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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오솔길
작가 : 엔보이
작품등록일 : 2019.9.2

오늘날까지 우리 인간이 걸어온 길.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갈등과 폭력의 역사.
태초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러한 갈등과 폭력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살아간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단원 1. 운수 좋은 날.(3)
작성일 : 19-09-04 21:50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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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기 위해 촌장님 댁에서 동무들과 함께 조촐한 잔치를 벌이다보니 나는 그날 해가 떨어지고 나서야 집으로 가게 되었다. 약하게 술기운이 돌았지만 그 정도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 좋게 그 어지러움을 즐기면서 나는 춤을 추듯 집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내 좋았던 기분은 딱 거기까지였다. 허술한 싸리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순간 나는 사뭇 다른 집안 분위기를 인식해야 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평소라면 초저녁 일찍 잠에 들었어야 할 아버지가 두 눈 멀쩡히 뜬 채 나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굴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다녀왔습니다.”

  “잠깐 나 좀 보자.”

 

  그때부터 아버지의 긴 잔소리가 시작이 되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벌써 소식을 들은 것이리라. 영느리의 내단을 놓고 군수님과 거래를 한 것, 아마도 그것이 아버지께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야기가 다르지 않으냐?”

  “다를 것 없습니다.”

  “말장난 하는 것이냐? 지금 장안 바닥에 네가 군수님과 내단을 놓고 흥정하였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그럼에도 발뺌을 하는 것이야?”

  “그게 뭐 어떻다고 그러십니까?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다만 보리울도 정식으로 사열에 참여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 청을 드린 것뿐입니다. 군수님도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으셨습니다.”

  “차라리 돈을 받고 파는 게 낫지, 어찌 그리 큰 분란을 만드는 게냐? 네가 뭔데 보리울이 사열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 청을 드린단 말이냐? 아니 왜 네가 나서서 그런 일을 하냔 말이야.”

  “마을 사람들 모두가 바라던 일입니다. 꼭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나서야 할 상황이었고요. 저희 마을에 단테가 없어서 받아야 했던 설움을 아버지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통념이라는 게 있다. 아직 다미군 사람들에게 보리울은 낯선 마을이야. 사람들의 인식은 강요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야. 보리울에 단테가 생긴다고 해서 그런 통념이 하루아침에 바뀔 줄 아느냐? 너는 네가 한 행동이 정말 이 마을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 확신하느냐?”

  “......!”

  “사람은 분수껏 살아야 한다고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반디야. 제발 네 분수를 지켜가며 살아라. 네가 분수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 할수록 너를 향한 좋지 않은 시선들이 늘어남을 모르겠느냐?”

 

  또 그 소리였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 분수대로 얌전히 살라는 이야기. 대체 그 분수가 어떤 분수인지는 모르나 나는 그 분수가 정말이지 싫었다. 미손으로 태어난 그 분수를 말하는 것일까? 내가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깊은 집착이 느껴질 만큼 매번 똑같이 되풀이되는 아버지의 잔소리였다. 어릴 때 같으면 묵묵히 그 잔소리를 듣고 있었겠지만 머리가 굵어진 지금은 도저히 가만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집을 나가버렸다.

  내가 늦은 밤에 집을 나와 향한 곳은 보리네 집이었다. 동무들 중 누구라도 내가 가면 반갑게 맞이해주지 않을 사람이 없었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형제와 가족들이 있다 보니 어딘가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반면 보리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전국을 떠도는 보부상이라 무슨 일이 있을 때면 나는 자연스레 그의 집으로 발걸음 하고는 했다. 나는 그날도 보리네 집에서 그가 따라주는 술을 마시며 마음껏 푸념을 쏟아냈다.

 

  “도대체가 이해가 가지 않아. 여느 집안 같으면 싹수 있는 아이들을 가문에서 전적으로 지원해주고 오히려 북돋우지 않으냔 말이야. 열에 아홉이 모자라도 단 하나 특출 난 재주가 있으면 그 부족한 재주 하나 추어올려가며 가문을 빛내주길 바라는 것이 보통 집안 어른들의 바람 이겠고 말이야. 그런데 도대체가......”

  “네 어버이가 보통 분들은 아니지. 그분들은 어딘가 초연한 데가 있으니.......”

  “초연? 초연이라고?”

 

  반사적으로 뒤틀린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보고 느낀 어버이의 품새는 그런 고상한 단어를 갖다 붙일만한 위인들이 못 되었다. 내 뜻을 항상 반대해온 어버이에게서 내가 느낀 것, 그것은 오래전 내가 처음 이 마을에 단테를 세우겠다 하였을 때 나를 바라보던 동리 사람들의 눈빛, 그 괴이한 눈빛 사이에서 느껴지던 그것! 하도 지질리다보니 억눌리다 못해 고개 들어 하늘 보는 것조차 송구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말라서 썩어 죽어갈지언정 자신의 굴레를 벗기 두려워하는 삭정이 같은 근성이었다.

 

  “더불어 네게 애정도 각별하고 말이야.”

  “흥! 애정은 무슨......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는 애정 따위 개나 줘버리라지.”

  “.......”

  “그런데 말이야. 어머니, 아버지는 늘 그렇게 겪어왔던 분들이라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사실 난 누이만은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 줄 줄 알았단 말이지. 도련님의 은혜로 글자도 깨치고 하늘학과 도덕경을 정독한 누이라면 적어도 내가 하는 일에 반대는 안할 거라 여겼는데.......”

 

  그런데 정작 어버이보다 나를 심하게 나무라는 것이 바로 내 누이였다. 처음에는 어버이를 생각해서 마음과 다른 말을 하는 줄 알았는데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누이는 진심으로 내가 평범하게 환경에 순응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의 비난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보리가 따라준 술을 단숨에 입에 털어 넣은 나는 취기가 오를수록 그에 대한 원망이 짙어져갔다. 며칠 전에도 그 일로 누이와 크게 다툰 적이 있었다. 흐릿해지는 정신 사이로 당시 나누었던 대화들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어버이는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군수님께 내단을 바치겠다고 한 것,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지?”

  “.......”

  “그걸로 거래를 할 생각이지? 네가 그토록 바라는 대로 보리울 단테가 정식으로 다미군 단테에 편성이 될 수 있게끔 말이야.”

  “.......”

  “정말 그런 생각이라면 미련하기 그지없는 일이지. 너같이 아무런 배경도 없는 애가 만든 단테가 정식으로 군에 편성이 되면 그런다고 뭐가 좀 달라질 줄 아니? 그 즉시 온갖 위험하고 굳은 일에는 다 동원되어 개처럼 이용만 당할 텐데, 그런 생각은 못해봤니?”

  “고생이야 하면 하는 거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원래 모든 권리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법이야. 일이야 좀 더 많아지더라도 그래서 이 마을이 떳떳한 마을로 거듭날 수 있다면 그깟 고생이야 못할 건 또 무어야?”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했어. 지금이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네게 고마워하고 응원하는 것 같지만 네가 곤경에 처하는 순간 누구 하나 널 위해 나서줄 사람이 있을 것 같니? 모두 저와는 상관없는 일인 양 외면해버리고 말거야. 세상인심이란 게 그토록 야박하고 무서운 거야.”

  “그건 순전히 누이 생각이잖아. 난 내 동무들을 믿고 또 촌장님을 믿어. 그리고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게끔 내가 잘 할 거야.”

 

  누이는 기찬 표정을 잠시 지어 보이다가 작전을 바꾼 듯 이번에는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너는 열심히 노력해서 적어도 이 마을에서는 인정을 받고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고 마을 사람들도 네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야. 하지만 반디야. 지금도 밤낮으로 고생하시는 어버이를 생각해야지. 네 손에 들어온 보물이 너무 쉽게 들어와서 그 소중함을 모를 수 있겠지만, 사실 그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평생 한번 찾아오기 힘든 기회야. 그런 기회를 그렇게 허무하게 써서는 안 돼. 제발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봐.”

  “누이야말로 대체 왜 그래? 누이도 알잖아. 같이 보고 배웠잖아. 지금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단지 유민들이 일궜다는 이유만으로 이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같이 겪어보았잖아. 유민 차별은 이미 오래전에 법으로도 금지된 조항이야. 내가 하려는 일이 잘못된 일이 아니잖아. 맞는 일이잖아. 누이는 이 마을 사람들이 당하는 부당한 대우가 맞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반디야. 그런 일은 군수님이나 촌장님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네가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그리고 으레 새로 제정된 법이라는 게 나라 구석구석 전해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리는 법이니까.”

  “나는......”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세상사 서러움이야 누군들, 어디엔들 없겠니? 하지만 다 그렇게 품고 살아가는 거야. 제발 윗분들 심기를 거스르려 하지 마. 나나 너는 그저 우리만, 우리 가족만 생각하고 서로 위하고 살면 되는 거야. 다들 그렇게 살아가지 않니?”

 

  나는 이것이 과연 국문을 깨친 자의 입에서 나올만한 이야기인가 싶었다. 그런 이야기는 평생을 이 마을에서 밭일만 하다 죽을 때 가까워 온 노인에게서나 흔히 들을 법한 고루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자기의 지난했던 삶을 자랑스레 후손들에게 전하며 그런 인고의 세월을 견딘 것이야말로 마치 세상의 더없는 미덕인 양 여기는, 그런 역설적인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 그것은 우습기보단 차라리 애처로운 것이었다.

  그런 넋두리나 다름없는 훈계에 고개를 바락 세우고 대드는 짓은 설령 나라고 해도 못할 짓이었다. 한데 누이에게서도 그들과 비슷한 사상과 정신을 느낀 나는 누이와 내가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리란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아마 누이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누이의 계속된 설득에도 내가 도통 말을 들어먹는 것 같지 않자 그도 급기야 본래의 성격대로 언성을 높이며 내게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야 이 미친놈아. 너는 정말 네가 뭐라도 된 줄 아니? 이 마을은 작고 외진 궁벽한 마을이야. 이곳 사람들이 너를 인정하고 추어올린다 해서 네가 정말 뭐라도 된 줄 아나 본데, 동리 밖에만 나가도 너 정도 실력을 갖춘 애들은 지천에 널렸어. 촌장님들 중 누구하나 눈밖에라도 나면 너 하나 소리 소문 없이 땅에 묻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새끼야. 꼭 너 같은 놈들이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지!”

 

  더 듣고 있다간 손이 나갈 것 같아 무시하고 그냥 자리를 뜨려는데......

 

  “변했어. 정말이지 너는 변했어. 처음부터 너를 그와 어울리게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 개새끼 때문에......!”

  “여기서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와?”

  “그가 너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었으니까! 되도 않는 믿음을 주었으니까! 그가 너를 변하게 했으니까! 그 개새끼가!”

 

  꿈틀

 

  나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누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나는 그렇게 잡은 멱살을 놓지 않고 말했다.

 

  “내 앞에서 그를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마. 아무리 누이라도 그건......”

  “왜? 한 대 치기라도 하려고?”

  “.......”

  “너는 원래 이런 아이가 아니었어. 보이지도 않는 헛된 꿈을 쫒는 아이가 아니었다고. 나는 다만 그가 너를 동생처럼 친근히 여겨 가까이 두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설마 그가 허풍선이마냥 네게 잔뜩 헛바람을 불어놓았을 줄이야!”

  “헛바람이든 무엇이든! 버러지마냥 사는 것 보다야 그 편이 훨씬 나아! 사람이라면 바람이 있어야지! 꿈이 있어야지!”

  “꿈도 분수에 맞게 가져야지. 분수에 맞지 않는 꿈은 너 뿐만 아니라 네 동무라는 것들, 그리고 네 가족에게까지 커다란 재앙이 될 수 있음을 왜 몰라!?”

 

  누이가 진심어린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반디야! 내 동생아! 제발 정신 차려! 그가 네게 무슨 말을 해주었든, 무슨 희망을 주었든, 그는 어찌됐든 나모가의 도령이었고 너는 이방삼순(두 부모와 세 명의 자식이란 뜻으로 단출한 가족구성원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 전부인 결찌(현재의 사전적 의미로는 어찌어찌하여 연분이 닿는 먼 친척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여기서는 형제자매가 없는 외로운 집안을 표현할 때 쓰인다)의 자식이야. 제발 네 분수를 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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