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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현명한 레시피
작가 : 이웃집메이
작품등록일 : 2016.7.21

"우리, 사귀어 볼래요?"
"...큽!"
든든한 식사 이후에 챙기는 달콤한 디저트. 그리고, 음식과 디저트를 만드는 셰프와 파티쉐.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풍기는 그들의 계약... 연애? No! 36살 파티쉐와 28살 셰프의 달콤살벌 계약연애 스토리!

 
02화. 그녀는 티본스테이크 같은 여자
작성일 : 19-09-13 01:55     조회 : 210     추천 : 0     분량 : 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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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티본스테이크(T-bone steak) : 소의 안심과 등심 사이에 T자 모양의 뼈 부분의 부위를 이용하여 구운 스테이크 요리. 뼈를 기준으로 안심과 등심 두 가지 맛을 느낄 수가 있어, 일명 ‘반반 스테이크’라 불린다.

 

 

 

  그는 어느 때 보다도 진지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평소 레스토랑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눈빛. 낯설어도 너무 낯선 눈빛이었다.

 

  그 눈동자에 홀릴 것 같아 그녀는 애써 시선을 회피하며 커피를 쭈욱 들이 마시기만 했다.

 

 

  ‘뭔데 저리 간절한 건데…?’

 

 

  그런 당황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읽은 건지 뭔지, 그는 대뜸 그녀를 향해 말을 내던졌다.

 

 

 “아, 많이 당황하셨어요?”

 

 

  정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하는데, 여간 얄미운 것이 아니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너무 잘생긴 사람이 파티쉐 님께 고백하니 당연히 당황스러우시겠네요…”

 

 

  그는 혼자 중얼거리며 이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저 표정이 더 기분 나빠……’

 

  지수는 저런 말 자체가 본래 그의 성격에 부합하는 말 이겠거니 하며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놀란 듯 어깨를 움찔거리며 그녀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대로 있다간 가만히 당하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굳은 다짐을 한 듯한 표정을 가지고서.

 

 

 “어떤 이유든지 간에 저는 충분히 당황했고, 그쪽 부탁을 들어줘야 할 마땅한 이유도 듣지 못한 것 같네요.”

 “…….”

 “그러니까, 왜 하필 저 여야만 하는지 이유를 말해주시고, 저를 납득시켜 주세요.”

 

 

  그녀가 표정을 싸악 바꾸고 그를 향해 다다닥 끊임없이 얘기하자, 그는 조금 당황한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아까의 진지한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꽤나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런 그의 모습에 지수는 굉장히 만족스럽기도 했다.

 

 

  ‘그래, 저런 식으로 나오는 걸 보아하니 딱히 다른 이유가 이지만 얘기를 하지 않는 것 같아. 나를 납득시키지 못하니까, 절대로 이 일을 성사시킬 수가 없겠지.’

 

 

  그런 생각에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너무 대견스럽다는 듯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을 때 즈음.

 

 

 “꼭 파티쉐님 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있어요… 하지만.”

 “…….”

 “그 이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까의 표정이 진지한 표정이었다면, 이번에는 조금 화를 내는 듯한 표정이라고 밖에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건들지 말아야 할 것을 그녀가 건들었기에 화를 내는 듯한 그런 표정. 그래, 딱 그거였다.

 

 

 “죄송합니다.”

 “…….”

 “제가 만약 파티쉐님의 신경에 거슬릴 짓을 했다면… 더더욱 죄송해요.”

 

 

  그렇게 화를 내놓고, 지금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녀 앞에 사과를 하고 있었다. 정말로 반성을 하고 있다는 표정을 가지고서.

 

  그는 모든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아니면 그녀가 살아온 세월에서 깨우친 일종의 지혜라면 지혜였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의 자신의 앞에 있는 이 사람에겐, 그 부탁이 아마 가장 어려운 게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그러니 평소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이리도 자신에게 솔직해져 있었으니까.

  그는 그 사과를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것 같아 보였다. 그에 지수는 자신의 손목에 차 있는 시계를 한 번 보고, 시간을 대충 계산해 보았다.

 

 

  ‘뭐… 지금쯤은 괜찮으려나.’

 

 

 “저…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일 레스토랑에서 뵙…”

 “잠깐만요, 서현명 씨.”

 “예?”

 

 

  시간 계산을 완벽하게 끝낸 지수는 자신에 찬 표정으로 일어나려는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녀의 부름에 지수를 바라보다 마주친 그의 눈빛은, 뭔가 아련했었던 것 같다.

 

 

 “혹시, 술 좋아해요?”

 

 

 

 ♣

 

 

 

  드르륵 소리를 내며 꽤나 경쾌하게 문이 열렸다. 하지만 경쾌하게 열린 문치고, 안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녀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았다.

 

 

 “지수, 너…”

 “아주머니! 준비하시는 동안 만 한 잔 할 게요! 준영이 너도 안녕!”

 “쯧쯧… 다 큰 아가씨가 저렇게 술을 좋아해서야.”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무어라 하기도 채 전에 제일 구석자리로 가 앉는 지수를 보며, 뒤따라 들어가는 그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정확히 3시 24분, 낮. 이런 대낮에 여는 술집이 있는 것도 신기한데… 게다가 ‘단골’ 인거야?!

  현명이 난감한 듯 그녀의 맞은편 자리에 착석했다.

 

 

  ‘대뜸 술 좋아하냐고 물은 것도 이런 이유였군….’

 

 

  그런 생각에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가만히 있었다.

 

 

 “준영아, 여기 그냥 기본 안주 좀 세팅 해줘. 아, 그리고 술은 소주랑 맥주 적절히 섞어서 6병.”

 “네?!”

 “워워, 일단 진정 하세요, 누나 애인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두셔야 하니까.”

 “야! 애인 아니거든! 세팅이나 제대로 해 와!”

 “예, 예. 그러겠습니다, 누님.”

 

 

  이 가게의 알바생인 준영을 빠르게 보내놓고선 그녀는 익숙하게 젓가락과 숟가락을 준비해주고 있었다. 그는 낮부터 술집에 들어가는 것도 신기하지만 단골집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는 그녀를 보며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이 여자, 대체 정체가 뭐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에 앞에 놓인 물 컵에 물을 쪼르륵 따라 그녀에게 주었다.

 

 

 “…….”

 “…….”

 

 

  그리고 순식간에 생긴 정적. 그들은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숟가락을 챙기고 물을 각자 나눠 마신 뒤에는 그렇게 크게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 딱 거기까지가 그들의 관계였다. 평소에 레스토랑에서는 자신이 만든 음식에 이 디저트는 안 맞다 느니, 네가 디저트에 대해 뭘 아냐 느니 싸우기만 했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 기본 안주 세팅 되었습니다. 여기, 소주랑 맥주도.”

 “그, 그래 고맙다. 이제 신경 쓰지 말고 너 가게 준비나 잘 해.”

 “신경 써줘서 저엉말 고맙네요.”

 “저게, 진짜……”

 

 

  그때 마침 그 정적을 깨트릴 수 있는 준영의 존재가 나타났다.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주와 소주, 맥주를 받아 들며 그에게 잔뜩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처음으로 준영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한 지수는 곧바로 눈앞에 있는 술들에 눈을 돌렸다.

 

 

  ‘그래, 일단 마시고 시작하자.’

 

 

  이 어색함을 깰 수 있는 건 술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그녀는 익숙하게 소주랑 맥주의 뚜껑을 열었다.

 

 

 “자, 잠깐…!”

 

 

  순식간에 일을 처리하는 지수를 보며 그가 당황스럽다는 듯이 말리려고 했으나, 이미 맥주잔과 소주잔에 각자 술을 따르며 일명 ‘소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저런 식으로 소맥을 능숙하게 잘 만드는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니, 무슨 여자가…….’

 

 

  그가 당황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지켜보고 있을 때, 그녀는 잘 만들어진 소맥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소맥은 내 전문이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뭐해요? 마셔요.”

 “네? 아니, 무슨 대낮부터 소맥… 아, 아! 이봐요!!”

 

 

  잘 만들어진 소맥을 그에게 권하자마자 곧바로 마셔버리는 그녀를 보며 현명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대낮부터 술이라니… 이건 정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행동을 보자니 마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참이나 맥주잔에 가득 담긴 술을 바라보다,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결국은 그 소맥을 원샷으로 마셨다.

 

 

 “어? 에이, 뭐야. 술 잘 마시네요. 그 소맥을 원샷 해요?”

 “크… 술,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저.”

 “그렇게 말하는 사람 치고 못 마시는 사람 못 봤네.”

 

 

  그녀가 퉁명스럽게 얘기하며 그의 잔을 뺏어 들더니 다시 황금비율로 술을 말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익숙한 손놀림에 그는 이 상황을 어찌 받아 들여야 할지 잘 몰랐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능숙하게 소주와 맥주의 적절한 비율을 맞춰가며 시원하게 소맥을 다시 만들어 그에게 건넸다.

 

  탁! 소리를 내며 그의 앞에 놓인 그 술잔에, 그는 당황스러움이 잔뜩 묻어났다.

 

 

 “자, 이번에는 짠할까요?”

 “네, 네.”

 

 

  당황스러움을 차마 숨기기도 채 전에 술잔을 들이미는 그녀에 그는 갑작스럽게 다소곳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마시는 대로 똑같이 술을 마시고, 기본 안주를 조금씩 주워 먹으며 애써 주량을 조절하고 있었지만……

 

 

 “여기 맥주 한 병 더요!”

 

 

  …이대로 멈추면 여자에게 지는 것 같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

 

 

 

 “으… 어, 어?”

 “푸후…….”

 

 

  주변에는 이미 준영을 포함한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 소주 하나 더요! 고기 하나 더 주세요! 시끌시끌하게 손님들이 주문을 요구하고 있었고, 주인은 구석에 그들이 있었다는 것을 까먹을 정도로 주문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르는 그들은 자신들의 테이블에 엄청난 소주와 맥주병들을 보며 깊은 한숨만을 계속 내쉴 뿐이었다.

 

  각자의 주변에 굴러다니는 술병들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든 말든,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너! 야! 너!”

 “후…….”

 “너 나랑… 사귀자고… 구랬지?”

 “딸꾹! 그… 으래… 그랬다… 뭐 어쩔… 래!”

 

 

  그때, 최대한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한참이나 술에 취해 말을 하지 않고 거친 숨소리만 내고 있던 그들이, 장장 30분 정도 만에 말을 했던 것이다.

 

  거기다 대고 그는 평소의 시크하고 날카로운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무장해제가 잔뜩 된 상태에서 그녀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대체… 후읍, 왜… 나… 인데……”

 “너 아니면… 안 되, 끅, 니까…”

 “왜애애? 왜 나 아니면 안 되는데에에?”

 

 

  그녀는 혀가 잔뜩 꼬인 채로 그에게 소리치듯이 물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준영이 난감한 눈빛으로 그녀와 그를 바라볼 뿐, 도움의 손길을 줄 수는 없었다. 한창 장사가 잘 되고 있는 탓에 일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냥 그저 둘이 알아서 해결하겠거니 하고 생각했을 뿐.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가 최대한 눈을 부릅뜨며 턱을 괸 채로 그에게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표정을 싸악 굳히더니 똑같이 한 쪽으로 턱을 괸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은 눈빛. 즉, 게슴츠레한 눈빛이었다, 그것은.

 

 

 “……거든…”

 “뭐라고오오?”

 “……라서… 그래서…… 푸….”

 “뭐래는 고야…….”

 

 

  그렇게 눈빛을 부릅떴음에도, 그들의 꼬인 혀는 풀리지가 않은 것 같다. 이미 둘이서 소맥을 몇 잔이나 마셨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현명은 자신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그녀의 되물음에도 불구, 그대로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에이… 씨이…….”

 

 

  그리고 그런 그를 보던 지수가 나지막이 욕을 내뱉더니 곧바로 그를 따라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쾅! 소리를 내면서.

 

 

 

 ♣

 

 

 

  지잉- 지이잉-

 

 “아… 씨… 뭐야…….”

 

 

  그는 자신이 덮고 있는 이불을 가득 감싸 쥐고서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짜증스러운 말을 중얼거렸다.

 

 

  ‘머리 아파 죽겠는데 무슨 전화야, 전화는…….’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익숙하게 진동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머리가 띵하게 아픈 탓에 움직이기도 싫고, 뭐 어차피 늘 자신은 휴대폰을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두니 상관은 없었다. 자신의 손에 휴대폰이 잡히자,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채로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귀에 가져다 댔다.

 

 

 “후… 여보세…”

 [ 야! 너 지금 어디야!! ]

 “…네?”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소리를 치는 탓에 그는 매우 당황했다.

 

 

  ‘아니, 대체 누구길래 아침부터 이렇게 소리를 치는 건데!’

 

 

  지금 몸도 피곤해 죽겠고, 머리도 아파죽겠는데 아침부터 누군가가 짜증스럽게 소리를 치는 것을 듣자 더욱 화가 났다.

 

 

  ‘아니, 난 오프니까 오늘은 안 나가도 되는…… 어?’

 

 

 “…혀, 형?!”

 [ 너, 지금 당장 튀어와! ]

 

 

  뚝.

 

  무정하게 끊긴 전화에 그는 당황스럽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났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니 벌써 11시가 넘은 시각. 이미 점심 준비를 끝내놓고 손님을 받아야 하는 그런 시점이었다.

 

 

 “젠장……. 미쳤지, 서현명. 미쳤다!”

 

 

  정말 정신이 없어서 그랬나. 현명은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샤워실로 가서 씻으려고 주변에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이리저리 보고, 눈을 깜빡거려도 보고, 눈을 비빅 거리며 비벼보아도, 역시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잖아!!”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기억해보려고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탓에 생각을 하기가 싫고, 애초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와 있는 것인지.

 

  어제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 보아도, 자신에게 남은 기억의 마지막 조각은 파티쉐인 그녀와 술을 마시다가 그대로 엎어진 것 까지다.

 

 

 “아, 그때 파티쉐님과 같이 술… 마셨는데…… 어라?”

 

 

  ‘왜… 그 뒤로 남은 기억이 없지?!’

 

  현명은 스스로의 기억이 없다는 사실에 너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래도 같이 마시고 같이 뻗었으면 뭐 같이 있다든가, 아니면 먼저 갔다면 메모라도 남겨주던가!!!’

 

 

  그는 매우 당황하며 자신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는 분명 술집 주변 모텔인 것 같은데…….

 

  현명은 안 되겠다는 듯이 일단 샤워실로 들어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하게 그녀에게 찾아가서 묻는 게 빠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늦었으니… 레스토랑에 출근하고 보자!’

 

 

  그는 빛의 속도로 샤워를 끝내고 어제 입었던 옷을 대충 껴입었다. 그리고 더도 덜도 말고 지금 이 순간 달리기 선수로 빙의하여 모텔 방을 나섰다. 청소고 뭐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거다.

 

 

 

 

  그렇게 모텔 방을 나와 택시를 빠르게 잡고 레스토랑을 향해 달려갔다. 그래도 생각보다 교통체증이 없어 많이 늦진 않았다. 모텔이 레스토랑과 그리 많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서 더더욱 그랬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어? 이봐요! 거스름돈……!!”

 

 

  현명이 대충 택시 값을 지불하며 기사 아저씨가 거스름돈을 주기도 채 전에 택시에서 내렸고, 미친 듯이 레스토랑을 향해 달려갔다. 지금 손님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을 보아 하니 이미 손님들을 받기 시작했으며, 예약 손님을 위한 음식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임이 틀림없었다.

 

 

  ‘아, 진짜 매니저 형한테 죽었다!’

 

 

  그는 후환이 두렵다는 생각으로 빠르게 도착했고, 손님들의 틈에서 몰래 몰래 벗어나 겨우 레스토랑 카운터로 도착했다. 카운터를 보던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에게 시선을 던졌으나, 그는 재빠르게 주방으로 향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야, 서현명.”

 “……아,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좋… 은 아침!”

 “퍽이나 좋은 아침이다. 너, 나중에 보자. 일단 빨리 들어가서 예약 요리부터 시작해!”

 “네, 네!”

 

 

  매니저인 현우에게 딱 걸린 탓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치만 슬슬 봤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는 걸 뻔히 알고 있는 현우인지라 나중을 기약하고 얼른 주방으로 밀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은 요리 준비가 우선이었기에 현명이 다급하게 탈의실로 가려는데.

 

 

 “어? 파티쉐님!”

 “……!!”

 

 

  어제 만났던 지수가 말끔하게 옷을 차려 입은 모습으로 마침 자신의 앞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그가 아는 척을 했지만, 그녀는 어깨를 티 나게 움찔 거렸다.

 

 

 “파티쉐님!”

 “아…… 안녕하세… 요, 셰프님….”

 

 

  그리고 로봇처럼 천천히 목을 돌려 현명을 올려다보니, 영락없이 그를 어려워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그런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보일 리가 없었다. 우선은 지금 요리도 준비해야 하지만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그는 다급하게 그녀의 어깨를 붙잡은 채로 입을 열었다.

 

 

 “하… 일단, 모든 걸 거두절미하고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어제……”

 “그… 어제 일은, 없었던 걸로 합시다.”

 “네? 어… 어! 파티쉐님! 파티쉐님!!”

 

 

  궁금증을 해결하게 위해 어제의 일에 대해 간단히 물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의 손을 탁 하니 내리쳤다. 그러더니 없던 일로 하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만을 남겨놓은 채로 자신의 주방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어… 뭐지… 바빠서 그런가….’

 

 

  그는 궁금증이 증폭되어 갔지만, 일단은 예약손님의 요리를 준비하는 것이 더욱 급하다는 생각에 일단 무시하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그때의 그는, 지수의 행동이 그저 바빠서 그런 거겠 거니… 하고만 생각했다.

 

 

 

 ♣

 

 

 

  하지만 상황은 심각했다.

 

  오늘 하루 종일 있는 대로 지수가 현명을 피해다는 것이다. 우연히 지수를 발견해서 아는 척 하면 딴청 피우며 없어지고, 밥을 같이 먹자고 나타나도 어느 순간 사라지고, 잠시 얘기를 하자고 하니 바쁘다며 만나주지도 않는 등… 정말 심각한 상황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그럴려니 했지만, 이젠 노골적으로 피하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자신과의 대화를 꺼려하는 것이 맞았다. 안 되겠다는 생각에 현명은 그녀의 행동을 주시했다. 기회가 나면 곧바로 둘 만의 장소로 데리고 가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그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왔다. 모두들 오후 영업 준비로 한창일 때, 그녀는 주방을 쓰는 그녀들과 탈의실에서 막 나오고 있던 참이었다.

 

 

 “어? 현명ㅆ……”

 

 

  그를 발견한 한 파티쉐가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하던 그 찰나에 곧바로 현명이 지수의 팔목을 덥석 붙잡고 힘을 주어 이끌었다. 놀란 그녀가 상황 파악을 하기도 채 전에 남자 탈의실 안으로 그를 따라 들어갔고, 동시에 쾅! 하고 닫히는 문소리가 들리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내가 어떻게 피해 다녔는데… 이렇게 잡힐 줄이야!’

 

 

  그녀는 낭패라는 생각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지만, 이미 그는 화가 난 표정으로 얼굴을 가득 채웠다. 그가 문을 닫자마자 자연스럽게 탈의실 문을 잠궜다. 그리고 그녀를 문 쪽으로 이끌더니 대뜸 두 팔 사이로 그녀를 가두었다.

  순식간에 그의 팔 사이로 가두어진 그녀는 난감한 표정으로 시선을 바닥에 고정시켰다.

 

 

 “…….”

 “…….”

 

 

  그리고 밀려오는 순간적인 정적. 서로 빠르게 오는 탓에 거친 숨소리가 들릴 뿐, 그 이상의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바닥으로 추락되었지만, 그의 시선은 끈질기게 지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점에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운 탓에 그녀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데.

 

 

 “뭡니까, 대체?”

 “…….”

 “난 말이죠, 이런 식으로 ‘회피’하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

 “…….”

 

 

  현명이 지수를 향해 얼굴을 가까이 들이 밀며 얘기를 해보지만, 여전히 정적을 유지하는 그녀를 보며 그는 답답함이 가득 차올랐다. 이제 곧 오후 영업을 시작해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또 답답하게 굴면 일에 집중이 되지 않을 것이 뻔했다. 즉, 지금 당장 이 일을 해결 해 가야만 했다.

 

  그 생각에 현명이 낮은 한숨을 내뱉더니,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한다. 여전히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좋습니다. 그럼 제가 먼저 얘기 할 게요.”

 “…….”

 

 

  그의 선언 같은 말이 그녀의 귀에 꽂히자, 지수는 어깨를 살짝 움찔 거렸다. 어제의 일에 대해 얘기를 하면 어떡하지… 대체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라는 생각에 잔뜩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난, 어제 술을 마신 뒤로 기억이 없어요.”

 “…예?!”

 

 

  그는 그녀의 예상을 뒤엎는 뜻밖의 말을 내뱉고 있었다.

 

 

 “왜 내가 일어나자마자 내 집이 아닌 모텔이 있어야 했으며, 같이 마셨는데 왜 한지수 씨는 제 주변에 없는 건데요?”

 “…그……”

 “같이 있다가 없으면 적어도 메모 한 장은 남겨줘야 제가 상황 파악을 하죠. 이게 뭡니까, 대체!”

 

 

  그가 마지막으로 울화통에 치밀 듯 잔뜩 소리를 내쳤다. 정말로 이해 안 되는 것 투성이니까. 기억은 나질 않지,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던 그녀는 자꾸 피하지. 이제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더니, 그제 서야 그녀의 시선이 바닥이 아닌 그를 향해 있었다.

 

 

 “아… 기억이 안 나셨던 거구나… 죄송해요.”

 “하, 이제야 말 해줄 겁니까?”

 

 

  아까의 겁먹은 표정과 행동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개운하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낯설었다.

 

 

  ‘갑자기, 뭐지?’

 

 

 “그… 말 해줄 것도 없어요. 어제는 별 일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별 일’의 기준이 그쪽과 내가 다르……”

 “어제 갔던 술집 기억하시죠? 제 단골 집. 거기 아르바이트생이 한 명 있는데, 준영이… 아니, 그 분이 도와줘서 그 쪽 모텔로 옮겼어요.”

 

 

  ‘아, 물론 남자 둘이 모텔 방 잡아서 오해를 많이 받았지만…’

 

 

 “그리고 저는 그 즉시 택시 잡고 집으로 바로 갔어요. 그게 끝! 더 이상 별 일이 없었답니다.”

 

 

  말끔하게 정리를 하고서 말을 내뱉었더니 이제는 너무나 속이 시원한 거다, 그녀는.

 

 

  ‘아, 이렇게 한 마디 하고 끝낼 일을 왜 그렇게 질질 끌었지?’

 

 

  그녀는 속이 다 시원해서 오히려 당당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완전 전세역전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개운한 마음을 가지는 그녀와는 다르게, 그는 여전히 의문인 것이 하나 있었다.

 

 

  ‘그래, 별 일 없었고, 아르바이트생 도움 받고 모텔 방에서 잔 건 알겠어.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걸 왜 여태껏 말 안 해줬는데요?”

 “…….”

 

 

  아까의 그 당당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그의 질문 하나에 순식간에 표정이 싸악 굳었다. 그런 질문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말문이 막힌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또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저… 그건…”

 

 

  말투에서도 당황스러움이 묻어나는 모습에 그가 귀를 쫑긋 세우며 그녀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으려 애썼다.

 

 

  ‘어제 무슨 일이 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얘기를 듣고 판단해 봐야겠어.’

 

 

  그 생각에 그녀에게 얼굴을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있을 그때.

 

 

 “악!!!”

 “저,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녀가 방심하던 그의 발을 콱! 하니 밟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팔이 풀린 그때 탈의실 문을 열고 그곳을 나섰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는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혼자 남은 그가 밟힌 발을 붙잡은 채로 그녀가 사라진 곳을 계속 바라보았다.

 

 

 “젠장…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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