐의 독을 찾아서 진화를 하면 숙주가 되지. 일드발퀼은 유령이 숙주가 되기 전에 죽이는 일을 해. 놈들이 숙주가 되면 다른 인간들을 잡아먹거든.”

 

 “아지악에 생겼던 일들이 떠오르는군요.”

 

 테나가 그의 다리를 베고 누워 느긋하게 말한다.

 

 “비슷하지. 일드발퀼이 제대로 일을 못하면 지구는 쑥대밭이 되는 거라고.”

 

 훈이 수건으로 테나의 머리카락을 꾹꾹 누르며 말한다.

 

 “그런데 일이 좀 꼬였어. 꽤 오랜 전부터 말이야. 유령들이 계속 사라지는 거지.”

 

 “눈뜬 인간들 중 일부가 사라진 게 그렇게 심각한 거예요?”

 

 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유령’의 발생 수에서 새로 발생한 숙주들의 숫자를 빼고 일드발퀼에서 처리한 유령의 숫자를 빼면 반드시 0이 되어야 해.”

 

 “원칙은 늘 잘 지켜지지 않는 법이죠.”

 

 테나가 쌀쌀한지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을 뒤진다. 그 바람에 젖은 머리카락이 훈의 얼굴을 치며 차가운 물방울 여러 개를 튕긴다.

 

 훈이 물방울을 닦아내며 차갑다고 투덜대자 테나가 혀를 찬다.

 

 “이 따위 추위에 벌벌 떠는 분이 지구를 지킨다니. 제가 인간이면 불안해서 잠도 못 잘 거예요.”

 

 “인간들은 우릴 몰라. 내가 누군지는 더더욱 모르고 말이야. 그건 불변의 원칙이야.”

 

 “원칙은 늘 잘 지켜지지 않는 법이라니까요.”

 

 테나가 얇은 드레스의 단추를 잠그고 그 위에 자주 입는 낡은 니트를 감으며 말한다.

 

 성역 안에서라면 늙은 할머니도 입지 않을 옷을 보고 훈은 그녀에게 따뜻한 모피와 포레스 산의 최고급 드레스를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옷만 제대로 걸치면 제사장 저리 가라할 미모가 나올 여자였다.

 

 “다음에 올 땐 옷을 좀 가져 오지. 보석이랑...집도 좀 고치면 좋을 것 같고....”

 

 “날 성역의 여자처럼 꾸며 보시려고요?”

 

 테나가 그 딴 건 질색이라는 표정으로 말한다.

 

 “여긴 비보호구역이에요. 모피나 값비싼 드레스를 가지고 있다간 살해당한다구요.”

 

 “난 당신 같은 여자가 왜 이런 위험한 곳에 사는지 모르겠어.”

 

 테나. 그녀는 3급 정도의 예지력을 가진 초능력자로‘아지악의 매력적인 점쟁이’라고 불린다.

 

 그녀는 아지악 출신으로 조르와 모로의 합병 계약 때 라이칸에 갈 수도 있었다. 그럼 사도의 신분도 인정받고 능력 있는 소서러가 돼서 제대로 된 집에 살았을 것이다.

 

 구멍 난 판자로 만든, 더럽고 바람이 다 들어오는 그런 집 말고 진짜 집말이다.

 

 테나의 집은 비가 올 땐 비도 들어온다. 게다가 바닥은 그냥 흙이다. 그래서 훈은 그게 집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

 

 테나가 굳이 그걸 집이라고 하니 그냥 집이라고 부를 뿐이다. 테나의 집 주변에는 좁고 후미진 길을 따라 그런 판자 건물이 꽤 많이 모여 있다.

 

 전부 조각난 판자들을 궁색하게 엮어서 벽과 천정을 만든 것이다. 그곳은 허름하고 위험하다.

 

 “성역 안은 이런 게토랑 많이 다르죠?”

 

 테나는 성역 안을 본 적이 없다. 외부자들, 그 중에서도 점쟁이 같은 라그들은 성역 안에 절대 못 들어온다.

 

 성역은 그들의 예지력을 데모노맨시(악령의 힘을 이용해 미래를 보는 것)라고 부르며 경멸한다.

 

 성역은 테나의 능력을 경멸하는 만큼 그런 능력을 가진 테나도 경멸한다. 테나도 그걸 알고 있다. 자신이 성역에서 어떤 존재인지 말이다.

 

 그녀 안에 자신을 경멸하는 성역에 대한 증오가 있을까? 그녀의 얼굴에서는 그런 감정을 읽기 어렵다. 그녀는 언제나 밝고 유쾌하고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으니까.

 

 “언젠가 한 번 정도는 성역에 가보고 싶어요. 특히 라이칸에. 거기 저희 모르드가 계시니까요.”

 

 아지악 출신의 외부자들은 라이칸의 조르를 아직도 자신들의 모르드라고 부른다.

 

 “모르드 조르께서는 잘 계시죠?”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야.”

 

 여러 상황들이 있지만 다 알 필요는 없다.

 

 “그럼 됐어요.”

 

 테나가 훈을 보고 웃는다. 빛나는 미소다.

 

 “그나저나 그래프가 엉망이 돼가고 있어서 어쩌죠?”

 

 “그러게 말이야. 이게 10년 전부터 서서히 맞지 않더니 이제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어.”

 

 “10년 전부터요? 오래됐군요. 그런데 아직 0의 원칙이 깨진 걸 아무도 몰라요?”

 

 “매년 그래프를 연합위원회에 보고하고 있으니 그들도 문제를 알겠지. 하지만 그 뿐이야. 그냥 보고 집어 던져 버리는 거지. 지구 따위 아무도 관심이 없어. 이그라의 문제만으로도 다들 머리가 복잡하니까.”

 

 훈은 어깨를 으쓱한다.

 

 “그럼 됐네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뭐가 문제예요?”

 

 “나는 신경이 쓰인다는 게 문제야. 나는 일드발퀼이고 인간들이 눈을 뜨지 않도록 지키는 게 우리 일이니까.”

 

 “진짜 천사처럼 요?”

 

 “전설에 따르면 그렇지. 전설에 따르면 우린 모두 위대한 천사족이었어. 그 얘기에는 성역과 성역 밖의 구분이 없지.”

 

 테나가 훈을 요염하게 쳐다보며 고양이처럼 다가와 무릎 위에 앉는다.

 

 “저런, 이제 보니 나의 모핸께서는 천사족의 전설을 믿는군요?”

 

 테나가 훈의 입에 입을 맞추며 작고 귀여운 목소리로 속삭인다. 어떻게 이런 여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노래하듯 말하는 여자.

 

 훈은 그녀의 치마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속옷 사이로 다시 파고들 틈을 찾는다.

 

 사랑스러운 테나. 제일 추운 곳에 살면서 전혀 추위를 못 느끼는 테나. 집이 아닌 곳을 집이라고 부르는 테나. 진짜 집이 뭔지 모르는 테나.

 

 붉고 매혹적인 입술을 가진 테나. 훈은 눈으로 그를 부르는 테나의 입술에 자석처럼 끌려 입을 맞춘다.

 

 그때 협탁 위에 놓인 이어닉스에서 마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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