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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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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27 언약과 고요 (2)
작성일 : 19-09-19 00:49     조회 : 302     추천 : 0     분량 : 3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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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품식과 언약식이 끝나고 며칠 동안, 에어드부르가와 조지는 성소에 머물렀다. 오랜 세월 이뤄지지 않았던 자기반성과 속죄의 기간이 시작되었다. 조지는 자신을 향해 찾아오는 마을 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미안해요, 조지.”

  “괜찮아요.”

 

  조지는 자신의 기억과는 사뭇 달라진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서 예전의 자취를 되짚으면서 그들이 누구인지 한 명씩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받았던 은근한 멸시도. 기억을 떠올리면, 그것은 생생하지만 정말 멀리서 바라보는 것처럼 아무런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 감각은 정말 익숙해지지 않는 편안함이어서, 조지는 에어드부르가에게 영원한 빛이 되면 원래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지 물어보았다.

 

  “모든 영원한 빛은 그 자체로 세계의 여러 법칙의 현신. 그렇지만 모든 법칙의 현신은 아니지. 그들이 어떤 법칙의 현신이냐에 따라서, 그에 관한 것만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아르티제에는 흡혈귀를 증오하는 영원한 빛이 많은 거군요.”

 

  에어드부르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에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지가 무엇에 감정을 느끼는지도. 그렇기에 그녀는 그가 영원한 빛이 된 이후로도 조심스러웠다.

 

  마을 사람들이 성소에 모여 기도하는 시간이 되면, 조지는 잠시 성소를 빠져나가 마을을 거닐었다.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다가와서 인사했다. 그는 차분한 미소로 화답하며 계속 걸어갔다. 발길이 닿는 대로 간 곳은 늘 똑같은 자리였다. 그 개울, 그 수풀 옆, 그 나무 아래.

 

  그렉은 사제로서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의 모습에 가슴이 뛰다가도, 그 옆의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 차게 식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렉만을 생각했을 때 가슴이 뛴다면, 자신의 법칙은 그 근처에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알기 위해서 그렉과 사랑을 온전히 나눌 수는 없었다.

 

  영원한 빛과 살아있는 생명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도 다르다. 사사로운 감정을 담아서 사랑하기에는 그들은 연약하다. 사랑했던 이가 영겁의 세월을 지나 자신과 같은 영원한 빛이 된다면 사랑할 수 있을까. 아마 그즈음에는 자신의 법칙에 충실해진 나머지 사랑이 풍화된 후일 것이다.

 

  풍화된 사랑. 영원한 빛 중에서 그 말라 부스러진 사랑을 지키는 이들도 있기는 했다. 흡혈귀와 마찬가지로 저주받은 종족인 늑대인간을 사랑한 영원한 빛, 블랑카가 그랬다. 창세의 순간에서 자신의 기록을 스쳐 보내면서, 조지는 블랑카의 모습에 눈을 돌린 적이 있었다. 저주받은 동족을 구원하기 위해 증오 대신 영겁의 사랑을 선언한, 그 공허한 눈을.

 

  영원한 빛이 된 뒤에 바라본, 거울 속의 제 눈동자가 블랑카의 것과 닮았다는 사실을 그는 문득 떠올렸다. 그 눈빛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조지는 나무 아래에 걸터앉고 눈을 감았다. 침잠한 자리에서 세상의 법칙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정교하게 짜인 톱니바퀴 장치의 부품 중 그 어느 것에도 맞지 않았다.

 

  “여기 있었구나.”

 

  눈을 뜨면 어느새 밤이 되어 별이 내려와 있었다. 고개를 위로 젖히자 그렉이 조지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도 시간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난 모양이다. 아주 잠깐만 눈을 돌려도 시간은 이렇게 빨리 흐른다. 아마 내가 잠깐만 이 마을을 떠나도 그렉은 이곳에 없겠지. 조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돌아갈까?”

  “응. 나는 숲으로 갈게.”

 

  두 사람은 조용히 성소의 별채로 향했다. 그 길목이 조지와 그렉이 가장 오랫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까. 별채의 불빛이 꺼진 것으로 보아 루카스도 성소의 방으로 돌아간 듯했다. 그 옆의 그루터기에 앉아, 두 사람은 숲의 그림자와 밤하늘에 드리운 별빛을 바라보았다.

 

  “저 별들은 무엇일까?”

 

  조지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세상의 법칙을 바라보아도, 별에 대한 법칙이나 별을 다스리는 영원한 빛은 없었다. 그렉은 교단에서 배운 것을 조지에게 가르쳐주었다.

 

  “저 별은 이 세상 너머에 있는 거라고 배웠어.”

  “별 자체는 될 수 없어도, 촛불에 깃들었을 때처럼 별빛에 깃들 수 있지 않을까?”

  “글쎄, 잘 모르겠네.”

 

  그래도 이 세상에 영원한 빛이 아닌 이상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아마 저 별빛도 언젠가는 사라지겠지. 그렉은 무언가 아쉬운 것처럼 말했다. 그 목소리에 조지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지금 헤어지면 우리 중에 누군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루 만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비극을 만났던 그들이기에, 아무도 그렇게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돌아가야지, 다시 만난다고 믿으며. 조지는 그렉의 마음속 소리가 들린 듯했다. 조지는 그루터기에서 일어났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어.”

  “그래. 좋은 밤 되렴.”

 

  그렉은 조지를 안으며 그의 뺨에 작게 입을 맞추었다. 조지도 그렉의 뺨에 입술을 대어 답을 한 뒤, 숲의 그림자를 흩어내는 잔잔한 빛이 되어 사라졌다.

 

  “돌아왔네?”

  “아직 깨어 있었어요?”

 

  성소에 돌아온 그렉을 반긴 것은 체칠리아였다. 체칠리아는 나긋한 미소로 그에게 좋은 시간을 너무 일찍 끝낸 거 아니냐며 짓궂게 말했다. 그렉은 얼굴을 붉히지 않으려고 애쓰며 답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괜찮아. 아직은 젊잖아. 둘 다.”

  “그래도 교리에 어긋나잖아요.”

  “괜찮대도.”

 

  영원한 빛과 살아있는 생명은 서로 연인으로서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교리. 교리보다는 금기에 가까운 문장이었다. 이 교리를 설파해야 할 사제가 나서서 이 교리를 어기는 일은 전혀 올바른 일이 아니지만, 아르티제의 사제들은 두 사람의 사연을 알고 있기에 아주 잠시만 눈감아주기로 했다. 그 아주 잠시만이라는 시간이 얼마만큼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비적성의 사제인 내가 눈을 감고 있는 거니까, 괜찮아.”

  “고마워요.”

 

  그렉을 바라보는 체칠리아의 눈빛에는 측은한 마음과 그 뒤의 조그마한 어둠이 뒤섞여 있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자에게 가질 법한 그런 어둠 말이다. 사람의 마음은 그 자신도 통제할 수 없어서 나쁘네. 체칠리아가 자신에게 속삭이듯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서품식을 받고 벌써 일주일인데, 버틸 만해?”

  “네. 아직은 괜찮아요. 늘 하던 일인데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래도 피곤은 하지? 식탁에 데워둔 물이 있을 거야. 마시고 푹 자.”

  “네, 체칠리아 사제님도 어서 주무세요.”

 

  그렉은 체칠리아에게 밤 인사를 건네고 지하로 들어갔다. 체칠리아는 별을 바라보며 조용히 되뇌었다. 사람의 마음, 영원한 빛의 마음, 그리고 어쩌면 불합리할지도 모를 금기에 대해.

 

  “돌아왔구나.”

 

  에어드부르가가 조지를 반겼다. 돼지들은 곤히 자고 있었다. 그렉과 시간을 보냈는데 행복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에어드부르가 님.”

  “듣고 있노라.”

  “별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별이라.”

 

  에어드부르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모르겠구나. 왜 그러느냐.”

  “저 별들은 우리처럼 영원합니까?”

 

  우리처럼, 에어드부르가는 그 말을 곱씹었다. 에어드부르가는 조지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오해가 있구나.”

  “무슨 말씀입니까?”

  “네가 생각하는 영원은 무엇이냐.”

  “오래도록 변치 않는 것, 불멸하는 것 아닌가요?”

 

  오래도록 변치 않는 것은 맞지만, 불멸은 아니지. 에어드부르가는 그렇게 답했다.

 

  “이 세상에 불멸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지.”

  “그게 무엇입니까.”

  “네가 미래를 보고자 한다면 알 수 있단다.”

 

  조지는 영원한 빛이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미래를 보지 않았다. 이미 앞날을 바라보는 아르티제의 빛은 많고, 그중에도 에어드부르가가 미래를 예견해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으니까. 더욱이 자신과 그렉의 이 유예가 언제 끝날지 알고 싶지 않았기에, 그는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에어드부르가의 말은 마치 지금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조지는 아주 조금 먼 곳을 바라보았다. 영원한 빛에게 주어진 영원보다 짧은 미래를 바라보는 눈을 열어보았다.

 

  그곳에는 희뿌연 안개가, 그리고 눈을 감아도 벗어날 수 없는 섬광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찬란하고, 변치 않으며, 불멸인 빛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었다. 조지는 그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그것을 본 적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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