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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오블리비언
작가 : 강냉구
작품등록일 : 2019.8.26

가장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는데 바보 같은 짓으로 인해 종군기자가 되었다.
스탠포드 교내 기자로 취재하고 글을 쓰며 졸업 후 타임지 정치부기자가 되려고 했는데,
타임지 건물 앞에도 못 가보고 허망하게,
흔적도 없이 꿈이 사라졌다.

 
8
작성일 : 19-09-16 13:48     조회 : 245     추천 : 0     분량 : 4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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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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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닫았다.

  아무도 못 들어오게 나무판자와 못으로 문을 봉쇄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화장실도 갈 수 없기 때문에 문만 닫았다.

  의자에서 일어나 거실을 나와 계단을 타고 올라 내 방으로 향하자 눈으로 뒤덮인 산 속에서 벗어나올 수 있었다. 아마 내가 문을 닫은 이유는 차가운 눈이 내 방으로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동인 거 같다.

 

  침대 머리맡에 앉아 명상에 빠진 수도승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생각을 하지 않고,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으니 마음은 너무 편하지만 또 한 켠 으로는 답답함이 물 쏟아지듯 쏟아졌다.

 

  “아!”

 

  재수 없다.

 

  날카로운 종이에 손이 베였다.

  베인 자국만 있던 손가락에 조금씩 피가 보이기 시작했고, 피가 뭉쳐 핏방울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 핏방울을 닦지도 만지지도 않은 채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달팽이가 잎사귀를 먹는 거처럼 아주 느릿느릿 했지만 나름 볼만했다. 그렇다고 내가 피를 좋아하거나 하는 건 아니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종이는 눈처럼 새하얀 순백색을 띄고 있었다.

  순백색의 종이 위로 핏방울이 떨어지자, 종이는 빨간 빛의 핏물에 물들어 버렸다.

 

  어느새 피는 멈춰 피딱지가 돼버렸다.

 

  나는 종이 맨 끝자락에 이렇게 썼다.

 

  <데이비드 리버 벡스터의 일기>

  하지만 이건 일기는 아니다.

  일기라고 하기엔 너무 볼품없기 때문이다. 누가 일기를 달랑 종이 몇 장에 쓸까. 그것도 허름하고 볼품없는 때탄 누런색의 종이 몇 장에.

 

  나는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허름한 종이에 문학에 가까운 일기를 쓰기 위해 아주 심도 깊은 생각 따위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백지에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맞춤법이 틀려도 좋으니 지금 생각하는 것들을 바로 뽑아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 글을 쓰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일기를 쓰라고 준 시간 보다 더 짧았다.

  아마도 학교에서 시킨 건 하기 싫어서 더 오래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패트릭 녀석은 일기를 쓰기 싫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기를 쓰고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제목 패트릭의 일기.

 오늘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일기를 쓰라고 해서 당황했다. 하지만 나는 일기를 쓴다. 일기를 쓸 때면 내가 오늘 하루 무어를 했는지 생각을 하고 써야 되는데 나는 오늘 일기 쓸 생각을 했고, 지금 일기를 쓰고 있기 때문에 일기를 쓴다.

 

 

  정말이다.

  패트릭의 일기에 감동 받은 존 선생님은 학생들 앞에서 <패트릭의 일기>를 읽게 했다.

  또 <패트릭의 일기>가 역사적인 일기가 된 적이 있는데, 존 선생님은 패트릭 녀석처럼 일기를 대충 쓰는 사람을 벌하기 위해 교실 문 마다 <패트릭의 일기>를 붙여놨었다.

  그래서 난 <패트릭의 일기>를 다 외워버렸다. <패트릭의 일기>를 낭독하라고 한다면 정말 자신 있게 낭독할 수 있다.

 

  그 녀석의 일기를 읽고 느낀 점이 있다면 패트릭은 글 쓰는 재주가 형편 없다는 것이다.

  내 기준으로 어느 작가 보다 에디 형이 가장 글재주 있는 사람이었는데 패트릭은 에디 형 발톱만큼도 따라오지 못한다.

 

  나는 <패트릭의 일기> 생각을 잠시 멈춘 채로 내 글을 읽어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썼지만 패트릭이 쓴 일기 보다는 훨씬 더 잘 섰다. 이건 정말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내 글은 일기가 아니다.

 

 

 <데이비드 리버 벡스터의 일기>

 내 이름은 데이비드 리버 벡스터. 줄여서 데이빗 또는 뎁이라고 부른다.

 나는 친구들(특히 패트릭)과 나쁜 짓을 했는데 아주 일이 커져버렸다. 그래서 탐정놀이도 하고 근데 그 탐정놀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뒀다. 만약 누가 날 배신하면 그때 누군가가 위대하신 데이비드 리버 벡스터 님의 일기를 읽고 혼자만 일을 저지른 게 아니고 공범이, 위에 그 친구들이 공범이라는 걸 누가 좀 세상에 알려줬으면. 아니다. 아무튼 지미랑 패트릭이랑 무슨 인디언 그려진 게임을 했다. 이름이 기억 안 난다. 지미가 와플이라고 한 건 기억이 나는데. 아무튼 패트릭은 부모님이 싸우고 다음 날 아빠가 선물 하나씩 사온다고 했다. 딱히 부럽지는 않는다. 재즈를 틀고 싸움을 하다니. 그래서 패트릭이 재즈처럼 느린 음악과 느린 거 자체를 싫어하는 거 같다. 그리고 지미가 에디 형 얘기를 했는데. 얘기라고 하기엔 우연처럼 나온 말이었지? 지미는 우리 형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른다고 했는데 난 지미의 말을 듣고 잠시 에디 형 생각을 했다. 에디 형은 글재주가 있는데 나는 글재주가 없다. 그런데 패트릭은 글재주가 엉망진창이다. 더 심한 표현 하고 싶은데 패트릭이 이걸 읽고 다 말하고 다닐까봐 겁난다. 아무튼 전쟁이 끝나서 다행이다. 에디 형이 살아 있길.

 

 

  도대체 내가 뭘 썼는지도 모르겠다.

  패트릭을 욕할 게 못 된다. 난 글 쓰는 재주가 형편없었다. 좋게 말하면 형편없는 거지 사실대로 말하면 이건 쓰레기 같았다.

  나는 이 쓰레기를 구겨 버리지는 않았다.

  그냥 내 책상 서랍에 두었다. 혹여나 정말 누군가가 배신을 하게 된다면 글처럼 누군가 내 글을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한을 풀거나 간곡한 건 없지만 그냥 한 번만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학생들과 선생들은 그 일을 모두 잊었다는 듯이 아주 평화로웠다.

  나도 그들과 같아지기 위해 노력했다. 평화롭게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그저 평범하고 예전 같은 사람처럼. 아무 일 없이 그저 평온하게 하루하루를 보낸 사람들처럼 지내기 위해 노력을 했다.

  나의 노력을 들어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해왔다. 저 하늘의 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꼭 이루어지는 거처럼.

 

  “세상은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그 뒤 망가진 그곳에서 많은 것이 강해진다.”

 

  존 선생님이 책에 적힌 지문을 읽었다.

  그 책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는 존 선생님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은 채 창 밖 풍경만 내다 볼 뿐이었다.

  풍경이라 했지만 내 두 눈에 보이는 건 텅 빈 운동장과 그 운동장 뒤로 조용히 달리는 차들 뿐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책 위에 시선을 고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한 운동장 사이를 시끄럽게 가로질러가는 차 한 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차는 경찰차였다.

 

  그 차는 왜 우리 학교에 왔을까? 호기심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이상모를 불안감이 폭풍우 치듯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허리케인이 불어 이 학교를 통째로 날려 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다리는 이를 거부하는 듯 간질 걸린 사람처럼 마구 떨려대기 시작했다. 그 다리를 보고 있자니 지진에 의한 떨림이라고 믿고 싶었다.

 

  경찰차의 존재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 한 듯 해 보였다. 미친 듯이 떨리는 내 다리 또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괜히 나 혼자 진땀 빼고 있는 거 같았다.

 

  나는 그저 불쌍하고 가여운 열 두 살짜리 어린 학생에 불과하다.

  나는 무죄를 입증할 수도 있고 증거와 알리바이도 있지만 이건 분명 살인사건 현장을 훼손한 것도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내 알리바이는 공범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뿐이다.

 

  그래서 나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간 있었던 겁과는 차원이 달랐다. 누가 나를 겁쟁이라고 놀려댄다고 해도 나는 그 말을 흔쾌히 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부정 하지 않고 바로 인정할 것이다.

  침은 내 목 안에 걸려서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여전히 내 다리는 간질에 걸린 듯 심하게 떨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이 정신이 굳었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벡스터? 어디 아프니?” 존 선생님이 물었다.

  “아니요.” 내가 대답했다. 나는 대답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존 선생님은 내 대답을 듣고 다시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목 속에 걸린 침을 꿀꺽 삼켰다. 목에 매실 씨앗이 걸려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얼른 그 씨앗을 빼내고 싶었지만, 아무 행동을 취할 수가 없었다. 내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렇게 느낄 뿐이지 실제로 내 목 속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천장에 달린 스피커가 불쾌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불쾌한 소리는 스피커에서는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불안에 떤 채로 그 목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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