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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일단, 뛰어!
작가 : 김기현입니다
작품등록일 : 2019.9.3

뱀파이어 여인 일단.

그리고 두 명의 사내, 효령과 영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오늘...빌어먹을! 그딴게 어딨냐고!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고!

지구 멸망을 막아줘 일단! 어서 뛰어!

 
4.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13)
작성일 : 19-09-15 22:05     조회 : 341     추천 : 0     분량 : 3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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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인에 저항하는 힘이 훨씬 강력해졌다.”

 

 건축가의 말에 효령이 대꾸하였다.

 

 “마지막 발악이겠지. 뻔하잖아, 이런 결말. 거대화되면 지는 거. 나중에 환생하면 TV라는 게 있어. 그것도 좀 보고 그래.”

 

 “단정적으로 말하는 걸 보니, 네 시대에 내 마지막 환생이 있는 거로군.”

 

 살짝 경솔했나.

 

 효령은 속으로 뜨끔했으나 겉으로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마지막 환생?”

 

 “나는 계속 환생하면서, ‘성전’으로 희생된 자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비로소 지금 내 모습으로 환생해서 삶을 살고 나면, ‘성전’을 발동한 대가를 치르는 것을 마치게 되지.”

 

 “아아, 그런가…그럼 환생했을 때 전생을 다 기억하는 거야?”

 

 “글쎄…그건 모르겠다.”

 

 “기억을 해야 죄값을 치르는 의미가 있는 거 아냐?”

 

 “의미가 있는지 아닌지는 신만이 아시겠지.”

 

 “허, 신을 믿나? 건축가 당신이 본인 스스로 신이 되고 싶어했던 것 아닌가?”

 

 “신의 존재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신이 되고 싶어하지도 않았겠지.”

 

 하긴, 그 말은 맞네.

 

 효령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나는 얼마나 환생을 해야 되지?”

 

 건축가의 물음에 효령은 딜레이 없이 곧바로 대답하였다.

 

 “이백 스물일곱 번. 확정.”

 

 숫자가 확정되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달려온 ‘전사’들이 모두 효령에게 생명력을 바치고 죽었다는 것.

 

 “탑 바깥으로 도망친 자들은 살아남을 거야. 탑 안의 문명은 모두 사라지겠지.”

 

 “네 시대에 이 문명이 남아 있나?”

 

 “사실상 없어졌지. 다시 구석기부터 시작하게 될 거야, 탑 바깥에 살아남은 자들은.”

 

 “…그렇군.”

 

 “너무 궁금해하지 마. 어차피 경험하게 될 거니까.”

 

 “…다시 묻지만, 너의 시대에 내가 있나?”

 

 효령에게 물었던 건축가는 곧 질문을 철회했다.

 

 “아니, 됐다. 어차피 기억도 못하고 그저 알 수 없는 책임감에 허우적거리면서 살아가게 되겠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효령은 짐짓 무심한 투로 애매하게 대답을 하였다.

 

 고개를 들어 구를 바라보니, 현대의 구에 비해서도 몇 배는 더 클 정도로 커져 있었다.

 

 “저렇게 큰 놈을 소멸시킬 수 있겠어?”

 

 봉인은 해도 소멸까지는 못 시키겠지.

 

 그러니까 현대까지 저 구가 남아 있는 거겠지.

 

 “나는 이제 한계다.”

 

 건축가가 말했다.

 

 효령은 그럴 거라 생각했다.

 

 “네게 받은 생명력을 다 쓰고 싶지만, 내 근원적인 진기 자체가 이제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아.”

 

 “그럼 남은 생명력을 다시 내놓고 죽든가.”

 

 건축가는 고개를 저었다.

 

 “돌려줘 봐야 어차피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버리고 죽느니 돌려주는 게 낫지.”

 

 “어차피 남은 생명력을 모두 사용해도 저 형체를 소멸까지 시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건축가의 몸에서 이제까지 보지 못한 하얗고 작은 빛의 결정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그것들 역시 조그만 글자들이었다.

 

 “나는 글자들이 될 것이다. 그 글자들을 이 세상에 심을 것이다. 저 검붉은 구가 이만큼 자란 것처럼, 나의 글자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라고, 지금보다 더 강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효령은 건축가의 말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글자’들.

 

 그것은 결국 건축가가 자신의 생명을 쪼개 세상에 뿌린 작은 씨앗들이 자란 것이다.

 

 “그 때, 나의 후예들이 온전히 저 구를 소멸시킬 수 있겠지.”

 

 하얀 빛을 내는 작은 글자들이 건축가의 몸에서 만들어져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만큼 건축가의 몸은 빠르게 투명해져 갔다.

 

 “따지고 보면, 나도 건축가 당신의 후예군. 그냥 돌아가면 땡인데 굳이 남아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

 

 “그럴 수도.”

 

 건축가가 희미하게 웃었다.

 

 “다시 만나면, 그 때도 잘 부탁해. 후예.”

 

 그리고 건축가는 완전히 사라졌다.

 

 광장에는 검은 글자들로 뒤덮인 거대한 구와, 승강기 안에 있는 효령만 남았다.

 

 효령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승강기 벽에 등을 기댔다.

 

 기다리면 언젠가 타임아웃이 되겠지.

 

 그 때 사방이 환해졌다.

 

 타임아웃.

 

 

 -----

 

 

 현대의 탑 안 광장으로 돌아온 효령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 손에는 ‘再’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가 들려 있다.

 

 종이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 전과 동일한 상태였다.

 

 딱히 달라질 이유는 없지.

 

 ‘再’.

 

 무슨 뜻일까.

 

 아까 추측한 대로, 내가 건축가의 생명력을 ‘다시’ 채우는 이야기라는 뜻일까.

 

 아니면, 건축가가 ‘다시’ 환생한다는 이야기라는 뜻일까.

 

 그것도 아니면 무슨 뜻을 담은 것일까.

 

 효령은 종이를 아무렇게나 뭉친 다음 검붉은 구를 향해 던졌다.

 

 종이는 구에 닿자마자 화르륵 푸른 불이 붙었다.

 

 순식간에 타서 사라져 버렸다.

 

 ‘再’라는 글자만이 허공에 떠 있더니, 고대어로 바뀌었다.

 

 고대어를 잘 모르는 효령이 읽을 수는 없는 글자였다.

 

 글자는 검붉은 구를 향해 날아가 구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검붉은 구에 녹아 들었다.

 

 이제까지 가만히 있던 구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크기가 약간 줄어들었다.

 

  매의 눈을 가진 효령이 간신히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약간.

 

  지난 수천 년간 수호자들이 이런 식으로 구의 크기를 조금씩 조금씩 줄여온 것이다.

 

  언젠가는 소멸되겠지.

 

  효령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포르셰로 향했다.

 

 

 -----

 

 

  처음에 투명하게 우러났던 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진해져 갔다.

 

  얼핏 보면 핏물로 착각할 만큼 진한 선홍빛.

 

  영실의 핸드폰이 울렸다.

 

  영실이 전화를 받았다.

 

  “어, 매니저. 그래. 덕분에 라스베가스 잘 다녀왔지. 가게는 별 일 없고? …아....그래?”

 

  상대방의 말을 듣던 영실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대군을? …그래, 알겠어. 전해 드리지. ”

 

  영실이 전화를 끊었다.

 

  일단이 소파에 몸을 묻은 채로 말했다.

 

  “한국에 돌아왔으니, 오랜만에 잘 생긴 매니저 얼굴이나 감상하러 가야겠네.”

 

  일단이 말을 끝내자마자, 효령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내가 보고 싶다고?”

 

  “분명 잘 생긴 매니저라고 했을 텐데.”

 

  “아, 매니저? 내가 그 단어를 못 들었네.”

 

  효령은 무심한 투로 말하며 곧바로 소파로 걸어와 털썩 주저앉았다.

 

  “다녀오셨습니까, 대군.”

 

  “글자, 날린 건 아니지?”

 

  “아, 예예. 누가 물어다 준 글자인뎁쇼. 확실하게 미션 클리어하고 돌아왔습니다.”

 

  효령의 앞에 빈 잔이 놓여 있었다.

 

  효령을 위해 영실이 챙겨놓은 잔이었다.

 

  영실이 차주전자를 들어 빈 잔에 차를 채웠다.

 

  효령은 차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여자.

 

  최초의 뱀파이어, 일단.

 

  그녀가 건축가의 마지막 환생이었다…라…

 

  일단과 함께 지낸 지난 몇 백 년간, 한 번도 자기 입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건축가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그 때 파투 안에 들어간 자가 효령임을 알 것이다.

 

  글자의 힘으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수호자뿐.

 

  그 중에서 분신술을 사용하고, 더더구나 뱀파이어인 자는 오직 효령 뿐이다.

 

  일단은 건축가의 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으니 하지 않은 것일까.

 

  그래.

 

  네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나도 모르는 척 해 줄게.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그게, 어른이겠지.

 

  나는 그 때, 네게 어른이 되어 준다 약속했으니.

 

  그래 어른이라는 것은…

 

  “아, 뜨거어어!”

 

  생각에 잠기느라 차를 무의식적으로 꿀꺽 들이킨 효령이 찻잔을 탁자에 떨어뜨리듯 내려놓으며 외쳤다.

 

  덕분에 차가 탁자와 바닥에 흘렀다.

 

  “아, 내 혀! 내 혀 다 디었! 스읍…하아…스읍….하아…찬물! 찬물!”

 

  효령은 벌떡 일어나 냉장고가 있는 주방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마주 앉았던 일단이 그런 효령을 한심해하는 눈초리로 쳐다 보았다.

 

  “…이건 무슨 여섯 살짜리 애도 아니고…”

 

 영실이 미소를 지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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