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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죽지 마
작가 : 이른
작품등록일 : 2019.9.18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순간 유령이 된다.
악마들에 꼬임에 빠져 유령이 된 소녀는 악마들이 창궐하는 천사들의 세계로 불려가 그들의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어떤 예언을 이루어주게 되는데. 그 예언의 결과는.....

 
3.사명
작성일 : 19-09-19 08:52     조회 : 229     추천 : 0     분량 : 7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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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명

 

 

 에렌은 아리안타에 있는 포레스 공관에서 책을 읽다 주위가 어두워진 것을 느끼고 시계를 확인한다. 저녁 7시. 어느덧 창밖에는 붉은 노을이 피어 있다.

 

 아리안타에서는 아직 차크만의 대제사가 진행 중이었고 보고에 따르면 훈이 모로를 상대하고 있었다.

 

 에렌은 책을 덮고 붉은 노을을 따라서 아리안타의 무채색 복도를 걷는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판의 방 앞에 서 있다.

 

  위압감이 들 정도로 높은 천정에 사방이 아치형의 문으로 트여있는 심판의 방은 꼭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는 교차로 같다. 아니면 모든 길이 모이는 꼭지 점이거나.

 

 그곳에 황금 날개로 장식된 징벌의 권좌가 있다.

 

 에렌은 황금 날개를 올려다보며 모로가 그 날개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너무 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쩌면 그에게 황금 날개를 양보한 것은 어리석은 결정이었는지도 모른다는 회의가 그의 마음 한 편에 깊은 그림자를 만든다.

 

 

 *

 

 데라모타는 쾌쾌한 냄새가 나는 ‘라비노’라는 술집의 바에 앉아 낡아빠진 TV로 케신의 연설 장면을 다시 보고 있다.

 

 메이는 막 나온 감자 칩을 입에 쑤셔 넣다 말고 화면을 가리키며 뭔가를 재빨리 세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데 말이야.....”

 

 메이는 애기를 꺼내다 말고 감자 칩 때문에 목이 막히는지 맥주를 들이키고는 의례용으로 쓰이는 흰 손수건으로 야무지게 입을 닦는다.

 

 “왜 12 제사장인데 제사장이 11명밖에 안 되는 거지?”

 

 “우리 아킬라의 모르드께서 혼인을 미루고 계신다오.”

 

 화면에 집중한 데라모타 대신 안주를 가져다주려고 온 선술집의 남자 주인이 설명한다. 그는 그걸 모른다는 게 이상한지 메이와 데라모타를 위 아래로 훑어본다.

 

 “당신들은 이 곳 아킬라 출신이 아닌 모양이요?”

 

 아킬라의 라그라면 모르드가 5년이나 약혼녀를 성에 가둬두고 혼인을 미루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다들 쉬쉬하지만 애들도 다 아는 얘기다.

 

 그걸 떠벌리고 다니다가 경비대에게 걸리면 큰 변을 치를 수도 있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우린 그러니까....바깥 쪽...저 멀리....”

 

 “몰드 연방에서 왔소.”

 

 메이가 더듬거리자 데라모타가 잘라 말한다. 그는 주인장이 멀어지자 메이를 노려본다.

 

 “왜?”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바깥 쪽 저 멀리서 왔다니...입만 열면 외부자 티를 내는군.”

 

 “그런데 성에 약혼녀를 5년이나 가둬두다니 무슨 악취미야?”

 

  메이가 실수를 인정하는 얼굴로 감자 칩을 한 주먹 쥐어들며 얼른 화제를 바꾼다.

 

 “일부 연방에서는 제사장 선임을 위해 연합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그러면 거의 라리카스 연방 출신의 명문가 장녀들이 추천 명단에 오르지. 연합 위원회의 대표 카를 대제가 라라카스 출신이거든.”

 

 “연합 위원회와 라리카스 연방이 한 통속이라는 거야? 구역질나는군.”

 

 메이가 입을 비틀며 질색을 한다. 그럴만한 게 외부자들에 대한 라리카스의 처우가 매우 혹독해 성역의 밖에서 그 이름은 악마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아킬라 연방은 공식적으로는 연합위원회를 지지하고 있지만 정략결혼만은 포레스의 결혼관을 이유로 교묘히 거절해 왔어. 하지만 이번엔 그게 어렵게 됐지. 아킬라를 상징하는 황금 날개가 라라카스 출신에게로 넘어갔거든.”

 

 “저 남자 말하는 거야?”

 

 메이가 소금기가 묻은 손가락을 쪽쪽 빨며 화면을 턱으로 가리킨다. 화면에는 성난 모로가 케신을 노려보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모친이 라리카스 출신이야. 그의 어머니 카야는 ....”

 

 데라모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캬야를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린다.

 

 “그렇게 별로야?”

 

 “글쎄...어쨌든 대단한 여자임은 분명해. 덕분에 라리카스 출신이 황금 날개의 주인이 됐고, 아킬라는 오랜 전통을 버리고 연합위원회가 추천한 결혼 예정자를 궁으로 들여야 했으니까.”

 

 “하지만 정작 라리카스의 피가 흐르는 모르드가 그 결혼을 거부하고 있다?”

 

 메이가 그렇게 말해놓고 눈알을 굴리더니 데라모타를 빤히 쳐다본다.

 

 “이 험악한 판에서 누구에게 뭘 팔아먹으려고?”

 

 “고객은 많을수록 좋지. 팔 수 있는 건 뭐든지 팔 거야. 게다가 내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물건이 있지.”

 

 그는 그렇게만 말해주고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가봐야해.”

 

 “벌써?”

 

 메이가 반 이상 남은 자신의 술을 가리킨다.

 

 “말했잖아. 놀러온 게 아니라고. 우린 할 일이 있어.”

 

 “그런 말을 했다고? 언제?”

 

 “병신 같은 소리하지 말고 일어나.”

 

 데라모타는 테이블에 술값과 팁을 올리며 말한다. 메이는 마지못해 자리를 뜨다 데라모타가 팁으로 올려둔 지폐에 시선이 멈춘다.

 

 -때가 되었다.-

 

 지폐의 모퉁이에 그런 글귀가 낙서처럼 휘갈겨 있었다.

 

 ‘무슨 뜻이지?’

 

 메이가 이상한 촉에 그 지폐를 집어 들려는데 술집 주인이 한 발 먼저 그것을 낚아챈다.

 

 “이건 내 몫이요.”

 

 “알고 있어요. 난 그냥 거기에 뭐가 적혀 있는 것 같아서...”

 

 주인장이 지폐를 앞뒤로 뒤집더니 콧방귀를 낀다.

 

 “때가 되었다? 어떤 미친놈이 이런 낙서를 한 거야?”

 

 “안 오고 뭐하는 거야.”

 

 그때 데라모타가 뜸을 들이는 메이를 향해 소리친다.

 

 “가! 가고 있어.”

 

 메이는 그렇게 소리치며 술집 주인을 돌아본다.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지폐를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퉁퉁한 배를 두들기며 다음 주문을 받고 있다.

 

 

 *

 

 

 케신이 차크만의 끝을 신께 고하는 종을 울린다.

 

 그리고 아킬라의 제사장을 대신해 성역을 상징하는 신탁의 거대한 우물에 잔잔한 물결이 규칙적으로 이는 것을 확인한다.

 

 그 잔잔한 물결은 결계의 힘이 거대한 자기장이 되어 성역을 무사히 관통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아킬라의 파시아는 무결합니다.”

 

 케신이 카야의 옆으로 다가서며 말한다. 청아한 종소리가 끝났을 때, 모로의 어머니 카야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녀는 예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답다. 카야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모아 11명의 제사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로써 차크만의 공식 행사가 모두 끝난 것이다.

 

 11명의 제사장들은 처음 도착했을 때와 같은 환호를 받으며 자신들의 왕과 함께 차에 오른다.

 

 아킬라 연방의 사도들이 처음처럼 아리안타의 정문에 나와 그들을 배웅한다. 에렌도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숨기고 모로의 뒤에서 환한 미소를 짓는다.

 

 데라모타와 메이는 진즉부터 선술집에서 나와 이번에는 제법 앞자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너무 가깝지 않아?”

 

 메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속삭인다.

 

 “걱정 마.”

 

 데라모타가 더 앞으로 나가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망토를 깊게 눌러썼지만 눈썰미가 좋다면 그의 얼굴을 충분히 알아볼 만 한 거리다.

 

 “일반 라그들은 몰라도 1급 사도들이나 정치꾼이라면 주인의 얼굴을 한번쯤은 봤을 거야.”

 

 메이가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데라모타의 망토를 붙잡으며 말한다. 더 가까이 가면 누군가는 그를 알아볼 지도 모른다.

 

 그럼 그들이 성역의 결계를 몰래 뚫고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데라모타는 말을 듣지 않는다.

 

 “죽으려고 작정을 했나....”

 

 메이는 성역을 넘은 대가를 고려하자 오늘은 주인을 따라나서지 말 걸 그랬다는 후회가 된다.

 

 

 *

 

 

 “저기 누가 왔는지 좀 봐.”

 

 훈의 말에 눈에 총기가 넘치는‘타니야’의 주인 모핸 나단이 고개를 돌린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훈이 가리키는 곳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인상을 쓴다.

 

 “도카의 장사꾼, 데라모타로군.”

 

 “저자가 성역엔 어떻게 들어온 거지?”

 

 “비보호구역에서 제법 큰 장사꾼이니 연방 신분증 따위를 위조했을 수도 있지. 맘만 먹으면 못할 일도 아니잖아. 그보단 왜 여기에 나타난 걸까? 이교도 상인 따위가 차크만에 뭘 팔게 있다고.”

 

 “외부자들 사이에서는 황금 날개를 아리안으로 가져오기 위해 대모 카야가 데라모타와 거래를 했다는 소문이 있어.”

 

 나단도 그 소문을 들었을 텐데 말도 안 된다는 듯 그는 고개부터 흔든다.

 

 “신탁을 모시는 대모님께서 이교도와 거래를 했을 리 없어.”

 

 “그녀를 믿는 척 하지 마. 아무도 그녀를 믿지 않으니까.”

 

 훈이 거침없이 말한다.

 

 정말 대모와 데라모타가 거래를 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가 상대를 가르지 않고 뭐든 팔아치운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무엇이 어쨌든 그런 자가 아킬라의 차크만에 보란 듯 나타나 얼굴을 들이민다는 건 불길한 일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혹시 모르지. 놈을 잡으면 대모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걸 볼 수 있을지도.’

 

 연방 신분증 위조는 처형이 가능한 중죄니 이참에 제대로 올가미를 씌워 놈과 관련된 소문을 샅샅이 파헤쳐 볼 수도 있으리라.

 

 훈은 경비대장을 손으로 부른다. 그런데 나단이 황급히 그의 손을 잡는다.

 

 12연방의 수많은 카메라가 뉴스거리를 찾아 불을 밝히고 있다. 이교도 상인이 차크만에 들어왔다는 오점이 방송을 타면 라리카스는 아킬라를 웃음거리로 만들려 할 것이다.

 

 “12연방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문이 뚫렸다고 광고라도 하고 싶은 거야?”

 

 나단이 묻는다. 따지고 보면 훈이 데라모타에게 묻고 싶은 내용 역시 아킬라에게 굳이 이로울 게 없었다.

 

 아킬라의 황금 날개를 두고 이교도까지 끌어들이며 말도 못하게 더러운 싸움이 벌어졌던 게 알려지면 모로는 대모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럼 에렌이 모든 걸 내려놓고 순순히 물러났던 일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

 

 “더 이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선 안 돼.”

 

 결국 훈은 순순히 손을 내리고 경비대장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데라모타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한번 까딱이더니 메이를 데리고 천천히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

 

 

 *

 

 

 그날 밤. 차크만의 하루를 회상하며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던 모로는 이상한 꿈을 꾼다. 자신을 부르는 어떤 여자의 목소리를 따라 홀로 잿빛 안개 속을 헤매는 꿈이다.

 

 그곳은 아마....아지악인 것 같았다.

 

 ‘모로.’

 

 애절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자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절박한 심정이 그를 지배한다.

 

 “마리...”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다.

 

 ‘모로!’

 

 그의 이름이 연거푸 잿빛 안개 사이로 메아리치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그녀를 찾을 수 없자 점점 초조해진다.

 

 “마리! 마리!”

 

 모로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어떤 이름을 외쳐 부르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다.

 

 “뭐지...뭐야..”

 

 모로는 꿈이 남긴 감정과 잔상에 몸을 떨며 거친 호흡을 한다. 몸의 신경이 살아나는 동안에도 답답한 기분과 절박한 감정이 그의 온 몸을 지배하고 있다.

 

 모로는 언약문이 새겨진 탄탄하고 넓은 가슴을 드러낸 채 그대로 누워 어둠과 빛이 교묘히 섞인 공기를 맡는다.

 

 손아래 느껴지는 부드러운 실크 이불의 촉감과 건조하고 찹찹한 공기, 벽과 바닥의 백색 대리석에서 풍기는 차갑고 서늘한 향기가 어제와 같다.

 

 그를 내려다보는 두 개의 거인상까지.

 

 어둠을 짊어진 두 석상의 거대한 얼굴은 오늘도 고뇌로 가득 차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며 그는 천천히 평소의 컨디션을 되찾아간다.

 

 모로는 몸의 신경이 돌아오는 동안 침실 천장의 벽화를 올려다본다. 거대한 두 개의 거인상이 떠받치고 있는 천장에는 무한자’라고 불리는 불생불사의 존재들이 그려져 있다.

 

 그들은 평범한 라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정말 그들의 실제 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75년 전 완전히 모습을 감췄기 때문이다.

 

 모로는 그림의 정중앙에 그려진 무한자들의 왕 모르드 바아르를 바라본다. 그는 모로 또래의 젊은 모습을 하고 가슴에는 언약의 서를 새긴 모습이다.

 

 ‘언약의 서 2장 1절. 섭리를 버리고 죽음을 거부한 자는 반드시 라겐에 갇힌다.’

 

 언약의 서 2장 1절을 수호하던 대천사장이 라겐의 종족이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죽음을 거부한 자는 반드시 라겐에 가둬라.’

 

 그것이 모르드 바아르와 바아르가 다스리던 사드 연방의 사명이었다.

 

 그는 라겐을 빛을 찾아 불생불사의 존재가 되었지만 그가 지키던 사명대로 그의 아내 아스닷과 함께 라리카스가 세운‘영원의 벽’ 뒤에 갇혔다.

 

 그림 속에서 바아르가 왼손으로 감싸고 있는 붉은 머리의 미녀가 바로 아스닷이다.

 

 그녀는 우아한 미소로 양 손의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마치 매듭을 짓듯 서로 교차시키고 있다.

 

 그것은 제 3차원 라겐의 무한한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녀의 뒤로 선 검은 짐승들도 같은 손동작을 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 쓴 짐승도 있다. 다만 놈은 손의 모양이 다르다. 그 짐승은 한 쪽 팔을 길게 뻗어 서쪽을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상징이다.

 

 이그라의 뒷면에 있는 인간들의 세상, 바로 제 1차원 지구를 가리키는 것이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호기심에 가득 차서 기괴하리만치 눈을 크게 뜬 인간들이 그려져 있다. 모로는 순간 오래전 꿈속에서 보았던 소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소녀였지만 분명 라그는 아니었다. 라그와 인간은 거의 비슷했지만 1급 사도들은 그 미묘한 차이를 정확히 구분해낼 수 있다.

 

 이계의 생명을 알아보는 것은 일종의 초능력, 그러니까 제 6의 감각이었다. 모로는 자신의 볼에 남아있는 소녀의 감촉을 떠올린다.

 

 가늘게 떨리던 손길. 그리고 그 눈....

 

 그녀의 눈에는 봐서는 안 될 것을 봤다는 당혹함과 금기를 깨고 죽음의 문을 넘어선 자의 공포가 스며있었다.

 

 “...마리...”

 

 의도치 않았지만 그 이름과 언젠가 보았던 인간 소녀가 자연스레 겹쳐진다.

 

 ‘내 이름을 아는 눈 뜬 인간?’

 

 모로는 머리를 가로젓는다. 인간은 죽음을 지나지 않고는 이그라에 대해 알 수 없다.

 

 세 개의 차원을 관통하는 포털이 있긴 했지만 거길 지날 수 있는 라그들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모로는 천장을 올려다보는 것을 관두고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서쪽 하늘에서 동이 트고 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어젖힌다. 차르륵하는 힘찬 소리와 함께 진한 자주색의 암막커튼이 걷히며 햇볕이 한 번에 쏟아져 들어온다.

 

 그의 침실은 신성을 상징하는 순백의 색깔을 되찾고. 모로의 발아래에는 푸른빛을 뿜어내는 찬란한 도시가 물결친다.

 

 숨이 막히도록 규칙적인, 정확하게 떨어지는 직선의 건물들과 수직으로 내리뻗은 길들.

 

 그 길들은 완벽한 원형을 이루는 곡선의 도로와 만나 점점 밖으로 번져나가며 방사형의 빛나는 신성 국가‘아리안’을 만들어낸다.

 

 모로는 자신의 아름다운 왕국을 바라보며 목에 걸린 아킬라의 팬던트를 만지작거린다.

 

 정교한 황금날개모양의 팬던트. 그는 그 팬던트의 주인이 되는 대가로 언약의 서. 1장 1절의 수호자, 죽음의 대천사가 되었다.

 

 모로는 가슴에 새겨진 언약의 서를 손가락 끝으로 훑는다.

 

 ‘너희는 반드시 모두 죽으리라.’

 

 그것을 바꾸어 읽으면 “모두 죽게 하라.”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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