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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매화가 진 자리
작가 : 백아
작품등록일 : 2016.8.4

마법이 세상이 나오고, 푸른 매화 깃발이 대륙을 뒤덮었다.
'현존 최강의 마법사'라는 그라함. 그의 제자가 된 켄홀리 타윈. 망해버린 나라의 왕족 천주윤.
전설 속 최강의 마법이라는 세 가지 마법. 그 중 마지막 세번째 마법을 찾아라!

 
4. 단서(端緖) - 로비아 (3)
작성일 : 16-09-29 19:30     조회 : 447     추천 : 0     분량 : 9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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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윈과 천주윤 일행은 저녁밥을 거하게 돼지 한 마리를 통으로 먹은 뒤 모처럼 편하게 잠들었다. 해온 집의 닭들이 몇 번을 울고 나서야 천주윤 일행이 일어났다. 각자 씻을 순서를 가위 바위 보로 정했고, 천주윤이 가장 먼저 씻기로 당첨됐다.

 해온의 집은 ‘ㄷ’자 형태로 세 개로 집이 나뉘어져 있었는데, 복도식 마루는 모두 이어져 있었다. 화장실은 각 건물 하나 당 하나 씩 있었고, 접대실, 식당 등이 있는 가운데 건물을 제외하곤 모두 건물 가장 가운데 방이 화장실이었다.

 천주윤이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만지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깨끗하게 청소된 화장실이었다. 펌프가 있고 물이 나오는 수도가 마련돼 있었다. 한 쪽에 마련된 변기는 냄새를 올라오는 냄새를 막기 위해 뚜껑이 덮여 있었고, 그 옆 양동이에는 일을 본 뒤 변기에 부을 물이 채워져 있었다.

 천주윤이 하품을 하며 마련된 소금을 자신의 칫솔에 묻혔다. 칫솔을 입에 넣은 뒤 상의를 벗어 수건이 걸린 봉 옆에 걸어두는 순간, 화장실 문이 열렸다.

 “어….”

 천주윤이 순간 굳은 듯 칫솔질을 멈추고 문을 바라봤다. 열린 문 앞에 서있는 것은 로비아. 로비아와 천주윤이 1초 정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꺅!”

 “으악!”

 동시에 비명소리가 터지고, 로비아가 그대로 뛰어가 버렸다. 천주윤이 얼른 옷을 입은 뒤 입을 헹궜다.

 천주윤이 로비아의 방문 앞으로 가 몇 번을 두드리며 미안하다고 말했으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침 식사상은 저녁과 비교해 단출했다. 쌀밥에 생선구이 몇 개, 나물 몇 개가 올라온 상운국 식의 상차림이었다.

 제법 큰 식탁에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식사를 하는 동안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천주윤이 힐끗힐끗 로비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하. 어디 불편하십니까?”

 “아, 아니야.”

 옆에서 식사를 하던 왕수문이 묻자 천주윤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왕수문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시 식사를 하는데 천주윤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로비아가 입을 열었다.

 “아까는 미안했어. 손님이 있다는 걸 까먹고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었어.”

 “아, 아니야. 괜찮아. 나야 말로 문을 잠갔어야 하는데. 하하….”

 천주윤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둘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몰랐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옆에 앉은 왕수문만 빼고.

 “저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어? 아…. 그냥 아무 것도 아니야. 내가 좀 실수를 해서.”

 “음…. 그렇습니까. 아, 저하. 여기 해온 씨에게 들었는데, 지금 황제가 쓰러져 있다고 합니다.”

 “황제가?”

 왕수문의 말에 천주윤의 눈이 커졌다. 천주윤이 해온을 바라보자 해온이 수저를 내려놓으며 로비아를 바라봤다.

 “로비아가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말입니다. 매일같이 나가 선착장에 있는 친한 상인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듣습니다. 와서는 제게 이야기를 해주는데, 어제 들어온 상선들 중 하나에 물어보니 황제가 쓰러진 것을 말해줬다고 합니다. 그렇지 로비아?”

 “어. 그렇대. 코우의 사신들과 식사 도중에 쓰러졌대.”

 로비아가 식사를 계속하며 별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천주윤이 손까지 덜덜 떨며 로비아 쪽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리고 다른 정보는 없었어?”

 “음. 코우의 사신들이 오기 직전, 반군 수장 패형소가 재판을 받고 당일로 처형 당했다지.”

 “당일로? 아니, 애초에 반역자에게 재판을 할 필요가 있었나? 그리고 재판을 했으면 형은 한 달 뒤에 집행하는 게 제국법….”

 “황명은 제국법보다 위지. 패형소에게 재판까지 한 건, 재판에서 확실하게 반란이 잘 못 된 것이라고 논리적으로 못을 박아, 차후에 일어날 반란에도 민심이 동조하지 않도록 하려는 거였겠지.”

 로비아가 식사를 마친 듯 옆에 놓인 행거치프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천주윤은 이미 식사 따위 안중에 없는 듯했다. 아예 수저까지 내려놓고 있었다.

 “그렇다면, 황제가 쓰러졌다면 지금 국정은?”

 “글쎄. 아직 들은 건 없지만. 코리옌 대공이 대리하지 않을까?”

 로비아의 말에 왕수문이 코웃음을 쳤다.

 “황태손께서 멀쩡하신데 코리옌 대공이 무슨 명분으로 국정을 대리해.”

 왕수문의 말에 이번엔 로비아가 비웃었다.

 “뭘 모르시네. 황태손이 정식 책봉이 되지 않은 만큼, 코리옌이 대리할 명분은 충분하지.”

 순간 서로를 노려보는 둘 사이에서 불꽃이 튀는 듯 했다. 왕수문은 방금 전 로비아의 말을 선전포고로 받아들인 듯했다.

 “만약 그렇다고 쳐도 파르가 대장군이 가만히 있겠나. 지금 수도 인근에 배치된 병력만 수만 명인데, 코리옌 대공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무리한 행보를 보일 리가 없지.”

 “아니. 그렇기에 더욱 코리옌이 발 빠르게 움직이려고 하겠지. 파르가가 군사를 쥐고 있는 만큼 자기는 대회의를 통해 국정을 대리하게 됐다는 명분이 필요할 테니까.”

 “파르가 대장군이 가만히 있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지?”

 “파르가니까.”

 “뭐?”

 “대륙의 모든 무인들이 존경한다는 파르가니까. 그는 상운국에서 말하는 충(忠)과 의(義), 협(俠)을 모두 갖춘 사람이야. 그러니까 무인의 표본으로 추앙받는 거지. 자기도 그걸 잘 알고 있기에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없고, 자신의 타고난 성정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할 마음도 없었을 거야. 물론 코리옌도 그걸 잘 알고 있겠지.”

 로비아의 말에 왕수문의 말문이 막혔다. 이를 보고 있던 천주윤이 감탄한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타윈과 자단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일환은 그런 로비아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시골 촌구석의 평범한 여자아이라고 여겼던 로비아의 반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파르가는 지금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이 황제가 깨어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거야. 황제가 자신을 믿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테니까, 황제만 깨어난다면 코리옌을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

 “착각? 착각이라니? 나도 소운궁에만 있어 그 세 사람의 관계를 잘 알진 못하지만, 내가 본 황제는 대장군을 굉장히 신임하고 있는 것 같았어.”

 천주윤이 로비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로비아가 비웃는 것처럼 피식 웃었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말하기엔 의문이 좀 많은데.”

 “의문?”

 “일단 지금까지 황제가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줬다면 파르가는 확실하게 코우를 정벌할 기회가 있었어. 그러나 귀족들의 여러 방해공작과 그에 따른 핑계들을 황제는 묵인했고, 대장군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어. 아마 그 후 파르가가 대대적인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두려웠겠지.”

 “그렇다면 왜 대장군을 전군 대원수로 임명해서 전군을 황제 허락 없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거지?”

 가만히 듣고 있던 왕수문이 툴툴대듯 말했다. 로비아는 채 생각도 하지 않고 술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때 파르가는 모든 군인들의 존경을 받던 때였어. 이미 파르가를 따르는 자들만 움직여도 전군의 절반 이상을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었지. 그 상황에서 황제가 먼저 허울 뿐인 전군 대원수의 자리를 준거야. 파르가에게 은혜를 베풀고 믿고 있는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한거지. 파르가의 성격 상 그렇게 하면 결코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말이야.”

 “억측 아닌가?”

 “그렇다면 이번 패형소의 난 때 왜 황제는 대장군이 코우 정벌을 위해 집합시켰던 3보병대를 파견한 걸까. 송경 주변에 있는 군대들을 소집해 충분히 진압할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이후 송경에서 치안 문제로 3보병대를 주둔하도록 해달라는 부탁까지 황제는 들어줬어.”

 “그건….”

 왕수문의 ‘억측’이라는 말에 로비아가 날선 대답을 뱉어냈다. 왕수문은 또 다시 말문이 막혔다. 이번엔 천주윤이 입을 열었다.

 “파르가는 황제와 전장을 함께 누비며 확실히 충성심을 보여줬어. 황제는 왜 그를 의심하는 거야?”

 “…. 나도 정확힌 모르겠지만…. 충성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서 아니었을까.”

 “충성의 주체?”

 “파르가의 충성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제국을 향한 것인지 말이야.”

 로비아의 말에 왕수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들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일환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대단한 혜안이군.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어.”

 일환의 칭찬. 로비아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옆에 앉은 해온이 껄껄 웃었다.

 “이 녀석이 제가 모아 놓은 책들을 어렸을 때부터 심심할 때마다 읽었지요. 그러다 보니 병법, 철학, 정치 뭐 모르는 게 없게 됐습니다. 하하.”

 해온의 자랑은 주책처럼 들리지 않았다. 모두 사실이었다. 로비아를 고깝게 보던 왕수문도 이미 시선이 달라져 있었다. 누가 봐도 대단해 보일 것이었다. 천주윤도 왕수문이나 일환과 같은 생각이었지만, 둘과는 약간 다른 생각도 하고 있었다.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

 그것은 이성으로서 로비아에게 호감을 느끼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라를 부활시키려는 왕족으로서, 주군에 오를 사람으로서 느끼는 인재에 대한 욕심. 천주윤의 눈이 반짝였다.

 

 식사를 마친 후 타윈과 자단, 일환 왕수문은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지 논의했으나 뾰족한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그냥 나는 늘 하던 데로 돈 모아서 아벨에서 궁전 도면 사면 돼. 그리고 저 영감이 말한 ‘삼대 대마법’인가 하는 책 찾으면 되는 거잖아.”

 타윈이 침대에 누우며 투덜거렸다. 이렇게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 것이 타윈의 성격상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일억 오천만 헤트라며. 그런 거금을 어느 세월에 벌려고. 그리고 벌어서 도면을 얻었다고 쳐. 궁전에 들어가서 그 책을 찾는다고? 궁전이 무슨 동네 뒷산인 줄 아냐.”

 왕수문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타윈이 짜증스럽게 상체를 일으켰다.

 “그래서 뭐 어쩌자고. 여기서 이렇게 시간만 보낼 거야.”

 “그것 때문에 왕제 저하께서 이곳의 책들을 뒤지고 있는 거잖나.”

 “아오. 책을 뒤지면 뭐가 나와? 답답하네, 정말.”

 “일단 기다려 보지. 해온이 그 ‘양조’라는 사람에게 왔던 편지를 찾고 있으니. 그게 나오면 편지에 적힌 주소로 가서 양조라는 사람의 집이라도 뒤져 보자고.”

 “그래, 그래. 마음대로 해.”

 타윈이 왕수문의 말에 대충 손을 휘휘 젓고 다시 누웠다.

 

 로비아는 오늘도 어제 그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천주윤이 슬쩍 들어와 로비아의 옆으로 다가갔다.

 “여기는 아무리 찾아도 너희가 찾는 마법에 관한 책은 없어.”

 로비아가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천주윤이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오늘은 오는 거 눈치 챘네.”

 천주윤이 다가가자 로비아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로비아가 들고 나가려는데, 천주윤이 그 앞을 막았다.

 “잠깐만 로비아. 할 말이 있어.”

 “할 말? 아까 일은 사과했잖아.”

 “아니, 그거 말고.”

 천주윤은 마치 좋아하는 애에게 연애편지를 전달하려는 아이처럼 쭈뼛거렸다. 결국 답답한 걸 참지 못한 로비아가 다시 서재를 나가려 했다. 천주윤이 당황하며 다시 그 앞을 막았다.

 “그러니까, 날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도와줘?”

 “나는 어떻게든 상운국을 다시 일으킬 생각이야. 네가 거기에 힘을 보태줬으면 해.”

 겨우겨우 천주윤이 입을 뗐지만 로비아의 표정은 싸늘했다.

 “하, 이미 망한 나라를 다시 일으킨다고? 네가 왕이 되겠다는 거 아니야, 결국.”

 “어?”

 로비아가 선뜻 응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날이 선 대답이 돌아오리라고도 생각지 못했었다. 천주윤이 당황한 듯 멍하니 서있는데 로비아가 말을 이었다.

 “왕이 되고 싶은 네 욕심을 내가 왜 도와줘야 되지?”

 “아니야. 그런 욕심이 아니라….”

 “그래. 설령 도와준다고 쳐. 그런데 넌 네가 왕의 자질이 된다고 생각해?”

 로비아가 냉소를 보이며 말했다. 천주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로비아가 아까 앉아 있던 의자에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백성들을 부르는 말이 크게 세 종류가 있어. 나라마다 다르지. 코우와 케이론에서는 인민(人民)이라 불렀고, 레오트와 상운국, 하로이에서는 백성(百姓), 페이도스에서는 비록 군부 반란 이후긴 하지만 국민(國民)이라고 불렀어. 너는 이 차이가 뭐라고 생각해?”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천주윤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이마를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글쎄. 음, 나라마다 백성을 보는 인식이 달라서?”

 “그러니까 그 인식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는 지를 말해보라고.”

 “글쎄….”

 천주윤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로비아가 살짝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인민은 사람 그 자체를 뜻해. 귀족도 평민도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들어있는 단어야. 이건 이백 년 전 코우의 학자인 ‘카탄 파르핀’이라는 사람이 적은 ‘군주의 덕목’이라는 책에 적혀 있어. 백성은 나라에서 보살펴야 하는, 다스려야 하는 존재로 본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 네가 태어나고 자랐던 상운국의 사백 년 전 학자 ‘소정유’란 사람이 쓴 ‘치국(治國)’이라는 책에 이런 식의 어투로 적혀 있고, 그 이후의 학자들이 쓴 책에서도 인식이 다를 바 없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민은, 나라의 구성원, 주체라는 의미야. 이건 페이도스에서 군부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군부의 수장이었던 ‘코우리 파코’가 연설에서 한 말이야.”

 “우와…. 너 정말 대단하다. 그 많은 걸 어떻게….”

 천주윤이 감탄을 하며 말했지만 로비아는 전혀 듣지 않았다.

 “페이도스의 코우리 파코가 군대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귀족들을 몰아냈을 때, 그는 앞으로 페이도스는 ‘공화국’이라고 했어. 너는 코우리 파코가 만들었던 공화국의 제도에서 부족한 점이 뭐였다고 생각하지?”

 “부족한 점…. 음, 그…. 귀족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나. 결국 귀족들이 레오트와 하로이, 상운국이 파병을 요청하면서 대전쟁이 일어났잖아. 물론 우리 상운국은 타국의 일이라는 이유로 파병하지 않았지만.”

 천주윤은 나름 자신의 대답에 만족하는 듯 했지만 로비아의 표정은 달랐다.

 “나는 ‘공화국’의 제도에서 부족한 점을 물어봤어. 그건 당시 군부의 실수라고 할 수 있지.”

 “잘 모르겠어….”

 천주윤이 잔뜩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로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시 공화국이라 칭하며 코우리 파코는 왕과 귀족을 없앴어. 그리고 모든 국정 현안은 군부회의에서 토론, 투표해 결정하도록 하고, 결정된 안건에 대해서는 군부회의에서 투표로 선출한 ‘대총통’이 최종적으로 결재하도록 했어. 얼핏 보면 귀족이나 왕족이 아니라도 군인이 되어 공을 세우고, 군부회의에 참석할 권한을 가지게 되면 대총통이 될 수 있는 구조 같지.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감히 넘볼 수 없는 자리라는 데는 변함이 없고, 그들이 말한 ‘국민’들에게는 대총통의 선출에 관여할 권한조차 없지.”

 “그, 그렇구나.”

 점점 다가오며 쏘아붙이는 로비아, 천주윤이 뒷걸음질을 치며 쩔쩔맸다. 천주윤을 똑바로 쳐다보는 로비아의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나는…. 나는 너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었고, 웬만한 남자들보다도 더 많은 병법을 알고 있고, 귀족들보다 정치도 더 잘할 자신이 있어. 하지만 나는…. 나는 절대 정치 따위 할 수 없어. 여자이기 때문에,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로비아….”

 로비아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천주윤은 그런 로비아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로비아의 입가가 부르르 떨렸다.

 “너는 왕족이고, 공작의 작위까지 받고, 수도에서 살았어. 제국법에 레오트 본국에 영지를 가진 공작 이상의 귀족은 대회의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져. 소운궁은 너의 영지고, 네가 이 부분을 어필했으면 대회의에 참여하는 것을 다른 귀족들이 막을 명분은 없었어. 그렇게 되면 제국의 정치에 관여하고 입지를 넓힐 수 있었고, 지금 이렇게 존재하지도 모를 마법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상운국을 부활시킬 확률이 높았겠지. 내가 너였다면…. 내가… 너처럼 남자고, 귀족이었다면….”

 로비아의 눈에서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로비아가 살짝 당황하며 천주윤에게 등을 보이고 돌아섰다. 눈물을 훔치는 로비아의 등을 보며 천주윤이 따뜻한 표정을 지었다.

 “로비아. 네 말이 맞아.”

 천주윤의 말에 로비아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살짝 훌쩍 거리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네 말대로 나는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싸움도 못해. 너 상황을 한 눈에 파악하는 눈도 없고, 본질을 꿰뚫어보는 능력도 없어. 하지만 나는 내가 부족한 점이 뭔지, 내게 필요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

 “…, 뭐?”

 로비아가 슬쩍 천주윤 쪽으로 돌아봤다. 천주윤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잘 못 된 행동을 하면 왕수문이 바로 잡아 줄 거고, 싸워야 할 일이 있다면 일환이 싸워 줄 거야. 나는 내게 필요한 사람들을 믿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할 자신이 있어. 그들이 이루고 싶은 것을 내가 대신 이뤄줄 거야. 네 말대로 나는 남자고, 왕족이야. 남자가 아니고, 왕족이 아닌 사람들이 이룰 수 없는 걸 내가 대신 이뤄줄 수 있어.”

 천주윤의 말에 로비아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로비아는 천주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

 “생각보다 되게…, 뻔뻔하구나. 너무 날로 먹으려고 하는 거 아니니….”

 을 리가 없었다. 천주윤이 멋쩍게 웃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게 최선인 걸…. 나는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능력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이 능력을 백 퍼센트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고 생각해. 내가 생각하는 왕이란 그거야. 그래서 너한테 제안하는 거야. 나를 도와줘. 나는 네가 필요해.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에 아니, 만든 후에도 네 힘이 필요할 거야.”

 “하…. 아까도 말했잖아. 나는 여자에 귀족도 아닌….”

 “최초의 여자 재상. 멋있지 않아?”

 “…뭐?”

 천주윤의 천진난만한 웃음. 로비아는 생각지 못한 말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최초의 여자 재상. 그 말에 로비아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최초의 여자 정치인.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그 말에, 자신이 왜 이렇게 동요하는 지 알 수 없었다.

 로비아가 천주윤을 뒤로 한 채 걸음을 옮겼다. 로비아가 방을 나가자 천주윤이 거절당했다는 뜻이라 생각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로비아가 다시 서재로 들어왔다. 로비아는 들고 온 책을 천주윤에게 내밀었다.

 “제국 대 서재에 있는 원본의 필사본이긴 하지만, 아이칸 제국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역사서, ‘제국통사’야. 아이칸 제국의 역사가 다 적혀 있지도, 멸망한 이유도 적혀 있지 않지만 멸망하기 직전 50년가량의 역사가 기록돼 있어. 도움이 될 지도 몰라.”

 로비아의 말에 천주윤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천주윤이 얼른 책을 받아들었다.

 “고마워. 로비아!”

 “미안하지만 너희랑 같이 다닐 생각은 없어. 하지만 나중에…. 필요할 때는 언제든 찾아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줄 테니까….”

 로비아가 부끄러운 듯 책장 쪽으로 시선을 돌린 채 얼굴까지 붉히며 말했다. 천주윤은 그런 로비아의 모습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야. 로비아.”

 로비아가 슬쩍 천주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휙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너 몇 살이야?”

 “나 스물한 살.”

 천주윤의 말에 로비아가 주먹을 쥐어 때릴 것 같은 자세를 했다.

 “이게, 나는 스물세 살이야. 앞으로 누나라고 불러.”

 “으, 응?”

 “알겠지. 앞으로 누나라고 불러라.”

 로비아가 눈까지 부라렸지만 차마 그 말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뭐라고 할까 여기서 누나라고 부르면 마지막 자존심이 무너지는 느낌이랄까. 천주윤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은 채 책을 들고 서재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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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4. 단서(端緖) - 기회 (2) 2016 / 10 / 4 410 0 6541   
33 4. 단서(端緖) - 기회 (1) 2016 / 9 / 30 378 0 5159   
32 4. 단서(端緖) - 로비아 (3) 2016 / 9 / 29 448 0 9346   
31 4. 단서(端緖) - 로비아 (2) 2016 / 9 / 28 431 0 5422   
30 4. 단서(端緖) - 로비아 (1) 2016 / 9 / 28 466 0 5915   
29 3.황제(皇帝) - 빈사상태(瀕死常態) (3) 2016 / 9 / 27 458 0 5861   
28 3. 황제(皇帝) - 빈사상태(瀕死常態) (2) 2016 / 9 / 26 484 0 6917   
27 3. 황제(皇帝) - 빈사상태(瀕死常態) (1) 2016 / 9 / 24 436 0 5374   
26 3. 황제(皇帝) - 적(敵)의 조건 (3) 2016 / 9 / 23 363 0 5524   
25 3. 황제(皇帝) - 적(敵)의 조건 (2) 2016 / 9 / 22 497 0 6166   
24 3. 황제(皇帝) - 적(敵)의 조건 (1) 2016 / 9 / 21 499 0 5578   
23 3. 황제(皇帝) - 현상금 (3) 2016 / 9 / 20 402 0 7324   
22 3. 황제(皇帝) - 현상금 (2) 2016 / 9 / 19 398 0 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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