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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오블리비언
작가 : 강냉구
작품등록일 : 2019.8.26

가장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는데 바보 같은 짓으로 인해 종군기자가 되었다.
스탠포드 교내 기자로 취재하고 글을 쓰며 졸업 후 타임지 정치부기자가 되려고 했는데,
타임지 건물 앞에도 못 가보고 허망하게,
흔적도 없이 꿈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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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9-07 09:02     조회 : 246     추천 : 0     분량 : 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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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었다.

  목적지 없이 멍하니 걷는 행인처럼 보이도록 아무 말도 없이 멍한 표정으로 걸었다.

  말이라도 건다면 아는 단어도 언어도 없다는 듯 모든 세상을 차단하며 걸었다. 걷다보니 속이 울렁거렸다.

  마치 근심 걱정 두려움 이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가 내 머리 속이란 해안에서 헤엄을 치는 것처럼.

 

  어느덧 학교 근처까지 도착해버렸다. 멍하게 목적지 없는 행인처럼 걸었지만 무의식 중 내 뇌는 학교로 향해야 된다고 조종이라도 하는 것만 같았다.

  학교가 보이고 무작정 학교를 향해 걸었다. 내가 여기서 학교를 가지 않고 계속 걷거나 모험심에 처음 타보는 버스 위에 올라 타 낯선 곳에 내리면 어떻게 될까.

 

  “야.”

 

  짧고 굵직하지 않은, 굵직하게 흉내만 낸 목소리.

  그저 짧기만 한 목소리로 ‘야’하고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뒤를 돌아보는 거 또한 본능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여느 때와 같은 표정과 옷차림과 머리의 패트릭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 녀석에 지지 않기 위한 유치한 승부욕에 불타올라 패트릭의 흉내를 내며 대답했다. 굵직하지 않고 굵직하게 흉내만 낸 목소리였다.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지금 나 따라하는 거냐?”

  “어.”

  “참나, 어젠 왜 그렇게 갔어.”

  “내가 뭘. 네가 재수 없게 행동하니까 그랬지.”

  “너 가고 지미도 갔어. 내가 너희 없어서 얼마나 심심했는데, 같은 배를 탄 사람끼리 그러면 안 되지.”

 

  또 나왔다. 같은 배를 탔다는 말.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 패트릭의 입에서 또 나와 버렸다.

  나는 패트릭의 말을 듣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내 표정을 읽은 패트릭은 눈치를 채고 다른 말을 읊었다.

 

  “어제 너희 가고 내가 다 정리했어. 가방도 정리했고, 흙먼지도 빗자루로 다 정리했어. 빵은…… 빵은 배고파서 베일리랑 같이 먹었고……. 너희 가고 나서 나도 많이 생각했어. 모든 일의 원인은 나였잖아. 내가 먼저 쥬디 할머니 집에 돌을 던지자고 했고, 너희는 어쩔 수 없이 한 거잖아. 나도 미안하게 생각해. 나한테도 눈치랑 생각이란 것도 있어.”

 

  패트릭은 감기에 걸리기라도 한 듯 코끝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도 머리가 되게 복잡해. 너희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이해해달란 거야.”

 

  패트릭의 말에 나는 패트릭과 함께한 3년의 모든 기억과 추억들이 파라노마 필름처럼 스쳐지나갔다.

  패트릭은 지난 3년간 이렇게 진지하게 말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참, 신기했다.

  많은 사건은 아니지만 이 일로 이 녀석이 어른이 되어가는 열 가지 과정 중 드디어 첫 번째 과정을 끝낸 건가 싶었다.

  패트릭이 열 가지 과정 중 첫 번째 과정을 끝냈다면 나는 도대체 몇 번째 과정을 끝냈던 걸까. 아니면, 아직도 첫 번째 과정을 끝내지도 시작하지도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은 패트릭 녀석의 말 보다 더 거대했다.

 

 

 

  모처럼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었다.

  학교 보다 노는 걸 좋아하는 걸로 봐선 난 아직 어린 애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가 아니어도 나보다 나이가 적건 많건 학생들은 학교 보단 노는 걸 더 좋아한다. 다들 어린 애 같은 거지.

 

  “오늘은…….”

  “무엇을…….”

  “볼까…….”

  “아니지 할까지. 모처럼 학교도 안 가는데 소파에 앉아서 TV나 보라고? 우리 아빠는 다른 건 안 좋다고 만화나 보게 한 단 말이야. 뽀빠이 같은 거나 보면서 ‘시금치를 먹어야 뽀빠이처럼 튼튼해 질 거다.’ ‘영웅이 된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킬 수 있다.’ 이런 말이나 한다고.”

 

  빌어먹을 패트릭이 말했다.

  패트릭은 지금 뽀빠이의 팬 앞에서 신성모독을 했다. 만약 뽀빠이가 신적인 존재였다면 저 녀석은 벌써 뽀빠이 추종자들이 패트릭을 잡아서…… 그 후의 행동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뭐 할까.”

  “딱히 할 거 없는데. 남자 세 명이서 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남자 세 명이라니. 너무 칙칙해.”

  “패트릭. 네가 더 칙칙해. 요즘 잠을 못 자는 거야? 피부가 너무 칙칙해 졌어.” 내 말에 패트릭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런데 요즘 진짜로 잠을 못 자긴 해.”

  “왜?”

  “그냥……. 부모님이 자주 싸우기도 하고……. 솔직히 쥬디 할머니 일 때문에 죄책감 들기도 해서……. 학교 갈 때마다 할머니 집이 보여서 그냥 집에 있는 게 더 좋기도 하고. 그래서 너희한테 같이 놀 때마다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한 거야.”

 

  패트릭 녀석의 말에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누가 내 머리를 누르는 느낌이었다. 고개가 저 땅 끝 마을로…… 아니, 저 무(無)의 세계로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범인은…… 범인은 도대체 언제 잡히는 걸까?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범인이 잡힐 생각을 안 하잖아.”

 

  지미가 말했다.

 

  “그러게. 경찰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우리가 물어보면 꼬맹이들이 경찰 놀이나 한다고 무시할걸?” 패트릭이 말했다.

  “다른 누구에게 말을 할 수도 없는 거잖아. ‘사실은 우리가 유리창을 깼어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내 말을 끝으로 우리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이 침묵을 깨고 싶었다. “만약에 범인이 잡히면 어떻게 할 거야?” 다행히 내가 침묵을 깨버렸다.

  하지만 우리가 할 건 없었다. 쥬디 할머니는 유리창을 깨기 전엔 그저 평범한 이웃 할머니뿐이었으니까.

 

  “유리창에 대해서 물어 볼 거야.”

 

  패트릭이 말했다.

  우리는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패트릭이 한 말의 뜻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패트릭은 말을 이어갔다. “유리창이 깨진 후에 할머니 집에 침입한 건지 아니면 유리창을 깨기 전에 미리 침입한 건지 알고 싶어. 그건 너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 해.”

 

  패트릭의 말에 나와 지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냥 단순해. 쥬디 할머니 왜 죽였냐고 물을 거야. 그게 가장 궁금해. 나 아닌 마을 사람들도 이게 가장 궁금할 거야.”

  “나는……. 호두파이 좋아하냐고 묻고 싶어.”

 

  내가 말했다.

  너무 뜬금없는 대답이었다. 내가 느끼는 것처럼 패트릭과 지미도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이해되지 않은 표정으로 날 보았다.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게 피란츠 아저씨가 만든 호두파이야. 할머니는 그 날 호두파이를 사갔었고, 할머니 장례식에도 피란츠 아저씨가 호두파이를 가져왔었어. 할머니는 그 날 집에서 호두파이를 드시려고 했었고, 결국 드시지 못했지만……. 할머니가 호두파이를 좋아하는 만큼 그 범인도 호두파이를 좋아하냐고 묻고 싶어.”

  “호두파이 하니까 호두파이 먹고 싶다…….”

 

  진지함을 깨트리는 패트릭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건 절대 어이없거나 패트릭이 싫어서 하는 헛웃음이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레 흐름이 끊길 때 나오는 아무 감정 없는 헛웃음 이었다.

 

  “뭐 먹을 거 없어?”

  “어제…… 엄마가 뭘 사왔긴 한데, 먹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근데 그냥 먹자. 어차피 왜 먹었냐고 하면 엄마 아빠 맨날 싸워서 슬프고 우울해서 먹었다고 하면 돼.”

 

  나는 패트릭의 말에 기가 찼다.

 

  “그래도 돼?”

 

  지미가 말했다.

 

  “뭔 걱정이냐. 어차피 엄마도 알아. 그리고 자식 못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 괜찮아. 나만 믿어.”

 

  패트릭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앞서 방을 빠져 나갔다. 나와 지미는 패트릭을 따라 나갔다. 계단 한 칸 한 칸씩 밟을 때마다 며칠 전 한 밤 중의 애플파이 사건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와 버렸다.

 

  패트릭은 냉장고와 선반을 열었다.

 

  “먹을 게…… 있긴 한데…….” 패트릭은 말끝을 흐리더니 냉장고와 선반에 진열된 음식들을 꺼냈다.

  “보드카…… 커피…… 생고기…….”

  “이걸로 뭘 먹으라는 거야.”

  “그냥 또 빵집이나 갈까? 아니면 우리 집에 갈까? 엄마한테 맛있는 거 만들어 달라고 하면 돼.”

 

  지미가 말했다. 지미의 말에 패트릭의 눈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그래도 빈손으로 가면 실례잖아.”

  “뭔 새삼스럽게. 엊그제도 그냥 갔잖아. 우리가 뭐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격식 차려야 될 사이도 아니잖아.” 지미가 말했다. 요즘 따라 지미가 말을 평소보다 더 잘하는 게 느껴졌다. “그럼 우리 집에 가는 거다?”

  “그래, 가자가자. 안 간다고 하면 아주 때리겠다?”

  “그래. 패트릭 너는 때려도 뎁은 안 때려. 됐지?”

 

  지미의 말에 패트릭은 항복을 뜻하는 흰색 천 쪼가리를 가져와 처량한 표정으로 흰색 천 쪼가리를 들고 흔들었다. “얼른 가자 배고프다.” 이번에는 우리가 지미의 뒤를 따라갔다.

 

  패트릭 집에서 지미의 집 까지는 딸랑 다섯 블록이다. 멀지도 않은 거리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피란츠 아저씨 빵집이 있고 얼마 못 가 쥬디 할머니의 집이 있다.

  지미는 잘 피해갈 수 있는데 나나 패트릭은 학교에 갈 때마다 늘 마주해야 된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

 

  저 멀리 그러니까 쥬디 할머니 집 앞에 낯선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아직 사건이 다 해결되지 않았단 듯이 폴리스 라인이 쳐져있었다.

  그 낯선 남자는 라인 안에서 무언가를 살피고 있었다. 솔직히 수상했다. 그 행동이 무척이나 수상해보였다. 그의 행동 보다 이 좁은 마을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사람이었기에 더욱 수상해보였다.

 

  “애들아. 저기 보이지.” 내가 말했다.

  “응.” 패트릭 녀석이 말했다.

  “뭐하는 건지 물어볼까?” 내가 말했다. 나는 패트릭과 지미의 대답도 듣기 전에 차 한 대 없는 길을 건넜다. 쥬디 할머니 집과 낯선 남자와 가까워질수록 심장은 더 빨리 뛰었다.

  “야! 데이빗!” 패트릭이 소리쳤다. 그러더니 길을 건넌 냐개 다가와 말했다. “개인 활동 좀 하지 마.” 패트릭 녀석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패트릭 녀석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이해가기는 한다. 나라도 패트릭처럼 신경질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난 저 남자의 정체가 더 궁금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물어볼까?” 적어도 친구들의 대답을 받아야만 했다.

  “뭘.” 패트릭이 말했다.

  “누구냐고.” 내가 말했다. “궁금하잖아. 누군지.”

 

  패트릭은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 가슴 앞에 팔짱일 끼었다.

 

  “알아서 해. 개인 활동하는 거 너나 나나 특기잖아.”

 

  시큰둥한 투였다.

 

  “네 방법은 마음에 안 드는데 어쩔 수 없잖아. 나나 지미나 너나 다 궁금한 거니까.”

 

  패트릭의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속이 시원했다.

  난 패트릭에게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짧고 굵은 한 마디였다.

  이번엔 누굴 따라하는 게 아닌 임팩트 있는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한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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