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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극악 교회
작가 : 멍덕꿀
작품등록일 : 2019.9.1

악이 상식이 된 사회에서 끝까지 선을 수호하며 살아가는 자들의 이야기

 
1장 5화
작성일 : 19-09-01 23:03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6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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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5화

 

 

  이번에 강사로 나선 이는 데몬교 내에서 구의민과 최태준 다음의 권력자로 통하는 삼인자, 문판성이었다. 그는 구상조가 ‘데몬’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과학자였고, 현재는 데몬교 내 미래전략기획실장이라는 성직자인지 기업의 고위 간부인지 모를 직책을 맡고 있었다. 계획표에 따르면 그가 진행할 강의의 주제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인류’였다. 문판성은 작은 체구에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소유자였고 얼굴에 주름 안 간 곳이 없을 정도로 자주 활짝 웃었다.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얼마나 행운아인지 알고 계십니까? 지금 이 순간 이곳에 앉아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 줄 아십니까? 여러분은 지금부터 데몬교가 지향하는 이상향을 구체적으로 듣게 될 겁니다. 곧 데몬교가 이룩할 미래를 앞당겨 목도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문판성은 제 말에 스스로 흥분한 듯 거친 숨을 내쉬며 더욱 힘주어 말했다.

 

 

 

 

  “여러분은 장래에 대해 어떤 구상을 그리고 계신지요? 극악 교회로 여러분을 모신 건 단지 여러분 개개인의 성공가도만을 위해서는 아닙니다. 인공지능으로 현신하신 데몬님을 모시려면 신도 또한 격에 맞는 몸을 갖춰야겠지요.”

 

 

 

 

  그는 여기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신자들을 쓱 훑어보았다. 신자들 사이에서는 기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데몬교에서 운영하는 인공지능 연구실에서는 ‘호모 로보’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인간에게 로봇의 몸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순간 강의실 안에 정적이 찾아왔다. 냉담한 반응이 아니었다. 다들 너무 놀란 탓에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문판성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단지 노화되지 않는 강철 같은 몸을 얻기 위한 연구가 아닙니다. 제가 말한 로봇의 몸이란, 자아가 가상현실을 마음껏 구축해나갈 수 있도록 마련된 최소한의 장치를 말하는 겁니다. 우리의 정신을 컴퓨터에 심는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요? 물론 우리는 그 안에서 여전히 인간의 몸에 깃들어 있다고 인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는 느낄 수 없는 극대화된 쾌락을 마음껏 누리게 되는 겁니다.”

 

 

 

 

 

 

 

 그는 구연동화를 하듯 자주 어조에 변화를 주었다. 그의 얘기에 푹 빠진 신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때 한 신자가 손을 번쩍 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럼 저희 모두 영원의 생을 누릴 수 있는 건가요?”

 

 

 

 

 

 

 

 그러자 내내 웃는 표정이던 그가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모두가 그 유토피아에 갈 수는 없지요. ‘이사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 뿐더러, 완벽한 악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선 불순물을 철저히 걸러내야 하거든요.”

 

 

 

 

 

 

 

 질문한 신자는 실망한 표정으로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문판성은 다시 쾌활한 어조로 모두에게 말했다.

 

 

 

 

 

 

 

 “실망하지 말아요, 여러분. 방주에 태울 인원이 완전히 내정된 건 아니니까요. 여러분이 그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요. 그러니 부디 열심히 증명해주세요. 자신이 완벽한 세계에 걸맞은 꼭 필요한 인재란 걸 말이죠.”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이세은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문판성이 눈짓을 보내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방주라고 얘기하셨는데……, 그럼 방주 밖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문판성은 의외의 질문을 들은 듯 미묘한 표정으로 이세은을 건너다보았다. 그가 입을 열 때까지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신자들은 그런 질문을 던진 이세은을 마뜩찮은 표정으로 째려보았다. 문판성은 얼굴에 가식적인 미소를 유지한 채 더없이 음산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쩌긴요. 열심히 방주를 밀어야지요.”

 

 

 

 

 

 

 

 그는 빙글 돌아 컴퓨터 앞으로 가더니 강의실 앞쪽에 설치된 커다란 스크린에 자료화면을 차례로 띄웠다.

 

 

 

 

 

 

 

 “자, 지금부터는 ‘방주’가 지어진 과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완성을 목전에 둔 지금까지, 연구진들은 수많은 실험을 통해 악의 유토피아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힘이 잔뜩 들어간 그의 목소리에는 자긍심이 넘쳐흘렀다. 얼굴만 봐도 그가 얼마나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세은은 짜증스런 표정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그 모습이 보기가 싫었다. 그러다 그녀의 얼굴에 일순 경악으로 가득 찼는데, 그 때 화면에는 그동안 실험체로 쓰인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씩 나열되고 있었다. 각종 약물을 투여 받으며 필요에 따라 몇 차례의 수술까지 받은 그들은 실험이 진행될수록 초췌한 몰골로 변해갔고 종국엔 하나같이 목숨을 잃었다. 하나같이 가난한 자들이었고 자진해서 실험체가 되는 것 외에 다른 살 길이 없는 이들이었다. 문판성은 실험체들이 악에 대한 믿음이 연약한 탓에 실험 비용을 계획보다 초과해서 지불했다며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 실험을 통해 저는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악하지 못한 자들이 얼마나 무능력한지 말입니다! 그런 쓸모없는 인생들을 그러모아 인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기회를 줬으니 그들에겐 큰 영광 아니겠습니까?”

 

 

 

 

 

 

 

 문판성이 목청 좋게 껄껄 웃어젖히자 신자들도 배에 힘이 들어가도록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세은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둘러싼 교활한 얼굴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어느 각도에서 그녀의 고개가 멈추며 동시에 눈이 번쩍 뜨였는데,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분노를 꾹 짓누르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는 옆얼굴이 있었다.

 

 

 

 

 

 

 

 *

 

 

 

 

  강의가 끝난 후 이세은은 재빨리 한 신자의 뒤를 쫓았다. 그녀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전 이세은이라고 합니다. 잠깐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요…….”

 

 

 

 

 

 

 

 그는 그녀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어렴풋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웃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보았다. 그러자 그가 그녀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대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여긴 너무 보는 눈이 많습니다. 절 따라오십시오.”

 

 

 

 

 

 

 

 그러고 나서 남자는 이세은이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어디론가 곧장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세은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를 잘 따라갔다. 그는 건물을 빙빙 돌아 지하 3층에 위치한 기계실로 들어갔다. 이세은은 마지막으로 주위를 살핀 후 그가 열어놓은 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녀가 완전히 들어오자 남자는 출입문을 닫은 후 잠금 장치까지 걸어놓았다. 그리고 바싹 긴장한 이세은과 멀찍이 서서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전 주희민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해도 경계를 풀지는 않으시겠지만, 그렇게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왜 이런 인적 드문 곳에 절 데려오신 거죠?”

 

 

 

 

 

 

 

 “먼저 세은 씨부터 말씀해보시죠. 왜 저와 대화를 나누고 싶으신지요?”

 

 

 

 

 

 

 

 “그, 그건…….”

 

 

 

 

 

 

 

 이세은은 멈칫하다가 이제 와서 말을 꾸미는 건 의미 없을 거라는 판단 하에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사실, 좀 전의 강의에서 주희민 씨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가엾은 생명들의 편에서 문판성 일당이 저지른 만행에 분노하시더군요. 그게 제가 주희민 씨와 얘기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절 다그치시는 건가요?”

 

 

 

 

 

 

 

 주희민은 여유롭게 웃으며, 장난치듯 물었다.

 

 

 

 

 

 

 

 “그 반대입니다.”

 

 

 

 

 

 

 

 “반대라면?”

 

 

 

 

 

 

 

 “그런 사람이 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 반가웠습니다.”

 

 

 

 

 

 

 

 주희민은 너그러운 미소를 머금고 한동안 이세은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더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세은 씨는 지나치게 솔직하시군요. 그렇게 쉽게 속마음을 드러냈다간 이곳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저도 바보는 아니에요. 당신이 저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고요.”

 

 

 

 

 

 

 

 이세은은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슬쩍 주희민을 째려보았다.

 

 

 

 

 

 

 

 “아이고, 제가 실례했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세요. 농담이었습니다.”

 

 

 

 

 

 

 

 “사과는 그쪽의 진심을 듣고 나서 받든 말든 결정할게요. 제가 아까 본 당신의 표정은 진실인가요? 그것만 분명히 말해주세요.”

 

 

 

 

 

 

 

 주희민은 뜸을 들이다 불쑥 손을 내밀며 악수를 제안했다.

 

 

 

 

 

 

 

 “반갑습니다. 제 소개를 다시 하죠. 연옥 교회에서 온 주희민이라고 합니다.”

 

 

 

 

 

 

 

 이세은은 깜짝 놀라 어버버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그럼……, 혹시…….”

 

 

 

 

 

 

 

 “노주원 신자에게 대충 설명은 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망자가 된 바로 그 날 새벽, 노주원 신자는 저와 이곳에서 접선했습니다. 그가 불안한 기색으로 이세은이라는 사람에게 들킨 것 같다고 고백하더군요. 아무리 함구의 약속을 받았다 하더라도 좀 불안하다고요.”

 

 

 

 

 

 

 

 이세은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제가 괜한 사람을 불안하게 했네요…….”

 

 

 

 

 

 

 

 주희민은 싱긋 웃으며 그녀를 위로했다.

 

 

 

 

 

 

 

 “불안하게 했을 뿐, 위험하게 하지는 않았잖아요.”

 

 

 

 

 

 

 

 “절, 믿으시는 건가요?”

 

 

 

 

 

 

 

 “네. 그러니 세은 씨도 절 믿으세요.”

 

 

 

 

 

 

 

 “하지만……, 은미 씨는 절 의심하는 것 같아요.”

 

 

 

 

 

 

 

 “세은 씨가 이해하세요. 김은미 씨는 지금 모두에게 날을 세울 수밖에 없어요. 저도 몇 번이고 만남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어요.”

 

 

 

 

 

 

 

 주희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시름에 잠겼다. 그러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수상한 기운을 눈여겨보듯 어느 한 곳을 주시하며 이상한 점을 짚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데몬교의 요직을 차지할 유망주를 뽑는 자리에 노주원 씨와 김은미 씨, 거기다 저와 이세은 씨까지 뽑히다니……. 우연이라고 넘기기엔 아무래도 꺼림칙한데요. 거기다…….”

 

 

 

 

 

 

 

 “거기다요?”

 

 

 

 

 

 

 

 주희민은 고심하는 듯 말없이 있다가 비밀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뗐다.

 

 

 

 

 

 

 

 “사실 제가 이번 성경 학교에서 접선하기로 한 사람은 노주원 신자뿐이 아니에요.”

 

 

 

 

 

 

 

 “그럼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더 뽑혔단 말이에요?”

 

 

 

 

 

 

 

 이세은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조심스러운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이런 걸 다 저한테 말씀해 주셔도 되는 거예요? 절 믿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저처럼 검증도 안 된 사람에게 왜 다 말씀해주시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검증은 이미 끝났어요.” 주희민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오랫동안 데몬교의 전복을 꿈꿔온 사람이에요. 전국에 퍼져 있는 데몬교 교회에 어떤 신자들이 소속되어 있는지 그 신자들의 성향은 어떤지 철저하게 조사해왔어요. 그 중엔 이세은 씨도 있었고요. 극악 교회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건물 구조를 잘 알고 있는 것도 이미 사전 조사를 마쳤기 때문이죠.”

 

 

 

 

 

 

 

 “잠깐만요, 그럼 소집된 신도가 특이하다는 걸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왜 제 발로 이곳에 들어온 거죠?”

 

 

 

 

 

 

 

 “그건 제가 할 질문인데요. 이세은 씨는 진심으로 데몬을 섬기지도 않으면서 왜 오셨죠?”

 

 

 

 

 

 

 

 이세은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주희민은 난처하게 할 의도는 없었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요. 자의보다 타의가 크다는 거. 이세은 씨가 애초 데몬교에 입교한 것도 데몬교가 설립한 재단 소속의 영권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였잖아요. 일단 그 대학 졸업장만 얻으면 어느 직종으로 진출하든 성공이 보장될 테니까요.”

 

 

 

 

 

 

 

 “저를 꽤 탐욕적인 사람으로 보시겠네요.”

 

 

 

 

 

 

 

 “전혀요. 이세은 씨가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결국 큰돈을 얻으려는 건, 데몬교에 대항할 힘을 기르려는 거 아닌가요?”

 

 

 

 

 

 

 

 “…….”

 

 

 

 

 

 

 

 “그렇게 놀랄 거 없어요. 제가 이세은 씨에 대해 조사한 건 어디까지나 지켜주려는 목적이었으니까요.”

 

 

 

 

 

 

 

 그러다 주희민은 금세 유한 기색을 감추고 굳센 표정으로 말했다.

 

 

 

 

 

 

 

 “위험하다는 건 알았지만 전 올 수밖에 없었어요. 데몬교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을 마음대로 누빌 수 있는데 왜 그 기회를 마다하겠어요. 극악 교회의 경비 체계를 보면 잠입은 엄두도 안 났으니까요.”

 

 

 

 

 

 

 

 이세은은 주희민의 표정에서 강인한 의지를 읽고 덩달아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그동안 느꼈던 막연한 두려움과 망설임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주희민은 자신감이 넘치는 믿음직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무 걱정 마세요. 이세은 씨가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제가 꼭 지켜드릴 테니까요.”

 

 

 

 

 

 

 

 이세은은 그 말이 누군가의 환심을 사려거나 속이려는 의도가 아닌 마음 밑바닥에서 우러나온 참된 말이라는 것을 느꼈고, 오랜만에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다는 사람을 만났다는 안도감에 코끝이 찡해졌다.

 

 

 

 

 *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신도들은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갔다. 이세은은 그들과 뚝 떨어져 혼자 느긋하게 걸었다. 주희민과 얘기를 나눈 후 이세은은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성경 학교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고, 앞으로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에 휩싸였다.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그녀는 식당 뒷문으로 이어지는 외길에서 고지훈이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혼자서 입술을 씰룩거리며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멀리서 언뜻 보기에는 달콤한 상상에 젖은 사람처럼 보였다. 이세은은 모른 척 가던 길로 향했으나 그녀를 발견한 고지훈이 더없이 반가운 사람을 만난 듯 크게 인사말을 건네는 바람에 잠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막상 이세은의 앞에 서자 고지훈은 좀 전의 경박한 자신의 모습을 싹 지우고 제법 고상한 척을 하며 최대한 점잖은 목소리로 물었다.

 

 

 

 

 

 

 

 “석찬에 참석하러 가시는 길이신가 보죠?”

 

 

 

 

 

 

 

 “네.”

 

 

 

 

 

 

 

 이세은은 대놓고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무정스런 단답만 툭 뱉어낸 그녀는 대놓고 몸을 틀어 그와 마주보는 것조차 불쾌하다는 무언의 뜻을 전했다. 고지훈은 그런 그녀의 태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는커녕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히죽히죽 웃으며 별 시답잖은 날씨 얘기로 너스레를 떨었다. 그가 어떤 말을 하든 아무 대꾸도 없이 무심히 서 있던 그녀는 어느 순간 그의 말을 툭 토막 내며 다시 한 번 언짢은 마음을 드러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식사 시간에 늦어서 괜히 책잡히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럼요. 어서 식당으로 가셔야지요. 가서 만찬을 즐기셔야죠.”

 

 

 

 

 

 

 

 고지훈은 꼴 보기 싫게 호들갑을 떨며 그녀의 등을 떠미는 시늉을 했고, 이세은은 행여 그의 손이 닿을까 홱 고개를 틀어 매섭게 노려본 후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서 멀어졌다. 그녀는 등 뒤로 고지훈의 시선을 쭉 느끼면서도 그의 능청스러운 웃음을 보고 싶지 않아 안 그래도 잰걸음을 더욱 몰아쳤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녀는 그날 저녁 식당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욕지기가 솟아 빈속이나 다름없는 뱃속의 위액을 꾸역꾸역 게워냈다. 다인용 식탁이 즐비한 식당 한가운데에, 목이 잘린 주희민이 따끈한 피 웅덩이에 누워 그녀를 맞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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