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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진화의 새벽
작가 : 연성
작품등록일 : 2019.9.11

예기치 못한 순간에 다가 온 재앙은 인류에게 종말의 위기를 안긴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위기속에서 인류는 서로를 희생시켜 살아남지만

그 결과 인류를 분열하고 갈등하며 고통속에 몸부림치는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끝나지 않은 위기는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며

인류를 대체할 새로운 지성체들의 등장시키고

분열과 갈등속에 퇴화해 가는 인류는

새롭게 등장한 지성체들을 괴물이라 부르며 저항한다.

인간들은 퇴화를 극복하고 지구를 지배하는 최상위종의 위치를 지킬 수 있을까?

과연 사람의 기준은 무엇이고 가치는 무엇인가.

 
4. 호전
작성일 : 19-09-12 17:52     조회 : 251     추천 : 0     분량 : 1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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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호전

 

 기이한 현상에 강우진이 놀라 손을 털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인섹툼의 푸른 핏방울은 이미 수포가 터진 상처를 통해 강우진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간 후였고, 강우진의 몸에서는 이미 이상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우진은 심장에 강한 충격이 몰려왔다.

 “윽! 이게 뭐..?”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리고, 머리에서 띵-하는 이명이 울리면서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짧은 고통 후에 이상할 정도의 청량감이 몰려왔고, 짧지만 강렬한 느낌은 고통보다 오히려 쾌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쾌감에 강우진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그런 강우진의 모습에 간호사 하나가 다가와 물었지만 강우진은 몽롱한 정신에 아무것도 대답 할 수 없었다.

 “선생님 여기 이분 좀 이상한데요?”

 간호사가 의사를 불렀고, 강우진을 힐끗 쳐다 본 의사가 한숨과 함께 다가와서는 의료용 태블릿으로 강우진의 모습을 찍자 강우진의 신상정보와 의료기록이 태블릿에 떠올랐다.

 그 내용을 확인한 의사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주저앉아 멍하게 넋을 놓고 있는 강우진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강우진씨? 강우진씨 제 말 들리세요?”

 “......”

 “혹시 퇴화 증상이 시작 된 겁니까?”

 “예?”

 의사가 부름에도 대답하지 않던 강우진이었지만 의사의 입에서 퇴화 증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뇨! 아닙니다. 그냥 친한 사람이 떠나서, 잠시 놀란 것뿐입니다.”

 자신의 상처로 파고든 인섹툼의 파란 피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빠져 있는 반쪽짜리 진실이었다.

 “...정말 문제없는 거 맞습니까?”

 그런 강우진의 모습을 꼼꼼하게 살피며 의심스럽게 묻는 의사의 물음에 강우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대답했다.

 “예, 괜찮습니다. 멀쩡해요. 저는 괜찮으니까 볼일 보세요”

 그리고는 의사의 질문이 더 이어지기 전에 빠르게 의료천막을 나가 버렸다. 하지만 의사의 시선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강우진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괜찮을까요?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던데?”

 “흠- 애매하네. 최 간호사, 여기 방역팀 불러서 깨끗하게 정리하라고 하세요. 환자들도 다른 천막으로 옮기고”

 “예? 지금요? 갑자기요?”

 “예. 지금 당장요. 지금 나간 저 사람. 적합 실패자에요. 기록 보니까 말기를 지나서, 폐기기간이 지나도 한참지난 특이 케이스라는데 왠지 좀 찜찜하네요.”

 “아! 예 알겠습니다.”

 의사의 말에 놀란 간호사가 자신의 몸에 제독제를 뿌려대면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답하는 걸 보면 이성은 멀쩡한데... 이게 어떻게 멀쩡할 수가 있지?”

 의료용 태블릿을 보면서 의아한 듯 중얼거린 의사가 의료용 천막 밖, 이제는 제법 멀어진 강우진의 뒷모습을 의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후- 망할! 젠장!’

 강우진은 의사의 질문에 놀라서 급하게 나오긴 했지만 잘한 짓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개자식들이 뻑 하면 퇴화증상이래.’

 강우진이 의료진에게 자신이 겪은 이상현상을 말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7개월 전 도시에서 다른 평범한 시민들처럼 배정된 숙소에 틀어박혀, 재택근무나 하면서 안전하지만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강우진은 새로 출시 된 게임기를 하나 구매하려는 욕심에 일일 알바로 외벽관리 용역에 왔던 게 시작이었다.

 그 날 강우진은 알바답게 잔심부름이나 하고, 별 사고 없이 안전하게 일을 마친 뒤 일당 60만원을 받아 희희낙락거리며 게임기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사고는 집으로 돌아간 뒤에 생겼다.

 외벽 바깥의 토양과 대기에 의해서 오염물질에 감염되고만 것이다.

 아주 드문 일이었다. 돌연변이를 만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외벽에 잠시 나갔다 온 것만으로 감염이 된 경우는 근 4년 만에 강우진이 처음이라고 했다.

 결국 강우진은 방역관리소로 이송 되었고, 그곳에서 적합검사라는 걸 받았다.

 퇴화를 이겨낼 수 있는 2%의 확률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검사였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적합검사에서 강우진은 74%라는 꽤나 높은 저항력을 판정 받았고, 2%의 적합자에 해당될 확률이 높다는 판단을 내린 방역관리소는 강우진에게 퇴화진행을 늦춰주는 고가의 치료제를 주사해 줬다.

 하지만 높은 저항력에도 불구하고, 강우진은 퇴화를 극복하지 못했다.

 2번에 걸친 퇴화억제치료를 받았지만 퇴화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강우진의 몸에서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강우진의 시간들은 하루하루가 살아남기 위한 전쟁이나 다름없는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그 날 이후로 강우진은 사람들을 잘 믿지 않았고 특히 의사들은 더더욱 믿지 않았다.

 띡-

 여러 잡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해 멍하니 넋이 나간 채 정산기에 ID카드를 찍으며 오늘 일을 마무리하던 강우진에게 김반장이 다가왔다.

 “너 내일부터는 여기 나오지 마.”

 “뭐래?”뭐 한 두 번 있던 일도 아닌지라 강우진도 이 정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무시하며 지나가려했다.

 “농담 아니야. 나오지 마.”

 그제야 김반장의 말이 평소 같은 시비나 헛소리가 아님을 강우진도 느낄 수 있었다.

 “...왜? 뭐가 문젠데?”

 “작살난 크레인, 네 담당이잖아, 그거 얼마짜린 줄 아냐?”

 “하- 그거 내가 부쉈어? 개미새끼들이 부순 걸 왜 나한테 그래? 굳이 책임을 따지면 제때 제압 못한 방위대한테 책임을 물어야지!”“그 지역에 크레인 사용한 거 작업지시도 없이 네 맘대로 한 거잖아? 아냐?”

 “뭐? 작업일정에 차질만 없으면 그 정도는 원래 기사 마음대로..”

 김반장의 지적에 강우진이 반박하려 했지만 김반장이 그의 말을 막았다.

 “그거야 사고가 없을 때 넘어가는 거지. 이번에 사고가 터져도 너무 크게 터졌잖아?”

 “...그래서 내가 책임져라?”

 “위에서는 크레인비용까지 너한테 청구하라고 난리야. 내가 막아 줄 수 있는 건 거기까지고, 여기서 괜히 버텨봤자. 너만 더 힘들어져 알잖아?”“...씨발”

 김반장의 말에 강우진도 뭐라고 반박할 수 없었다. 이 개 같은 시대에 인권이나 노조 같은 게 있을리 없었고 정부의 지시에 불응한다는 건 자살이나 다름이 없는 짓이었으니까.

 “그래 씨발인 거 나도 알아. 나도 좆같으니까 내일부터 나오지 마.”

 “나보고 죽으란 거야? 이 돈 못 벌면 나 죽어!”

 “나는 넉넉해 보이냐?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목숨 안 걸고 일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너 살리자고 내가 죽을 순 없잖아? 나한테 박씨 같은 오지랖을 기대하지 마. 내일부턴 보지 말자.”

 담담하게 최후통첩을 남기고 돌아서는 김반장의 모습은 누가 봐도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는 모습이었다.

 “이런 개새끼!”

 뒤에 남은 강우진이 악을 써대며 욕을 했지만 김반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자 박씩 아저씨 이름이 뭐였어!?”

 “박영곤”

 강우진의 마지막 물음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해준 김반장이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천천히 흩어지고 외벽관리용역사무실 앞에 강우진만이 혼자 남을 때까지 누구도 그의 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아- 씨발. 망할 새끼들! 괴물새끼들한테 싹- 다 뒈져버려라!!”

 악을 쓰다가 마지막 남은 기운까지 저주에 낭비한 강우진은 힘없이 돌아서며 외벽관리용역사무실 앞을 떠났다.

 

 “강우진씨 검사실로 들어오세요.”

 안에서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강우진의 눈에 익숙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오늘도 오셨네요?”“예. 뭐 살려면 와야죠. 어쩌겠어요?”“검사 좀 해볼게요.”

 이 사람의 이름은 박선희

 이 병원의 간호사였고. 강우진의 인생에 가장 자주 인사하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이후에 이어진 검사는 혈액 검사와 뇌파검사를 비롯해 이미 열 번도 넘게 경험한 검사들의 반복이었다.

 “결과 나올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예- 뭐. 천천히 하세요.”

 아까 공사장에서도 몇 번 들은 것처럼 강우진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는데 이런 상태로 생활한지도 벌써 몇 개월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퇴화가 진행되면 이성과, 기억, 감정, 언어능력 등 뇌기능에 영향을 많이 미치고 결국 사람을 사람이 아니게 만들긴 하지만 강우진처럼 극단적으로 몸이 망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강우진의 몸이 망가지고 죽어가는 이유는 병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치료 때문이었다.

 일단 오염물질에 감염되면 퇴화는 98%의 확률로 진행되는데 그런 퇴화를 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치료제가 존재했다.

 강우진은 오염물질에 감염된 이후 본격적인 퇴화가 시작되기 전 퇴화의 진행을 억제해 퇴화 확률을 98%에서 90%로 낮춰주는 이 퇴화치료제를 국가의 지원으로 2번 투약했는데 이게 시작이었다.

 치료제를 투약할 때만 하더라도 희망이 2%에서 10%로 5배나 올라갔다는 사실과 자신의 저항력이 74%나 된다는 것에 긍정적으로 생각했지만 두 번의 치료제의 투약 후에도 강우진의 퇴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정부에서 두 번의 실패이후 지원을 끊어버린 것이다.

 애초에 한번 면역에 실패하고 퇴화가 진행되면 아무리 약을 쏟아 부어도 소용이 없는데다가. 치료제를 2번 이상 접종하면 그 이후부터는 퇴화속도를 억제하는 효과도 급격하게 떨어지기에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나마 퇴화를 멈추지는 못했어도 억제해 늦춰주는 효과가 있었지만 정부는 애초에 2퍼센트의 적합자를 찾기 위해 지원을 한 것이었기에. 이미 적합실패자로 판정된 강우진에게 고가의 치료제를 지원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퇴화를 억제해 진행속도를 늦춰서라도 살고 싶었던 강우진은 계속 약이 필요했고 결국 고가의 치료제를 자비로라도 구입해 투약해야만 했다.

 그래서 외벽관리용역을 시작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지난 몇 달은 치료제를 구입해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치료제를 투약 할수록 면역이 되는지 효과가 떨어졌고, 퇴화를 억제하기 위해서 점점 더 자주, 그리고 많은 양의 치료제를 필요로 하게 되면서 점점 그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 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액을 들여가며 투약했던 이 치료제가 고농도의 방사능 물질을 재료로 사용하고 있어 강우진처럼 장기적으로 다량을 투약하면 급격하게 방사능에 노출된다는 것이었다.

 약을 투약하면 피폭을 겪어야 하고, 투약하지 않으면 퇴화가 진행된다.

 결국 죽음과 죽음을 사이에 두고 선택해야 되는 상황에서 강우진의 선택은 투약이었다.

 이후에도 수 십 차례에 걸쳐서 치료제를 투약한 결과 강우진의 방사능에 노출되어 피폭되게 되었고, 그의 몸은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망가지기 시작했다.

 결국 혼자 감당이 어려워진 강우진은 정부에 지원을 신청해 봤지만 정부에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안락사를 권유해 왔다.

 이때 강우진은 또 선택해야 했다.

 이번에도 역시 두 개의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편안하게 죽는 안락사와 아니면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손톱만한 한 병에 천만원씩 하는 치료제를 사비로라도 계속 구입하여 조금씩 투약하면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

 강우진은 두 번째 선택을 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그 희망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일반적인 감염자들에게는 이런 선택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지만, 강우진은 특이 케이스인데다 오염물질 감염자중 최장 생존기록을 갱신하고 있었기에 관찰대상으로의 가치를 인정받아 이런 선택의 기회나마 가질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반송장이 된 상태지만 강우진은 아직 여기에 살아 있을 수 있었다.

 “강우진씨 들어가세요.”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곳에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앉아 있었다.

 “흠- 결과가 이상하네요?”

 의사는 진료실에 들어서는 강우진의 모습을 보지도 않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테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젠장 아무리 그래도 매달 2천씩 버는 족족 갔다 바치는데 뜸이라도 좀 들이면 안되냐?’

 의사가 왜 매번 본론만 이야기하는 지는 강우진도 알고 있었다.

 이미 의사들도 강우진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강우진 본인만이 유일했고, 의사들은 희망도 없는 시한부 환자인 강우진이 매주 찾아와 징징거리는 모습을 귀찮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강우진도 저들에게 성의 있고 친절한 진료는 바라는 건 욕심이라 생각했다

 “얼마나 안 좋은가요?”

 "아뇨, 그게 아니라....... 좋아졌어요."

 그런데 그런 강우진의 생각을 뒤집는 말이 의사의 입에서 나왔다.

 "예?"

 "분명 저번 진료까지만 해도 뇌파의 변동 폭이 커지고 있어서, 점점 공격성이 드러날 거라고 예상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러니까, 대체 뭐가 어떻게 좋아 졌다는 겁니까?"

 평소라면 강우진의 처우에 지대한 결정권을 행사하는 담당 의사에게 이렇게 따지듯이 묻지도 못했겠지만 좋아졌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강우진을 보지도 않은 채 그게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는 의사의 태도에 도저히 그냥 기다릴 수가 없었다.

 "여기 보이세요? 퇴화가 진행되면 이곳 대뇌피질 특히 전두엽의 활성도가 낮아지면서 이성과 감정을 통제하기 어렵고, 언어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해요. 강우진 환자도 다르지 않았어요. 지금 여기를 보시면 다른 부분보다 하얗죠? 뇌의 활동성이 떨어지고 경직이 진행될수록 이게 하얗게 나오는데, 지금까지 계속 악화되던 환자분의 대뇌피질의 경직도가 확연하게 완화됐어요. 퇴화증상이 진행된 게 아니라 오히려 호전된 거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일이 가능한 거죠?"

 강우진의 질문에 살짝 살짝 흥분한 의사는 강우진이 보기 편하게 모니터까지 돌려가면서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니터 여기저기를 빠르게 헤지고 다니면서 이루어지는 의사의 설명을 강우진이 정확하게 이해 할 수는 없었지만 마지막에 퇴화의 증상이 확연하게 완화되었다는 말만은 정확하게 귀에 들어와 꽂혔다.

 강우진이 지난 7개월 동안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그럼 이젠 치료가 가능 한 겁니까?"

 질문을 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어 말이 떨렸다.

 "예! 호전된 원인을 찾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 할 겁니다."

 의사의 입을 통해 긍정적인 대답을 듣는 순간 강우진의 눈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정말! 정말 입니까?”

 “예. 이걸 보고한다면 아마 정부지원도 다시 받을 수 있을 겁니다.”

 흥분한 강우진이 저도 모르게 의사의 손을 꽉 잡아 쥐면서 묻자, 의사는 찐득거리는 진물이 가득한 강우진의 손이 불쾌한 듯 얼굴을 찌푸리며 쥐고 있던 볼펜 뒷부분으로 강우진의 손을 밀어냈다.

 “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매번 병원에 왔다 갈 때면 집에 돌아와 담당 의사를 하루 종일 씹어 댔었는데 지금은 선생님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예. 그럼 제가 교수님들에게 보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아직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지만 강우진은 벌떡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의사에게 거듭해서 인사를 해댔다.

 "예, 오늘은 돌아가 기다리세요. 제가 교수님들과 상의해서 내일쯤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예! 잘 좀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강우진은 진료실을 나서는 그 짧은 거리동안에도 3~4번은 돌아보며 거듭 인사를 하고서나 진료실을 나갔다.

 강우진이 진료실 밖으로 사라지는 순간까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던 담당 의사는 강우진이 나가기 무섭게 표정이 바뀌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의 사람에게 한참 굽실거리던 의사가 이후에도 바쁘게 움직이며 돌아다녔지만 그가 전화하거나 찾아간 곳 중 어디에도 그가 말한 담당 교수는 없었다.

 

 병원에 갔다 온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강우진에게 사람들이 찾아왔다.

 "누구시죠?"

 강우진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문을 열자 군복차림의 남자들이 보였다.

 "강우진씨 맞습니까?"

 "..예 맞는데요"

 "방역관리 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부터 강우진씨에 대한 집중치료와 관찰연구를 진행하게 되었으므로 지금 저희와 함께 동행해주셔야겠습니다."

 "예?"

 "10분 드리겠습니다. 준비하고 나오십시오."

 "아니 그게 무슨??"

 어리둥절해 있는 강우진의 사정 따위 상관없다는 듯 문 앞에 선 군인은 묵묵히 10분의 시간을 재고 있었다.

 강우진이 뭐라고 물어도 ‘가보면 안다.’ ‘10분이 다 되어간다’는 말만 반복하는 군인의 모습에 강우진은 어쩔 수 없이 군인을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다.

 따라나서지 않았다면 강제로라도 끌고 갈 분위기였기에 선택의 여지 따위는 처음부터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강우진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물론 연구소 내부에서 강우진을 맞이한 사람들이 군인이 아닌 의사나 연구원들이라는 점도 변화의 요인이었지만, 그들이 강우진이라는 특이 케이스의 가치를 좀 더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에 생긴 변화였다.

 오염물질에 감염된 사람들 중 98퍼센트의 사람들은 퇴화를 이기지 못했고, 2퍼센트의 사람들도 치료라기보다는 극복 혹은 면역이라는 말이 더 적합한 경우였다.

 퇴화치료제도 결국은 퇴화가 진행되기 전 그 2퍼센트의 확률을 일시적으로 10퍼센트 가까이 올려는 주는 것과 퇴화가 진행된 후 진행을 억제하는 것에 불과 했다.

 결국 오염물질에 감염되어 퇴화가 진행되다 도중에 치료된 사람은 지난 14년간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강우진에게 일어났으니 강우진은 존재 자체가 희귀하면서도 하나뿐인 연구 소재였고, 그런 강우진을 대하는 연구원들의 태도가 호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최첨단의 시설이 갖추어진 연구소에서 10여명의 의료진들이 강우진 한 사람만을 관찰하며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강우진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다 하면서, 최근 강우진의 행적이나 특이사항 등을 물어보며 정리했고, 그 과정에서 강우진에 대한 집중치료도 병행되었다.

 하지만 퇴화를 억제하는 치료제를 넘치도록 투약하고, 방사능 피폭치료도 겸행했지만 강우진의 퇴화증상은 더 이상 호전되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한 달 정도 지나자 의사와 연구원들의 열정도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퇴화의 증상을 호전시킨 원인을 찾기 위해 강우진을 독촉하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찾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강우진은 방역관리위원회의 군인들에게 연행되는 순간부터 이들을 불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실험의 과정을 거치면서 강우진의 불신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치료와 실험을 거듭할수록 이들에게 자신이 실험용 쥐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강우진은 의료진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지 않았고, 진실을 숨겼기 때문이다.

 결국 강우진은 의료진들과의 상담에서 거짓과 진실을 적절하게 섞어서 이야기 했고, 연구와 치료를 거듭하면서 여러 번의 상담과 신문과정에서도 자신의 상처로 인섹툼의 피가 스며들었던 일과 같은 기억에 남을만한 중요한 일들은 결코 이야기 하지 않았다.

 결국 연구진들은 열흘이 지나도록 강우진에게서 아무런 요인도 발견하지 못했고, 성과가 나오지 않자 초조해진 의료진들은 강우진에게 새로운 신약과 치료법들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로는 강우진의 치료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들은 한시라도 빨리 결과를 얻기 위해 실험을 강행할 뿐 강우진에 대한 걱정이나 배려는 없었다.

 그 과정에서 강우진의 몸이 심한 부작용으로 망가졌지만, 의료진들은 그때마다 약물을 때려 부어 응급처치를 하고 다시 실험을 강행하는 과정이 되풀이 되는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넘는 치료기간이 지났지만 연구에는 아무런 성과도 나오지 않았다.

 굳이 성과라면 신약과 새로운 치료법들이 퇴화를 전혀 치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것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들은 다른 사안을 놓고 의논하기 시작했다.

 강우진이 죽을 때까지 실험을 강행할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실험을 중단할 것인지

 하루의 논의 끝에 결정된 것은 실험을 중단하고 강우진을 내보내자는 것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연구에 소모되는 엄청난 자금을 감당 할 수 없었기 때문이 첫 번째였고,

 연구소에서 퇴화의 호전 요인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강우진을 일상에 풀어놓고 감시하면 그 요인을 발견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약 강우진이 뭔가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고려해 내려진 결론이었다.

 연구소의 내부결정이 그렇게 내려지면서 강우진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강우진에는 감시가 하나 붙었다.

 기존에도 강우진은 2급 주의대상으로 분류되어 2급 담당저격수가 따라다니고 있었다.

 혹시나 갑자기 퇴화가 진행되어 이성을 잃고 에렉투스가 되는 순간 안전하게 사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 방역관리 위원회의 연구소에 들어갔다 나온 이후로 2급 저격수 대신 방역관리 위원회 산하의 특급 비밀요원이 그를 24시간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는 강우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기록해 퇴화를 완화시킨 요인을 밝히는 것이 주요 임무였으나 상황에 따라 강우진을 납치 혹은 사살 할 수 도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강우진은 자신의 생사를 한손에 쥔 사신이 자신을 24시간 감시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고 있었다.

 

 "젠장. 개자식들 사람을 끌고 가서 병신을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 될 것 아냐. 양아치 새끼들도 아니고 국가기관이란 새끼들이 하는 짓은 완전 쓰레기잖아!"

 집에 혼자 있었지만 강우진은 쉴 세 없이 방역관리위원회 연구소의 의사들을 욕해대고 있었다. 사실 욕 할만도 했다.

 연구소에서 퇴화 치료제를 무상으로 투약받긴 했지만, 과다 투약하는 바람에 면역만 강해져서 앞으로 퇴화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더 자주, 더 많은 치료제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신약이나 새로운 치료법이랍시고 실험해놓고 문제가 생기면 응급처치로 약을 때려 부어놔서 내부 장기나 호르몬 균형 등이 엉망이 된 상태였다.

 피폭치료를 받은 덕분에 그나마 겉모습은 연구소에 들어가기 전에 비해 좋아 보였지만 속을 살펴보면 연구소에 들어가기 전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망가진 상태였다.

 그나마 받은 피폭치료도 방사선 약물을 하도 많이 사용하는 바람에 재발하는 중이란 걸 고려하면 최악도 이런 최악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 내보내면서 정부지원까지 끊어버린 것이다.

 죽으란 소리와 다를 게 없는 방역관리위원회는 태도는 평생 욕을 안 하던 사람이라도 쌍욕이 나올만한 상황이었다.

 “개자식들 두고 보자!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서 복수한다.”

 복수를 다짐하는 강우진은 연신 방역관리위원회를 욕하면서도 무언가를 열심히 검색하며 계획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런 자신의 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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