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두통에 머리를 쥐어싸매며 일어났을 때 처음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런 문구가 적혀있는 안내메세지였다.
그 메세지창은 마치 게임 상태창처럼 홀로그램의 형태로 내 눈 앞에 둥둥 떠 있었다.
"여긴... 대체...?"
고개를 들자 내 시야를 압도한 것은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구름의 낙원이었다. 구름과 구름 사이엔 무지개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으며, 새들은 그 위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휘황찬란한 풍경과 다르게 지금 내가 앉아 있는 바닥은 어디서나 볼 법한 낡은 주차장이었다.
"크윽.... 머리야....."
추락했을 때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는 듯 했다.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차장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이 있었다.
정장을 입은 회사원, 늙은 할머니,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아이 등 대충 서른 명은 되어 보였다.
그 중 절반은 회사원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 몸은 낯설다고 계속 내게 말하고 있었지만 머리는 마치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굴고 있었다.
"여긴.. 설마.."
그 때, 어떤 남성이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어-이, 김필중이!!"
굉장히 귀에 익은 소리.
눈을 돌리자 마중나온 것은 뱃살을 출렁출렁거리며 달려오고 있는 조영탁이였다.
"조.. 조영탁...?????"
그가 세상 다 가진 것처럼 껄껄껄 웃으며 내 등을 탁탁 치며 말했다.
"여! 김필중이..!! 자네도 왔구만!! 난 자네라면 꼭 여기에 올 줄 알았다네. 이야, 자네정도의 인간이면 천국은 따놓은 당상이지!! 하하하하!!!"
이 자식이.. 사람 버리고 갈 때는 언제고 뻔뻔스럽게...
손바닥에 지방이 얼마나 많이 꼈는지 마치 고무공으로 등을 때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피.. 필중씨!!"
"어..? 한나씨??"
조영탁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반가운 얼굴, 하지만 그녀는 지금 누구보다 여기에 있으면 안될 존재였다.
"필중씨..!!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덴 없어요...??"
"네.. 괜찮아요. 근데 한나씬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아,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살아있어야 하는 거 아녜요?"
"그.. 그게..."
한나씨의 말에 의하면 내가 떨어진 이후 빌딩은 말 그대로 형체도 없이 전부 폭삭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자 확실히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거의 인원의 절반 정도는 우리 회사 사원들 같았다.
"저흰.. 정말 천국에 오게 된 걸까요?"
"글쎄요..."
난 한나씨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확신이 제대로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금빛 구름의 낙원, 무지개의 폭포, 그리고 노래하는 새들,
그런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잿빛의 텅빈 주차장,
'이곳은...'
바로 그때,
흐리멍텅했던 머리가 맑아지더니 죽기 직전에 만났던 그 녀석의 얼굴이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
난 곧바로 주머니로 손을 옮겼다. 뺏긴 스마폰은 다시 내 주머니에 돌아와 있었다.
다행히 와이파이는 터졌다.
난 재빨리 내 소설이 있는 연재 사이트로 들어갔다.
조회수 2
조회수 2
조회수 2
....마지막으로 댓글 1.
[ imrealgod : 와 이 새키 진짜 사후세계가 이렇게 생긴 건 어떻게 알고 있었대??]
댓글을 읽자마자 숨이 턱 막혀왔다.
그렇다.
어딘가 고급 극장에 츄리닝을 입고 온 듯한 이 풍경
이 괴랄한 미적 센스의 주인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나의 것이었다.
기시감은 어느새 현실감으로 변하여 한층 더 내가 이곳에 서있다는 실감을 들게 만들었다.
"젠장.. 진짜 와버린 건가..."
로그인 해서 소설을 삭제하려고 했는 데 비밀번호가 바뀌어있었다. 본인인증도 먹통이었다.
가만.. 설령 내가 소설을 삭제하고 예전 사후세계로 가게 된더라도, 내가 천국을 간다는 보장이 없는 데..
그 때, 주차장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 아버지...!!"
조영탁에게 달려가 눈물 겨운 가족상봉을 하고 있는 이길태. 그 옆엔 박 차장네 일행도 있었다.
"오.. 길태야!!!"
"큰 아버지.. 정말 다행이예요...!!"
"그래.. 너도 무사해서 참 다행이구나.."
아마 건물에서 죽은 사람은 여기 다 모여 있겠지.
"천국은 정말 있었던 거군요... 착하게 살 길 정말 잘했어요.. 정말루요...!!"
"그러게 말이다. 고생 끝에 낙이 있다고, 결국 우리도 이렇게 보상을 받게 되는구나..."
미친.. 얘네들, 진심으로 말하는 건가...?
조길태의 헛소리에 기가 찼지만 그것보다 더 신경쓰였던 것이 있었다.
바로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 것이냐'의 문제였다.
유일신이 말한 게 이 사후세계가 내 소설의 배경 설정에만 같은 건지, 스토리까지 똑같은 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필중씨. 표정이 왜 그러세요?"
"네? 왜요..?"
"아뇨.. 그냥 표정이 어두워 보여서.."
어찌됐든 큰일이다. 이대로 가다간 그 녀석들이...!
"저.. 저길 봐!! 천사다!!!"
그 때, 하늘 쪽에서 성가대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모두 천사를 가리키며 웅성웅성 거리고 있었다.
약 수십 미터쯤 떨어져 있는 하늘 너머에서. 천사가 이쪽을 향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허공을 가리키며 웅성웅성 거렸다.
실루엣이 천천히 선명한 이미지로 변하자, 사람들은 이내 그 존재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저거 천사님인거죠? 진짜 천사님인 거죠...??"
늘씬한 키에 백옥의 피부, 금가루라도 뿌려놓은 듯한 찬란한 백금발과 두 눈.
서양 판타지의 전형적인 엘프처럼 생긴 그녀의 등 뒤엔 커다란 1쌍의 날개가 달려 있었다.
그녀는 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생각하는 전형적인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주차장에 당도한 천사가 날개를 활짝 펴자 그녀의 광륜이 무지갯빛으로 빛났다.
그리고, 그 빛보다도 더 찬란한 미소와 함께 살포시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영원한 생명의 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필멸자들이여. 저는 에덴-4312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구품천사 메자엘이라고 합니다.
"오오...!!"
천사가 싱긋 웃으며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이곳에 온 이상 여러분들은 더 이상 가난에 허덕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또한,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미래에 두려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곳은 다툼도, 분쟁도, 전쟁도 필요 없는 풍요의 세계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한, 여러분들은 삶의 고통과 공포로부터 영원히 해방될 것입니다. 불초 메자엘이 여러분들께 약속 드립니다."
"오오.. 천사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착하게 살 길 잘했어.. 진짜로.. 진짜로.. "
"교회 열심히 다닌 보람이 있구나...."
사람들은 제각기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십자가 목걸이를 잡고 울면서 하늘을 향해 감사기도를 올리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이제 고생은 전부 끝났다는 듯이 환호성을 지르며 방방 뛰는 사람도 있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천국에 오신걸, 정말 환영합니다."
반면... 이 와중에도 조 부장은 아주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꿀꺽 침을 삼키며 천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난 무턱대고 그들처럼 대놓고 안도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천사가 정말 만약 내 소설에 나오는 그 천사의 설정이라면..
'신곡 3장 2절, 지금 저 천사의 미소는 눈 앞의 사람들의 행복에 기뻐하는 미소따위가 아니었다.'
이 다음에 나올 대사는 앞의 것과는 정 반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곧 있으면 눈 앞의 사람들의 절망에 빠진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순수한 악의에서 나온 것이었다.'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거의 5미터 거리까지 내려온 메자엘.
그리고 인자한 그 모습은 어디가고, 악에 복받친 악마같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라고 할 줄 알았냐 이 양심없는 새끼들아??"
그렇게,
내 '천국'의 입소식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