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탁 테이블 위에 놓인 양은 사발에는 쌀뜨물처럼 뽀얀 막걸리가 담겨져 있다. 테이블 가운데에는 갓 담은 듯 반질반질한 김치와 비계가 반쯤 섞인 돼지수육, 손 두부 조각이 놓여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표진우, 김영준 비서실장, 강현규 소장, 김선웅 원장이 청와대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그 동안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제가 두 분 덕분에 요 며칠 살 것 같습니다. 모처럼 언론사들이 얼마나 칭찬을 많이 하는지, 허허! 대통령하는 맛이 납니다. 맛이 나. 그런데 고생하신 분들의 열매를 제가 다 따먹는 것 같아 죄송스럽네요."
"아닙니다. 대통령께서 저희들에게 많은 지원을 해 주셨기에 이런 날이 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정책임자로써 나라의 국운이 걸린 일에 최대한 힘을 쏟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요. 일본이나 미국과의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연구원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꼭 전해 주세요. 해외 연구소나 기업체에서 좋은 대우로 스카웃 제안들을 많이 해 올 텐데 척박한 환경에서 정말 큰일을 해 내셨습니다. 선진국 수준의 연구 시설과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제가 앞으로도 잘 챙겨보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자, 우리 연구원들의 노력과 성과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에서, 건배합시다. 건배!"
세 사람은 사발을 들고 밝은 표정으로 건배를 한다. 대통령은 단번에 사발을 비우고 식탁 위에 힘 있게 내려놓는다.
"캬~ 좋~다. 진짜 마음 편하게 막걸리 먹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아! 이 두부김치 들어봐요. 막걸리에는 이게 죽입니다."
대통령은 커다란 김치 조각을 두부에 얹어 입 안 가득 넣고 씹는다. 흡족한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강소장님! 그 슈퍼비틀이라는 녀석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되는 거죠? 다른 사슴벌레는 그런 능력이 없다면서요."
"예, 한 세대에 한 마리의 슈퍼비틀에게서만 의학적 성과가 나타납니다. 저희가 슈퍼비틀이 나타나기 이전부터 약 30세대에 걸쳐 관리를 해 오고 있지만 현 세대의 슈퍼비틀이 다음 세대의 슈퍼비틀을 생산하지 못하고 죽거나 분실할 경우 새로운 슈퍼비틀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슈퍼비틀의 복제 연구를 진행했던 것입니다."
"거 참 신기하네요. 사람으로 치면 강쇠 중의 강쇠네요. 맞죠? 하하하!"
"아.. 예! 뭐 굳이 비교하자면 그런 셈이죠. 하하하!"
"비서실장!"
"예, 대통령님"
"여기 소장님과 원장님 근거리에서 많이 도와주시고 고생한 연구원들에게도 충분한 보상이 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챙겨주세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자, 오늘은 내가 쏠 테니 운전 걱정 말고 양껏 드세요."
대통령이 양은 주전자를 손에 쥐고 일어나서 잔을 채우려고 하자 강소장과 김원장이 몸 둘 바를 몰라 같이 일어난다. 강소장과 김원장은 대통령의 청을 못 이겨 막걸리를 원 샷으로 몇 잔을 마셨고 다리를 비틀거릴 정도로 술이 된 후에야 청와대를 떠났다. 테이블에는 표진우 대통령과 김영민 비서실장 둘이 남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비서실장!"
"예! 대통령님!"
"야! 둘이 있을 때는 그 님짜 좀 붙이지 마라! 자꾸 님님 그러니까 친구끼리 좀 이상하잖아."
"……."
"하하! 님 안 붙여도 이상하긴 이상하네. 대통령! 예! 대통령! 하하!"
"많이 취하셨습니다. 그만 들어가시죠."
"친구야!"
"……"
"영민아!"
대통령은 설움이 북받치는 듯 목이 메었다.
"내 잘했제? 황성돈이 그 인간이~ 지한테 이 사업 안 밀어준다고~ 나를 얼~마나 몰아 붙였나?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우리 국민들이 낸 피 같은 돈으로 우리 연구원들 밤잠도 안자고 고생한 거를 우~찌 지한테 준단 말이고? 거기 어디 지 끼가? 엄연히 우리 국민들, 우리 대한민국끼지."
"잘 하셨습니다."
"오늘도 저거 신문에다 내 모함할라꼬 별 희한한 기사 내낫데. 그란다꼬 내가 눈 하나 꿈쩍할 거 같나?"
"그 기사는 정정보도 요청을 했습니다. 조일신문의 입장이 나오는 대로 명예훼손이나 다른 법적인 검토를 할 예정입니다."
"친구야~ 영민아~ 고맙다. 나~ 니 없었으모 우찌 버텼겠냐? 고맙다 진짜."
"그런 말씀 마십시오. 충분히 잘 하고 계십니다."
"제대로 챙겨 주지도 못하고. 맨~날 내 뒷치닥거리나 하게 해서 진~짜 미안하다."
"그만 일어나시죠."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부축하여 식당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