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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구름따라 날개따라
작가 : 늘리혜
작품등록일 : 2019.9.2

#과거 기억도 잃고 정인마저 잃고서 슬픔 속에 살아가던 운 앞에 옛 정인의 모습과 자꾸만 겹치는 정체불명의 소녀가 나타났다! 그 소녀의 고집으로 그의 호위무사가 된 운은 그가 데려가 달라고 하는 약속의 장소로 향하게 되는데...... "좋아. 데려다 줄게, 그 약속의 장소로. 그런데 말이야, 아가씨. 난 선불만 받는데 어떡하지?" "좋다. 너의 잃어버린 기억을 주겠다." 그렇게 가게 된 곳은 옛 정인이 죽기 직전 망가져버린 바로 그 장소인데......

# 외모가 비상한 남주 / 이따금 짓궂은 여주 / 닿을 듯 닿지 않는 두 사람

# 왜곡과 진실. 잊는 것과 잊히는 것. 그리고 기억에 대한 이야기

# 반드시 지켜야 하는, 잊어서는 안 되었던 소중하고 소중한 약속 이야기

 
3장. 만나다
작성일 : 19-09-05 10:50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7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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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만월전 북쪽담.

 운의 머리 속에 그 날의 편지 문구가 떠올랐다. 앞뒤 상황이 조금도 연결되지 않았음에도 무슨 계시라도 받은 듯 운이 빠른 속도로 그 곳을 향해 달렸다.

 마을을 벗어나자 곧바로 음산한 기운이 맴돌았다. 류국은 대부분의 마을이 결계로 지켜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결계 밖의 마물로부터 백성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운은 산과 연결된 곳에 쳐져 있는 결계를 별 의식하지 않고 벗어났다. 결계는 마물에게만 적용되고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허나 이 결계 밖으로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계를 벗어나자마자 곧바로 운 앞에 거대한 마물이 등장했다. 크기는 대략 사람의 2배에서 3배 정도 되었으며, 몹시도 기괴하게 생겨 무엇이 머리고 무엇이 다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마주치면 곧바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생김새임에도 운의 표정은 조금도 일그러지지 않았다.

 펑-

 마물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만큼 행동도 매우 냉정했다. 운의 깔끔한 일격에 마물이 마치 풍선처럼 조금은 허무하게 터져 버렸다. 마물을 하나 쓰러뜨렸지만 마물은 줄줄이 등장했다. 운의 짙은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움찔했다.

 이것이 대부분 백성들이 결계를 넘지 않는 이유였다.

 펑-

 운은 보이는 모든 마물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단칼에 베어내며 전진했다. 그날이 떠올랐다. 그날도 운은 이렇게 마물을 베어내며 편지 속 장소로 향했다.

 사실 운은 그믐날 밤이면 그곳으로 향하곤 했다. 그러면 그 날처럼 나린 공주가 하늘에서 나려 자신의 품에 안길 것만 같았다. 허나 운은 매번 헛걸음에 그쳐야 했다.

 시아식이 있는 날 그곳으로 향한 적은 처음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그곳으로 향하면서 이런 묘한 감정으로 이토록 가슴이 떨린 적은 없었다. 운은 걸음을 서둘렀다.

 

 * * *

 

 붉은 꽃무릇밭 위에서 펼쳐지는 소녀의 검무는 몹시도 아름답고 애처로웠다.

 작은 몸에서 절도가 느껴졌다. 그의 선은 손가락 끝과 발 끝, 머리칼 끝까지 곱게 이어졌다. 소녀가 돌 때마다 푸른 비단 옷 아래로 퍼지는 하얀 속치마가 마치 꽃잎 같았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을 때면 그 모습이 너무 애절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잿빛 쪽동백나무를 사이에 두고 빙글빙글 돌 때는 작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해 보였고, 붉은 꽃무릇밭에서 춤을 추는 그는 마치 천녀의 모습처럼 황홀했다.

 작은 소녀와 서슬퍼런 검이란 어울리지 않는 조화에 그의 검무는 더욱 건들면 흩어져 사라질 듯 신비롭고도 애처로웠다.

 다한 황과 삼대장로가 서로 다른 표정으로 소녀의 검무를 지켜보았다. 다한 황 아랫단에 자리잡고 있던 삼대장로는, 하나는 무표정했고 하나는 다한 황에게 아첨하느라 바빴으며, 하나는 제법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녀를 주시했다.

 다한 황은 오로지 소녀의 검무에 집중했다. 무섭던 그의 얼굴이 검무의 끝이 다다를수록 그의 오른쪽 입가가 날카롭게 치솟기 시작했다. 그건 만족의 미소였다.

 가락이 절정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소녀가 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검을 바라보는 목선과 가슴을 따라 그의 회보랏빛 머리칼이 차분히 내려앉았다.

 검 끝을 따라 조금씩 내려오던 그의 시선이 쪽동백나무 앞에 서 있던 소망자에게 닿았다. 소망자의 눈동자는 불안으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소녀의 손끝에 소망자의 떨리는 눈동자만큼 망설임이 묻었다.

 ‘모든 것은 약속을 위해.’

 그러다 다시 마음을 잡았다. 소녀의 검무가 계속 이어졌다. 조금 전과 다름 없이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하며,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마침내 가락이 절정에 다달았다. 금빛 의자에 앉아 있던 다한 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펄럭~

 그리고 검은 천막 안에 하얀 깃털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건 소녀의 등에 치솟은 한 쌍의 날개에서 비롯된 깃털이었다.

 날개를 펼친 소녀의 몸놀림은 더욱 날렵하고 애처롭고 아름다웠다. 하얗고 커다란 날개를 지닌 소녀. 그야말로 천상의 여인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소녀의 표정은 조금 전보다 더욱 어두웠다. 모든 것은 이 날개 때문이라고, 소녀는 생각했다.

 소녀는 그렇게, 소망자를 향해 날개를 펄럭였다.

 궁중악사가 풍악을 멈추었다. 모든 가락이 끝난 것이었다. 그에 맞춰 소녀의 모든 검무도 끝이 났다.

 ‘죄송합니다.’

 소녀는 조용히 검을 갈무리한 뒤 천청색의 두 눈을 꼭 감았다.

 툭-

 꽃무릇밭 위로 둔탁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건 소망자의 하얀 몸이었다.

 “소망자가 하람국으로 떠났다! 소망자가 하람국으로 떠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관 문휘영 사도가 선언을 했다. 그의 선언 내용은 주술사의 힘을 빌려 류국 전체로 퍼져나갈 것이었다.

 문 사도의 선언 내용에 따라 다시 풍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소녀의 검무가 시작되기 전의 가락과 비슷한, 경쾌한 풍악이 다시 한요궁을 넘어 류국 전체로 퍼져 나갔다.

 어렴풋이 환호하는 류국인의 함성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렇게 모두가 기뻐하는 와중에 소녀만이 슬픈 듯 떨어뜨린 작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 * *

 

 펑-

 지성을 가지지 못한 마물은 적절한 상황판단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기지도 못할 것이 뻔함에도 곁에 인척을 느끼면 무조건적으로 덤벼들고 보았다.

 저를 덥쳐오는 마물을 고이 살려보낼 이유가 없었다. 운은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여기 저기에서 펑- 펑- 폭발음이 들리며 마물들이 허무하게 터졌다. 운의 주변은 튄 마물의 살덩이 파편으로 가득했다.

 운이 제 가면에 묻은 마물의 끈적한 살덩이를 닦아 내었다. 그러다 그만 제 손목에 감겨있는 검은 띠가 더러워진 것을 깨달았다. 구름패랭이의 수가 그려진 그것은 운의 보물 중 하나였다.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시간을 지체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나린 공주는 보물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운의 전부였다.

 나린 공주와 재회할 수만 있다면. 운은 마물의 그것처럼 제 모든 몸이 썩어 문드러진다 하여도 상관없었다. 운이 제 발걸음을 재촉했다.

 허나 몇 걸음 못 떼어 곧바로 다른 마물이 운의 앞을 막아 섰다. 가면 뒤 운의 짙은 눈썹이 못마땅함에 움찔거렸다.

 마물을 베어내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은 없었다. 오히려 마물은 퇴치의 대상이었다. 마물을 향한 운의 검놀림은 몹시도 냉정했고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었다. 운의 표정도 그의 검놀림처럼 그저 차가웠다.

 펑-

 날아오는 파편을 막기 위해 팔뚝으로 얼굴을 가렸다. 철퍽- 철퍽- 썩은 고기가 어딘가로 향해 날아가다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조금도 유쾌하지 않았다.

 잠시 후 소리가 잠잠해 졌다. 운이 얼굴을 막던 팔뚝을 걷어내었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게 되었다. 하늘은 여전히 청명했고 평온해 보였다.

 하늘을 바라보다 그 아래 여유롭게 흘러가는 하얀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무척이나 자유로워 보였다. 그래, 너는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 수 있으니까.

 운이 하늘로 향해 있던 시선을 원래 가고자 했던 방향으로 돌렸다. 조금도 늦으면 안 되었다. 혹여 그 날처럼 하늘에서 나린다면. 운은 늦지 않게 그를 받아내야만 했다.

 자꾸만 뛰는 자신의 심장을 의식했다. 그가 죽고 한 번도 이토록 강렬하게 뛴 적이 없던 심장이었다. 운은 그 날 그와 함께 죽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이번만큼은 결단코 달랐다.

 

 * * *

 

 한편 소녀는 다급한 표정으로 달리고 있었다. 품에 검무에 사용하였던 검을 꼭 품은 채 달리고 또 달렸다.

 도망가야 했다. 모르는 곳은 위험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아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다.

 따라서 만월전으로 향했다. 그 길로 계속 북쪽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아무리 한요궁이 넓다 하여도 한 곳으로 달리다보면 분명 끝이 닿을 터였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이 기회를 반드시 살려야만 했다. 소녀는 차오르는 숨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 나래님?”

 모퉁이를 도는데 나인과 마주쳤다. 지금 시간이라면 다시 지하감옥으로 옮겨졌을 소녀가 여전히 시아복을 입은 상태로 만월전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이상한지 나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더욱이 조금 전 만월전 밖에서 불어온 심상찮은 바람을 느낀 직후였다.

 소녀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제 때문에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더욱이 이 나인에게는 조금 전 작별인사까지 고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소녀는 모른 척 나인을 지나쳐 가려 했다.

 “잠시만요, 나래님! 무슨 일이십니까?”

 허나 나인이 다급히 소녀를 붙잡았다. 소녀는 그대로 나인 앞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나인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소녀는 간절함과 다급함을 담아 나인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나인이 소녀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나래님께서 무엇을 원하고 계신지는 잘 알겠습니다.”

 그러더니 제법 날카로운 눈동자로 소녀의 뒤를 보았다. 그곳에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돌아다니는 검은 그림자는 이 작은 두 여인을 단숨에 삼켜버릴만큼 거대했다.

 나인이 소녀의 손을 잡고 어딘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곧 나인과 소녀가 도착한 곳은 만월전의 북쪽담이었다. 담은 두 사람의 키에 세 배는 훌쩍 넘는 높이로 둘러 쳐져 있었다. 자력으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소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도망가십시오. 저를 도와주었다 들키면 당신도 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상관없습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제 일은 나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제가 아니라 시아를 섬기는 것이지요. 그러니 제발......”

 “이건 저의 의지입니다.”

 나인이 검지를 펴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인의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천천히 옮겨보았다. 그곳에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는 너무 거대하여 담벼락을 훌쩍 넘어서까지 자라 있었다.

 그제야 나인이 어떤 생각인지 알겠다는 듯 소녀의 눈동자가 그의 눈동자처럼 단단해졌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고마움과 헤어짐의 서운함과 비장함이 뒤섞여 있었다.

 “부디 무사하십시오.”

 나인이 두 손을 깍지 껴 제 무릎 위로 올렸다. 소녀는 그 위로 제 발을 살포시 올렸다. 소녀의발에는 신이 신겨져 있지 않았다. 나인이 그대로 소녀의 몸을 위로 띄워 주었다.

 소녀의 몸이 공중으로 붕 뜨더니 나뭇가지에 닿았다. 일어서니 한요궁 저편이 언뜻 보였다.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자연의 풍경이었다.

 “분명 이 근처다! 샅샅이 뒤져!”

 어느새 그림자들이 바짝 다가왔다. 잡히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그래서 저를 도와준 너무나도 고마운 존재에게 눈을 맞추며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소중하게 제 품에 품고 있던 검을 담 아래로 던졌다.

 그 뒤 곧바로 제 몸도 담 너머로 던져 버렸다.

 

 * * *

 

 마침내 갈대숲에 닿았다. 운은 갈대숲을 헤치며 만월전 북쪽담을 찾았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회색의 돌로 높게 쌓여있는 담을 발견했다. 운은 그 담을 손으로 더듬었다.

 거칠면서도 바람에 깎인 돌은 부드러웠다. 그 묘한 감각에 운의 기대감이 더욱 부풀었다.

 ‘왜 밝을 때 이 곳에 와 볼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그 날 그대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운은 그믐날에만 이곳을 찾았다. 그래서 알지 못했다. 그 날 발견했던 작은 문은 확실히 담과 다른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오래 전에 지어진 듯한 담과 달리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였다.

 같은 장소인데도 평소와 느낌이 너무도 달랐다. 새로운 것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문이 있었다면 안전하게 이 곳으로 나와도 됐을 터인데. 나린 공주는 왜 하필 하늘에서 떨어졌던 걸까. 아니 그 전에 어떻게 하늘에서 떨어질 수 있었던 걸까. 정말 나린 공주는 하람국의 사람이어서 우리와, 저와 다른 존재인 걸까.

 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되던 그 장면이, 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던 그 장면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질 것만 같았다.

 ‘혹여, 진정…….’

 허나 머리 속에서, 꿈 속에서 수없이 보았던 그 장면은 펼쳐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직접 찾아 나서리. 운이 담벼락을 넘어 한요궁으로 들어가려 했다. 조금 전부터 묘하게 뛰던 심장 때문에 그런지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희망으로 이성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이대로 궁내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그대로 사형이었다. 한 나라의 공주를 죽였다. 한 나라의 가장 귀한 존재를 죽였다. 그것이 운에게 씌여 있는 혐의였다.

 그럼에도 운은 그런 것을 일일이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그런 사실따위 조금도 염려되지 않았다. 다시 그와 만날 수만 있다면. 운은 지금 당장 죽어도 상관없었다.

 차락- 턱-

 담 위로 뛰어 오르려 했다. 그 순간 수풀 위로 묵직한 쇳덩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흐읏-“

 뒤이어 머리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운이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서 검은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점차 커졌다.

 그것은 다름아닌 사람이었다. 더구나 푸른 시아복을 걸치고 있는 작은 소녀였다. 소녀는 정확히 운의 가슴팍에 떨어졌다. 소녀의 흩날려 떨어진 긴 머릿결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아니, 정확히 운이 소녀를 받아내었다. 운에게 안긴 소녀와 운의 얼굴이 가깝게 마주 닿았다.

 “당신…….”

 “쉿, 몰래 나온 거니까 조용히.”

 소녀가 운의 입을 막았다. 그 뒤 눈이 마주쳤다. 운은 그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회보랏빛 긴 머리칼에 맑은 하늘보다 더 청명한 천청색의 눈동자.

 그와 닮았으면서도 전혀 닮지 않은 그를 보자, 운은 그만 말문이 턱하고 막히고 말았다. 아마 그가 자신의 입을 막지 않았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터였다. 운은 떨리는 눈동자로 가만히 그를 보았다.

 “보랏빛 눈동자……”

 운의 가슴팍에 안겨 있는 작은 소녀가 작게 읊조렸다.

 순간 운이 자신의 수배전단을 떠올렸다. 수배전단에는 자신의 보랏빛 눈동자에 대해서도 소상히 적혀 있었다. 운이 고개를 돌렸다.

 소녀를 놓고 도망가야 했다. 이곳에서 붙잡힐 수 없었다. 아직 저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운은 도저히 그를 품에서 놓을 수 없었다.

 “……아름답구나.”

 - 운은 보랏빛 눈동자를 지녔군요. 칠흑같은 머릿결에 살포시 보이는 보랏빛. 아름다워요, 운.

 소녀의 말이 나린 공주의 말과 겹쳐 들렸다.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제가 이제껏 기다려온 사람이 마치 이 소녀라고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운이 다시 제 품에 안긴 소녀를 돌아 보았다. 분명, 아마도, 처음 보는 소녀. 운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입꼬리가 덜덜 떨렸다.

 “당신…… 뭐야?”

 “난……”

 소녀가 작은 입술을 열었다. 운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4장. 추억과 악몽이 깃든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늘리혜입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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