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렸다.
하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호텔 방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생각했다.
우린 그냥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그 생각으로 어떤 행동을 하든
그 행동으로 미래가 어떻게 바뀌든
우린 그냥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야.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눈을 뜨니 벌써 아침이다.
수학여행 마지막 날이다.
집에 가기 전까지 2시간 동안 자유시간이라고 한다.
방에서 그냥 잘려고 했으나 체크아웃시간이 다 돼서 근처 카페에 갔다.
카페에 앉아 다른 애들이 어디로 가는지 살펴보았다.
피시방, 노래방, 바다 등 부랴부랴 움직인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공서진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고 버스에 탔다.
또다시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그냥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야.
학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서진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야.
곧바로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했다.
또다시 눈을 감았다.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걸까.
후회가 다시 도와주지 않을까.
다음 날, 학교에 갔다.
공서진만 오지 않았다.
문화부에서도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나를 피하는 걸까.
나 때문에 학교에 오지 않는 걸까.
내가 불편한 걸까.
내가 괜히 내 마음을 고백한 걸까.
난 왜 공서진을 좋아하게 된 걸까.
난 왜 공서진과 만난 걸까.
난 왜 늘 혼자였을까.
난 왜 왕따를 당했을까.
난 왜 힘든 일에도 웃고만 있었을까.
난 왜 이 세상에 태어나 힘들게 살았던 걸까.
이게 전부 운명이었던 걸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이 느낀 감정은 후회였다.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공서진과 만나지 못했다.
결국 다시 난 세상과 멀어지게 되었다.
안수호, 김지민과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었다.
내가 이때까지 한 행동들이 전부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 죄책감에 제대로 살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세상과 아주 멀어지려고 생각한다.
내가 한 행동은 전부 후회였고 후회하여 만들어낸 후회가 아닌 것마저 후회해버렸다.
다음 날, 학교에 갔다.
등교하면서 들린 새소리가 싫었다.
늘 올라가던 계단이 싫었다.
오늘도 지각한 내가 싫었다.
학교를 마치고 간 문화부 교실이 싫었다.
집에 가는 길, 편의점 안에 보인 커플이 싫었다.
길에서 불꽃놀이를 보자며 엄마에게 조르는 아이가 싫었다.
티비에서 나온 바다가 싫었다.
바다 옆에 있던 불이 싫었다.
내가 이것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이 모든 게 내 추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추억들을 후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살아있고 싶지 않다.
나에겐 이제 추억이라는 게 없다.
행복도 없고 감정 자체도 없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거라곤 후회 밖에 없다.
너가 ‘다음에 다시 만나자’라는 말만 했었더라면
스쳐지나가는 우연이라도 기대했을 텐데
다시 한 번 만날 수만 있다면
스쳐지나가듯 너와 만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