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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여자들 끼리 술 마시면서 하는 말
작가 : 아브락사스
작품등록일 : 2019.9.11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한다는 건 참 어렵고도 험난한 여정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7화 두려운 사랑이 온다.
작성일 : 19-09-18 17:39     조회 : 210     추천 : 0     분량 : 5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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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두려운 사랑이 온다.

 

 

 

 혜숙과 그녀의 친구들은 대청댐 휴게소 매점에서 커피와 호떡, 핫도그 따위를 취향대로 사서 손에 쥐고 빈 테이블을 찾아서 둘러앉는다.

 

 - 경자 넌 어젯밤에 어디서 잤니!

 

 혜숙이 묻는다.

 

 - 한숨도 못 잔 거니! 얼굴이 초췌한 게 말이 아니다.

 

 은미가 말한다.

 

 - 현지조달 한다고 해놓고선 안 나타나서 얼마나 걱정했다고.

 

 영희가 말한다.

 

 - 전화도 안 받고. 신고할까 하다가 너 곤란하게 만들까봐 참았어.

 

 순정이가 말한다.

 

 - 다 거짓말이다. 우린 너 없어서 정말 행복했어.

 

 인옥이가 말한다.

 

 - 계집애, 말을 꼭 그렇게 해야 하니.

 

 경자가 인옥을 흘겨본다. 아닌 게 아니라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이다.

 

 -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귀신같아.

 

 인옥이가 놀라는 시늉이다.

 

 - 밤새 했니! 하룻밤 사이에 아주 팍삭 늙었다.

 

 순정이가 히죽 웃으며 경자를 쳐다본다.

 

 - 얼마나 센 놈을 만났으면 그렇게 되니!

 

 영희가 말한다.

 

 - 아휴,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니. 변태한테 당했거나.

 

 인옥이가 말한다.

 

 - 혜숙아, 너까지 그러면 난 죽어버릴 거다.

 

 혜숙이 뭐라 말하려고 입술을 들썩이자 경자가 절망적으로 외친다.

 

 - 왜 그래. 걱정 돼서 그러는데. 친구 좋다는 게 뭐니. 속 시원히 말해봐.

 

 혜숙이 말한다.

 

 - 그래 말해봐. 그래야 우리가 복수를 하든 하다못해 위로라도 해줄 거 아니니. 니가 차에 타자마자 너무 곤하게 자서 말을 못했는데 사실 니 꼴이 가관도 아니야.

 

 은미가 말한다.

 

 - 그놈한테 걸렸어.

 

 한참 만에 입을 연 경자가 한숨을 푹 내쉰다.

 

 - 그놈!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한 목소리로 외친다.

 

 - 호텔 불가마에서 만난 놈 있잖아. 허벅지에 뱀이 기어 올라가는 문신 한 놈.

 

 금방이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눈가가 촉촉해진 경자가 말한다.

 

 - 그 사람은 여자잖아.

 

 - 그러게.

 

 - 어머머....... 남자였니.

 

 - 남자가 어떻게 여탕엘 들어와. 말도 안 돼.

 

 - 여잔데 남자야. 거기 안 달린 남자.

 

 경자가 말한다.

 

 - 그래도 그렇지 그 여자한테 어떻게 당해! 왜! 바보야!

 

 - 얼굴을 못 봤으면 당할 수도 있지.

 

 영희가 말한다.

 

 - 얼굴을 못 보긴.

 

 인옥이가 말한다.

 

 - 선글라스 끼고 중절모 쓰고 있으니까 전혀 모르겠더라. 머리를 묶어 길게 늘어트리긴 했지만 딱 남자였어. 그것도 꽤 괜찮은 남자.

 

 경자가 말한다. 슬프고 고단한 목소리다.

 

 - 그렇다고 해도 옷 벗고 나면 알 수 있는 거 아니니?

 

 순정이가 말한다.

 

 - 커튼을 다 쳐놓고 불을 못 켜게 하더라고.

 

 경자가 말한다.

 

 - 무서웠겠다.

 

 인옥이가 말한다.

 

 - 무섭긴 왜 무섭니.

 

 경자가 말한다.

 

 - 깜깜하니까.

 

 인옥이가 말한다.

 

 - 인옥이 넌 가만 좀 있어.

 

 영희가 말한다.

 

 - 그래서 불 끄고 했어?

 

 순정이가 말한다.

 

 - 내가 너무 어둡다고 커튼이라도 살짝 열자고 하니까 뭐라는지 아니.

 

 - 뭐라고 했니!

 

 - 어둠 속에서 해야만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현혹 되지 않고, 또 눈에 보이는 추한 것에 실망하지 않고, 순수한 영혼의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거야. 얼마나 멋있니.

 

 - 멋있긴. 그럼 코도 막고 했니?

 

 인옥이가 비꼬는 투로 말한다.

 

 - 야 코 막고 답답해서 어떻게 하냐.

 

 순정이가 말한다.

 

 - 갑자기 코는 왜!

 

 영희가 말한다.

 

 - 냄새가 얼마나 사람 기분을 좌우하는데. 더러운 냄새나면 기분 잡치고, 달콤한 향기가 나면 더 흥분되잖아.

 

 인옥이가 말한다.

 

 - 하긴 그래. 난 냄새나는 남자는 정말 딱 질색이야.

 

 영희가 말한다.

 

 - 남자한테 냄새나면 몸이 식어버려.

 

 인옥이 말한다.

 

 - 나는 말라버려. 더러운 놈하고 누가 하고 싶겠니.

 

 순정이가 말한다.

 

 - 너희들은 좀 가만 있어봐. 경자 얘기 좀 들어보게. 경자야 계속해봐.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은미가 말한다.

 

 - 말은 그럴 듯 하잖아. 우리 나이에 몸 보면 성욕이 떨어질 수도 있고. 그리고 솔직히 사람 몸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잖아. 다 옷발이지.

 

 경자가 말한다.

 

 - 거시기도 없는 사람 둘이서 어떻게 하니! 오이라도 가지고 갔었니?

 

 인옥이가 말한다.

 

 - 야, 넌 아직도 오이밖에 모르니. 수준 좀 높여라. 딜도, 요즘엔 전동 딜도라는 거 그런 거 쓴단다.

 

 순정이가 말한다.

 

 - 왜 남이야기 하듯 말하니. 말하는 거 보니까 너 그거 쓰는 구먼.

 

 영희가 말한다.

 

 - 어머, 애가. 남편 두고 내가 왜 그런 거 쓰니.

 

 순정이가 말한다.

 

 - 솔직히 남자들이 만족시켜주디. 솔직히 지들만 하고 내려가면 그만이지. 솔직히 여자들 오르가슴 느끼는 거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지. 솔직히 남자가 내려가고 나면 스스로 해결하잖아.

 

 흥분한 영희가 솔직히,를 연발한다.

 

 - 솔직히 여사님, 솔직히 여사님이 너무 둔해서 그런 거 아냐. 난 1분도 안 걸려. 금방 느껴. 흥분하면 10초도 안 걸리고. 한 번에 서너 번은 하는데!

 

 순정이가 말한다.

 

 - 야, 너희들 그러면 나 말 안 한다.

 

 경자가 말한다.

 

 - 그래, 이제 경자 말 좀 들어보자.

 

 혜숙이가 말한다.

 

 - 또 말 끊으면 다시는 말 안 한다.

 

 경자의 목소리는 마치 첫 경험이라도 고백하는 듯 기운이 없고 얼굴은 뜻밖에도 수줍음이 가득하다.

 

 - 응, 알았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놈이 나한테 돼지 흥분제를 먹였던 것 같아.

 

 - 뭐!

 

 모두 놀란 표정이다.

 

 - 어둠 속에서 그놈이 내민 캔맥주를 마시고 난 뒤부터 걷잡을 수 없는 격정이 휘몰아치는데.........

 그놈 거시기가 없는 걸 알았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어. 온몸으로 오르가슴이 느껴지는데 미칠 것 같더라. 마음속으로는 이러다 죽든지 미치든지 하겠다 싶은데도.........

 겨우 진정이 될 만하면 그놈이 또 캔맥주를 주더라. 갈증이 나니까 또 마셨고 마시고 나면 그놈이 또 달려들어.

 그러면 나도 달아올라서 격정에 휩싸이고. 그러길 헤아릴 수도 없이 했어.

 

 - 아침까지 그 짓만 했구나.

 

 순정이가 말한다.

 

 - 어쩐지. 내 그럴 줄 알았어.

 

 인옥이가 말한다.

 

 - 흡혈귀한테 밤새 피 빨아 먹힌 년 같더라니.

 

 영희가 말한다.

 

 - 그 맥주를 왜 받아 마시니!

 

 은미가 말한다.

 

 - 그년 잡아 처넣어야 하는 거 아냐.

 

 혜숙이가 말한다.

 

 - 나 그놈이 보고 싶어. 미쳤나봐.

 

 경자가 울먹이며 말한다.

 

 - 어머 재 어쩌냐.

 

 순정이가 말한다.

 

 - 전화번호는 주고받았니?

 

 영희가 말한다.

 

 - 연락처 안 알려주는 게 자기 방식이래.

 

 경자가 슬픔에 겨워 고개를 가로 젓는다.

 

 - 혹시 돈 뜯겼니.

 

 은미가 말한다.

 

 - 그이, 그런 사람 아니야.

 

 경자가 말한다.

 

 - 뭐, 그이!

 

 혜숙이가 말한다.

 

 - 응, 그이가 생각나면 전화한데.

 

 경자가 흑, 하고 튀어나오는 울음을 삼킨다.

 

 - 이년아, 돼지흥분제를 또 먹고 싶니.

 

 - 돼지처럼 꿀꿀대면서 하는 게 좋디.

 

 - 섹스에 중독된 사람도 있다더니.......

 

 친구들이 일제히 퍼붓는다.

 

 - 나 어떡하면 좋아.

 

 경자가 기어코 울음을 터트린다.

 

 - 미쳤다. 완전 미쳤어.

 

 - 정신병원에 가게 생겼다.

 

 - 남편한테 전화해. 데리고 가라고 전화해.

 

 - 웃기지도 않네.

 

 - 정신 차려 이년아.

 

 친구들의 걱정스런 비난과 성화에도 경자는 아랑곳 않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 너 그러고 우니까 완전히 실성한 년 같다. 아무래도 남편한테 전화해야 할 거 같아.

 

 은미가 말한다.

 

 - 경자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둬.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고. 시간이 약이라잖아.

 

 혜숙이가 말한다.

 

 - 맞아. 격렬하게 타는 불길이 또 순식간에 가라앉는 법이니까.

 

 인옥이가 말한다.

 

 *

 

 친구들 모두 벤치에 앉아 대청호수를 바라보며 수다를 떨고 있다. 경자는 그 틈에도 저쪽 의자에 벌렁 누워 잔다.

 

 - 저 깊은 물속에 마을이 있었다니까 참 마음이 이상하다.

 

 은미가 말한다.

 

 - 마을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는 거지. 사람들만 떠나고.

 

 혜숙이가 말한다.

 

 - 그럼 여기가 꽤 높은 곳이었네!

 

 영희가 말한다.

 

 - 물에 잠기기 전에는 여기가 산꼭대기였는지 모르지.

 

 혜숙이가 말한다.

 

 - 그러게. 계단으로 올라왔으면 가파르고 높아서 꽤 힘들었을 텐데.

 

 은미가 말한다.

 

 - 산책길이 좋더라.

 

 인옥이가 말한다.

 

 - 팔당댐하고는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

 

 영희가 말한다.

 

 - 수몰된 마을이 있다는 걸 알아서 그런지 여긴 어쩐지 슬픔이 고여 있는 거 같아.

 

 혜숙이 말한다.

 *

 

 혜숙은 대청댐 수문 위에서 친구들과 어깨를 기대고 찍은 사진을 카스에 올린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서 행복하다.’고 적는다.

 

 ‘아주 날라리가 났구나. 밤낮으로 처먹고 놀고 그러니 좋냐.’

 

 남편한테서 카톡이 날아온다.

 

 혜숙은 또 다시 대청댐 광장의 폭포 그림 위에서 찍은 사진을 카스에 올린다.

 

 광장에서 사진을 찍을 땐 알 수 없지만 찍은 사진을 보면 사람이 폭포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아주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남편한테서 날아온 카톡이다.

 

 ‘영원히 날 볼 생각 하지 마.’

 

 혜숙은 남편에게 카톡을 보내고 남편을 친구에서 삭제한다.

 

 

 연둣빛이 짙은 당단풍나무 아래 있는 벤치다. 모두들 그곳에 앉아 대청댐 수문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은미가 지나가는 연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며 스마트폰을 내민다.

 

 서른 안팎의 남자는 애인을 옆에 세워놓고 벤치 뒤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은미에게 보여준다.

 

 -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찍어드릴게요.

 

 남자는 저만치 물러서 서 있는 애인의 눈치를 보며 말한다.

 

 - 단풍나무가 들어가게 해서 한 번만 더 찍어주실래요.

 

 은미는 다시 남자에게 스마트폰을 주고 다가와 앉는다. 모두들 어깨를 나란히 기대고 대청댐을 바라본다.

 

 잠시 후에 등 뒤에서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난다.

 

 - 그대로 계세요. 다시 한 번 찍을 게요.

 

 남자는 말하면서 다시 셔터를 누른다. 찰칵

 

 - 고맙습니다.

 

 은미는 남자에게 인사를 건넨다. 남자는 말없이 웃으며 스마트폰을 건넨다. 옆에 서 있던 애인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혜숙은 손을 잡고 멀어지는 서른 살 안팎의 남자와 여자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본다.

 

 괜히 눈물이 나려고 하는데 은미가 금방 찍은 사진을 보내온다.

 

 당단풍나무 아래 앉아 있는 여자들의 뒷모습이다. 햇살도 나무도 바람도 여자들도 여름이다. 어느 여름의 뜨거운 오후.

 

 혜숙은 은미가 금방 보내온 사진을 카스에 올린다. 그리고 ‘여름을 닮은 여자들의 뒷모습’ 이렇게 적는다.

 

 ‘혜숙씬 뒷모습도 아름답네요.’

 

 김현에게서 카톡이 온다.

 

 ‘뒷모습만 보고 날 알겠어요!’

 

 혜숙이 김현에게 카톡을 보낸다.

 

 ‘그럼요. 혜숙씨만의 아우라가 전해져요. 아름다운.......’

 

 김현의 카톡이다.

 

 ‘교수님한테 아름답다는 말 참 많이 듣네요....... 무서워요.’

 

 혜숙의 카톡이다.

 

 ‘뭐가요?’

 

 김현의 카톡이다.

 

 ‘글쎄요. 아무튼 무섭고 두려워요. 지금 이 순간이........

 

 혜숙의 카톡이다.

 

 ‘혜숙씨......... ’

 

 김현의 카톡이다.

 

 ‘김현씨.........’

 

 혜숙의 카톡이다.

 

 ‘서른 안팎의 연인이 손을 잡고 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었어요. 지금 우리가 그 나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요. 그때로 돌아간다면.......’

 

 또 혜숙의 카톡이다.

 

 ‘지금 모습 그대로 혜숙씬 아름다워요.’

 

 김현의 카톡이다.

 

 ‘지금 모습 그대로 혜숙씨를 사랑합니다.’

 

 또 김현의 카톡이다.

 

 혜숙은 아무 말도 못하고 스마트폰을 닫는다. 왠지 두렵고 무섭다. 어쩌면 슬픈 건지도....... 또 어쩌면 아픈 건지도........

 

 애잔한 마음의 수면 위로 서른 안팎의 연인이 손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김현과 손을 잡고 걸어가고 싶다.

 

 - 서른 살만 됐어도........

 

 혜숙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 왜, 김 교수하고 결혼하게!

 

 인옥이가 말한다.

 

 -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

 

 혜숙이 말한다.

 

 - 니 아들은 어떡하고. 니 아들은 세상에 없을 텐데.

 

 순정이가 말한다.

 

 - 그런가!

 

 혜숙이가 말한다.

 

 - 거봐. 여자는 자식이 먼저야. 그래서 만약에 다시 서른 살로 돌아가도 혜숙이 넌 지금 네 남편을 택할 거야.

 

 순정이가 말한다.

 

 - 난, 아니야. 다른 남자랑 한 번 살아보고 싶어.

 

 영희가 말한다.

 

 - 난, 두 남자 다 선택할 거야. 왔다갔다.

 

 인옥이가 말한다.

 

 - 난 서른 살로 돌아가도 지금 남편을 선택할 거 같아. 혜숙이 넌 마음 바꿨어!

 

 은미가 말한다.

 

 - 글쎄 생각 중이야. 경자 넌?

 

 혜숙이 말한다.

 

 - 난 그놈하고 살래. 자식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고 생각해.

 

 경자가 말한다.

 

 모두들 손뼉 치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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