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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Plume
작가 : 별하랑
작품등록일 : 2019.9.10

(오후 11시~00시)"신이 되어야만 해." "싫습니다." 단호히 거절한 소녀를 보며 높은 신은 비웃는다. 어차피 소녀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네가 나고. 내가 너야.]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

"평생 함께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연인.

"살려주세요." 울부짖는 아이.

"너에게 기억을 잊을 수 있는 기회를 줄게." 매혹적인 신은 소녀에게 속닥거렸다.

"자, 어때? 결정은......

네 몫이야."

 
[서장] 5회
작성일 : 19-09-15 00:29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8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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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평소보다 쉽고 빨랐던 전쟁이 쉼표를 찍고 나서도 학교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소와 똑같이 흘러갔다. 죽은 아이들을 기리기 위한 꽃들이 사진에 걸려 있었지만, 그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미즈르가 빼돌린 학생들은 이미 다른 세계로 넘어갔을 터. 행방조차 알 수 없음에도 죽었다고 단정지어 추모곡과 함께 등굣길을 맞이해야만 했다.

 

  허나 모두가 추모하는 마음보단 학교를 향한 분노가 컸다. 사진들이 걸린 지 5일도 채 안 되서 모두 내려갔다. 곧 있으면 있을 입학식에, 추모를 위해 한 것들은 모두 불질러 없에 버리기 급급했다. 교사들은 참 멍청했다. 불태운다 해도 그 증거는 평생 남을 것이었다.

 

  "후우......."

 

  이제 입학식인가. 가기 싫어 책상에 엎드린 채 한숨을 푹푹 내쉬는 진희의 머릿속에선 전쟁 당시 상황들이 계속해서 보여지고 있었다.

 

  저번 주에 있었지만 바로 어제 한 것 마냥 선명하게 기억나는 모든 일들이 뇌 구석구석을 차지했다. 형형하게 빛나던 에메랄드빛 눈동자도, 다신 들을 수 없는 그 아이의 목소리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아, 아. 곧 입학식이 진행될 예정이오니, 학생들은 모두 운동장으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치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를 가볍게 흘려 들은 연두빛 머리속에선 계속 잔머리가 굴러갔다.

 

  나 하나쯤 안 간다고 알 순 없겠...... 이 아니구나.

 

  랭커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음을 떠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귀찮아 죽겠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쭉 펴고 교실을 나설 때 진희는 또 다시 생각했다.

 

  진짜 그냥 여기 전체를 날려버릴까.

 

  ***

 

  "하아......."

 

  번쩍번쩍 빛나는 수정을 닦고 있자니 알 수 없는 억울함에 울컥하여 손에 쥔 걸레를 찢어버릴 생각으로 쥐어짰다.

 

  충분히 깨끗하구만 뭘 더 닦으라고! 왜!

 

  입학식이 끝나고 평소처럼 힘 없이 축 늘어진 채 교실로 올라가려는 진희를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역사 교사였다. 강아지 드는 것 마냥 목덜미를 붙잡고 질질 끌고 와놓고는 대뜸 하는 말이 '이거 닦아놔' 였다는 게 말이 되는가? 헬리곱터 터뜨린 대가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 생각이 짧은 것 같았다. 그 인간들 목숨 먼저 터뜨렸어야 했다.

 

  내가 이 황금 같은 날에! 어? 새학기라 수업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고 맨날 보는 선생님들 자기 소개 듣는 날에 왜 이딴 걸 닦아야 돼.

 

  햇빛에 번쩍이는 수정이 녹빛 눈동자에 담기자 한숨이 먼저 터져 나왔다. 렌나, 라 불리는 문양을 수정으로 만든 건데, 렌나는 이곳 세계의 상징 마크나 다름 없었다. 초능력자를 만든 신이라고 예전부터 떠받들었었지만 진희가 그런 설화를 믿을 리 만무했다.

 

  우주가 품은 듯한 은하수 빛깔이 포인트라고 나불거린 놈 나와. 속으로 혀를 차며 중얼거린 진희가 미간을 찌푸리고 눈에 힘을 주었다. 왜 저는 검은색밖에 안 보이는 것인지 통 의문이었다. 여러가지 다양한 방향에서 봐도 살짝 누리끼리한 빛말고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광망이 집중되어 비추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아주 옅은 보라빛이 보이긴 했지만 누가 이걸 은하수빛이라고 믿겠는가.

 

  이 시커먼 수정에 학생들에게서 걷어내는 세금이 담겼다는 기밀을 입학식에서 말한 교장 선생님이 있는 방향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당신은 참 대단하네요. 곧 있으면 똑똑한 놈이 다 털어가겠네.

 

  "연진희, 농땡이 피우지 말고 빨리 해."

  "아, 예에."

 

  멀쩡한 마나 냅두고 손수 닦으라는 당신의 말을 누가 수긍할까요. 오늘따라 더 재수없어 보이는데 확 실수인 척 교사의 핸드폰만 터트려버릴 생각을 품은 것도 잠시, 점점 멀어져가는 교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서히 손에 힘을 가했다.

 

  교사의 기척이 완벽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학교 옥상에 달린 수정을 빼내어 마나로 만든 물방울에 절반쯤 담궈버렸다. 이 정도 햇빛이면 마르고도 남을 것이었다. 옷 터는 것마냥 수정을 마나로 든 상태로 시원하게 탈탈 털어낸 진희를 본 한 교사가 잘 마시던 커피를 뱉어버린 것도 모른 채 신명하게 털었다. 누군가가 튼 노랫소리에 맞춰 박자감 있게 허공에 내던지는 진희의 모습은 교사들에게 충격적인 일이 되었다.

 

  아이, 시원해라.

 

  누군가의 혼이 빠져나갈 정도로 충격적인 일을 저지르고도 그저 비트에 몸을 맡긴 연두빛 소녀는 제 자리에 렌나를 대충 걸어두고는 자유를 맞이한 기쁨을 온몸으로 표출해댔다.

 

  이제 난 자유다.

 

  "꺄아악!"

 

  걸레를 아무대나 확 내던져서 그런가 누군가가 맞은 듯 비명을 질러댔다.

 

  본인이 실수한 것을 알기에 밑을 힐끔 내려다 본 녹빛 눈동자에는 폭신폭신한 것 같은, 어찌보면 하얀색 같기도 한 옅은 분홍빛을 띤 머리에 파스텔같은 분홍빛 눈동자, 아래로 귀엽게 묶은 양갈래가 시야에 담겼다. 걸레를 재빨리 치울 법한데, 어쩔 줄 몰라하며 안절부절거리는 그 모습에 양심에 가책을 입어 앙 다문 입술을 벌렸다.

 

  "저......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혹시라도 안 들릴까, 염려해 언성을 높여 사과했지만 저 아이의 귀에 들어갈 리 없었다.

 

  걸레를 못 치우고 몸을 웅크리고만 있는 아이가 안타까워 간단히 손가락질 해 걸레를 치워주고 나서야 둥근 얼굴이 위로 들렸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잠깐만 거기서 기다려."

 

  푸른 마나가 휘감아 두둥실 떠 있던 발이 땅바닥에 붙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기초 마법에 빤히 쳐다보던 아이가 우와, 하는 소리와 함께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떻게 한 거예요?"

  "어떻게 한 거냐니...... 혹시 신입생이야?"

 

  몽실몽실한 분홍빛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리다 고개를 연신 끄덕여대는 모습이 강아지 같아 저도 모르게 터져나온 웃음을 꾹꾹 눌러보려 애를 썼지만, 이상하게 읏음은 참기가 힘들었다.

 

  "저, 선배님. 연진희 선배님이시죠?"

  "어? 어떻게 알았어?"

  "그...... 아까 랭커들 소개할 때 여덟 번째로 소개되신 분 맞지 않아요? 랭킹 2위...... 아!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그 놈은 왜 쓸데없이 주둥이를 나불거려서.

 

  진희는 유명인사를 원하지 않았다. 있는듯 없는듯 지내며 졸업하는 게 신념인 진희의 마음을 알아줄 교사들이 아니었다. 매번 거창하게 더 부풀려 소개를 해 유명인사를 넘어 연예인을 만들어버리는 교사들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어. 나 맞아."

 

  건성으로 내뱉은 말에 파스텔 같은 부드러운 눈동자가 반짝였다.

 

  "선배! 제가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그런데, 막 날고 공격도 하고, 여러가지 가르쳐주실 수 있어요?"

  "어? 그건 좀...... ."

 

  나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진희의 표정이 흔들렸다.

  사람마다 공격하는 성향이 다르고 방어하는 성향이 다르다. 마나를 활용하는 기본적인 이론은 같지만, 그걸 어떻게 구현해내는 지는 본인의 역량에 달린 일이었다.

 

  진희도 저만의 기술을 개발해왔다. 기본적으로 길게 늘어뜨려 실처럼 만들거나 구 모양으로 둥글게 뭉쳐 더 강하게 만든다던지, 온몸에서부터 마나를 폭발시켜 행성 하나 정도는 거뜬히 날리는 기술이 있었다.

 

  예술 쪽에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는 아이들은 간혹 꽃모양으로 이쁘게 구현해내기도 했지만, 보기 좋은 떡일 뿐이었다. 속도가 중요한데 뭣하러 긴 시간을 들여 이쁜 걸 만드는가. 자신의 생각으론 통 이해할 수 없는 진희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분홍빛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 제가 초면부터 무례를 저지른 것일까요?"

 

  실망했는지 고개를 푹 떨구고 입을 비죽 내밀었지만 진희에겐 털끝도 안 통했다. 네가 아무리 원해도 그건 안 된단다, 친구야.

 

  그건 좀 무리일 것 같아.

 

  "응. 좀 많이."

 

  어머나, 속에 있는 거랑 내뱉는 거랑 바꿔 말해 버렸네.

 

  보란듯이 레몬 저리가라 할 정도의 상큼한 미소를 뽐내며 단호한 답변을 남겼다. 딱 봐도 마음이 여려보여서 상처 받고 돌아갈 줄 알았건만 오히려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진희를 올려다봤다.

 

  "그럼 제 이름이라도 기억해 주세요."

  "...... 뭔데."

  "하스넬 시온이요. 하스넬, 시온, 뭘로 부르건 상관 없어요. 아, 그리고 올해로... 16살이고!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내가 살면서 쟤처럼 독특한 놈은 카를 이후로 처음 본다.

 

  자기 이름을 대뜸 말하고는 정신없이 손을 붕붕 흔들며 뛰어가는 아담한 뒷모습을 바라보니 정말......

 

  낮잠자고 싶다. 아까 자려 했는데 괜히 잡혀갖고.

 

  쯧. 가볍게 혀를 찬 진희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낮잠을 맞이하기 위해 오도도 달려갔다.

 

  ***

 

  "걔 진... 짜 귀엽다. 나도 볼래!"

  "마음대로 해."

 

  어쩌다보니 아까 하스넬 시온인지 뭔지하는 애 이름이 나와서 얘기하는데 민화가 호들갑을 떨며 진희의 어깨를 잡고 정신없이 앞뒤로 흔들어댔다.

 

  "나랑 같이 보러 가자. 응?"

  "어. 싫어. 귀찮아."

 

  여기서 안 자르면 더 조를 게 뻔하기에 냅다 손을 휘저었다. 너나 가렴. 시무룩하게 떨군 고개도 잠시, 이미 민화의 손엔 사라의 팔이 들려 있었다.

 

  징하다, 징해.

 

  뭘 해도 깝죽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붉은 소녀를 보며 감탄하고 있는데, 막 나가려 하던 놈이 갑자기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드디어 미친 건가.

 

  "저, 진희 선배님 계신가요?"

 

  앙칼진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 들어온 건 생글생글 웃고 있는 시온이었다. 자신의 반은 또 어떻게 알아낸 건지. 한숨을 푹 내쉬다 시온과 눈이 마주치자, 병이라도 있는듯 손으로 입을 가리며 방방 뛰었다.

 

  "선배! 아까 못 물어봤는데, 마나 어느정도 갖고 계세요? 전 한 80 정도 나온 것 같은데."

  "그건 왜-"

  "야."

 

  짜증나는 말투를 툭 자르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어조로 말은 내뱉은 건 다름 아닌 문희였다.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문희가 이렇게 말을 내두룰 리 없었다.

 

  말려야 하나, 안절부절하는 진희보다 먼저 앞선 것은 문희의 입이었다.

 

  "당장 나가. 다신 진희한테 접근하지도 말고."

  "...... 제가 왜요?"

 

  차가운 말투에 그렇게 해맑던 시온 역시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입꼬리를 내렸다. 이 분위기 어쩔거야. 순식간에 반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숨 죽이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진희도, 민화와 사라도 처음 보는 모습에 당황만 했지, 말릴 생각은 이미 흰 도화지처럼 지워진 지 오래였다.

 

  "그건 네가 더 잘 알겠지."

  "나 참...... ."

 

  어디선가 피비릿내가 나는 듯한 살기가 섬뜩하게 다가왔다. 문희의 무거운 기운은 아니었다. 벚꽃 같은 몽실몽실한 머리를 가진 아이가 파스텔 빛 눈동자를 부릅 뜨며 탁한 살기를 내뱉었다.

 

  뭐지.

 

  아깐 두터운 가면이라도 쓴 모양인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시온의 머릿속에서 진희는 지워져 있었다.

 

  "선배는 누구신데-"

  "선배는 무슨. 내가 선배라고 불러야 될 판에."

 

  엥?

 

  "문희야, 그건 좀......."

  "넌 조용히 있어."

  "네엡."

 

  조심스레 입을 연 사라가 단호한 대답에 바로 입을 꾹 다물었다. 갑자기 문희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당사자들을 제외한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뭔 소리일까. 곰곰히 생각에 잠긴 진희에게도 불청객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야, 저 친구 저번부터 참.]

 

  또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이 균형을 잃고 휘청였다. 머리가 깨질것만 같은 고통에 윽, 하는 짧은 신음을 내뱉자 문희의 눈동자에 연두빛 머리카락이 담겼다.

 

  "장민화. 하스넬 시온 데리고 좀 멀리 가줘."

  "어... 어어? 알았어."

 

  뿌옇게 흐려진 녹색 눈동자엔 멀리 사라져가는 세 명의 머리만이 보였다.

 

  "괜찮아?"

  "윽... 괜찮......"

 

  [거슬려.]

 

  "아악!"

 

  그 괴물이 모두의 앞에서 단말마의 고통을 호소하며 천천히 고꾸라졌다. 이 만한 유흥거리가 어디있을까. 아이들에게 살기를 뿜어낸 문희는 말없이 진희를 업고 그 자리에서 뛰쳐나올 뿐이었다.

 

  ***

 

  여긴 또 어디야.

 

  슬며시 뜬 눈 사이로 알 수 없는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푹신한 촉감을 느끼며 고개를 돌리자, 새하얀 이불과 그 앞에 있는 검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일어났네."

  "문희?"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통 기억이 나지 않아 제 머리를 부여잡은 진희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 목소리를 떠올렸다.

 

  "윽......!"

 

  움직이니 지끈거리는 머리를 다시 짚음과 동시에 푸른 마나가 출렁이며 연두빛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쏙쏙 들어갔다. 두통을 제거해봤자 였다. 뭔가를 놓친 듯한 찜찜한 기분이 두통이 느껴지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너 쓰러졌었어."

  "뭐...... 예상은 했다만."

 

  진희의 입가에 잘 보지 않으면 씁쓸해보이는 미소가 번졌다.

 

  "일단 나가 봐."

  "나가라니?"

 

  벽에 등을 기댄 문희가 턱짓으로 문밖을 가리켰다. 밖에 뭐가 있길래 나가보라는 걸까.

 

  의문을 품으면서도 한 편으론 기대가 됐다. 혹시 아프니까 죽이라도 사다 둔 것일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간 진희를 맞이한 건 다름아닌.

 

  "아, 뭐야. 죽었다며. 멀쩡하네."

  "죽었다에 건 놈들 만 원씩 내놔라."

  "아씨......."

  "에휴. 그럼 그렇지. 저런 괴물이 죽긴 왜 죽어. 야, 가자."

  "시간만 버렸네."

 

  다수의 시선과 질타였다.

 

  귓가로 소근거려봤자, 많은 마나로 극대화되어 있는 진희의 신체 능력이 있기에 모든 게 선명하게 들렸다.

 

  모두가 진희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면서도 자신의 분풀이를 해댔다. 큰 벽 중 하나가 사라진다면 자신의 순위도 어찌됐든 오를 것이고, 경쟁하기 수월해질 수도 있는 터였다.

 

  진희의 밥까지 꾸역꾸역 먹어온 하위권 아이들도 중얼거리며 지나갔다. 정말 보란듯이 노골적인 아이들을 본 진희의 이성은 끊어진 지 오래였다.

 

  난 너희들의 재밋거리가 아니야.

 

  "야. 너네 다 뭔데."

 

  실컷 떠들던 모든 학생들의 입이 자동으로 다물어졌다. 녹색 눈동자에 서린 붉은빛에 발이 땅에 붙은 아이들도 더러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호흡에 문제가 생긴 아이들도 있었다.

 

  랭킹전 외에 결투는 퇴학 조치이지만, 진희처럼 이미 초월한 능력자라면 아까워서라도 어떻게든 이곳에 있게 할 것이 분명했다. 일반 세계로 나간다 해도 이미 고위직이 예약되어 있는 고급 손님이었다.

 

  진짜 죽을 수도 있다.

 

  모든 학생들의 머릿속에 새겨진 한 줄의 문장은 목을 조여왔다.

 

  "으아악!"

 

  어깨부근에서부터 서서히 일렁이는 푸른빛의 마나를 본 학생들이 기겁하며 괴성을 질렀다. 기어서라도 도망가는 꼴이 참 우스꽝스럽다.

 

  다 죽여버리고 싶어.

 

  "아......!"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진희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분명 제 진심이 아니라고. 뭔가 이상하다고.

 

  "흑...... 허억......"

 

  점점 가빠져오는 숨에 머리를 감쌌다.

 

  이건 내가 아니야. 이건......!

 

  "그만."

 

  한 걸음에 성큼 다가온 문희가 진희의 팔을 낚아챘다. 눈만 빤히 바라본다면 정말 심해를 보는 것만 같은 짙은 눈동자에서 일렁이는 푸른빛의 살기는 모두의 머릿속에 공포가 되어 스며들어갔다.

 

  문희보다 더 랭킹이 높은 자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연진희, 정신 차려."

  "무... 문희......"

 

  녹색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다. 너무나도 차분한, 마치 이 일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문희의 가라앉은 억양이 계속해서 의문에 의문을 더해가고 있었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

 

  정신 사나운 마음과는 달리 하늘은 무심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물빛 하늘에 저도 끼워달라며 고개를 내민 흰 솜뭉치가 얌전히 기대어 몸을 맡기고, 부드러운 바람을 기분 좋게 맞이하며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귀었지만, 진희의 귀엔 그저 시끄럽게 떽떽대는 소리로만 들렸다.

 

  정문 앞에 배치된 벤치에 몸을 기댄 채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진희에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야 했다. 그 어떤 소리도 제 기분을 어지럽히기만 했으니까.

 

  '지금부턴 정신 바짝 차려.'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이상은 알려줄 수 없어. 그리고...... 아무나 믿지 마.'

  '문희야? 문희...? 야! 다 알려주고 가!'

 

  "맨날 이상한 소리나 해대지......"

 

  뭐라도 알려주던가.

 

  불만을 가득 품은 진희의 입에선 한탄만이 흘러나왔다. 문희의 말만 들으면 정말 모든 걸 다 아는 사람같았다. 그래, 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 이상한 목소리나, 시온이나, 모든 걸 다 아는 듯이 막아냈다. 누가 보면 제 기사라도 되는 줄 알 것이었다.

 

  "하아......"

 

  정신을 바짝차리라는데... 어느 시점에서 바짝 차리라는 건 지도 모르겠고, 뭘 조심하라는 지도 통 모르겠다.

 

  그냥 운명에 맡겨볼까, 생각하며 연두색 머리를 잔뜩 헤집어 놓고 있는 손이 고요한 정적과 함께 멈췄다.

 

  "안녕?"

  "너... 네가 어떻게 여깄어."

  "어떻게 있기는......."

 

  광망 아래에서도 차가운 밤처럼 빛 하나 없이 거무죽죽하게 죽은 핏빛 눈동자. 젖은 생쥐 같은 탁한 회색의 곱슬거리는 머리에 이미 뇌의 회로가 멈춰버렸다.

 

  "난 너처럼 바보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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