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하진은 조심스레 '핸드폰 요금 고지서'라 친절하게 적혀져 있는 봉투를 뜯어보았다. 조그마한 글씨는 내버려두고 오직 숫자만 찾으러 열심히 눈동자를 굴려댔다.
"아오씨."
글씨와 비슷한 크기로 또박또박 '75000'이라는 숫자가 하진의 눈에 밟혀 들릴 듯 말듯 낮게 욕을 내뱉었다.
그렇게 한참 고지서를 만지작 거려서야 한숨을 폭 쉰 채 자신의 허름한 청바지 주머니속에 구겨 넣었다.
한낱 종잇조각에게 뭐라 하든 내 입만 아프다는 걸 하진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고지서 따위 얼른 잊어버리고자 하진은 빠른걸음으로 계단을 올라 집 앞에 다다랐다.
집에 들어가서 또 다시 청소 할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어?"
없다.
하진은 후드티 안 쪽에서 집 열쇠를 꺼내 꽂으려 했지만 정작 열쇠는 온데간데 없었다. 혹시 몰라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뒤져봤지만 힘만 빼는 일이었을 뿐.
하진은 설마설마하며 후드티 안 쪽에 손을 뻗어 확인해보았다.
역시나. 열쇠 빠지기 좋게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상황파악을 하고 지금은 못 들어간단 생각에 문에 기대 그대로 차디찬 돌바닥에 털썩 앉았다.
이런다고한들 문이 열려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뭐 어떠랴.
이제 10월 초라 그런지 몸이 으슬으슬 떨려와 두 다리를 꼬옥 모아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이렇게 우울해질때면 어김없이 찾아와 날 괴롭히는 과거들. 처음에는 평범한 가정에 평범한 집. 용돈에 대해서 조금은 투덜댔던. 그런 생활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 일'이 있고 평범한 생활을 잊은지 4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점점 집이 망해간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때는 내가 11살이 되던 해였다.
아빠는 한 공장을 운영하며 1년 정도는 잘 되나 싶더니 직원의 실수로 공장은 곧 망하였고 한 순간에 아빠께선 직장을 잃으셨다. 그 날로 아픈 엄마는 발 벗고 나서 인형 눈 붙이는 부업을 시작하셨고 아빠는 술로 밤낮을 지새우셨다.
하진은 눈을 꽉 감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벌떡 일어섰다.
일단 집으로 오다 떨어트린 걸 수도 있다는 긍정적 마음으로 빌라 밖을 빠져나왔다.
벌써 7시라 그런지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하진은 잠시 망설이다 이내 눈을 부릅뜨고 막무가내로 열쇠를 찾으러 나섰다.
..
"결국 못 찾았다…"
하진은 한숨을 쉬며 터덜터덜 자신이 늘 가던 공원 안으로 들어왔다. 넓지도 작지도 않은 공원은 사람이 없어 칙칙하기 그지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