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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여자들 끼리 술 마시면서 하는 말
작가 : 아브락사스
작품등록일 : 2019.9.11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한다는 건 참 어렵고도 험난한 여정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4화 발가벗은 여자들
작성일 : 19-09-16 18:07     조회 : 526     추천 : 0     분량 : 8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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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발가벗은 여자들

 

 

 

 

 

 발가벗은 여자들이 가랑이를 한껏 벌린 채 황토 아궁이를 마주 하고 누워 있다.

 

 어떤 여자들은 다리를 바짝 세운 채 무릎을 붙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무방비 상태로 다리를 뻗고 심지어 코까지 곤다.

 

 무릎 세운 여자들을 앞쪽에서 보면 야구 포수의 글러브가 연상된다. 그녀들은 야구공이 아니라 참나무장작에서 내뿜는 적외선 열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받아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하지만 적도의 무더위를 방불케 하는 이 황토불가마 안에서는 간혹 자리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잠깐 소변 보고 왔는데 남의 자리를 가로채는 게 어디 있느냐며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여자들 때문에 소동이 벌어지는 일도 있다.

 

 누군가 와서 빈자리에 앉으려고 할 때 옆에 있던 어떤 사람이 자리가 있다며 못 앉게 하는 경우에도 작은 실랑이가 인다.

 

 어느 경우나 순간적으로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히면 빈자리가 있어도 그냥 나가버린다. 하지만 자기 권리를 빼앗기길 싫어하는 사람들은 빈자리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황토불가마를 쬐기 마련이다.

 

 황토 불가마에 들어온 일행들이 속삭이며 대화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다.

 

 주로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여행 온 사람들이긴 하지만 황토불가마를 전세 낸 것처럼 떠들어대는 일도 아주 간혹 있다.

 

 하지만 대체로 황토 불가마 안에는 장작이 타는 소리와 코고는 소리가 날뿐이다.

 

 *

 

 열기가 식은 걸 느낀 혜숙은 고개를 쳐들고 다리와 다리 사이로 아궁이 속 숯불을 쳐다본다. 잉걸불이 사그라지고 숯덩이가 잿빛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

 

 혜숙은 일어나서 장작 두 개를 가져와 아궁이에 밀어 넣는다. 그리고 저쪽 구석에 누워 있는 은미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 앞에 있는 아궁이를 바라본다. 불이 시원찮아 보인다.

 

 혜숙은 장작이 쌓여 있는 구석으로 가서 다시 장작 두 개를 집어 든다. 그리고 은미 옆에 쪼그려 앉아 그녀를 내려다본다. 은미는 혜숙이 다가온 것도 모르고 옅게 코를 골고 자고 있다.

 

 자식을 셋씩이나 길러낸 엄마답게 은미의 가슴은 물먹은 습자지처럼 쪼그라들고 튼 자국이 선명한 아랫배는 무슨 액체처럼 펑퍼짐하게 흘러내릴 듯 보인다. 다행히 아직 얼굴은 깨끗하고 예쁘다.

 

 - 넌 아직도 먹을 걸 얼굴에 처바르지! 우유, 오이, 사과, 홍삼. 밥은 안 붙이니! 몸도 좀 아껴라. 봉긋하고 예쁘던 가슴이 이게 뭐니! 쭈그렁할머니도 아니고.

 

 혜숙이 말한다.

 

 - 니 몸매가 처녀 때처럼 그대로 인 게 니 노력이니?

 

 그제야 은미가 눈을 뜨고 혜숙을 쳐다본다.

 

 - 나름대로 노력하는 거야, 나도.

 

 - 노력하고 싶어도 노력조차 안 되는 사람도 있어. 아이들 셋 키우고 나니까 저절로 이렇게 되더라.

 

 - 환장하겠다, 정말.

 

 - 환장할 거 없어.

 

 - 처녀 때 네 모습을 잘 아니까 그러지.

 

 - 난 엄마로서 자랑스러워. 부끄럽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아.

 

 -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얼굴에 하는 것처럼 노력했으면 지금 보다는 좀 낫지 않았을까?

 

 - 모르겠다. 노력할 방법이 있는 건지는. 얼굴은 남들 하는 거 보고 알 수 있었는데.

 

 - 하긴 가슴 찌그러드는데 무슨 방법이 있겠니.

 

 - 타고난 걸 어쩌겠니. 어느 정도는 운명인 거야. 그 중 10퍼센트만 극복할 수 있는 거 같아.

 

 - 니 얼굴처럼!

 

 - 그래, 난 얼굴 하나만큼은 게을리 해본 적이 없어. 니 말대로 몸에 좋다는 건 다 얼굴에 처발랐으니까. 똥하고 밥만 빼놓고.

 

 - 똥하고 밥! 호호호 어쨌든 반은 성공한 거 같다. 네 얼굴만큼은 아직도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곱구나. 우유로 코팅한 것 같다.

 

 - 그 정돈 아니지만 나이보다 젊단 이야긴 많이 들어.

 

 - 좋겠다. 하지만 남자 만나면 절대로 가슴은 보이지 마라.

 

 -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마.

 

 - 난 사느라고 얼굴도 몸도 가꿔 본 적이 없다.

 

 - 무슨 소리야 우리 중에 니가 가장 괜찮은데. 너를 누가 오십대라 하겠니! 애를 둘씩이나 낳았는데 어쩌면 그렇게 그대로니. 솔직히 가슴도 여전하고 튼살도 없고 군살도 없어서 속으로 부럽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 나이 먹은 우리 눈에만 그래 보여. 우리가 나이 먹어서. 애들은 나한테 할머니라고 해. 애들 눈에는 내가 할머니로 보이는 거지.

 

 - 우리 눈에는 서른 살도 애로 보이듯 그렇겠지.

 

 - 그렇지 보는 눈이 나이 따라 달라지는 거 같아.

 

 - 그럼, 우리끼리는 우리가 그렇게 늙었단 생각 안 들지 않니!

 

 - 그래 맞아. 늘 봐도 그대로인 거 같은데.

 

 - 그러니까 깜짝깜짝 안 놀라고 살겠지.

 

 - 불이 시원찮아. 장작 넣어줄게.

 

 혜숙이가 내려놓았던 장작을 들고 은미 앞에 있는 아궁이에 넣으려고 손을 뻗는다.

 

 - 난 됐어. 넣지 마.

 

 은미가 손사래를 친다.

 

 - 왜!

 

 - 난 뜨거운 거 싫어하잖아. 지금이 딱 좋아.

 

 - 너 자궁 안 좋다며. 적외선이 여자한테 좋다고 하잖니. 언제 이런 거 해보니. 좀 참아.

 

 혜숙은 기어코 장작 하나를 밀어 넣는다.

 

 - 이런 거 한다고 좋아지겠니.

 

 - 좋아질지 누가 알아.

 

 - 혜숙아, 나도 장작 하나 넣어줘.

 

 경자가 조심성 없는 목소리로 외친다.

 

 - 넌 불이 좋은데 그러니.

 

 혜숙이 장작 하나를 들고 경자 쪽으로 다가가 아궁이를 들여다본다.

 

 - 그냥 넣어줘.

 

 - 넣긴 뭘 넣어. 그러다 거기 데면 어쩌려고.

 

 혜숙이 장작을 밀어 넣으며 웃는다.

 

 - 내 평생 한 번만이라도 뜨거운 거에 데어봤으면 좋겠다. 아니 뜨거운 맛이라도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어째서 나는 성냥개비 같은 남자들만 만나니. 치익하고 붙는 가 싶으면 이내 꺼져버려.

 

 경자가 아쉬운 듯 중얼거린다.

 

 - 혜숙아 빨간약 발라주면 돼. 넣어 줘. 뜨거운데 데이고 싶다고 하잖아.

 

 저쪽에 누워 있는 인옥이가 한껏 소리를 죽여 외친다.

 

 - 우리 집엔 마데카솔 밖에 없어.

 

 혜숙이 자리로 가 누우면서 말한다.

 

 - 마데카솔 바르고 대일밴드 붙이면 되겠네.

 

 영희가 키득거리며 혜숙을 바라본다.

 

 - 뜨거우면 뭐하니. 대일밴드 붙이면 아무 것도 못할 텐데.

 

 순정이가 능청스럽게 말한다.

 

 그때 혜숙이 옆에 있던 여자 세 명이 한꺼번에 일어나 나간다. 기다렸다는 듯이 저만치 떨어져 있던 경자, 은미, 인옥이가 혜숙이 옆으로 다가와 눕는다.

 

 - 우리 이렇게 모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혜숙이 새삼스럽게 양 옆에 있는 친구들을 돌아본다.

 

 - 우리는 가끔 모여. 너만 빠진 거지.

 

 경자가 고개를 빼고 혜숙을 바라본다.

 

 - 미정이는 잘 사니!

 

 혜숙은 경자를 보고 묻는다. 미정이가 경자와 가장 친하게 지냈다는 기억 때문이기도 하고 또 미정이 남편에 대한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오른 탓도 있다.

 

 - 나 걔하고 연락 안 한지 오래야.

 

 경자는 시큰둥하다.

 

 - 왜, 너희 둘이 가장 친했잖아.

 

 - 옛날 말이야.

 

 경자가 말끝을 흐린다.

 

 - 무슨 일 있었니?

 

 순정이가 말한다.

 

 -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경자가 뜸을 들인다.

 

 - 무슨 일인데?

 

 인옥이가 재촉한다.

 

 - 옛날에 나 호프집 할 때 미정이 남편이 많이 팔아주러 왔었어.

 

 - 그게 왜 어때서.

 

 영희가 말한다.

 

 - 넌, 눈치도 없냐. 호프집 할 때 미정이 남편하고 일 저질렀단 말이지. 그걸 꼭 입으로 말해야 아니.

 

 인옥이가 말한다.

 

 - 진짜 그런 거니.

 

 영희가 말한다.

 

 - 내가 술이 취해서 방에 들어가 자고 있는데 슬그머니 기어 들어와서.......

 

 경자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 자긴 뭘 자니. 깨어 있으면서 그냥 자는 척 한 거지.

 

 순정이가 말한다.

 

 - 맞아. 마음은 밀쳐내야 한다 생각했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 걸 어떡하니.

 

 경자가 말한다.

 

 - 지랄하네. 친구끼리 그러면 쓰니.

 

 영희가 말한다.

 

 - 나도 안 그러고 싶었다고, 등신아.

 

 경자가 쏘아본다.

 

 - 애들아, 그만 해. 여기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워봐야 우리만 창피해.

 

 은미가 말한다.

 

 - 아이구 저것도 친구라고.

 

 영희가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 거린다.

 

 - 내가 언제 너보고 친구하자고 그랬니.

 

 경자도 지지 않고 대든다.

 

 - 그래 우리가 언제 친구였니. 쪽팔려서 너하고 친구 안한다.

 

 영희가 말한다.

 

 - 나 호프집할 때 외상 먹은 거나 내놔.

 

  경자가 말한다.

 

 - 무슨 외상. 내가 무슨 외상을 했다고 저래.

 

 영희가 팔짝팔짝 뛴다.

 

 - 정말 너희들 여기서 이럴래.

 

 은미가 소리를 지른다.

 

 *

 

 - 옛날에 나 미정이 남편 때문에 죽을 뻔 했었어. 지금도 가끔씩 그 생각이 나면 입술이 파래지고 화가 치밀어 올라.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뒤에 혜숙이가 입을 연다.

 

 - 아니 왜! 언제!

 

 은미와 경자가 일어나 앉으면서 혜숙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 우리 아가씨 때 밤섬에 놀러갔었잖아.

 

 - 응, 그래.

 

 - 기억나. 미정이가 가자고 해서 모두 따라 간 거지.

 

 - 맞아.

 

 - 그래서 그때 왜?

 

 - 무슨 일 있었던 거니!

 

 - 그때 미정이만 남자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솔로였잖아.

 

 혜숙이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다른 친구들도 일어나 앉아 귀를 기울인다.

 

 - 사실 남자를 사귀기엔 우리가 아직 어렸지. 그때 우리는 갓 스물이었으니까. 미정이는 자기 집에 세 들어 사는 남자하고 눈이 맞아서 일찌감치 시집까지 갔던 거고. 그땐 미정이가 아직 결혼 전이었지만.

 아무튼 밤섬에 갔을 때 일이야. 어떻게 하다가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있는데. 내가 수영을 제대로 했겠니. 나 혼자 물장구치면서 놀고 있는데 미정이 남편이 다가 오더라고. 나는 아무런 의심도 안 했지.

 그런데 그놈이 느닷없이 내 정수리를 손으로 움켜잡더니 나를 물속으로 밀어 넣는 거야. 너무 놀라서 한꺼번에 물을 한 바가지쯤 먹었어.

 한참 만에 겨우 물 위로 올라 왔는데 그놈 손이 아예 내 정수리에 붙은 것처럼 누르고 또 누르는데, 아휴 숨 쉴 틈도 안 주고 물속으로 밀어 넣고 또 밀어 넣기를 반복하는 거 아니니.

 물을 먹어가면서 간신히 하지 말라고 소리 질렀는데 들은 척도 안 하고 계속 그러는데 죽겠더라고. 미친놈처럼 히죽히죽 웃어가면서. 물이 코로 입으로 막 들어오는데 숨이 턱턱 막혀서 이대로 죽는가보다 싶었지.

 다행히 내가 죽을힘을 다해 바동거리는 걸 본 어떤 아주머니가 사람 죽겠다고, 하지 말라고 하는데 뭐하는 거냐고, 야단을 치니까 그제야 놓아주는 거야.

 그 아주머니 아니었으면 아마 난 그때 죽었을 거야.

 물 밖으로 나와서 그 미친놈 낯짝을 신발짝으로 후려치니까 미정이년이 나보고 미쳤냐고 소리 질러서 나는 그냥 집으로 와버렸잖니. 그때 그놈을 죽여 버리지 못 한 게 지금도 억울해. 그일 있고 나서 미정이년까지 꼴 보기 싫더라고 그래서 그년하고는 상종을 안 했고.

 

 - 어머, 그런 일이 있었니? 왜 우린 몰랐지!

 

 순정이가 말한다.

 

 - 그러게.

 

 영희가 말한다.

 

 - 남자 때문에 여자들 우정이 깨지는 거야.

 

 인옥이가 말한다.

 

 - 맞아, 맞아.

 

 경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 혜숙이가 샌들로 미정이 남편 싸대기 때린 건 기억나. 짝 소리 나도록 정확하게 때렸거든.

 

 은미가 말한다.

 

 - 그래 나도 기억난다. 하지만 혜숙이 니가 미정이 남편한테 그렇게 당한 건 몰랐지.

 

 인옥이가 말한다.

 

 - 아마 아무도 몰랐을 거야.

 

 영희가 말한다.

 

 - 알았다면 우리가 가만히 보고만 있었겠니.

 

 순정이가 친구들을 둘러본다.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

 

 - 미정이 남편 얼마 전에 자살했어.

 

 은미가 혜숙을 바라본다.

 

 - 어머, 왜!

 

 경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은미를 쳐다본다.

 

 - 노름에 빠져서 벌어놓은 돈 전부 탕진하고 술로 살다가 목매 죽었데. 우리 살던 동네 갔다가 우연히 미정이를 만났는데 그러더라. 미정이도 꼴이 말이 아니었어. 얼굴이 지쳐 보이더라. 살기가 많이 힘든가봐.

 

 은미의 얼굴에 안타까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 지금도 자다가 그 생각이 나면 숨이 콱 막혀 벌떡 일어나곤 하는데, 미정이 남편이 나한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안겨준 셈이지. 하지만 그렇게 죽었다니까 마음이 좀 그렇긴 하다. 미정이라도 잘 살면 좋을 텐데.

 

 혜숙도 안 됐다는 표정이다.

 

 *

 

 - 아주머니들께서, 오랜만에 동창회 하시는 가 본데.......

 

 모르는 중년 여자가 끼어든다.

 

 - 우리 동창회 아니에요. 동네 친구들이지.

 

 은미가 말한다.

 

 - 남자니!

 

 순정이가 소근 거린다.

 

 - 남자가 여길 어떻게 들어오니.

 

 인옥이가 면박을 준다.

 

 - 아, 그렇지 여긴 여탕이지.

 

 순정이가 말한다.

 

 - 아무튼 서울서 여기까지 놀러 오신 것 같은데 내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전해 드릴게 있습니다.

 

 순정과 인옥이 소곤거리는 사이에도 끼어든 여자는 쉬지 않고 말을 한다.

 

 황토불가마에 있던 다른 여자들도 그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은 오늘밤 한 남자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여행의 달콤함과 해방감에 한껏 부풀어버린 오늘 같은 밤, 여자들은 눈물 많은 남자에게 속아 넘어가기 쉽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오늘 밤 여러분 중 누군가에게 그 남자가 접근할지 모릅니다. 아니 백퍼센트 오늘밤 여기에 있는 누군가 그 남자의 희생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만약 희생당하고 싶지 않다면 어떤 남자가 갖은 친절을 베풀며 환심을 사려고 접근할 때 여러분은 제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심지가 굳은 숙녀분이어서 그 남자에게 쉽게 넘어가지 않을지 모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지금 내가 말하는 순간에도 그렇다고 자만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자신이 숨겨둔 비장의 무기를 꺼내 여러분의 정숙함을 무너트리고 말 겁니다.

 여러분을 위해 말씀드리는데 그 남자의 첫 번째 비장의 무기는 눈물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정숙한 여러분이 그 남자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애쓸 때 그 남자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기 시작한다면 여러분은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친절하고 잘생긴 남자의 눈물에 조금 흔들릴 수는 있어도 여러분이 넘어가진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그 남자는 두 번째 숨겨둔 무기를 꺼냅니다. 그 남자의 두 번째 무기는 이빨입니다. 그 남자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면서 고백을 시작할 겁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사실 저는 고자입니다. 그래서 평생 여자하고 관계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 소원은 그저 마음이 넓은 한 여인의 품에서 하룻밤을 자 보는 것입니다. 단지 여인의 체온을 느끼며 잠드는 것이 저의 간절한 바람이랍니다.

 아무리 심지가 굳은 여자라도 남자의 마지막 무기에 무너지고 맙니다. 어떤 여자라도 무너지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겁니다. 지금은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자만하지만 결국 넘어가게 됩니다.

 잘생기고 매너 있는 남자가 고자라고 고백하는 순간 여러분은 말할 수 없는 동정심에 휩싸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경계심이 완전히 무너진 여러분은 아무런 의심 없이 발가벗고 그 남자를 껴안아 주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호텔방에 들어가 그 남자를 알몸으로 껴안고 있는 동안에도 여러분은 서지 않는 그 남자의 그것 때문에 몹시 안타까워하고 어떤 모성애까지 발동하여 그것을 쓰다듬기까지 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오래 그 남자의 것을, 서지도 않는 그것을 손에 쥐고 있다가 막 잠이 들려고 할 때 마침내 그 남자의 그것이 아주 천천히 커지는 것을, 다시 말하면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소위 말하는 발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때 그 남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내게 기적을 안겨준 천사입니다. 당신의 사랑이, 당신의 인내심과 그 선함이 나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러니 제발 당신에게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마치 여신이라도 된 기분으로 그 남자의 것을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 남자의 그 모든 것은 거짓입니다. 그 남자는 자기가 원할 때만 그것을 세울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이용해서 여자를 넘어트리는데 바람둥이 수컷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밤 그 남자를 만나지 않도록 기도하시고 또 만나더라도 절대로 속아 넘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제가 이 자리서 전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 아주머니는 그 남자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 제 남편이니까요.

 

 - 아주머니도 처음에 그렇게 당했나 봐요.

 

 - 저는 당했지만 그 남자를 내 남자로 만들었습니다. 그건 내가 가진 뛰어난 능력이기도 하지만 또 저의 슬픔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좋은 여행길에도 내 남편은 나를 버려둔 채 여러분 중 누군가를 데리고 종종 사라져 버리곤 하니까요.

 

 여자는 무슨 사상을 설파라도 한 것처럼 만족스런, 그러나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 보고나서 엉덩이를 흔들며 나간다.

 달린 게 없는 걸로 보아 여자가 분명한데 목소리며 움직임은 어쩐지 남성적이다.

 

 그제야 황토불가마에 있던 몇몇은 그 여자의 허벅지를 타고 기어오르는 뱀을 발견하고 낮게 탄성을 지른다.

 *

 

 커다란 욕조 밖으로 광천수가 철철 넘쳐흐른다. 수천수만 마리의 송사리 떼가 물속을 돌아다니며 살을 깨무는 것 같다.

 

 차가운 것을 싫어하는 인옥이, 영희, 경자는 광천수에 몸을 담근 지 얼마 안 돼 나가버린다. 은미와 혜숙이 두 사람만 광천탕에 남는다.

 

 - 아까 그 여자가 말할 때 난 인옥이 생각하고 있었다.

 

 인옥이 모습이 멀어지자 혜숙이 말한다.

 

 - 나도

 

 - 아까 그 여자 말이 사실일까!

 

 - 반반이겠지, 아마도.

 

 - 좀 다르긴 하지만 인옥이가 비슷하게 당했잖아.

 

 - 걔가 원래 순진하고 인정이 많았어.

 

 - 아무리 아파 보여도 그렇지 병원도 아니고 여관까지 따라 들어가니.

 

 - 속이는 사람한테는 못 당해. 그 남자가 아프다니까, 아픈 시늉을 하니까 그냥 못 지나가고 부축해줬겠지. 그 남자는 이때다 싶어 여관까지만 데려다달라며 더 아픈 척 했을 테고.

 그땐 인옥이가 나이가 어렸으니까 정말 그런 줄 알고 여관까지 데려다준 거고.

 방에 들어서는 순간 입 틀어막고 덮치면 누군들 별 수 있겠니. 그때만 해도 폭행한 남자보다 당한 여자를 더 비난했잖아. 조심성이 없다느니 엉큼하다느니, 하면서 말이야.

 그땐 세상이 그랬으니까. 여자는 당하고도 손가락질 당했잖아.

 

 - 그 남자 잡지도 못했지! 인옥이가 죽는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소문만 더럽게 났었던 것 같아.

 

 - 오늘 밤에도 인옥이가 당하는 거 아니니!

 

 - 인옥인 이제 더 이상 순진하지 않아. 며느리를 둘씩이나 본 시어머니잖니.

 

 - 그러게 세월이 많이 흘렀다.

 

 

 
작가의 말
 

 추석 명절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바쁘고 피곤하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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