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미친놈한테 잘못 걸렸다.

　예전에 내 친구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 있었다. 넌 죽어도 네 주둥이는 살아서 동동 떠다닐 거라고.

　그만큼 내 주둥이는 절대 지거나 쉬지 않고 재잘재잘, 성인이 되고나서도 그 주둥이는 실력을 발휘했으니.

　온갖 진상 고객들에게도 절대지지 않는, 일명 ‘웃는 얼굴에 침 못 뱉으니 웃으면서 돌려 까자’ 화법을 얻으며 나름대로의 커리어를 쌓아갔다.

　그런데 지금, 난 나의 사랑스러운 주둥이가 오늘 매우 원망스러웠다.

　“‥‥‥.”

　미쳤어, 진짜. 이 말만 연거푸 되풀이했다. 짐 하나 덜어보려다가 이삿짐 트럭이 내 어깨에 얹어진 느낌이었다.

　결혼이라니. 내가, 저 마족이랑? 그것도 차기 마왕이 될 마족이랑?

　연애도 못하고? 누구는 엑스트라로 들어와도 남주들 사랑 독차지 하는데 난이게 뭐야.

　“아, 머리 아파.”

　머리가 지끈 거렸다. 이 몸 주인과 나는 전생에 무슨 악연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보통 악연이 아닌 거 같다. 그게 아니고서야, 나한테 이런 고난을 줄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아악 소리를 지르고 마음껏 성질을 부리고 싶었으나,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쉴 뿐이다.

　내 발등에 내가 찍혔다.

　“아아‥‥‥.”

　나는 절망하며 머리를 감쌌다.

　“쯧.”

　그런 내 행동을 보며 카델은 경멸어린 표정으로 혀를 쯧쯧 찼다.

　“‥‥‥.”

　여기서 몇 마디 더 말했다간, 결혼이고 뭐고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거 같아 나는 빠르게 생각을 접고 웃었다.

　최대한 예쁘게, 진심을 담아 미소를 지었다. 입가에 순간적인 경련이 일었다.

　“무르기 없죠?”

　카델의 눈빛이 일순 사나워졌다. 아마 나를 산 속에 파묻어 버리지는 않을까, 나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농담, 농담입니다! 절 받아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그럼 전 이만‥‥‥.”

　일단 벗어나자, 저 두 마족의 시선에서 피해가면 도망이라도 쳐보는 거다.

　나는 허리 숙여 인사를 한 후, 큰 방을 빠르게 걸어 나갔다.

　“후.”

　방문을 닫고 행여 그들이 나를 쫓아오진 않을까 싶어 뒤를 돌았다. 다행히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이대로 결혼할 수는 없지. 나는 문을 찾아 이 저택에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그들의 눈을 피해 달아나고자.

　그렇게 나는 빠른 걸음을 옮기며,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을 찾으러 다녔다.

　***

　그녀가 나가고 난 후, 리베히는 놀란 표정으로 카델에게 물었다.

　“카델님, 갑작스레 왜 그런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그것도 꽤 중요한 사안을요.”

　리베히는 카델이 왜 그런 방법을 선택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굳이 그녀의 말대로 결혼을 하지 않아도 방법은 충분했다. 단지, 물약이 인간이라고 해서 인간의 방식을 따를 필요는 없었다.

　“‥‥‥인간과의 결혼이 아니더라도 손과 발을 묶여 정말 물건처럼 대할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대체 왜,!”

　“글쎄. 더 이상의 죄를 짓기 싫어서.”

　인간에게 지은 죄로 인해 이미 제 힘의 반을 잃는 벌을 받은 카델이었다.

　그녀를 죽임으로서 또 죄를 짓게 된다면, 카델은 영원한 구속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

　리베히는 카델을 마왕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만큼 그는 마계를 이끌어 나갈 자질이 충분한 자였고, 동시에 자신이 선택한 마족이었다.

　비록 카델이 정통 마족인 자신과 다르게 인간의 피가 섞인 반인 반마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지만 그는 뛰어났다.

　“무슨 선택을 하든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결혼은 고려를 해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싶습니다. 혹여 인간과 연을 맺었다는 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많은 마족들이 카델님을 적으로 삼을 게 분명합니다. 선대 마왕처럼요.”

　“‥‥‥.”

　카델의 선택은 가볍게 치부될 사항이 아니었다. 한순간에 지지 세력을 모두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사랑을 하거나, 인간과 함께 하고자 선택한 것이 아니다. 리베히.”

　누구보다도 이를 잘 알고 있는 건 카델 본인이었다. 선대 마왕인 자신의 아버지 역시 인간과 혼인을 맺었으니까.

　“어차피 필요한 존재야. 내가 다시 돌아가려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차갑고 냉정한 그의 대답에 리베히는 자신이 선을 넘었음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카델님.”

　리베히는 잠시 잊고 있었다.

　자신만큼이나마 인간을 혐오하는 것이 카델이라고. 카델은 적어도 자신의 아버지처럼 인간을 사랑하거나 인간을 위해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야망이 드글 거리고 있으니까, 그게 자신이 카델을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였다.

　리베히는 한쪽 무릎을 꿇고 또 한 번의 맹세를 했다.

　“위대하신 카델님은 곧 진정한 마계의 통치자가 되실 겁니다. 저 또한 그렇게 믿고, 만들거니까요.”

　“‥‥‥.”

　리베히의 충성어린 말에 카델은 그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붉디붉은 눈동자엔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고맙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벌을 받아야하는 자신과 달리, 리베히는 벌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 자신을 따라와 인간계에 머무른 셈이니까.

　리베히 뿐 아니라 지금은 숲에 있는 다른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그들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어선 안됐다.

　인간을 상대로 거래를 하며 희귀한 물품을 모아 돈을 벌고, 그 돈과 능력으로 인해 자신의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게 카델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오늘은 이만 쉬어.”

　“예, 들어가 보겠습니다.”

　카델은 아직 밀린 업무가 있어 서재로 향할 참이었다. 메리엔의 모습이 짧게나마 기억처럼 스쳐지나갔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무언가를 분주히 찾고 있는 메리엔의 모습이었다.

　‘‥‥‥인간, 설마.’

　마력을 전부 다 잃은 건 아니라, 이렇게 드문드문 누군가의 모습이 보이는 카델이었다.

　그녀 역시 이 저택에서 나가려고 문을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아.”

　어쩜 저렇게 투명하게 맑은 인간일 수가 있을까, 도망가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애초부터 카델은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리베히, 할 일이 생겼어.”

　“예? 말씀만 하세요.”

　카델이 지끈 거리는 이마를 짚고 다른 한손을 귀찮다는 듯 휘휘 저었다.

　“가서 인간 좀 구해줘. 아마 도망친다고 문 열고 다니다가 떨어질 거야.”

　“‥‥‥네?”

　리베히는 카델의 말을 뒤늦게 이해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도망치려고 했구나, 정작 카델은 그 모습을 다 보았는데도 화를 내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 인간 여자가 도망칠 거라는 걸.”

　리베히의 말에 카델은 뭐 그런 걸 묻냐는 듯 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자기보다 더 빠르게 저 인간을 파악하기라도 한 걸까? 리베히는 카델의 속내가 내심 궁금했다.

　“잔말 말고 구하기나 해. 저러다 떨어져서 다치면, 곤란하니까.”

　하지만 카델이 제 속내를 부하들에게 친절히 드러낼 리 없었다. 카델의 명령에 리베히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아래에 제 분신이 항시 상주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 인간을 구할 겁니다.”

　“‥‥‥그래? 보면 볼수록 그 능력, 탐나는군. 이제 가지.”

　카델과 리베히는 방문을 열고 복도를 걸었다. 사람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한적한 복도에 카델이 말했다.

　“한동안 매우 시끄럽겠군.”

　그 말을 하며 카델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흥미로움 반, 귀찮음 반. 두 가지의 감정이 담긴 미소였다.

　***

　천천히 생각해보자. 내가 읽은 소설 들 중에 마족이 나와 사랑을 하는.

　사랑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이와 비슷한 세계관의 소설이 있었던가?

　마족과의 러브스토리?

　아니다, 그건 없었다. 없었을걸?

　소설이고 나발이고 일단 도망부터 치자.

　카델은 내게 도망가면 자신의 방식대로 할 거라 협박을 했지만, 일단 닥치고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어째 변태 같은 베르테 자작보다 더 위험한 놈들과 엮여 버렸을까.

　그것도 상대는 마족이다.

　인간이 아니라, 마족!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마족! 젠장, 젠장!

　복도를 벗어나 모퉁이를 도니 계단이 나왔다.

　나는 긴 치마를 양 손으로 들고 발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그러나 빠르게 내려갔다.

　“이놈의 계단은 끝도 없네!”

　하지만,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똑같은 계단만 나올 뿐, 1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대체 이 저택은 얼마나 크단 말인가? 언제 잡힐지 모르는 불안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드디어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다른 방의 문과는 다르게 화려한 장식의 문이 보였다. 여기인가?

　나는 달려가 문손잡이를 열고 쑥, 밀었다. 밖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뭐야.”

　내가 본 건 밖이 아닌 큰 미로 속이었다. 앞뒤 옆을 보아도 전부 다 미로였다. 아, 방을 잘못 들었구나.

　나는 문손잡이를 잡고 다시 조용히 방을 나섰다.

　별 이상한 방을 다 보겠네. 그리고 한참을 걷고 몇 번이고 방문을 열던 그때, 드디어 화려한 장식의 저택 중앙 문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횡재다 싶어 입을 악 다물고 뛰어 중앙문을 벌컥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걸 보니 밖이 분명했다.

　“‥‥‥어?”

　그때였다.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아주 느리게 온 몸이 멈춘 듯 했다.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붕 뜨는 느낌에 나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땅이 아닌 공중에 떠있었다.

　“꺄아아악!!”

　공중에 떠 있음을 자각하자 나는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떨어졌다. 여기 왜 이렇게 함정이 많은 건데?

　“아아아악!”

　그리고 툭, 무언가가 닿았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벌벌 떤 상태로 울먹거렸다.

　이대로 떨어져 어이없게 죽는 건 아닐까 싶어 그간 서러움이 벅차올라 눈물부터 나왔다.

　“흐.”

　“괜찮으십니까, 메리엔님?”

　별안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정한데 싸가지 없는 놈, 리베히의 목소리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방안에 있던 사람이 여길 어떻게? 아, 마족이었지.

　순간이동정도는 껌이겠다 싶어 나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가 나를 구해주었구나.

　왠지 얄미워도 이 순간만큼은 고맙긴 했다. 인사를 하려 두 눈을 떴다.

　“리베히님, 고마워ㅇ‥‥‥.”

　나는 두 눈을 뜨자마자 리베히가 아니라 내 눈 앞에 있는 한쪽 눈 밖에 없는 뿔 달린 생명체를 보고 놀라 경기를 일으켰다.

　“아아아악!!”

　피하려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다.

　분명 목소리는 리베히인데, 막상 내 눈앞에 보이는 건 리베히가 아니라 오징어 왕자가 서 있었다.

　“메리엔님, 괜찮ㅇ‥‥‥.”

　“아악!”

　그리고 나는 너무 놀라 주먹을 들어 빠르게 오징어의 얼굴에 내리꽂았다.

　퍽.

　“억!”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나를 안아든 생명체가 스르르 일직선으로 쓰러졌다.

　“아, 이건. 이건 꿈일 거야‥‥‥.”

　꿈이라고 하기엔 있는 힘을 다해 때린 주먹이 얼얼했다.

　나는 주저앉아 생명체를 보고 한 번 더 놀라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진짜, 잘못 걸렸다.

　잘못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렸다.

　돌아갈래, 나 그냥.

　라면 먹게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