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미친놈한테 잘못 걸렸다.

　한 번 불렀다하면 높은 수준의 골드가 육박하는 물품들은 차고 넘치게 충분했다. 진귀한 보석, 구할 수 없는 증서와 문서들 등……. 또 이를테면 이제는 멸망당한 부족의 안구라든지.

　“후우‥‥.”

　카델은 인간계에서 각종 희귀 물품을 거래하는 희귀 상인이었다.

　본디 모습은 마족이자 마계의 1인자로 곧 마왕이 되어 마계를 다스릴 자였지만.

　일련에 지은 사소한 죄로 인해 인간계에 눌러앉은 상태였다. 인간계에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간을 상대로 등쳐 먹, 아니 상인일을 하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카델을 포함한 마족 인들은 인간을 극도로 혐오했다. 마족과 인간 마법사 사이에서 일어난 트러블 때문에.

　그런 지금, 자신의 앞에 여자 인간이 서 있었다. 카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베르테 자작이 분명 자신을 골탕 먹이기 위하여 수를 쓴 게 틀림없다. 하필 인간이 그가 원하는 물건이었다니. 카델은 속으로 베르테를 욕하며, 이를 으득 갈았다.

　“여기까지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걸 보니, 몸은 멀쩡한가 보군.”

　카델이 삐딱하게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곧 옆에 따라 들어온 리베히에게 향했다.

　“인간의 이름은?”

　리베히가 즉각 대답했다.

　“릴리즈 메리엔이라고 합니다.”

　“‥‥‥별난 이름이군.”

　메리엔의 표정이 일순 사나워졌다. 베르테 자작의 저택에서 보았던 그 사납고 거친 삐딱한 눈빛이었다.

　청순하고 연약해 보이는 첫인상과는 다르게 꽤, 행동파인 듯 했다. 앙다문 입술과 꽉 쥔 주먹을 보건대, 그녀는 보통 성격이 아닐 것이다.

　“어쩐다‥‥‥.”

　인간이 물약이 되고, 물약이 인간이 된 이상 사용법을 알아야 했다. 하지만, 인간을 제대로 다뤄본 적 없는 카델이었기에 막막하기만 했다.

　귀중한 물건이니 죽일 수도 없고. 그냥 베르테 자작을 한 번 더 족쳤어야 했는데. 카델이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날 여기에 왜 데리고 온 거예요?”

　말없던 메리엔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정리 된 목소리엔 얇고 부드러운 미성이었다. 그러나 흥분한 듯 숨이 색색 새어나왔다.

　“말했지 않나.”

　카델은 두 번 말하는 게 제 적성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말해줘야지.

　“넌 구원 받았다고.”

　“‥‥‥저 무교에요.”

　참으로 특이한 인간이다. 카델이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가 말했다.

　“아. 어쨌든! 여기서 나, 나가게 해줘요! 차라리 내가 나가서 베르테 자작을 꼬셔올게요. 그럼 당신이 원하는 물약을 더 얻어올 수 있을지 누가 알아요?”

　저 작은 입술로 중얼 중얼, 말은 되게 잘하네. 천천히 지켜보던 카델이 나가게 해달라는 그녀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원하는 것이 여기에 있는데, 굳이. 그 더러운 인간을?”

　어차피 잘 됐다. 자작은 자신이 거래한 인간 중에서도 최악질이지 않던가.

　확실하게 못 박아야겠다고 카델은 생각했다. 카델이 일어나 메리엔의 앞으로 섰다.

　위압감마저 느껴지는 키와 체격 차이에 메리엔이 뒤로 물러섰다.

　카델은 고고히 턱을 치켜들며, 무심한 얼굴로 나른하게 말했다.

　“넌 이제부터 내 것이다.”

　“그러니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 어차피 못 갈 테니까.”

　***

　“‥‥‥뭐요?”

　남자의 갑작스런 소유권 주장에 나는 두 귀를 의심했다. 살려준 건 몹시 고맙지만, 이런 전개는 원하지 않았다.

　나는 내 기를 누르려는 남자의 태도에도 굴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그쪽 거예요?”

　그러자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리베히가 화난 듯 말했다.

　“지금 누굴 보고 그쪽이라고‥‥‥!”

　“그만.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지 마라. 우리에게 필요한 인간이야.”

　근데 가만 듣고 보니 자기도 같은 인간이면서, 자꾸 인간 인간이라 그러네. 듣는 인간 기분 나쁘게.

　“죄송합니다.”

　리베히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남자는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와 나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더 잘생긴 얼굴에 내 눈은 자연스레 아래로 내리깔아진다.

　“상인과 거래하려던 물약이 인간, 너다. 난 이미 일정 수준 그 이상의 골드를 자작에게 지불 했지. 내가 필요한 건 물약이고 인간인 네가 그 물약이니. 내 물건이 맞지 않은가?”

　쓸데없이 논리 정연해 반박할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는 절대지지 않았던 내가 남자에게 휘둘리고 있었다. 잘생긴 게 죄다.

　그러니까 내가 저 남자가 산 물약 그 자체라는 건데. 이 물약이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 곰곰이 생각하다 문득 무언가가 번뜩이며 내 뇌를 스쳐지나갔다.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요.”

　“뭐지?”

　“딱 삼일만 시간을 줘요. 내가 여기서 맛있는 거 먹고, 자고 그러면 알아서 배출‥‥‥.”

　남자가 살벌한 표정으로 나를 죽일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내 말 뜻을 파악한 모양이다. 나는 말을 채 끝내지 못한 채 어색하게 웃어 넘겼다.

　그래, 그 방법은 좀 아니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하필이면, 이 몸 주인은 그 비싼 물약을 마셔가지고 이 사달이 나게 만드냐. 나는 왜 또 빙의를 해서는.

　그냥 라면 먹고 소설이나 읽으면서 평범하게 사는 게 나았다. 평범한 게 최고라는 걸 지나고 나서야 알다니.

　“하아.”

　어찌되었건, 난 지금 빙의된 상태고 저 남자의 것이고 물약이 되지 않으려면 적절한 방법을 얼른 찾아내야 했다.

　일단. 오래시간 서 있는 탓에 다리가 아파 나는 자리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긴 드레스를 입은 탓에 앉기가 불편했지만, 그것 제외하고는 살 거 같았다.

　“뭐하는 거냐, 지금.”

　남자가 생전 처음 본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야기 길어질 거 같아서요. 그, 그쪽. 아니. 집 주인 분들도 앉으세요. 다리 아프니까.”

　그쪽이라 했다가 저 장발남한테 한 대 맞을 거 같으니 바로 정정했다. 그때 리베히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바라보며 발끈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발남이라니, 지금.”

　저거 봐, 저거. 저거 지금 내 생각 읽고 대답하는 거 맞지.

　아무래도 그런 거 같다. 나는 리베히의 말을 조심스럽게 무시하고 앞에 멀뚱히 서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

　“앉으세요, 다리 안 저려요?”

　내 말에도 두 사람은 뿌리박힌 나무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앉으라고 말해줘도 앉지를 않네.

　“다리 아플 텐데.”

　나름의 배려였다. 그러나 내 말에 두 남자는 외계인 보듯 나를 바라보았다. ‥‥‥왜들이래, 설마 앉을 줄 모르는 건가? 그때, 남자가 진지하게 물었다.

　“‥‥‥너. 진지하게 묻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우리가 무섭지 않은가?”

　“음.”

　나는 두 손을 들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무섭지 않냐는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사실 무섭다, 아는 사람 없는 세계에 혼자만 뚝 떨어진 기분이라 더더욱 무섭고 두려웠다.

　그래도 별 수 있나, 살아야하니 깡이라도 부릴 수 밖에.

　그래서 인생 1회차였다면 하지 못할 뻔뻔함이 흘러나왔다.

　어찌되었건, 지금의 난 인생 2회차를 혹독하게 겪고 있는 중이니까.

　“네, 맞아요. 무섭긴 해요. 일주일째 납치당해서 감옥에 가 있었는데, 진짜 무서웠거든요. 내가 왜 이런 걸.”

　당해야하는지, 남들은 빙의 되면 하다못해 잘 먹고 잘사는 엑스트라 귀족에 빙의하는데 난 왜 처음 시작이 감방이냐고. 그게 제일 싫었다.

　“그것도 모자라, 어떤 또라이는 계속 네 죄가 뭐냐며 침 튀기고 잔소리하는데. 왜 안 무섭겠어요?”

　“‥‥‥.”

　“아니. 생각해보니 열 받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은 게 분명해.”

　일주일이란 시간동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신없게 흘러갔다. 그러다 보니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은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그런데 상황은 점점 나아지지를 않으니.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나를 보고 있는 두 남자가 생각나 황급히 생각을 접고 고개를 들었다. 내가 말했다.

　“그리고 무서울 게 뭐 있어요? 다 같은 인간인데.”

　“‥‥‥.”

　아무것도 모르면 용감해진다. 지금의 나처럼. 내 말에 방안에는 한동안 무거운 정적이 맴돌았다.

　“‥‥‥아니에요?”

　나는 뭘 잘못했나? 괜히 눈치가 보여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특이한 인간인 건 확실하군.”

　남자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삐딱하게 턱을 괸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린 인간이 아니다.”

　“오‥‥‥. 그럼 뭔데요?”

　“‥‥‥.”

　남자가 나를 살기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난 괜히 위축되어 마른침을 꿀꺽 삼키었다. 아니 왠지 물어봐야 할 거 같아서 물어봤는데,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지으시면‥‥‥.

　“카델님을 감히 인간과 같은 취급을 하시다니요. 실례입니다, 인간.”

　나는 갑자기 대화에 끼어 질책하는 리베히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네‥‥‥. 지적 감사합니다.”

　그는 사람에게 무안을 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리베히는 애석하게도 낄 땐 끼고 빠질 땐 빠지는 방법을 모르는 듯 했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앞으로 마계의 통치자인 차기 마왕이 되실 분입니다. 저 또한, 인간이 아닌 마족이구요. 이제 아시겠습니까?”

　이제 말해주니까 이제 알지. 나는 감탄사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 그럼 마족이라는 소리에요?”

　내 반응에 리베히 마저 할 말을 잃은 듯 입술을 다물었다. 두 마족을 침묵시키게 한 인간으로는 아마 내가 처음일 거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마족.”

　잠시만. 지금 뿌듯한 마음만 들어선 안 될 거 같은데? 생각을 하다 문득,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아아악!”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 마족이었다. 그제야 내가 했던 무지한 행동들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가 나는 놀라 소리를 질러버렸다. 마, 마족? 마족이라고?

　“말도 안 돼.”

　차기 마왕? 소설에서 보는 그 마왕?

　그럼 난 마족한테 잡혀 온 거야? 어쩐지 저 집사라는 놈도 내 생각을 막 읽더라.

　‥‥‥나 그냥 베르테 자작 감옥으로 다시 돌아가면 안 될까?

　거기가 좀 또라이 같긴 했어도 내 자리는 따뜻하게 데워놓았는데.

　아, 진짜 말도 안 돼.

　그렇게 난 깨달았다.

　이번 생도 망했다고.

　“자. 이제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나?”

　내게 멘탈 붕괴에 빠져 머리를 헝클이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이 남자가 말했다.

　“앞으로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 말을 하며 남자가 내게 다가오려 발을 움직였다.

　“오, 오지 마요!”

　나는 순간적으로 놀라 뒤로 몸을 빼며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그렸다.

　방 안에는 또 한 번의 정적이 찾아왔다.

　‥‥‥이거 아니었지, 참.

　두 마족의 눈치를 살피며 손가락을 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난 이번 생도 망한 나에 대한 깊은 애도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