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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오블리비언
작가 : 강냉구
작품등록일 : 2019.8.26

가장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는데 바보 같은 짓으로 인해 종군기자가 되었다.
스탠포드 교내 기자로 취재하고 글을 쓰며 졸업 후 타임지 정치부기자가 되려고 했는데,
타임지 건물 앞에도 못 가보고 허망하게,
흔적도 없이 꿈이 사라졌다.

 
5
작성일 : 19-09-07 09:02     조회 : 258     추천 : 0     분량 : 4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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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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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했다. 과연 패트릭은 정말 무덤까지 우리의 비밀을 지켜줄 것인가. 한참 끝에 나오는 대답은 ‘잘 모르겠음’ 이었다.

  싸움과 거짓말하기 좋아하는 녀석이지만 어른들이 보는 만큼 나쁜 녀석은 아니기 때문에 친구인 나라도 믿어주자 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패트릭 녀석은 양치기 소년이 아니니까.

 

  “배고프다.”

 

  시끄럽다 못해 누군가 방에 있었으면 부끄러워할 만한 소리가 내 배에서 방으로 울려 퍼졌다.

  뱃고동소리였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크지도 않고 작은 내 몸통에서 이런 소리가 날까 싶었다. 오늘은 먹은 것도 별로 없었고 패트릭 집에서 빵을 먹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평소보다 뇌를 더 많이 썼다.

  그러니까 당연히 배가 고프지.

 

  문을 열고 복도를 걸었다.

  늦은 시간이라 집 안의 모든 빛은 사라진 후였고, 나는 깜깜한 암흑 속에 홀로 걸었다.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초인의 힘을 발휘 해 계단 손잡이도 잡지 않은 채 암흑 속의 계단을 내려올 수가 있었다.

  암흑 속에서는 작은 집도 커다란 집처럼 느껴졌다. 계단을 내려오자 오른쪽으로 몸을 꺾어 주방으로 들어갔다. 계단은 잘 내려왔는데 테이블을 미처 보지 못한 나는 테이블 다리에 발가락을 찧어버렸다.

  이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나는 최소한의 소리로 고통을 삼켰다.

 

  발가락을 찧은 고통이 가신 후에야 비로소 냉장고의 문을 열수가 있었다.

  냉장고의 문을 열자 엄마가 만든 애플파이가 보였다.

  애플파이의 달콤한 계피향이 내 코를 찔렀다. 언제 맡아도 좋은 이 향기는 피란츠 아저씨의 빵가게 향기 보다 좋았다.

  커다란 접시 위에 올려놓은 애플파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애플파이의 향기는 빠른 속도로 퍼지기 시작해 나는 금세 그 향기에 취해버렸다. 알맞은 크기로 잘라놓은 애플파이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설탕으로 끈적끈적해진 애플파이의 필링이 손에 묻었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며칠 굶은 거지처럼 애플파이를 허겁지겁 먹는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해보였지만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먹던 걸 멈추지 않았다.

  손바닥 위에 올려 진 애플파이와 접시에 담아있던 애플파이는 금방 동이 나버렸고, 깨끗해진 빈 접시를 본 후에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미쳤나봐…….

 

  자책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는 아주 작은 소리로 손에 묻은 설탕필링을 물로 닦아내는 거 밖에 없었다. 설탕 필링은 생각보다 쉽게 닦아지지 않았다.

  손에서 굳어버렸다.

  수돗물 소리가 안방까지 들리지 않게 조절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도꼭지에서 졸졸졸 쏟아지는 물방울을 보니 오줌을 쥐어짜내는 거처럼 보였다.

  그냥 한 번, 시원하게 일주일 묶은 오줌을 내보내는 거처럼 물을 세게 틀어보자 하며 물을 틀었다. 하지만 접시에 묻은 설탕 필링이 굳어져 잘 닦아지지 않았다.

  슬슬 짜증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데이빗 뭐하니?”

 

  엄마의 목소리에 접시를 손에서 떨어트릴 뻔했다.

  뒤를 돌아보니 엄마가 서있었다. 엄마는 가슴 앞에 팔짱을 낀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억지로 양쪽 입 꼬리를 올렸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아주 자연스럽지 않다는 건 당연 알고 있었다.

 

  “배가 고파서…….”

  엄마한텐 거짓말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이라고 대답했을 경우에 그냥 애플파이를 다 먹은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심심해서’ 라고 대답했을 경우엔 심심해서 먹는다고? 심심하면 TV를 보면 되니까 이것도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엄마는 내게 다가와서 내 손에 올려 진 접시를 보고 말했다.

 

  “배고프면 말 하지 그랬어. 이 많던 애플파이를 다 먹고…… 많이 배고팠니? 가볍게 먹을 음식을 해 줄 수도 있었는데. 낮에 아무것도 안 먹고 피곤하다고 해서 걱정을 좀 했었거든.

  “패트릭 집에서 빵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소화 됐어요.”

 

  배를 만지며 또 다시 부자연스럽게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내 모습을 본 엄마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한숨과는 전혀 달라보였다.

 

  “다음부턴 엄마 깨워도 괜찮으니까 엄마한테 말해줘. 뭐라도 만들어 줄게. 애플파이 같은 밀가루는 새벽에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돼. 곧바로 잠들지 말고, 걷거나 움직여서라도 소화시키고 자야 돼. 알았지?”

 

  어린아이를 달래는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밤늦은 시간에 이렇게 많이 먹은 적은 처음이라 엄마도 조금 놀란 듯 보였다.

 

  나는 닦은 접시를 다 닦지 못하고 엄마를 따라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 선 나는 침대 머리맡에 앉았고, 엄마는 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더니 내게 다가와 흘러내리는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줬다.

 

  나는 어색해진 분위기에 엄마에게 이제 가서 주무셔도 된다는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엄마가 먼저 말을 꺼내는 탓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일 있는 거니?”

 

  엄마는 내 침대 위에 앉았다.

 

  “요즘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아. 평소보다 말도 없고, 조용해진 건 아닌데 며칠 전부터 예전 같지가 않아졌어. 엄마만 그렇게 느끼면 괜찮은데 아빠도 데이빗이 조금 이상해진 거 같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 돼. 시장에서 지미 엄마를 만났거든. 지미도 요즘 많이 변했다고 이상해졌다고 하는데. 친구들이랑 패트릭이랑 싸운 건 아닐 테고. 너희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엄마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침만 꼴깍 삼켰다. 목젖이 울렁이는 게 느껴졌다. 목 안에 거머리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없어요. 아무 일도 없고, 그냥 평범해요.”

 

  그냥 평범해요.

  내 대답은 그랬다. 없으면 없다고 말 하면 되는데 정말 이상하고 수상하게 ‘그냥 평범해요’라는 말은 왜 붙였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엄마는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레 입 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그래. 엄마는 이만 자러갈게. 속 더부룩하지 않게 소화 시키고 자야 된다?”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옆집 강아지 신디의 털을 쓰다듬는 듯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잘 자, 데이빗…….” 엄마는 말끝을 흐렸다. 잠시 후 엄마는 내 방을 나가버렸다.

 

  나는 조금의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아주 많은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에게는 착한 아들로 살고 싶었는데 거짓말을 해버렸다. 그것도 아주 큰 거짓말이었다.

 

  어른들은 패트릭의 말을 믿지 않았다.

  패트릭의 모든 말은 어른들에게 거짓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패트릭은 양치기 소년 같았다. 사실을 말해도 그를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나와 지미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양치기 소년이 된 것만 같았다.

 

  원래 거짓말은 커지고 커진다고 한다.

  하나의 거짓말을 속이기 위해 더 큰 거짓말로 포장하게 된다.

  그 후에 남는 건 없다. 누가 날 믿어주게 될까. 결국엔 남는 건 나뿐이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기엔 난 너무 겁쟁이였다.

  늘 겁쟁이에 어리석은 건 지미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겁쟁이에 어리석은 건 지미가 아닌 지미의 가면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잠이 들었다 깨고를 반복하자 어느새 창문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왔다.

  별로 반갑지 않았다.

  계속 어둠 속에서 표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 위에 나와 튜브 하나만 남겨둔 채로 그냥 그렇게 있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이 나 자신만 있는 세계라는 걸 느껴보고 싶었다.

 

  ‘먼저 나갈게.’ 이 짧은 한마디를 남겨놓은 채 아빠는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엄마는 그런 아빠의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그 이후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좋은 아침이에요.”

 

  딱히 좋은 아침은 아니었다.

  어제 너무 먹어서 속이 더부룩한 채로 잠이 들었다. 몸을 움직여야 소화가 된다고 했지만 계속 움직이다간 이 상태로 날이 밝을 것만 같아서 그냥 잤다. 마음껏 푹 잔 것도 아니었다.

  한참을 뒤척이다 잠에서 깨고 다시 잠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몸은 이른 아침부터 극심한 피로 속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건 저 햇살이 얼마나 따갑던지 눈이 멀 지경이었다.

  그런데 좋은 아침이라니.

  엄마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엄마.” 다시 한 번 엄마에게 좋은 아침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은 아침이야. 어서 앉아. 밥 먹어야지.”

 

  좋은 아침이었지만 새벽에 먹은 애플파이가 소화되지 않았는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아니, 먹을 수가 없었다. 뭐라도 먹게 되면 그 자리에서 토를 할 것만 같았다.

 

  “엄마. 어제 너무 먹고 자서 아침은 못 먹을 거 같아요.” 미안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아빠도 아무것도 안 먹고 탄광에 갔고, 나도 아무것도 안 먹고 학교에 가버리면 엄마는 혼자서 쓸쓸히 밥을 먹어야 된다. 그리고 나를 기다리며 이 집을 지켜야한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었지만 오늘따라 더 미안하게 느껴졌다.

 

  “괜찮아 데이빗. 이건 점심에 먹을 거니까 잘 들고 가고.”

 

  크라프트종이로 된 봉투를 하나 건네받았다.

  내용물이 묵직했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한 손에 크라프트 봉투를 들고 집 밖을 나왔다.

 

  집을 나오자마자 우편함 안에 있는 편지 하나가 눈에 보였다.

  난 우편함을 꺼내 발신인을 보았다. 캐서린 이모로부터 온 편지었다. 나는 편지를 들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소리쳤다.

 

  “엄마! 캐서린 이모한테 편지 왔어요. 협탁 위에 둘 게요.”

 

  그러고는 다시 집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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