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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브래지어 끈이 내려갔다
작가 : 청사진
작품등록일 : 2019.9.1

나이 서른하나, 브래지어 끈이 내려갈 일이라고는 브래지어 줄이 기분 나쁘게 쓱 한쪽으로 말려 내려갈때 말고는 없다! 단호하게, 없다! 그냥 제기랄, 없다! 그렇다, 아무것도 없던 적막한 인생에 구원처럼 나타나 한 줄기 빛처럼 살포시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겨 줄 그러한 운명 같은 상대를 만났을 때 벌어지는 사소하고도 기막힌 사랑 이야기이다! 브래지어 끈이 내려가는 순간,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3. 까칠병에 걸린 남자를 만나다.
작성일 : 19-09-03 08:51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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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동창회에 나가고 알았다. 서로 내민 얄팍한 명함 한 장이 굳이 서로의 이름을 따져 묻지 않아도 그것을 대신하며 더불어 지나온 시간까지 대변한다는 것을 말이다.

 

  동창회 모임이 열리던 당일 날에 나는 낮부터 목욕재계를 하고, 초록 원피스와 어울릴만한 신발을 마지막까지 고심하여 신고, 아이라인을 휘어지게 기다랗게 그렸으며, 마지막으로 집 밖으로 나서기 전 점검 사항으로 이에 혹시 루주가 묻은 것은 아닐까 재차 확인까지 마치고 나서야 그렇게 집 밖을 안심하며 나설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으니 초록 원피스에 맞춰 신은 새 구두로 인해 발 뒷축이 잔뜩 쓰라려져 오는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가까운 편의점에 들러 대일밴드를 사서 붙였는데도 좀처럼 그 쓰라린 기운이 가시지를 않았다. 쩔뚝이며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갔을 때에는 이미 그 안에 아는 얼굴들이 여럿 쭉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모두 다들 중학교 이학년 시절에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었다. 유미도 중학교 시절 같은 반이었지만 함께 가자는 나의 말에도 단번에 거절을 말하며 괜스레 동창회 같은 데 나가봐야 남 살아가는거랑 나 살아가는 모양이랑 저울질하는 마음만 슬금슬금 못나게 샘솟을 뿐이라고 말할 뿐 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게 약속장소에 들어섰을 때,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도 내 눈은 그러니까... 참으로 주책없이... 단번에... ‘숨은그림 찾기 아닌! 종명 찾기!’를 하듯 빠르게 종명이를 찾아나서게 되었으니... 가장 안쪽 끝에 깔끔한 흰 셔츠를 입은 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는 종명이의 모습이 보였다! 지난 번에 보았을 때 보다 좀 더 자라난 머리칼이 눈을 덮고 있었다. 얼마 후, 종명이가 나를 알아보고는 먼저 저 끝에서 손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마음이 다시금, 두근두근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일이 꼬이고 말았으니... 가장 중요한 자리배치에서 나는 실패하고 만 것이다!!! 종명이의 그 환한 얼굴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던 것도 잠시! 입구 쪽에 앉아있던 중학교 시절 반의 반장이었던 재규가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며 빠르게 이쪽으로 오라며 손짓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랜만에 본 아이들 속에서 티가 나게 저 끝자리에 있는 종명이 쪽으로 향해 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리하여 나는... 그러니까 지금이나 중학교때나 여전히 말이 많고 또 이따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툭툭 무례한 선을 넘어오기가 특징인 반장 재규 옆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재규는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 흔한 인사치례도 생략한채 ‘넌 직장이 어디야?’부터 물어왔다. 나는 쿨내나는 척 그러나 실상은 쿨내에 미치지도 못하며 오히려 쬐잔하기만한 마음의 크기를 숨기듯 이렇게 대꾸하였다.

 

  “얼마 전에 백수 됐어. 나름 이래 봬도 전업 백수랄까.”

 

  손으로 브이자까지 그리며 쿨하게 이야기했는데 내가 앉아있던 쪽의 테이블 분위기가 순간, 싸해졌다... 여기 백수는 없나? 그렇다면 실패군... 작전 변경이다!

 

  “농담이야! 자격증 준비하는게 있어서 잠시 쉬는 중이야...”

 

  그제야 아! 하는 추임새와 함께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하긴 다들 이 나이쯤 되면 그것이 무엇이든 공무원시험을 이루거나, 가정을 이루거나, 하다못해 뭐 이혼이라도 이룬... 무언가를 이룬 나이로 보여지는 나이니까...

 

  동창회라는 건 정말 유미의 말마따마 어딘가 마음에 은근슬쩍 남과 나를 비교 저울질하게 되는 마음이 알게모르게 생겨나는 이상한 모임이었다... 물론 자격지심이 안 생기는 안정적인 직장과, 안정적인 생활에 놓인 친구들은 나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뭐랄까... 그날 어쩐지 계속 겉도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2차로 다들 자리를 슬슬 이동을 하자는 말에 나는 내일 아침 일찍부터 자격증 시험 강의 들을 게 있다며! 후다닥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혼자 괜스레 자격지심에 휩싸여 바보같은 모습으로 빠르게 튀어나와 버린 모양새를 저 먼 치에 서서 종명이가 바라보고 있었다. 종명이는 여전히 따듯한 미소로 멀찍이 서서 내게 입모양으로 ‘왜 이렇게 일찍가’라고 말하며 손 흔들어 주었다. 결국 종명이와는 제대로 된 대화는커녕 인사도 못하고 후다닥 그 자리를 빠져 나온 꼴이 되어져 버린 것이다.

 

  아이들과 멀어져 혼자 걷다 보니 그제야 더욱 까진 발뒤축이 쓰라려 오기 시작하였다. 나중에는 아예 구두 뒤축을 잔뜩 구겨 신어버렸다. 그 구겨진 구두 뒤축이 꼭 지금의 내 모습과 어딘가 모르게 닮은 것만 같았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도 조금은 삐까뻔쩍한 모습으로 종명이와 마주치기를 바라고 또 바라였는데... 이런 후줄근한 마음으로 과연? 누구를 좋아할 수나 있을까 싶어져 내 마음은 급격히 색을 바꾸듯 산뜻한 초록 원피스마저 칙칙한 초록 원피스로 바꾸듯 초라해져갔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방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는 화장을 지우는 것도 영 귀찮아진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잔뜩 늘어진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만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띵동하며 휴대폰으로 새로운 메시지 한 통이 날아들어왔다.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폰 안을 확인해보니 이 늦은 밤까지도 열심히 스팸 문자를 보내는데 열일중인 김미영 팀장의 대출 권유 문자였다. 제기랄...! 아주 제기랄이다!!! 이런 시간까지 헛헛한 사람마음에 소금을 들이부으듯 대출 권유 문자를 보내다니!

 

  나는 정말 만사가 다 귀찮아진 마음으로 그날 초라한 마음을 한 채 화장도 지우지 않고 잠에 스르륵 그렇게 빠져들어가버렸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시간을 확인하다 덜컥 와있는 문자 하나를 보게 되었다.

 

  [왜 그렇게 일찍 나갔어. 오랜만에봐서 이야기라도 나누려고 했는데. 너 시간되는날에 괜찮으면 밥 한번 먹자.]

 

  나는 어젯밤 안 지우고 자서 잔뜩 번져버린 아이라인이 묻은 퀭한 눈으로 그 문자를 읽고! 또 읽고! 또 읽어! 아주 외우다싶이 닳도록 그렇게 빤히! 바라보았다! 정녕, 내게 무슨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 인가!

 

 ******************************

 

  남자 한 명 없던 비루한 인생에 남자들이 단비처럼 내려올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자세를 취하여야 하는가?

 

  다정병에 걸린 듯 따듯하며! 사려 깊은! 나의 첫사랑 종명이와 만나게 된 지 채 얼마가시지도 않아 나는 고슴도치처럼 잔뜩 날이 선 웬 까칠병에 걸린듯한 남자애 하나와 만나게 되었다!

 

  동창회에 다녀온 바로 다음 날, 씻지 않아 잔뜩 보기 흉하게 번져버린 아이라인과 부스스한 머리로 침대에 누워 종명이가 보내온 문자를 바라보며 한호성을 내지르던 나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크게 얻어 맞게 되었다.

 

  “너 또! 화장 안지우고 잔거야? 어떻게 된게 꼭 제 아빠닮아서 게을러빠진거하고는.”

 

  이분으로 말 할 것 같으면 왕년에 잘나갔다는데 그 잘나가고 철 없던 시절 돈 있고 빽 있는 남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제쳐두고 가난하며 홀어머니 모시고 사는 우리 아부지 외모하나만 보고 결혼해 고생 꾀나했다는 뼛속까지 외모지상주의자 이말숙여사 되시겠다! 왜 아침부터 이렇게 슴슴한 짜증을 늘어 놓으시려나 싶어져 안색을 살짜쿵 살펴보니 아무래도 그 왕년에 외모 좀 되셨다는 아부지께서 무언가 또 잘못을 늘어 놓으신 듯 하였다. 아부지로 말할 것 같으면 가난한데다가 심성까지 착해 보증서기가 특기였으며 지금도 누가 돈이라도 꿔 달라고 말하면 지나치지를 못하시는 위인되시겠다...

 

  “왜, 또! 아빠가 이번에는 또 무슨사고를 쳤는데?”

 

  엄마의 눈치를 살짜쿵 살피며 묻자

 

  “잘못은 너가 했지, 내가 흰 빨래랑 검은 빨래 섞어서 내놓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어찌된게 서른이 넘어서도 빨래하나 제 손으로 못하면서...”

 

  뒤에 말들이 끝없이 이어졌으나... 모두 생략한다... 다 담기에는 엄마의 잔소리는 분명 시작점은 있었으나... 끝은 없었으므로... 잔소리 콤보 공격이 이어지고 얼마지나지 않아 엄마의 본론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엄마친구 춘자이모가 이번에 시장에 맞은 편에 떡집을 새로 개업했는데 개업날인 오늘은 엄마가 바빠 들르기가 좀 어려우니 너라도 가서 떡도 팔아주고 인사라고도 대신 하고 오라는 특명아닌 특명이었던 게다. 그리하여 나는 하사받은 명령대로 그렇게 집을 나서 향하게 되었으니...

 

  떡집을 개업한 춘자이모에게 꾸벅 반가운 인사도 나누고 따끈따끈한 떡을 몇 팩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병원에 함께 입원했던 병원동기 삼인방 중 가장 연세가 많았던 옆 침대를 쓰셨던 할머니가 이곳 시장에서 옥수수를 판다고 했던 것이 퍼뜩! 생각나게 되었다! 인사도 할겸 할머니가 파는 옥수수도 사서 집으로 돌아가야지 싶어져 나는 그렇게 할머니가 말해주셨던 시장 안쪽으로 향해 걷게 되었다. 알려주신 위치가 가까워져오자 저 멀리서부터 노릇노릇 고소한 옥수수냄새가 풍겨져왔다. 그리고 냄새와 함께 큼지막하게 ‘마약 옥수수’라고 척하니 써 붙인 옥수수 매대가 보였다.

 

  “할머니!”

 

  할머니를 보자 반가운 마음이 밀려와 아는 채하자 할머니가 그런 나를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게 누구야? 우리 예비손주며느리 왔네!”

 

  할머니는 병원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를 내내 예비손주며느리라고 부르셨었다... 내 통통한 볼살이 딱 예비손주며느릿감 관상이라나 뭐라나... 예비손주며느릿감 같은 관상은 뭐죠?... 몹시도 묻고 싶었지만... 뭐, 어찌 되었든, 어른들이 보시기에 며느릿감 같다는 건 좋은의미 아닌가! 그런데 반가운 마음도 잠시, 할머니 옆으로 웬 수상쩍고도 이상한 놈이 눈썹을 찡그리며 선 채로 나를 쩨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둥글넓적한 여자가 내 아냇감으로 딱이라던 그 여자야?”

 

  뭐지, 어디 이 어린 노무자식이 감히 한지민 헤어를 한 나를 능욕하느냐!!! 아우, 씅질나!!! 그렇다면 너가 그 바로 할머니가 입이 닳도록 칭찬하고 자랑하던 할머니 손주더냐?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런데 이놈 가만 보니 삐딱한 자세로 서서 피어씽한 새까만 눈썹으로 마치 똥강아지가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경계하는 눈빛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노무 자식! 이제보니 아주 한낱 어린노무 똥강아지구먼!

 

  나는 그 어린 똥강아지녀석을 싹 무시하며! 할머니에게 세상 친절하게 나의 하얀 건치들을 훤히 내보이는 옥수수를 가르키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할머니 저 찐 마약옥수수 한 묶음 주세요!”

 

  그런데 이 똥강아지 녀석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그런 나를 보며 이렇게 할머니 귀에다 대고 쏙닥쏙닥거리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 방금 봤지...? 순간 얼굴 표정 싹 바꾸는 거. 할머니가 이렇게 세상 물정에 사람 볼 줄을 가만 모르니까 내가 맨날 걱정하는거아냐...”

 

  귓속말인 듯 귓속말 아닌 귓속말처럼! 아주 다 들리게 말하는 거 보니 너 아주 일부러 계획적으로 그랬지?하고 멱살을 붙잡고 이리저리 흔들며 묻고 싶었지만... 차마, 할머니가 보시는 앞이라 꾸역 참았다...

 

  나는 그 녀석을 무시한 채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들었다. 그때 였다.

 

  “아휴, 됐어. 이번에는 공짜로 줄테니까 앞으로 오다가다 자주 와! 알겠지? 우리 예비손주며느리 삼으면 참 좋겠는데.”

 

  나는 할머니에게 그럴수는 없다면 손 사례쳤다. 공짜라니! 그런데 또 그 와중에 그 녀석이 얄밉게 할머니 옆구리를 툭툭 치며 얼른 돈을 받으라고 손짓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할머니는 내가 건네는 돈을 결국 한사코 받지않으셨다. 나는 괜스레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함께 밀려와 방금 떡집에서 샀던 그 따끈따근한 춘자이모네집 신상 떡을 할머니 손에 꼭 쥐어드렸다.

 

  “아이고, 뭘 이런걸 주고그래. 고마워! 꼭 자주와! 우리 집 마약 옥수수 맛이 아주 끝내주니까 결국 또 들르게 될거야!”

 

  할머니는 나름 옥수수 부심이 가득한 옥수수계의 달인인 듯 하였다. 그 와중에 엉뚱하게도 내 가상 남편이 되었던 그녀석은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할머니 옆에 삐딱하게 서서 나를 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뭐,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어차피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놈이니 쭉! 무시해야지!

 

  그러나 왜 일까! 늘 인생은 뜻 밖으로 흘러가고, 뜻 밖의 순간을 맞아 변화되는 법! 나는 그때까지도 몰랐다. 그 까칠까칠 고슴도치마냥 까칠병에 걸린 그 놈과 또 다시 얽히고설키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도 아주 찐득하게!!!

 
작가의 말
 

 화요일도 힘차고 즐겁게 시작하시기를 바래요 독자님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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