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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여자들 끼리 술 마시면서 하는 말
작가 : 아브락사스
작품등록일 : 2019.9.11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한다는 건 참 어렵고도 험난한 여정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5화 여자들 끼리 술을 마시고 하는 말
작성일 : 19-09-16 18:09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7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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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여자들 끼리 술을 마시고 하는 말

 

 

 

 

 

 - 경자는 어디 갔니!

 

 혜숙이가 카페 안을 눈으로 훑어보며 묻는다. 은미도 먼저 나와 있던 친구들을 바라보며 묻는 얼굴이다.

 

 - 응! 조금 전까지 있었는데. 화장실 갔겠지. 갠 원래 분주하잖아.

 

 먼저 나와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 영희와 인옥이, 순정이가 무심하게 내뱉는다.

 

 - 그 남자한테 벌써 낚인 건 아니겠지.

 

 은미가 의자를 당겨 앉는다.

 

 - 아~ 시원해. 맥주가 고소하고 달다 달아.

 

 혜숙은 테이블에 놓인 맥주잔을 들어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켜고 나서 자리에 앉는다.

 

 - 그런 남자가 정말 있기나 하겠니!

 

 인옥이가 배시시 웃는다.

 

 - 이거라도 먹어.

 

 혜숙이 거푸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자 영희가 손에 들고 있던 오리알을 까서 준다.

 

 - 너 먹어. 난 가끔 여기 와서 사 먹잖아. 목욕하고 나오면 출출하니까 꼭 두 개씩 사먹어.

 

 - 그건 십리알이고 이건 오리알이야.

 

 인옥이가 말한다. 친구들이 갑자기 인옥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트린다.

 

 - 재 어렸을 하던 그 개그 또 시작이다. 인옥이 원래 안 웃기는 말로 웃겼잖아. 우리가 앞접시 달라고 하면 뒷접시 주세요, 그런 거.

 

 - 손만두집에 가서 만두에 사람 손 들어갔어요, 그랬다가 주인 남자한테 혼난 적도 있고.

 

 - 잠 좀 자지, 그러면 자지는 알겠는데 잠하고 좀은 뭐니! 그러질 않나.

 

 - 생고기집에 가서 돼지 멱따게 칼 좀 주세요, 그랬다가 아줌마한테 혼나질 않나.

 

 - 그 버릇 없어진 줄 알았는데.

 

 - 인옥이 안 웃기는 개그 술 들어가면 더 심해져.

 

 친구들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한다.

 

 - 혜숙아, 빈속에 술 들이부으면 금방 취하니까 십리알은 아니어도 오리알이라도 먹으라고.

 

 인옥이가 말한다.

 

 - 오리알 세 개면 십오리알이네! 혜숙아 나한테 오리알 두 개 더 있으니까 십오리알 먹어.

 

 순정이가 가방에서 오리알 두 개를 더 꺼내서 혜숙에게 내민다.

 

 - 십리알이고 시보리알이고 너희들이나 먹으라니까. 난 취하고 싶어 마시는 거야. 오늘 같은 날 안 취하면 언제 취해 보겠니. 벌써 짜르르 한 게 광천수가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 같다.

 

 - 그래, 나도 마음껏 취해 보련다.

 

 순정도 잔을 들고, 인옥도 잔을 든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영희와 은미도 잔을 든다.

 

 - 취하자.

 

 혜숙이가 외친다.

 

 - 취하자.

 

 잔을 부딪치면서 다함께 외친다.

 

 - 원샷.

 

 순정이가 외친다.

 

 은미는 번번이 입술만 적시고 잔을 내려놓는다.

 

 그 사이 마른안주와 술이 추가로 나온다.

 

 *

 

 - 너희들, 우리 동네 살다가 이사 간 경숙이 알지?

 

 인옥이가 눈빛이 초롱초롱해서 친구들을 둘러본다.

 

 - 아, 경숙이. 초등학교 5학년 땐가 우리 동네로 이사 와서 중학교 때 이사 갔잖아.

 

 영희가 말한다.

 

 - 맞아. 내가 걔하고 연락을 꽤 오래 주고받았는데. 걔도 이상한 남자만 걸려서 이혼을 두 번이나 했어.

 

 - 그래. 왜!

 

 모두들 궁금해 하는 얼굴로 인옥을 바라본다.

 

 - 처음 만나서 결혼한 남자는 삽입을 하고나면 꼼짝도 못하게 한데. 숨도 못 쉬게 해놓고 자기 혼자 사정을 하고 내려가 버린다는 거야.

 

 - 남자 혼자 하고 마는 거네.

 

 영희가 말한다.

 

 - 아냐, 남자도 삽인 한 채 1분쯤 꼼짝도 안 하고 있는 거야.

 

 - 그러고 사정이 돼.

 

 순정이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 그렇대. 그런 남자도 있나 보더라. 아무튼 그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어서 애가 일곱 살 무렵에 이혼을 했대.

 

 - 그렇게 해도 애는 생겼나 보네.

 

 영희가 말한다.

 

 - 그러니까.

 

 - 희한한 사람도 다 있네.

 

 - 별 우습지도 않은....... 애가 일곱 살이 되도록 산 것만도 용하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결혼했어?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내뱉고 나자 혜숙이가 궁금한 얼굴로 인옥이를 바라본다.

 

 - 금방 한 건 아니고. 몇 년 지나서 연락이 왔는데 좋은 남자 만나서 창원으로 간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몇 달도 안 돼서 다시 연락이 왔어. 글쎄 이번에는 정반대로 여자가 미친 듯이 신음하고 몸부림치고 꼬집고 심지어 때리고 해야 사정을 한다는 거야. 안 그러면 안 된데.

 

 - 안 되면 말지.

 

 - 그러니까.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그만하고 싶은데 이 남자가 그걸 또 못 참는다는 거야. 기어코 해야 직성이 풀린다나 어쨌다나.

 신음소리 내라 몸부림쳐라 꼬집어라 때려라 조르고 협박하고 사정하고 달래고 미치고 환장하게 만든다는 거야. 하루 이틀 아니고 도저히 못살겠어서 이혼하자니까 순순히 이혼해주더래. 그래서 애 데리고 춘천으로 간다고 그러더라고.

 

 - 춘천엔 왜.

 

 - 거기가 걔 고향이잖아. 연고도 없고 친척도 없는데 그냥 춘천으로 가는 거래. 그리고 그 후로는 소식이 끊겼어.

 

 - 진짜, 세상엔 별별 인간이 다 있어. 걘 왜 그런 남자만 만났을까. 이상도 하지.

 

 - 하나님은 왜 세상을 이렇게 복잡하고 이상하게 만들었을까.

 

 - 만들었겠니.

 

 - 그럼!

 

 - 낸들 아니! 하지만 만들진 않았어. 만들었다면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으로 골고루 생겨났겠니. 그래 그냥 생겨난 거라고 생각해.

 

 - 그게 어떻게 하나님 잘못이니. 사람들이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 거지.

 

 - 왜 죄 없는 사람을 잡니. 사람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 태어난 게 죄야.

 

 - 그러니까 신이 잘못이지. 사람은 그냥 태어난 죄밖에 없잖아. 누군들 나쁘게 태어나고 싶겠니. 누군들 반듯하게 살고 싶지 않고, 잘 생기고, 잘빠지고, 똑똑하고, 정직하고, 깨끗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겠니.

 

 - 그만들 해라. 우리가 이십대도 아니고 또 그 타령이니.

 

 - 그래 그런 개똥철학은 개나 주자.

 

 - 영희 너도 일이 있었잖아?

 

 - 있었지.

 

 영희는 그 말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다.

 

 - 내가 괜한 이야길 꺼냈나!

 

 은미가 말한다.

 

 -아냐 이젠 다 지나간 일인데 뭐. 다들 알잖아. 내가 시집갔다가 이혼한 거. 그 사연은 내가 은미한테만 말했었는데. 은미가 입이 가장 무거우니까.

 

 - 뭔데.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게 다들 모르는 눈치다.

 

 - 아닌 게 아니라 은미가 아무한테도 말 안했나 보네. 어떤 때는 좀 퍼트려줬으면 싶은데도 안 퍼트려줘서 서운하기도 하지만....... 하긴 퍼트릴 거면 순정이한테 말했어야지.

 

 - 야, 나는 생각해서 좍 퍼트려주는 거야. 고통은 나누면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하잖아.

 

 순정이가 말한다.

 

 - 그래 맞아.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 그래서 왜 이혼했던 건데? 성격차이 아니었니?

 

 혜숙이가 묻는다.

 

 - 결혼식 전에는 그 남자가 나를 아껴주는 줄 알았지. 그런데 신혼여행 가서도 이런 저런 핑계로 잠자리를 피하는 거야. 집에 와서도 마찬가지고. 내가 건들려고 하면 밝힌다고 면박이나 주고. 온 집안 식구들까지 나서서 나를 이상한 여자 취급하는데 내가 정말 문제가 있는 여잔가 싶더라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글쎄 이 남자가 고자야. 그래서 군대도 안 간 거고.

 

 - 아니, 남자가 그게 안 서면 군대 안 가니!

 

 - 그런 가봐.

 

 - 그런데 그걸 어떻게 확인 해. 그냥 고자라고 하면 면제해주는 건 아닐 거 아냐.

 

 - 남자들 군대 가기 전에 신체검사 받잖아. 그때 여자 군의관이 거기를 손으로 만져본대. 주무르고 때리고.

 

 - 어머, 그래도 되는 거니. 여자군의관은 또 뭐니. 남자 거시기를 주무르고 때려야 하는 얄궂은 운명이네.

 

 - 그거 안 서는 거 하고 군대하고 무슨 상관이야. 그걸로 방아쇠 당기는 것도 아니잖아.

 

 인옥이가 말한다.

 

 - 요즘은 고자도 군에 간단다.

 

 그 틈에 순정이가 스마트폰을 검색해 보고 있다.

 

 - 왜!

 

 - 옛날엔 자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면제를 했는데 요즘은 의술의 발달로 고자도 자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순정이가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것을 보여준다.

 

 - 그렇긴 하네.

 

 모두들 순정의 스마트폰을 돌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

 

 - 너희들 저녁은 안 먹고 술만 마시니!

 

 언제 들어왔는지 경자가 슬그머니 다가와 앉는다.

 

 - 벌써 무슨 저녁이니. 술 좀 마시다가 여기서 먹으면 돼.

 

 혜숙은 거푸 마신 술로 벌써 얼굴이 불그레하다.

 

 - 배고픈 사람은 알아서 시켜 먹으면 되지.

 

 은미가 말한다.

 

 - 그러자.

 

 인옥이가 말한다.

 

 - 애들아, 너희들 애인 없니! 모두 애인 하나쯤은 있을 거 아니니.

 

 - 갑자기 애인은 왜 들먹이니.

 

 경자가 말한다.

 

 - 애인 있으면 여기로 오라고 전화해. 애인 없으면 친구라도 좋고. 친구 없으면 평소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라도 불러.

 

 혜숙이가 말한다.

 

 - 지금! 갑자기 오라고 하면 오겠니. 더구나 서울에서 여기까지.

 

 영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혜숙을 바라본다.

 

 - 너희들 오늘 올 때 얼마나 걸렸니?

 

 - 한 시간 반쯤........

 

 - 애인인데 한 시간 거리도 못 달려오니. 그런 열정 안 보이면 남자 친구고 뭐고 다 끝내.

 

 - 진짜!

 

 - 맞네.

 

 - 한 번 불러볼까.

 

 - 그래 우리 시험해 보자.

 

 - 누구 애인이 오는지 해보자.

 

 모두들 재밌어 하는 얼굴이다.

 

 - 우린 친군데 애인 얼굴도 알아 둬야지.

 

 - 맞다 그래야 접촉 사고 나도 안 싸우지.

 

 영희와 순정은 전화를 들고 일어나서 각각 떨어져 창가로 바싹 다가간다.

 

 - 가장 먼저 오는 두 사람한테 내가 아파트 열쇠 줄게. 아니 아니다. 우리 이렇게 하자. 가장 먼저 오는 사람한테 여기 호텔 특실을 얻어주기. 어때.

 

 혜숙의 말에 전화를 걸고 있는 영희, 순정, 인옥, 경자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은미는 그저 재밌다는 듯 웃기만 하고 있다.

 

 - 그럼 내가 특실로 가야 될 거 같은데.

 

 경자가 말한다.

 

 -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설마 애인하고 함께 온 건 아니지! 왔으면 특실로 가. 내가 호텔비 낼게.

 

 혜숙이 말한다.

 

 - 거치적거리게 뭐 하러 데리고 다니니. 현지조달하면 되지.

 

 경자가 말한다.

 

 - 불가마에서 말한 그 남자는 데리고 오지 마라.

 

 인옥이가 말한다.

 

 - 내가 그 정도로 순진하진 않지. 너희들 애인이 오기 전에는 구해올게. 어쩌면 금방 올지도 모르고.

 

 경자는 맥주를 반쯤 마시다 내려놓고 나간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다.

 

 - 혜숙이 넌 애인 있니?

 

 은미가 묻는다.

 

 - 넌!

 

 혜숙이가 묻는다.

 

 - 난 없어. 현지조달할 능력도 없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고.

 

 은미가 말한다.

 

 - 난 있어.

 

 혜숙이가 말한다.

 

 - 정말! 못 믿겠는데.

 

 은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 나도 애인 있어. 지금 전화할거야.

 

 혜숙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벌써 김현에게 전화를 건다.

 

 - 늦게 오는 사람은 그냥 집으로......... 너희들 집이 아니라 우리 집. 강우아파트 504호. 거기에 가면 아파트 열쇠 두 개가 있어. 604호. 605호. 이불하고 베개는 내가 가져다 놨으니까.

 

 - 그럼 내일 남자들하고 같이 노니! 우리끼리 다니기로 했잖아.

 

 은미가 말한다.

 

 - 내일 아침 되기 전에 남자들은 돌려보내. 우리는 아침 밥 먹고 운보의 집에 가자. 대청댐에도 가고.

 

 신호가 가고 있는 동안에도 혜숙은 말을 계속한다. 하지만 끝내 김현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혜숙은 조금 기다렸다 다시 전화를 건다. 이번에도 김현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세 번째도 받지 않는다.

 

 - 은미야. 넌 어떻게 애인도 없이 살았니!

 

 혜숙은 전화를 끄고 은미를 바라본다. 벌써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지는 소리다.

 

 - 난, 남편이면 족해.

 

 - 미울 땐 없니!

 

 - 미울 때가 왜 없겠어. 그래도 내 남편만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 혜숙이 넌 좋은 남편 만나 잘 사는 줄 알았는데.

 

 은미가 말하는 동안 혜숙은 취한 눈을 껌벅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 남 보기에는 괜찮지. 하지만 나한테는 아냐. 그 남자는 아내를 시종이나 가정부쯤으로 알아. 나이 먹으면 나아지겠지 했는데 더 심해져. 퇴직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그 남자 수발드는 것도 지치더라. 약 먹여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생각해봐.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이거 달라 저거 달라하는 거. 밥 먹는 동안 최소 다섯 번, 많게는 열세 번까지 시킨다. 그게 끝이 아니야. 심지어 리모콘 앞에 두고 텔레비전 켜고 에어컨 켜고 히터 켜는 것도 시켜먹는다.

 텔레비전 채널 바꾸는 것만 지가 하지 에어컨 온도 줄이고 히터 조절하는 건 수시로 불러서 날 시키는 사람이야.

 내가 몸이 아파 병원에 일주일씩 입원해 있는 동안에 한 번도 안 와보는 건 서운하지도 않아. 겨우 퇴원해서 누워 있는데도 나를 불러 시켜먹는데 정나미 떨어져서 더는 못살겠다 싶더라고.

 

 - 그 정도니!

 

 은미가 놀라서 비명을 내뱉는데 혜숙의 스마트폰에서 수신음이 울린다. 김현이다.

 

 - 교수님! 아니 김현 씨! 지금 어디에 있든, 초정리스파텔 카페로 오세요. ........난 지금 애인이 필요해요. ........내가 사준 속옷 입고 와야 돼요. 기다리고 있을 게요.

 

 혜숙은 일방적으로 말하고 끊는다.

 

 - 온대니! 누군데.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인옥이가 말한다.

 

 - 왜 나는 애인도 없을 줄 알았니!

 

 - 졸혼했다고는 해도 혜숙이 니 성격이 어디 가겠나 싶었지. 어렸을 때부터 너는 남자 문제에 결벽증이 있었잖아. 오늘 와서 아파트에도 올라가봤지만 예전 성격 여전해 보이던데.......

 삐뚤어진 거 하나 없고, 먼지 한 톨 없는 거 보고 하나도 안 변했구나 했었지. 혜숙인 우리 중 유일하게 처녀로 시집갔잖아. 그러니 여태껏 바람 한 번 안 피웠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지. 바람이 뭐니 남자 한 번 안 만나고 지아비만 섬기고 사는 줄 알았지.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혜숙에 대한 평가를 내놓는다.

 

 - 사실이 그래. 아직 남자 한 번 못 만나봤어. 하지만 이젠 만나서 연애도 하고 그러려고. 그 남자니까 한 번 그래보고 싶어졌어. 나도 여자로 살 수 있겠다는 믿음, 희망 이런 걸 갖게 됐지.

 

 - 벌써 속옷까지 사줬다며?

 

 - 그건, 애인으로서 사준 게 아니야. 아직은 애인도 아니고.

 

 - 여자가 남자 속옷을 사 줄 정도면 애인인 거 아니니.

 

 - 그런 거 아니라니까. 얼마 전에 내 아들이 우리 아파트 상가 건물 이층에 부동산연구소를 냈다고 했잖아. 그 사무소 인테리어 공사할 때 내가 가끔 교수님 밥을 해주었는데, 일하느라고 더웠는지 와이셔츠 앞 단추를 서너 개쯤 끄르고 있더라고. 근데 속옷이 잿빛이야. 깔끔한 사람인데. 내 짐작에 물 빠지는 옷하고 같이 빨아서 그렇게 된 것 같아. 몇 년 전에 상처하고 혼자 살거든.

 그래서 읍내 나가는 길에 속옷 몇 벌 사서 주고 꼭 따로 빨아 입으라고 알려줬지. 그게 전부야. 아직은 손 한 번 잡아본 적 없어.

 그 남자는 남편하고 다르더라. 밥 차리면 알아서 수저, 물 컵 갖다 놓고, 밥 먹고 나면 꼭 설거지 하고, 물도 떠다 마시고. 자기만 떠다 마시는 게 아니라 내 것도 떠다 줘. 커피도 타주고. 내 평생 그런 남자 처음이거든.

 그뿐이 아니야. 눈치가 빨라서 내가 엉덩이만 들썩하면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하고 일어나서 가져와. 뭐든 말이야.

 그 남자하고 있으면 저절로 흐뭇해져. 다시 여자가 된 것 같고 사람으로 대접 받는 느낌이 들어.

 그래서~ 오늘밤 내가 그 남자 가지려고 해.

 

 - 남편 때문에 어지간히 힘들었나 보다. 요즘 남자들은 다 그런데. 안 그러면 누가 살아주니.

 

 - 처음엔 잘하던 남자도 몸 섞고 나면 달라져. 시간이 지나면 남자들은 여자한테 무신경해지지.

 

 친구들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하고 있는데 카페 문이 열리고 무릎이 찢어진 청바지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들어선다.

 

 혜숙만 술이 취해 고개를 숙이고 있고 친구들은 모두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남자는 여자들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막 목욕을 끝낸 말간 얼굴로 카페 안을 이리저리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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