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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Plume
작가 : 별하랑
작품등록일 : 2019.9.10

(오후 11시~00시)"신이 되어야만 해." "싫습니다." 단호히 거절한 소녀를 보며 높은 신은 비웃는다. 어차피 소녀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네가 나고. 내가 너야.]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

"평생 함께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연인.

"살려주세요." 울부짖는 아이.

"너에게 기억을 잊을 수 있는 기회를 줄게." 매혹적인 신은 소녀에게 속닥거렸다.

"자, 어때? 결정은......

네 몫이야."

 
1부- 2회
작성일 : 19-09-18 23:30     조회 : 232     추천 : 0     분량 : 9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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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예......?"

 

  이거 개꿀잼 몰래카메라 아니지, 그렇지?

 

  녹색 눈동자가 처량하게 흔들린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 조차 하지 못한 채, 제 앞에서 무릎을 반만 꿇고 예의를 갖추는 키미안을 내려다보았다.

 

  "저기... 잘 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

  "아뇨. 그럴 리는 없습니다."

 

  나지막이 단호한 대답을 붙인 그가 몸을 일으켰다. 지금 이 사람이 술이라도 퍼마시고 온 건가, 진심으로 고민하던 진희를 보던 짙은 녹색 눈동자가 조용히 꿈뻑였다.

 

  "제 4대 신 연진희님을 오늘부터 모시게 된 천관입니다."

  "예......? 천... 뭐요? 아니, 왜요."

 

  뭘 모시긴 모셔. 천관은 또 뭔데.

 

  4대 신이란 것에도 놀랐지만 오늘부터 자신를 보필할 사람이 제 앞에 있으니 혼란스러울 뿐이다. 이미 아는 거 아니냐는 듯 당황한 기색을 보인 키미안이 정중히 고개 숙여 답변했다.

 

  "신에게는 보조할 하인들이 붙습니다. 모두 신이 원하는 외형대로 만들 수 있죠. 전 르레이스비님이 준비하신 거라 예외적이긴 하지만, 진희님께서 원하신다면 바꿀 수도 있습니다."

  "오호."

 

  그렇구만.

 

  검은 것은 글씨요, 하얀 것은 종이니, 외형은 외형이고, 신은 신이로다.

 

  그런 거 다 필요없으니 인간으로 돌려줬으면 좋겠어서 온 몸을 다해 귀찮음을 표현했지만 키미안에겐 먹히지 않았다. 시선도 돌려보고 대놓고 키미안의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이목구비만 관찰하는 무관심을 보였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천관. 천소. 천우. 천하. 이 순으로 계급이 나뉘는데, 계급마다 하는 일이 다 다릅니다."

  "아, 예에. 그렇군요."

 

  그래, 알겠으니 집에 보내 주렴.

 

  건성하게 한 대답에 인상을 찌푸리긴 커녕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 키미안이 다시 정중히 입을 열었다.

 

  "절 존대하지 마십시오."

  "예? 왜요?"

  "그야......"

 

  말 끝을 조용히 흐린 키미안이 짙은 녹색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다. 굳이 말 안 해도 알 것이었다. 키미안의 의도대로 녹색 눈동자가 깨달음을 표현했다.

 

  "아, 천관이라서?"

  "그렇죠."

 

  키미안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져 올라갔다. 반달처럼 곱게 접힌 눈에 홀릴 뻔한 걸 간신히 버틴 녹색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이곳저곳으로 도르륵 굴렀다.

 

  "그러니 말 편히 해주시길 바랍니다."

  "아, 네. 아니, 알았어."

 

  이제야 만족한다는 듯한 함박 웃음이 얼굴 위로 떠오른다. 파문 일듯 잔잔히 번진 미소를 머금은 키미안이 무릎을 살짝 굽혀 녹색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 어어, 그래. 알프... 알프레... 드?"

  "알프레도스 키미안입니다."

  "아, 어. 미안."

 

  거 이름 더럽게 기네.

 

  르레이스비의 놀라운 작명 센스에 속으로 칼을 간 진희가 민망함에 어색한 웃음를 남발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쭉 이 사람을 알프레도스... 키미안, 이라고 부르라는 거지.

 

  "그냥 키미안이라고 불러도 상관 없죠... 아니, 없지?"

  "네, 그럼요."

 

  싱긋 미소를 띄운 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미소를 잠시 밑으로 깔고 차분한 표정을 유지한 키미안이 조심스레 입을 뗐다.

 

  "왜 이 바닥에 누워 계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어...... 어?"

 

  뭐야, 보고 있었어?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바닥에 벌러덩 누운 것을 어찌 봤는지, 그렇다 함은...

 

  르레이스비 욕 실컷한 것도 들었다는 얘긴데...

 

  초조함에 갈 곳 잃은 녹색 눈동자를 보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르레이스비 님께는 안 알릴게요."

  "와...... 너는, 너는 진짜...! 좋은 놈이야, 너."

 

  합격.

 

  힘겹게 팔을 들어 키미안의 어깨를 토닥여 준 진희가 바보처럼 헤실헤실 웃었다. 단 한 번에 없던 친화력까지 뿜어내는 진희의 마음 속에 키미안은 잘 배운 사람으로 남았다.

 

  그렇게 두터웠던 경계가 모두 흩어지고 호감도만 남아버린 키미안이 진희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입꼬리를 들어 올리려 했으나, 그것은 길지 않았다.

 

  "앞으론 바닥에 눕지 마세요."

  "아, 으응......"

 

  꽤나 단호하면서도 정중한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치만... 바닥이 너무 푹신했는걸.

 

  "어떤 신이 바닥에 눕는 답니까? 신이 그러고 다니면 천관씩이나 하는 놈은 뭐하냐고 욕 먹습니다."

  "오오. 결론은 네가 욕 먹으니까 그러지 마라, 이거네?"

 

  이 놈 봐라.

 

  아군인 줄 알았더니 적군이었던 거였구만. 그런 거였어.

 

  진희의 반박에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한 키미안의 귓볼이 새빨갛게 익어 갔다. 생각도 못 했던 건지,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동공이 애처로워 보일 정도다.

 

  "에, 예...? 아, 아니 그건 아닌.......!"

  "아니긴 뭐가 아니야. 에휴. 기껏 만난 천관이 이렇다니."

  "아, 아닙니다!"

 

  오호, 이거 재밌구만.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냥 키미안을 놀려 먹는 거에 눈을 떴다. 매번 민화의 장난을 이해하지 못 했던 진희가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다.

 

  "르레이스비 님이 나한테 원한이 많나 보네."

  "예? 아니......!"

  "어어? 이젠 막 언성도 높이고!"

 

  아, 이거 진짜 꿀잼이네.

 

  황당하면서도 당황스러운 그 기분을 감추지 못한 채 붉어진 귓볼만 내비치는 키미안이 점점 뒷걸음질 쳤다. 장난치는 거에 맛들린 나머지 키미안에게 더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녹색 눈동자는 빛에 더욱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어쩔 줄 몰라 짙은 녹빛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는 키미안을 보니 또 다시 영감이 떠오른 진희가 온갖 연기력을 다 짜내어 고개를 떨궜다.

 

  "이제 내 얼굴도 보기 싫나보네...... 흑......"

  "예, 예?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실망이다... 키미안."

  "네?!"

 

  미안, 키미안. 너무 재밌어.

 

  타들어가는 키미안의 속 따윈 중요하지 않은듯 연기를 이어가는 진희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더이상은 무리다. 터지려던 웃음을 꾹꾹 눌러왔지만 결국 즐거움을 터트린 진희가 배를 부여잡았다.

 

  "푸학학학! 푸흡...!"

  "진희님.......?"

  "미, 미안해. 키미안... 큽......"

 

  호탕스러운 웃음을 다시 꾹 눌러참고 사과를 건네자마자 또다시 터진 즐거움이 다리에 힘을 풀었다. 주저앉은 채로 들썩거리는 어깨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깔깔 웃어대는 진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 금발의 뒷통수가 애처로워 보였다.

 

  졸지에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어버린 것도 모자라 동상 마냥 굳어버린 키미안의 눈이 미친듯이 웃는 자에게로 향했다.

 

  "푸흑...! 다 농담이야, 키미안."

  "예......?"

 

  드디어 진실을 알린 진희의 입가에서 떨어지지 않는 웃음끼에, 입꼬리가 계속해서 씰룩거렸다.

  지금까지 저가 당한 것은 모두 농담이고 장난이었단 뜻인가. 넋이 나간 채로 좋다고 웃어대는 진희를 보는 짙은 녹빛 눈에 옅은 원망이 서렸다.

 

  재밌는 건 지밌는 거고,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잘 올라가던 입꼬리가 축 처져 있는 걸 이제서야 발견하곤 들썩이던 어깨를 진정시켰다.

 

  나대지마, 어깨야.

 

  "저... 그... 미안."

  "아뇨. 괜찮습니다."

 

  별 수 있겠는가. 허탈함이 섞인 한숨을 툭 뱉은 키미안이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너, 너... 너 이 자식 혹시 천사냐.

 

  저라면 팔짝 뛰며 화를 냈음이 분명했는데, 키미안은 화를 내긴 커녕 오히려 이해한다는 듯이 괜찮다는 말을 건넸다. 그것도 웃으면서.

 

  "진짜 미안해."

  "괜찮아요."

  "안 괜찮다고 해줘, 제발."

 

  자신이 쓰레기가 되는 것 같은 기분에 애원하며 매달렸지만 무용지물이다. 계속해서 괜찮다는 말만 기계적으로 내뱉는 키미안을 보며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진심이 듬뿍 담긴 녹색 눈동자가 제 앞에 있는 자를 응시했다.

 

  정말 때 하나 안 묻은 듯한 순진무구한 짙은 녹색의 눈동자가 갓 태어난 아이처럼 똘망똘망하게 진희를 마주한다. 키미안이 방금 생겨나긴 했지만 정말 몇 개월 채 안 된 어린 아이처럼 꺄르르 웃을 것 같았다.

 

  "괜찮아요."

  "진짜 미안......"

 

  주인에게 혼난 강아지 마냥 축 처진 진희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린 키미안이 어떻게하면 활기를 되돌려줄까, 진지하게 고민하다 입을 뗐다.

 

  "정 미안하시면 아까처럼 대해주세요."

 

  얘 진짜 천사야......? 날개 없는 천사?

 

  나 감격했다, 라는 걸 어떻게든 표현하기 위해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진희가 오밀조밀 모여있는 키미안의 이목구비를 빤히 바라봤다.

 

  천사 맞네.

 

  "아, 그건 좀 너무하고. 키미안 너가 천...사, 아니, 뭐라고?"

  "천관이요, 천관. 천사라뇨."

 

  넌 천사해도 돼.

 

  아주 어릴 적 아이돌을 좋아했던 기억이 다시 새록새록 떠오른다. '내 새끼 하고 싶은 거 다 해!' 를 열심히 외치던 다른 팬들과는 달리 조용히 응원하던 성향이었지만, 지금 만큼은 다른 팬들처럼 온 진심를 담아 외치고 싶어졌다.

 

  반달처럼 곱게 접힌 눈이 진희를 마주한다. 저가 천사라니. 당치도 않았다.

 

  "그, 그래. 천관. 근데 천관은 이렇게 나한테 붙어있어야 되는 거야?"

  "네, 그렇죠. 일반적인 서류 작업도 도와야하고."

  "예?"

 

  내가 방금 잘 못 들은 거지? 제발 그렇다고 해줘.

 

  서류 작업이라는 네 글자에 그대로 굳어버린 진희가 손을 파르르 떨었다. 공부도 손에 안 잡던 인간이다. 서류 작업 같은 거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서류 작업이요, 서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안 어려우니."

  "진짜?"

  "네. 양이 많긴 하지만 천소나 천우, 천하들 총 합해서... 음......"

 

  합해서?

 

  잠시 말 끝을 흐린 키미안이 턱을 두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음...... 지금은 5명이면 충분하지만... 한 일, 이 년 뒤면 서른 명 정도 붙어서 20시간만 하면 끝나는 일이에요!"

  "네......?"

 

  주여.

 

  무교인 진희가 주님을 진실하게 찾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럼 지금 당장 적어도 15시간 이상은 그 의자에 앉아서 산 더미 같은 서류를 처리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차라리 죽여줘. 속으로 그리 중얼거린 진희가 진심으로 혀 깨물거 죽을까, 생각하다 허탈함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내가 이런다고 뭐 바뀌나... 어쨌거나 결론은.

 

  "르레이스비가 쓰레기네."

  "응? 진희야, 뭐라고?"

 

  오, 미친.

 

  언제 온 건지 문이 생긴 곳에 르레이스비가 몸을 기대고 둘을 응시하고 있었다. 재밌다는 듯 피식 웃고 있는 살벌한 등장에 그대로 얼어버린 진희와, 빠르게 허리 숙인 키미안이 르레이스비를 맞이했다.

 

  "제 1대 신이신 르레이스비 님을 뵙습니다. 제 4대 신, 연진희 님을 보좌 중인 알프레도스 키미안입니다."

  "응, 그래. 키미안, 안녕."

 

  인사를 받아주고 나서야 허리를 세운 키미안이 얼어버린 연두색 머리를 바라봤다. 숨은 똑바로 쉬는 건가, 의심이 갈 정도로 멈춘 진희에겐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다.

 

  르레이스비가 제게 다가오는 것 역시 느끼지 못한 채, 어떻게 싹싹 빌면 잘 빌었다고 소문이 날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 진희, 왜 얼었어?"

  "예, 예? 에이, 얼다뇨. 하하하."

 

  나는 활기차다, 나는 활기차다.

 

  열심히 자신을 세뇌 시켜봤자였다. 어떻게든 호탕스레 웃어보려 했지만 어색하고 딱딱한 웃음이 흘러나와버린 바람에 모든 계획은 파장을 맞이했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찌할까. 순식간에 내려앉은 분위기와 약속이라도 한 듯한 침묵에 서로가 서로의 눈치만 봤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콧웃음을 흘리며 얼어버린 분위기를 녹인 르레이스비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답이 없구나,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에 살짝 울컥한 진희가 입을 비죽 내밀었다.

 

  어린 아이 같은 투정을 모두 받아 줄 르레이스비가 아니다. 비단 같은 치맛자락을 한 손으로 살며시 움켜쥐고 몸을 돌린 그녀가 시원한 입매를 보였다.

 

  "일단 어디 좀 가자."

  "아, 네."

  "너희 둘 다."

 

  길고 가는 손가락이 둘을 번갈아가며 가리켰다. 조금 의외인 듯 당황한 기색을 보인 키미안이 금방 표정을 가리고 허리를 숙였다.

 

  "명 받들겠습니다."

 

  나, 나도 저렇게 해야 하나?

 

  깍듯한 키미안을 보며 살짝 고민했다. 그래, 제 앞에 있는 자는 다른 것도 아니고 신이다. 그것도 1대 신.

 

  "며, 명 받들겠습니다."

  "푸흡! 너 뭐하니?"

 

  진희의 의도와는 다르게 뻣뻣한 허리가 25도 각도로 숙여졌다. 어중간한 숙임과 동시에 허공에 붕 떠 있는 팔들이 마치 두목에게 인사하는 사람들을 연상시켜 웃음을 터트렸다.

 

  한 손으로 입가를 막은 르레이스비가 누군가를 보곤 더 심하게 웃어보였는데, 애써 웃음을 참으려 두 주먹을 꽉 쥔 키미안이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부르르 떨리는 어깨를 진정시키며 잠시 웃은 르레이스비가 무안한 듯 큼큼, 하는 소리를 내며 목을 풀었다.

 

  "가자. 쓸데없는 인사는 치우고. 이런 사소한 건 신들은 안 해도 돼."

  "예......"

 

  붉어진 얼굴에 손으로 부채질하며 고개를 푹 떨군 진희가 속으로 쌍욕을 던졌다.

 

  그런 건 진작 좀 알려주란 말이야.

 

  ***

 

  다시 와인빛으로 물든 방에 오게 된 진희가 소파에 앉은 채 똥 씹은 표정으로 마카롱을 우물우물 씹어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생기게 잘 만들었다니까? 키미안, 얼굴 좀 보여줘 봐. 인물이 훌륭하네!"

  "죄... 죄송합니다......"

 

  얼씨구. 좋냐? 좋아?

 

  키미안을 고의적으로 연신 놀려대는 르레이스비가 정말 달갑지 않았다. 어째 키미안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에 마카롱이 목으로 넘어가는 지, 코로 넘어가는 지 구분조차 못 하는 진희의 입매가 비틀렸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지는 모르겠지만. 키미안은 제 천관이고, 자신만이 놀리고 싶다는 마음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왜 자꾸 고개를 숙여. 그거 건강에 안 좋다? 자, 고개 들자. 우쭈쭈."

  "죄송합니다......"

 

  아니, 저것이 선을 넘네?

 

  가면 갈수록 봐줄 수가 없는 도 넘은 장난에 먹던 마카롱을 내려놓았다. 딱 봐도 싫어하는 키미안에게 저게 무슨 짓인가.

 

  "그만하세요, 르레이스비님."

  "키미... 응?"

 

  봐주는 것도 한계다, 이 망할 신아.

 

  진희의 단호한 말에 키미안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사고 싶은 게 있어 찡찡대다 결국 원하는 걸 얻은 듯한 환한 미소에 잠시 웃음을 터트릴 뻔 했으나, 이 내가 누군가. 필르야티엘에서 갈고 닦은 연기로 보이지 않는 가면을 착용했다.

 

  "오호라. 우리 진희가 많이 컸네."

  "그럼 제가 애인 줄 아세요?"

 

  방긋방긋 웃는 걸 열심히 숨긴 키미안이 진희 옆으로 더 바짝 다가가 앉았다. 둘의 반대편에서 셔벗을 입에 넣던 르레이스비가 실소를 터트린다.

 

  "그럼 네가 애지, 어른이니?"

  "아니, 3년만 있으면 성인이거든요?"

 

  억울함이 잔뜩 담긴 억양에 둘 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우웅. 우리 진희가 이제 성인이구나? 다 컸네, 다 컸어."

 

  아까의 말투 그대로 놀려먹은 르레이스비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아, 괜히 말해서.

 

  이래서 사람은 말 수를 줄어야 한다는 것이구나. 이제서야 깨달은 진희가 허탈한 한숨을 내뱉었다. 저를 보호해주려다 되려 놀림의 대상이 된 진희를 보던 짙은 녹빛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러갔다.

 

  신들 사이에서 천관은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다. 누구 하나를 말릴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인 지라 제 위치를 탓하며 고개를 떨궜다.

 

  "에구구. 나도 이제 늙었나보네. 내 말에 꼬투리 잡힌 애가 생긴 걸 보면."

 

  뭐야?

 

  그동안 계속 이렇게 해 왔다는 걸까. 상상하자마자 단번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응시하던 진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제 표정을 보지 못 하기에 잔뜩 구긴 얼굴로 르레이스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저걸 자랑이라고 하는 거야, 뭐야.

 

  "야, 야. 표정 펴. 농담이야."

  "농담 두 번 했다간 사람 하나 화병으로 죽이겠네요."

  "어우야. 말을 해도 그렇게 살벌하게 하니."

 

  어딘가 묘한 웃음에 다시금 미간을 찌푸린 진희가 아예 시선을 돌려버린다. 호랑이 사이에 낀 토끼의 마음을 몰라준 채 살벌한 기운을 뿜어대는 진희가 가벼이 혀를 찼다.

 

  "알았어, 알았어. 안 할게."

  "...... 진짜죠?"

 

  그럼. 당연하지. 말을 툭 던진 르레이스비가 손가락을 부딪혀 마찰을 일으켰다.

 

  우우웅-

 

  무언가가 울리는 소리, 그리고 사르르 쏟아지는 금빛과 함께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것은 다름아닌 녹색 상자였다.

 

  와인빛 리본끈으로 정갈하게 꾸며진 상자로 후두둑 떨어지는 금가루에 구태여 기침한 르레이스비가 목을 풀었다.

 

  신이 기침도 하는 구나. 새삼 깨달은 진희가 입을 비죽 내밀었다. 제가 아는 신은 병들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아주 강하고 절대적인 존재였다. 병드는 것 외에는 전부 맞는 것 같지만, 건강이 우선이라고 세뇌시킨 문희의 옆에서 지내서 건강이 제일 걱정됐다.

 

  "콜록! 에휴... 이놈의 금가루. 앞으론 하지 말아야겠네."

 

  지저분하게 묻은 금가루를 손으로 대충 탁탁 털어낸 르레이스비가 둘에게 상자를 내민다. 열어보라는 듯이 옅은 녹색으로 물든 눈동자를 초롱초롱하게 뜨고는 둘을 응시했다.

 

  "이게 뭐예요?"

 

  웬 상자람.

 

  대뜸 제 앞으로 온 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조심스레 입을 연 진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긴 뭐야. 선물이지. 열어봐, 얼른."

 

  어린 아이처럼 신난 르레이스비가 방긋방긋 웃었다. 어떤 반응을 원하길래 저러는 걸까. 혹시 이상한 거 넣어 두고 자신이 깜짝 놀라길 바라는 걸까.

 

  의심 반 기대 반으로 리본을 풀고 연 상자 속에는 놀랍게도.

 

  "엥."

  "좋지?"

 

  두 개의 반지가 번쩍이고 있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녹색 보석이 달린 황금빛 반지에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 했다.

 

  뭔가 했더니 반지였어?

 

  반지 같은 거 쓰지도 않고 구경도 안 하는 진희에겐 달가운 선물이 아니었다. 키미안 역시 화려한 장신구와는 거리가 먼 편이라 반갑지 않았지만, 르레이스비가 이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통신용이야."

  "통신용이요? 이게요?"

 

  보통 통신하면 귀걸이 같은 걸 해주지 않나......

 

  갑자기 분위기 반지에 얼떨떨한 진희가 차마 집어보지 못하고 질문을 반복했다. 역시 애는 애라는 듯이 피식 웃어보인 르레이스비가 어깨를 으쓱인다.

 

  "어떻게 통신하는 지 궁금하지? 말로 할 필요 없는 통신구거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원래 신들은 자기 권한으로 생각을 연결할 수 있지만... 아직 진희는 그걸 할 실력이 안 되니까, 내가 특! 별! 히! 준비한 거야."

  "아, 예."

 

  진짜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 같네. 어이쿠야, 이걸 어째.

 

  마음속으로라도 돌려서 말한 진희가 떨떠름하게 반지를 집어 든다.

 

  그래, 나 실력 없다. 어쩔래. 그냥 기능만 말해주면 뭐가 덧나는 걸까. 묘하게 기분이 상한 진희가 '특별히' 라는 단어를 다시금 떠올리며 한숨을 삼켰다.

 

  "자."

 

  키미안의 손에 반지를 꼭 쥐어준 진희가 검지 손가락에 조심스레 반지를 꼈다. 혹시 이거 껴서 막 이상 증상 나타나고 그런 건 아니겠지. 불안함에 눈을 꼭 감았지만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오."

 

  부답스럽다고 생각했던 반지였지만 막상 껴보니 예뻐서 손을 하늘 위로 들어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그 잠시동안 샹들리에 빛을 머금은 건지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찬란히 빛나는 것 같은 보석을 요리조리 살폈다.

 

  언뜻 보면 에메랄드 같은데 색은 또 아닌지라 오묘한 보석이다. 보석 이름이 궁금했지만 왠지 모르게 물어보기 꺼려져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제법 마음에 든 눈치를 보이는 진희를 빤히 응시하던 르레이스비가 함박 미소를 지었다. 제가 준비한 선물을 좋아해주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마음에 들어?"

  "아, 네. 예쁘네요."

  "그렇지? 그거 보석, 신계에 있는 광산에서만 나오는 보석이거든."

 

  아, 그래서.

 

  전체적으로 녹색을 띠며 언뜻 보면 다른 형형색색의 빛깔들도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빛나는 곳에 가져가면 신비로운 빛의 결합으로 제 존재를 뽐내는 보석은 난생 처음 본다.

 

  꽤 만족한 진희의 눈동자가 왼쪽으로 도르르 굴러갔다. 반지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결심한 듯 진희와 같이 검지 손가락에 끼운 짙은 녹색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와. 미친.

 

  어떻게 사람(?)이 저리 귀여울 수가 있죠. 말해봐요.

 

  애써 감정을 숨기려 노력한 키미안이었지만 특유의 신난 것 같은 눈빛이 너무 잘 보였다.

 

  그래, 이번생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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