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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극악 교회
작가 : 멍덕꿀
작품등록일 : 2019.9.1

악이 상식이 된 사회에서 끝까지 선을 수호하며 살아가는 자들의 이야기

 
2장 7화
작성일 : 19-09-01 23:11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9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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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 7화

 

 

 

 

  그 순간 세 사람의 대화를 끊고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런 방문자는 대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한 목소리로 “목사님, 목사님.”하고 연달아 불렀다. 예승아는 순간 이세은과 눈을 맞췄다가 긴장된 목소리로 문 너머의 전도사에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전도사는 벌컥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섰고, 흥분된 얼굴로 침을 튀기며 소식을 전했다.

 

 

 

 

  “지금 동화방송에서 속보가 터졌어요. 극악 교회에서 한 신자가 자살했답니다.”

 

 

 

 

 

 

 

 예승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목소리를 높였다.

 

 

 

 

 

 

 

 “자살이라뇨?”

 

 

 

 

 

 

 

 “신원을 밝힐 수 없지만 믿을만한 목격자의 제보가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사망자는 예성 교회의 한치윤 신자랍니다.”

 

 

 

 

 

 

 

 “자살이 확실하답니까?”

 

 

 

 

 

 

 

 “동화방송 측에서는 기정사실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어요.”

 

 

 

 

 

 

 

 그 때에야 상황을 인지하고 이성을 되찾은 이세은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한치윤 신자가 발견된 장소는요?”

 

 

 

 

 

 

 

 전도사는 자신이 잘못들은 건지 의심하며 “장소요?”하고 되물었다.

 

 

 

 

 

 

 

 “네. 혹시 기업 홍보관에서 발견되었나요?”

 

 

 

 

 

 

 

 이세은은 영성 훈련실에서 창문 너머로 보았던 건물과 벽화를 떠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요. 무려 신전에서 발견되었답니다.”

 

 

 

 

 

 

 

 이세은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그럴 리가 없는데…….”하고 다급하게 눈을 굴렸지만 예승아는 그녀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전도사에게 데몬을 모신 그 신전이 맞는지 확인했다. 전도사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크게 한 번 끄덕였다.

 

 

 

 

 

 

 

 “하여튼 이번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워졌어요. 감히 신성한 신전에 어떻게 평범한 신자가 보안을 뚫고 출입할 수 있었는지, 그 신자가 자살한 이유는 무엇인지, 제보자는 또 누구인지 각 언론사에서 떠들어대느라 바빠요.”

 

 

 

 

 

 

 

 “혹시 신전에도 벽화가 있나요?”

 

 

 

 

 

 

 

 이세은은 미련이 가득한 눈빛으로 전도사를 바라보았고 전도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했다.

 

 

 

 

 

 

 

 “벽화 말이에요, 벽화.”

 

 

 

 

 

 

 

 예승아는 걱정 섞인 눈빛으로 이세은을 달래기 시작했다.

 

 

 

 

 

 

 

 “일단 진정해요. 이런 일일수록 침착하게 대처해야 해요.”

 

 

 

 

 

 

 

 그러나 이세은은 여전히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신혜령은 침착한 손길로 이세은을 다독이며 차분하게 물었다.

 

 

 

 

 

 

 

 “신전에 벽화가 있는지 왜 물어본 거예요?”

 

 

 

 

 

 

 

 “범인은 자신의 의도를 많은 사람들이 알아채기를 원하고 있어요. 7계명의 순서대로 살인을 저지르면서 그 장소 또한 계획적으로 선택하고 있다고요. 그러니까 분명 세 번째 살인을 저지른 장소에도 탐욕을 묘사한 벽화가 있을 거예요.”

 

 

 

 

 

 

 

 신혜령은 안쓰러운 눈길로 이세은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그녀를 설득했다.

 

 

 

 

 

 

 

 “무슨 뜻인지 잘 알겠어요. 하지만 이번엔 타살이 아니라 자살 사건이에요. 이 일은 이전의 사건과 별개로 보는 게 타당해요.”

 

 

 

 

 

 

 

 이세은은 시무룩해지며 입을 다물었다. 신혜령은 예승아 목사를 바라보며 씩씩하게 말했다.

 

 

 

 

 

 

 

 “이번 일은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일단 사태를 지켜보는 게 좋겠어요. 섣불리 나섰다가 화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예승아는 말없이 전도사를 바라보며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전도사는 머뭇거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힘들 것 같습니다.”

 

 

 

 

 

 

 

 예승아는 불안한 눈초리로 전도사의 입을 바라보았고 전도사는 낮은 목소리로 조용조용 말했다.

 

 

 

 

 

 

 

 “극강 교회가 이번 일로 데몬교 내의 분란을 조장하고 있어요. 극악 교회의 지위 체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면서 반동에 가담할 교회를 모으고 있습니다.”

 

 

 

 

 

 

 

 “분위기는 대체로 어때요?”

 

 

 

 

 

 

 

 “극강 교회의 의도대로 일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자살자를 배출한 교회에게 계속 데몬교의 통솔권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게 여론이에요.”

 

 

 

 

 

 

 

 이세은은 어느 새 전도사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고, 머릿속에 궁금증이 생기자마자 불쑥 질문을 던졌다.

 

 

 

 

 

 

 

 “겨우 신자 한 명이 자살한 것뿐인데, 극악 교회가 큰 타격을 입을까요?”

 

 

 

 

 

 

 

 전도사가 이에 대답하려는데 신혜령이 한 발 빨리 입을 열었다.

 

 

 

 

 

 

 

 “악이야말로 사람의 생존을 보장하는 최고이자 최적의 수단이라는 게 데몬교의 지론이었는데, 데몬교의 신자가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 골수 신자라면 모를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교인이 된 사람들에게는 영 껄끄러운 일이죠. 신자들의 신앙이 약화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데몬교로서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어요.”

 

 

 

 

 

 

 

 신혜령과 눈이 마주치자 전도사가 뒷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벌써 눈에 보이고 있습니다. 데몬교의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데몬교의 오류를 주장하고 있고, 그 테두리는 점차 데몬교의 안으로 좁혀지고 있어요. 아직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뉴스만으로도 당장에 이탈하는 신자가 발생하는 처지이니 교회마다 극악 교회에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것도 퍽 공격적이고 성급하게 말이죠.”

 

 

 

 

 

 

 

 예승아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반짝 빛내며 전도사에게 물었다.

 

 

 

 

 

 

 

 “아까 가장 강력하게 비난의 목소리를 낸 게 극강 교회라고 했죠?”

 

 

 

 

 

 

 

 “네. 맞아요.”

 

 

 

 

 

 

 

 때에 맞지 않게 활기찬 예승아의 목소리가 의아하다는 듯 전도사는 얼떨한 상태로 긍정의 대답을 했다. 이세은 또한 예승아의 태도에 호기심이 솟아서 기다리지 못하고 물음을 던졌다.

 

 

 

 

 

 

 

 “왜요? 극강 교회가 어떤 교회인데요?”

 

 

 

 

 

 

 

 “이거, 어쩌면 우리에게도 기회일지 몰라요. 인공지능까지 동원하여 검증한 데몬교의 명제가 완벽한 오류라는 걸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는 기회요. 전도사님, 우리 교회도 곧 공식적인 성명을 발표해야 겠어요. 데몬교의 기품을 더럽히고 악의 권위에 먹칠한 극악 교회를 규탄하는 성명서를요.”

 

 

 

 

 

 

 

 “그럼, 극강 교회의 저급한 선동에 동조하겠다는 뜻이세요?”

 

 

 

 

 

 

 

 예승아는 더없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힘주어 대답했다.

 

 

 

 

 

 

 

 “네. 기꺼이요.”

 

 

 

 

 *

 

 

 

 

  자살 사건의 전모를 정확히 규명하라는 여론이 날로 거세지는 가운데 극악 교회는 여전히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그 와중에 이세은은 최태준의 지시에 따라 연옥 교회를 떠나 한치윤이 소속되었던 예성 교회로 이동했는데, 극악 교회 못지않게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극성스러운 기자들은 예성 교회 앞에 진을 치고 앉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을 붙잡고 한치윤에 관한 정보를 캐내려고 헐떡거렸다. 이세은은 득시글거리는 사람들을 뚫고 겨우 예성 교회의 출입문을 통과했다.

 

 

 

 

 

 

 

 그녀는 교회 밖의 풍경보다 안에서 마주한 목회자들의 얼굴을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어둠을 뒤집어쓴 듯 침울한 낯빛으로 그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서로의 눈에 담긴 깊은 절망을 마주하는 순간 심연에 갇혀 두 번 다시 빠져나오지 못할 거라는 저주를 받은 사람들, 이세은이 보기엔 딱 그랬다.

 

 

 

 

 

 

 

 예성 교회의 위임 목사인 곽시양은 초췌한 몰골로 이세은을 맞았다. 밤낮으로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얼굴이라고 이세은은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오로지 상황에서 오는 정신적인 압박이 만들어낸 모습이란 걸 잘 알기에 곽시양이 한없이 안쓰럽게만 보였다. 곽시양은 자신의 삶을 체념한 사람마냥 어떤 감정도 담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로 인사말을 건넸다.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조촐한 환영식마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세은이 뭐라 대꾸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곽시양이 외워 놓은 대사를 읊듯 무표정한 말들을 기계적으로 뱉어냈다.

 

 

 

 

 

 

 

 “저희 소속 신자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면책이 되지 않는다는 점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사태를 되돌릴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하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통한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극악 교회, 아니 데몬교 전체에 입힌 피해를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곽시양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기대도 희망도 담겨있지 않았다. 줄줄이 읊는 말들은 죽음을 목전에 둔 자의 최후의 변론 그 자체였다. 그 순간 곽시양의 말을 가로막고 교회 밖에서 거친 고함이 날아들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목소리가 다발로 묶여 있었다.

 

 

 

 

 

 

 

 “곽시양은 물러나라! 물러나라! 위장 교회 타도하자! 타도하자!”

 

 

 

 

 

 

 

 금방이라도 교회 안으로 쳐들어올 기세의 함성이었다. 함성이 말로 구분되는 순간은 잠시였고 이후에는 전혀 정돈되지 않은 짐승의 포효로 들릴 뿐이었다. 곽시양은 눈을 감은 채 대낮에 울려 퍼지는 격렬한 비난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언뜻 보면 난폭한 시끌벅적함이 그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 듯 보였으나 그의 속눈썹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세은은 한 남자가 온힘을 다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자신의 속눈썹이라는 것에 묘한 애틋함을 느꼈다.

 

 

 

 

 

 

 

 예성 교회에서 그런 신자가 나왔다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취급되었다. 예성 교회를 매도하는 사람들은 곽시양이 애초에 데몬교를 농락하려는 흑심을 품고 작정하고 모두를 속였다고 생각했다고 여겼다. 그런 자에게 놀아난 구의민도 구의민이지만 애초 이 사단을 낸 곽시양을 향한 분개는 도저히 사그라질 기미 없이 활활 타오르기만 했다. 현재 시점에서 곽시양은 물론 예성 교회와 연관된 이들의 미래는 뻔했다. 그들에겐 다른 여지없이 몰락의 길만 있을 뿐이었다.

 

 

 

 

 

 

 

 이세은은 눈앞에 서 있는 파리한 남자의 낯을 보며 동정심이 솟으려는 걸 굳이 그 물꼬를 틀어막아버렸다. 지금의 처지가 어떠하든 곽시양은 데몬교의 충실한 신하였다. 한치윤을 성경 학교에 보낸 것도 일신의 영달을 꾀하고 구의민에게 갖다 바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세은의 마음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잠시나마 동정을 느꼈다는 것이 곽시양에게 속은 것 같아 분했고, 그 분노를 곱씹을수록 눈앞의 곽시양이 소름끼치도록 가증스러웠다. 그녀는 예성 교회를 둘러싼 사람들이 폭동이라도 일으켜서 당장 안으로 밀어닥쳤으면 하는 바람으로 군중이 외치는 구호에 가만히 귀 기울였다. 그들은 잔뜩 성난 상태였으나 그렇다고 교회 안까지 밀고 들어올 확신이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예민한 직감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냉정한 눈으로 다시 곽시양을 바라보았다. 그를 그대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내버려두고 떠나고 싶었고, 그러자면 최태준의 전언을 그에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 말은 곽시양에게 재기의 기회가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예성 교회의 통솔자라는 누더기 같은 이력을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까지 벗어던질 수 없을 것이다,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영원히 그 어떤 무리에도 끼지 못하고 배돌며 살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누렸던 부귀영화는 정확히 정반대의 모습으로 당신을 찾아가 삶을 더없이 비천하고 남루하게 만들 것이다……. 이세은은 당장이라도 곽시양의 귀에 박아주고 싶은 그 말들을 끝내 꺼내지 않았다. 최태준의 말을 전하지 않는다한들 얼마 못가 금세 들통 날 것이라는 걸, 이세은은 이성을 가볍게 일깨우는 것만으로도 인지할 수 있었고 그 정도면 스스로의 충동을 잠재우고 최선의 선택을 내리기에 충분했다. 이세은은 못마땅한 기색이 드러나지 않도록 차분하고 침착한 물살을 타며 자신의 말을 흘려보냈다.

 

 

 

 

 

 

 

 “저의 방문은 질책이나 처벌, 단죄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최태준 장로님께서는 이번 일은 데몬교 내에 혼란을 초래하기 위해 누군가 꾸민 일일 뿐, 한치윤 신자는 절대 자살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곽시양은 눈을 크게 뜨며 이세은의 팔뚝을 붙잡았다.

 

 

 

 

 

 

 

 “바,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러니까, 자살자가 없었다, 그 뜻입니까?”

 

 

 

 

 

 

 

 이세은은 불쾌한 듯 곽시양의 손길을 떨쳐내며 미간을 좁혔지만 곽시양은 눈 먼 사람처럼 앞을 더듬으며 다시 이세은의 팔목을 꽉 붙들었다. 이세은은 그의 악력에서 징그럽도록 강력한 욕망, 어쩌면 가장 소박하고 기본적인 욕망, 살고 싶다는 강력한 목소리를 생생히 느꼈다.

 

 

 

 

 

 

 

 “이제부터 목사님이 하실 일은, 한치윤 신자는 그 누구보다 유능한 인재였으며 자살을 선택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삶의 욕망이 강력했던 인물이라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치윤 신자와 자살을 연결 짓는 모든 이들에게 단호하고도 엄격하게 대응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절대 사실이 아니라는 확신을 드러내어 잘못된 소문에 휘둘리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의심을 품게 해야 한다고 최태준 장로님께서는 단단히 지시하셨습니다.”

 

 

 

 

 

 

 

 “그게 전부……인 거죠? 다른 말씀은 없으셨죠?”

 

 

 

 

 

 

 

 “네.”

 

 

 

 

 

 

 

 황폐해 보이기까지 했던 곽시양의 얼굴에서는 서서히 파릇파릇한 생기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꼼짝없이 막다른길에 다다랐던 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곽시양은 좀 전의 자포자기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짧은 시간동안 온갖 욕심을 발동시켰다. 번득이는 그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이세은은 그의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잇속이 빤히 보이는 것 같았다. 곽시양은 좀 더 확실한 미래를 보장받고 싶었는지 벌써부터 아부를 떨기 시작했다.

 

 

 

 

 

 

 

 “최태준 장로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장로님께 꼭 좀 전해주십시오. 이 몸이 살아있는 한 끝까지 장로님을 따르겠다고 말입니다.”

 

 

 

 

 

 

 

 “장로님께서 들으시면 참 기뻐하시겠네요.”

 

 

 

 

 

 

 

 이세은은 비꼬는 듯 아닌 듯 오묘한 어조로 대답한 뒤 들키지 않게 팔뚝에 돋은 소름을 잠재웠다. 그것은 곽시양이 끔찍해서도 더욱이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최태준 장로가 예고한 반응을 곽시양이 그대로 보인 것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마침 장로님을 위해 목사님께서 해주실 것이 있습니다.”

 

 

 

 

 

 

 

 “뭐든지 말씀만 해주십시오.”

 

 

 

 

 

 

 

 “한치윤 신자가 성경 학교에 선발된 과정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면 모두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곽시양은 뭔가 냄새가 난다는 듯 코허리에 한 번 힘을 주었다 풀었다.

 

 

 

 

 

 

 

 “장로님은 어디까지 알고 계시죠?”

 

 

 

 

 

 

 

 곽시양이 자신을 떠보고 있다는 걸 이세은이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자신에게도 남은 패가 있다는 걸 알아채고 재빠르게 태세를 바꾸는 그의 약삭빠른 기질을 확인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아니, 저야 뭘 말씀드려야 하는지 잘 모르니 그러는 것 아닙니까.”

 

 

 

 

 

 

 

 “알고 있는 걸 모두 말씀하시면 됩니다. 설마 입맛대로 골라낼 생각이셨습니까?”

 

 

 

 

 

 

 

 “제가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곽시양은 능청을 떨며 슬쩍 속내를 흘렸다.

 

 

 

 

 

 

 

 “그게 아니라 구의민 목사님께서도 따로 당부하신 게 있어서요. 주시는 대로 받아놓고 이래도 되는 건지, 참……. 저로서도 입장이 난처할 따름입니다.”

 

 

 

 

 

 

 

 그는 과장된 한숨을 푹푹 쉬며 보란 듯 고뇌하는 시늉을 했다. 이세은은 어서 대화를 끝내고 싶은 마음에 한순간 인내심을 부러뜨리고 벌컥 화를 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구의민 목사의 지시만 따를 생각을 하십니까? 저라고 아무것도 모르고 여기에 온 줄 아십니까? 구의민 목사의 음모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곽 목사님 또한 비처럼 칼이 쏟아지는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른단 말입니까?”

 

 

 

 

 

 

 

 곽시양은 흠칫 놀라다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는 여유로운 척 제자리를 어슬렁거리며 이세은의 날선 눈빛을 끝까지 모른 척 했다. 슬그머니 상황을 넘기려는 그의 뻔뻔함에 이세은은 더욱 격앙되어 꾹 누르고 있던 힘을 풀고 속에서만 무자맥질 치던 말들을 입 밖으로 풀어놓았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조차 욕망을 채우려든단 말입니까! 벌써 세 인생이 세상에서 지워졌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낱낱이 빛을 비춰도 시원찮을 판에 그걸 쥐고 거래를 하려 들다니, 목사님은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곽시양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풀이 죽기는커녕 오히려 흥미진진한 소리를 들은 듯 입술을 씰룩거리며 파안대소가 튀어나오려는 걸 틀어막았다. 이세은은 그의 반응이 경악스러워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데 그녀가 경멸스러운 시선을 노골적으로 쏘아댈수록 곽시양의 표정은 더욱 신명나는 쪽으로 변해갔고 그녀는 상대를 노려볼 의욕조차 잃어버렸다. 곽시양은 그녀의 얼굴을 거리낌 없이 똑바로 보다가, 두통이라도 겪는 듯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다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서서 얼굴에 소리 없이 기괴한 웃음을 그리다가, 온몸의 관절을 꺾을 듯 몸을 뒤틀며 폭소를 터트리다가, 침이 목구멍에 걸렸는지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칵칵거렸다. 이세은은 그의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징그러움을 넘어선 역겨움을 느꼈고 그와 어떠한 대화도 통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눈앞의 사람과 어떠한 언어로도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이 주는 좌절은 뒤이어 찾아오는 감정에 비하면 더없이 짧았다. 좌절이 비켜선 자리에는 사흘을 내리 굶은 육식동물을 맨몸으로 마주한 것 같은, 어떠한 대책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두려움이 턱 자리 잡았다. 곽시양은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처럼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입을 놀렸다.

 

 

 

 

 

 

 

 “이거 원. 듣다 보니 기분이 이상해서 곰곰 따져보니 재미있는 생각이 퍼뜩 떠오르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세은 신자님의 발언은 도무지 데몬교의 교리와 부합하지 않거든요. 방금 내뱉은 말들이 꽤 위험했다는 건 잘 알고 계시죠?”

 

 

 

 

 

 

 

 “무슨 뜻이죠?”

 

 

 

 

 

 

 

 “뭐가 문제인지 자각하지도 못한단 말입니까? 이세은 신자님은 좀 전에 세 신자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건 연기가 전혀 섞이지 않은 진심이었어요!”

 

 

 

 

 

 

 

 “그게 왜…….”

 

 

 

 

 

 

 

 “물론 생명을 잃는 건 안타까운 일이죠. 암요. 그러나 있느니만 못하는 존재가 소멸 됐을 때는 얘기가 다른 법이죠. 신자님께서 분명 말씀하셨죠? 저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아느냐고. 그럼 잘 아실 것 아닙니까. 죽은 자들이 얼마나 데몬교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들이었는지. 아니 단순히 데몬교에만 피해를 끼치는 게 아니죠. 악의 번성을 가로막는 사회의 장애물이었어요. 대 인류적으로 민폐를 끼쳤다, 이 말입니다.”

 

 

 

 

 

 

 

 곽시양은 말하면서 서서히 이세은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이세은은 본능적으로 조금씩 뒷걸음질 쳤고 곽시양은 그 모습을 즐기는 듯 뻔뻔하게 그녀에게 바싹 다가갔다. 그는 허공을 비스듬히 올려다보며 손바닥으로 판판한 제 이마를 탁 쳤다.

 

 

 

 

 

 

 

 “이쯤 되니 감이 탁 오더라고요. 이세은 신자님 또한 부적격자이면서 성경 학교에 불려갔다는 걸.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아시죠?”

 

 

 

 

 

 

 

 그는 눈썹을 이마의 중간까지 들어 올렸다가 탁 놓았다. 이세은은 눈에 실핏줄을 세우며 그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안간힘을 쓰며 맞서고 있는 그녀가 하찮다는 듯 곽시양은 쯧쯧 혀를 차며 비웃었다. 진한 경멸이 낳은 비웃음이었다.

 

 

 

 

 

 

 

 “나 참. 기껏 곧 쓰고 버려질 실험체 주제에 누굴 구원하겠다고 사자 행세를 하고 다니는지. 허허.”

 

 

 

 

 

 

 

 이세은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되는 대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당황하다 못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그 와중에도 곽시양 앞에서 절절매고 싶지 않다는 소원만은 강렬했다.

 

 

 

 

 

 

 

 “제 신세는 그쪽이 신경 쓸 일이 전혀 아닙니다. 그리고 제 말에 어폐가 있든 말든 이번 살해자들을 안타까이 여기고 살해자를 혐오하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한 감정입니다. 성분이 어찌 되었든…….”

 

 

 

 

 

 

 

 이세은은 순간 자신이 데몬교 골수들이나 쓸 법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흠칫 놀라다가 뒤따라오는 말에 얼른 속도를 붙여 자신의 망설임을 지워버렸다.

 

 

 

 

 

 

 

 “그 사람들은 구의민 목사님이 손수 골라내신 종자들입니다. 살리든 죽이든 목사님의 손에 달려 있다 그 말입니다. 고로 살인자는 목사님의 사유 재산을 자의적으로 처리한 것과 다름없으며, 그러니까…….”

 

 

 

 

 

 

 

 곽시양은 듣기 싫다는 듯 그녀에게서 아예 등을 내보이며 성의 없이 말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치윤과 관련된 자료는 제가 최태준 장로님께 직접 전송하겠습니다. 신자님을 못 믿겠다는 건 아니고요. 솔직히 신자님은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즐기기에도 바쁘시지 않겠어요? 사정을 빤히 알아봤자 우울하기만 할 테고…….”

 

 

 

 

 

 

 

 거기까지가 곽시양이 출입문으로 향하면서 내뱉은 말이었다. 이세은은 수십 가닥의 감정들이 자신을 휘몰아치는 것을 무방비 상태로 맞으며 닫힌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녀는 감정 하나하나를 감별해내려 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명명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잽싸게 낚아채려 해도 죄다 날쌔게 그녀의 손을 스쳐가기만 했다. 그녀는 빈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찰나의 감촉을 되작거렸다. 그조차 분명하진 않았지만 그나마 가까운 정의를 내리자면 가장 먼저 떠오른 느낌은 패배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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