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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잃어버린 자들
작가 : 라하비
작품등록일 : 2019.7.15


'록 바이러스(Lock Virus)'라는 전염병이 퍼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1부 시계 도시 中>

“오빠.”

잠시 침묵한 티아가 나직하게 나를 불렀다.

“응?”

대답을 하면서도 지금 티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웠다. 혹여나 안가겠다는 대답이 나올까봐 불안했다. 얼굴에 그런 생각이 드러난 것일까. 티아가 머그컵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무릎 위에 올려져있던 내 손을 잡는다. 따듯한 온기가 전해졌다.

“걱정하지 마. 내일 갈 거야.”

“그래.”

“대신에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줘.”

“부탁? 뭔데?”

티아가 싱긋 웃는 걸 보고도 이상하게 안심이 들기는커녕 이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져 손을 빼고 달아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실행하기도 전에 티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게 먼저였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내린 거야. 내일 추첨 용지 넣을 때.”

거기까지 들었을 때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안 돼.”

나는 다급하게 티아의 말을 끊어버렸다. 듣고 싶지 않아. 싫어. 공포와 경악으로 몸의 모든 장기들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를 악물며 처음으로 원망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악바리처럼 악쓰고 티아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에 나는 티아의 손 안에 갇혀있던 내 손을 빼고 어두운 눈빛으로 티아를 향해 다시 한 번 단호하고 절박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안 돼”

널 잃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야. 나는 티아를 노려보았다.

“알아.”

무엇을 아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티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록 바이러스에 걸린 걸 토큰에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나 알아, 오빠.”

티아의 눈에서 작은 빗방울들이 떨어져 내렸다.

.
.
<중략>
.
.

“오빠를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 미래는 내가 결정하고 싶어. 혹시라도”

잠시 말을 끊으며 숨을 고른 티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시설에 가야하는 일은 사양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나로 살고 나로 죽고 싶어.”


 
15화 전조(1)
작성일 : 19-08-27 12:19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10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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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확언에 가슴 한편에 존재하던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된 티아가 기쁘게 대꾸했다. 해사하게 웃는 티아를 뒤로하고, 나는 뚱한 표정의 해운 삼촌을 보았다. 약 3달 만에 보는 삼촌은 토큰에서 정해준 나이 대에 따른 일반 복장과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검은 티의 검은-그가 직접 제작한-멜빵바지를 입고 그와는 반대되는 흰색 가운을 그 위에 걸치고서 카라를 살짝 스치는 길지 않은 머리카락조차도 하나로 묶고 있었다. 삼촌은 치렁치렁하고 거치적거리는 걸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삐죽 솟은 머리꽁지를 볼 때마다 쥐꼬리 스타일이라고 불렀다. 물론 삼촌 앞에서 내뱉으면 정강이를 걷어차일지도 모르는 일인데다가 기분이 나빠서라도 머리를 짧게 자를지도 모르기에 속으로만 불러본 별명이었지만. 이건 티아에게도 비밀로 할 것이다. 동생에게 잔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여하튼 나는 오랜만에 만난 삼촌의 모습이 변함없다는 걸 대놓고 확인하다가 삼촌과 눈이 마주쳤다. 1초란 시간이 흐르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지 해운 삼촌은 곧바로 나를 못마땅한 듯이 쳐다보고는, 멈춰 서서 단단히 팔짱을 꼈다. 기분이 상했나? 나는 일부러 더 밝게 미소 짓고는 이동식 큐브를 나와 티아를 나보다도 한걸음 더 앞에 내세웠다. 티아를 방패막이로 세우려던 건 절대로 아니다. 그저 삼촌이 나보다 티아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먼저 티아를 보면 기분이 풀릴까봐서 그렇다.

 “인사해. 삼촌, 이쪽은 ‘티아’. 티아, 이쪽이 ‘이 해운’ 삼촌이야.”

 윤과 만났을 때처럼 이번에도 내가 중간에서 두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역할을 맡았다.

 “안녕하세요!”

 꾸벅 고개를 숙이며 티아가 밝게 인사를 건넸다. 삼촌이 생겨서 많이 기쁜가 보네.

 “큼! 이 해운이다. 오랜만이네, 너랑은.”

 시종일관 나를 째려보고 있던 삼촌이 티아의 인사에는 표정을 풀고는 조금은 아련한 눈으로 티아를 보았다. 아, 이 온도차 좀 보게. 일단은 끼어들지는 않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기만 했다.

 “저를 아세요?”

 티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삼촌에게 물었다.

 “이 자식, 아니 네 오빠가 역시나 말 안 해줬구나. 나쁜 놈 같으니.”

 내가 보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는데. 나를 흘겨보며 구시렁거리는 삼촌을 보며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확신하시는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에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거지.”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삼촌은 “흥! 퍽이나.” 라고 말하며 콧방귀만 뀌었다. 당신이 얩니까. 나는 티아 눈치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가끔은 삼촌의 정신연령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는 유치하게 굴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삼촌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바보처럼 웃었다. 그냥 내가 하는 행동이 다 마음에 차지 않는 삼촌의 이마에 주름이 생기긴 했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만약 알아챘다면 너한테 그런 소릴 들을 정도는 아니라며 또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그런데요. 진짜 티아 삼촌이세요?”

 문장으로 읽었다면 분명 의문형인 물음이 티아가 말하자 이미 확정인 것처럼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 활짝 웃고 있는 티아의 입은 찢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모르고 있던 가족이 생겼다는 게 그렇게 기쁜가. 조금도 의심을 안 하네. 순진할 정도로 순순히 받아들인 티아가 의아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또 보호자로써 걱정이 되기도 했다. 다음에 아무나 믿으면 안 된다고 교육 좀 해야겠어. 그런 다짐을 하는 동안 삼촌의 얼굴은 분노 때문인지 붉어지고 있었다. 아아. 또 시작인가. 나는 티아의 팔을 잡아 당겨 거리를 좀 떨어뜨렸다. 곧 폭발할 거야.

 “오, 제발! 내가 너희 아빠랑 너랑 같은 검은 머리에 저 놈과 같은 푸른 눈동자이긴 해도 절대, 단 1%로라도 내 피에 너희와 동일한 DNA가 섞여 있지는 않다고!”

 머리를 쥐어뜯는 삼촌의 모습은 솔직히 광인이었다.

 “근데 오빠는 왜 삼촌이라고 불어요?”

 실망감에 아랫입술을 삐죽 내미는 티아의 모습은 불퉁했다.

 “그러니까!”

 그가 답답한지 킹콩처럼 주먹으로 가슴께를 쳐댄다. 저러다 멍들지. 속으로 혀를 찼다. 삼촌의 심정은 잘 알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티아가 보기에는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한 말투였다. 나는 계속해서 성질을 부리는 삼촌을 보며 말릴 타이밍을 쟀다. 이대로 두면 둘 다 기분이 상할 거라는 촉이 오는데. 내가 나서야 될 때군. 나는 목을 가다듬는 소리로 나에게 집중을 시켰다.

 “그건 말이지. 삼촌은 어렸을 때부터 아빠랑 친하셨거든. 그리고 아빠가 삼촌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어. 맞죠, 삼촌? 삼촌도 그러라고 했잖아요?”

 내가 아빠를 들먹였을 때부터 삼촌은 무슨 말이 나올지 짐작한 듯 작은 소리로 “젠장.” 이라고 중얼거렸고, 나는 의기양양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삼촌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을 줄 알았어. 혹시 잡아떼면 어쩌나 했는데.

 “꼬맹이 때 일인데 아직도 기억하다니. 기억력도 좋아요. 아주”

 삼촌은 옛날 일을 들먹인다며 투덜거렸다. 말 안하면 모르는 척 하려고 했구먼. 휴. 아무리 어렸을 때라도 이런 일은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서 다행이야. 다른 패를 꺼내도 좋았을 테지만 사실대로 말하기에는 나도, 해운 삼촌도 그 순간 바로 닭살이 돋아 몸부림칠게 뻔해서 포기했다. 그 사실을 삼촌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투덜대는 걸 끝으로 발광하는 걸 멈춘다.

 “그럼, 삼촌이 맞네요?”

 두 손을 마주 잡은 모습으로 티아가 완벽하게 결론을 짓는다. 이제 빼지도 못하겠네요, 삼촌.

 “휴. 그래 그렇다고 하지 뭐.”

 체념한 말투로 말하며 삼촌이 고개를 푹 숙였다. “누가 남매 아니랄까봐. 하는 말도 똑같네, 아주.”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지만 나도 티아도 삼촌의 푸념을 똑똑히 들었다. 하지만 이로써 앞으로 삼촌을 삼촌이라고 부르는 데에 거릴게 없어졌기에 나는 그의 뒷말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솔직히 그동안에는 삼촌의 위치 때문에 망설인 것도 있었다. 하지만 충동적이긴 해도 오늘 티아를 데리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플램은 보안과 규칙이 많은 곳이고, 삼촌은 그런 곳에 소속된 연구자니까. 원래라면 플램 본부에서 일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보급소의 각 농장은 중요한 시설 중 하나인데다가, 플램의 보호와 감시가 필요한 장소였다. 때문에 오렌지 농장을 맡게 된 삼촌 역시 일주일의 세 번 정도는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그 일자는 공표하지 않았지만, 근무 날짜가 변경이 되어도 연락 한번이면 바로 알 수 있으니 헛걸음할 일은 없었다. 그냥 내가 스스로 방문을 자제하는 쪽을 택한 거다. 이렇게 나와 티아가 방문하는 게 삼촌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고, 아빠 일도 있었으니까. 농장자체가 외부인이 오면 안 되는 장소기도 하고. 오늘은 특별한 경우였다. 어차피 한 번은 삼촌에게 티아를 보여줄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앞으로는 연락을 통해서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일단 내려가자.”

 “여기가 오렌지 농장 아니었어요?”

 “바보냐? 여긴 내 사무실이야.”

 그제야 티아는 주변을 구경했다. 도착 전부터 온통 관심이 삼촌으로 쏠려 있었으니 눈치를 채지 못한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사무실은 한쪽에는 간단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주방이 마련되어 있었고 유리로 된 테이블과 소파 겸침대로 이용할 수 있는 회색빛의 접이식 소파베드가 있는, 지극히 단출하고 평범했다. 깔끔하기 그지없는 내부를 둘러보며 여길 사용하기는 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손님이 올 때만 이용하지 않을까? 가구들이 너무 새것 같았다.

 “그럼 농장은 어디에 있어요?”

 티아의 물음에 삼촌은 검지로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러저러해도 티아의 물음에는 성심성의껏 대답해주고 있구나.

 “1층에. 여긴 2층이야. 정확히는 45.2-129층이지.”

 “45.2-129층이요?”

 티아가 생소한 층수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그건 보급소의 층수를 처음 본 사람들이 보이는 일반적인 반응이기도 했다. 대체로 1층, 2층처럼 단순히 한 가지 숫자로 되어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보급소의 층수가 복잡할거라고는 생각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이게 다 보급소의 특수성인 언제든지 변하고 움직이는 큐브들로 인해 생긴 현상이었다. 큐브들은 일정 시간마다 자리를 바꾼다. 또한 오렌지 농장처럼 같은 용도임에도 다른 층으로 나눠진 경우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급소의 층수는 한 자리로 이루어진 숫자가 될 수 없었고 별도에 구분이 필요해졌다.

 오렌지 농장을 예로 들면 충수를 ‘.’으로, 한 층에 존재하는 다양한 큐브들을 각 역할마다 구분하기 위해서는 ‘-’를 넣어 ‘.’뒤에 붙여 구분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보급소의 45번째 층에는 오렌지 농장이 있고 .1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뒤에 붙은 ‘129’라는 숫자는 45층에 있는 블록들 중에서 129번째라는 의미였다. 꽤 복잡하지만 머리 아프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각 층의 큐브 왼쪽 상단이나 바닥에 깔려있는 각각의 타일들을 확인하면 되니까.

 이러한 이유로 45.2층이라고 기재가 되어 있는 오렌지 농장 사무실에는 각 타일마다 45.2-129층으로 기재가 되어 있었다. 또 하나, 만약 오렌지 농장을 이루고 있는 큐브가 분리가 된다면 번지수는 분리된 각 타일마다 숫자를 다시 부여했다.

 원리를 알고 있어도 복잡하네. 설명을 하면서도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었다. 티아가 이해를 했을까. 그런 걱정은 티아의 다음 말에 굳이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여기는 45.2-129층이란 말이지? 그럼 아래층은 45.1-129층인 거네?”

 “맞아. 똑똑하네, 우리 동생.”

 괜히 내가 다 뿌듯했다. 나는 헤실 거리며 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놀고들 있네. 나 혼자 내려가기 전에 그쯤하고 와!”

 삼촌이 짜증을 팍 내고는 혼자서 걸어가 버렸다. 부러우면 그렇다고 하지. 절대 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잔뜩 삐져 있는 삼촌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자 앞에는 유리로 된 거대한 창이 우리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45.1-129층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숨겨져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야했고, 그건 오로지 관리자만이 찾을 수 있었다. 이 거대한 유리창 어딘가에서 말이다.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키려는 삼촌을 따라 우리는 창과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깝게 다가갔다. 나는 잠시 유리 건너편에 보이는 오렌지 농장을 내려다보았다.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감동이 덜했지만, 농장 안은 여전했다. 과일과 채소를 키우는 농장만큼 생명이 넘치고, 싱그러운 곳은 없다고 나는 언제나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오렌지 농장 안에는 작은 태양이 비추고 있었고, 기계를 통해 바람이라도 불 때면 그 빛을 받아 더 푸르게 살아나는 나뭇잎들이 살랑거렸다. 평온. 그리움. 그런 것들을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뭉클함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항상. 처음에는 이런 감정을······. 처음 본 광경에 대한 벅찬 감동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나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감정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농장에만 오면 문득 그리워져 나도 어쩔 줄 모르게 된다.

 “빨리 오지 못해?”

 재촉하는 삼촌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너무 오렌지 농장에 넋을 놓고 있었나 보다. 왜 이러지. 점점 시선을 떼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 볼 때마다 아름답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닌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하다 한 번 더 호통 치는 삼촌 때문에 부랴부랴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어느새 삼촌은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찾고 작동시키기 직전이었다. 조금만 늦었다가는 정말로 삼촌이 두고 갔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잠시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나저나 어떻게 찾는 거지. 혹시나 보일까 싶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삼촌이 보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미세한 흠이나 아주 작은 실금조차도 안 보였다. 게다가 2시간 마다 위치가 변동되기 때문에 오늘 본 곳을 기억해도 다음에 왔을 때는 써 먹을 수도 없었다. 말 그래도 오로지 관리자만이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끔 구조가 정해져 있었으니까. 그저 삼촌이 하는 양을 보고 있는데, 잠시 창을 보던 그가 갑작스레 쭈그려 앉았다. 삼촌은 오른쪽 모서리와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쭈그려 앉은 상태에서 손을 내려야할 정도로 낮은 위치에 존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빠끔히 고개를 빼 삼촌의 손이 위치한 곳을 보자 그가 손을 댄 곳을 기준으로 깔끔하던 유리창에 실선이 생기기 시작했다. 선은 마치 삼촌을 대고 정교하게 그려낸 것처럼 보였다. 역시나 삼촌이 쭈그려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모양과 딱 들어맞았다. 곧이어 사람 모양으로 푸르게 반짝이는 실선에서 나온 적색 빛이 삼촌의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스캔했다. 도둑은 오렌지 농장으로 갈 수 조차 없겠네. 관리자의 신체조건과 똑같지 않는 한은 말이야. 빛이 사라진 후 푸른 실선은 유리창을 벗어나 창 바깥 오렌지 농장 쪽으로 빠져나갔고, 형태가 없어진 실선은 둥근 타원형으로 다시 변형되었다. 곧이어 막이 형성되더니 보이지 않던 엘리베이터가 생겼다. 동시에 실선이 벗어난 유리창은 활짝 열린 문이 되어 우리를 반겼다.

 “엘리베이터가 생겼어요!”

 입을 크게 벌리며 티아가 감탄했다. 티아를 데리고 온 것에 대해 잘했다는 생각이 들 줄은 몰랐는데. 이토록 하나하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티아가 처음 뭔가를 인식하고 말이 유창했던 어느 시절을 제외하고는 저토록 즐거워하는 모습은 처음인 것 같았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나는 삼촌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내 칭찬에 곧바로 삼촌의 눈살이 찌푸려졌으나 곧 삼촌도 티아를 보더니 역시나 쉽게 무장 해제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나는 이들에게 잊혀졌다. 쳇.

 “항상 수납에 들어간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거지, 원래는 항상 저렇게 생겼어.”

 여전히 톡톡대는 말투였지만 한층 너그러워진 말투로 삼촌은 다정하게 설명했다. 그에 용기를 얻은 티아가 이것저것 묻기 시작하고 삼촌은 그것마저 성실하게 대답했다. 차별이 이곳 보안만큼 엄청나네, 아주. 심통이 나서 나는 그들에게서 관심을 꺼버렸다. 소리마저 차단되는 건 아니었지만.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관리자만의 능력이지. 너무 알려고 하자마라, 꼬마야. 기밀이라 더는 말해줄 수 없어.”

 “네! 곤란하시면 더 묻지 않을게요.”

 “어? 어, 그래.”

 쌤통이다. 나는 속으로 경박스럽게 웃어댔다. 명백히 삼촌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아마도 저 기밀이라고 말한 것도 그냥 해본 말일 가능성이 높았다. 교대할 때 아니면 사람이랑 대화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 삼촌은 우리가 왔을 때부터 즐거워하고 있었다. 매번 나한테도 오지 말라고 말하지만 정작 내가 가겠다고 하면 투덜거리면서도 승인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꽤 가능성이 있는 추리다.

 하지만 삼촌을 도와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창에 비치는 삼촌을 보니 티는 안내고 있지만 어깨가 좀 전보다 0.5cm는 더 내려가 있었다. 시무룩해 있는 게 재미있기 때문에 일부러 더 말하지 않는 것도 있다. 아이러니하네. 티아는 삼촌이 곤란해할까봐 질문을 참고 있고, 정작 삼촌은 침울해 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못되게도 나는 지금 상황이 꽤 재미있었다. 혹시나 싶어 말하지만 아까에 대한 복수는 아니다.

 씰룩이는 입가를 참기 위해 입매를 단단히 한 나는 그 상황을 충분히 즐긴 다음 시선을 엘리베이터 밖으로 돌렸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오렌지 농장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밖을 보는 내 눈은 오랜만에 반짝였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평화롭게 느껴졌다. 뒤에서는 계속해서 삼촌이 티아에게 “말해줄까?” 하고 떠보는 소리가 들렸고, 티아는 삼촌의 마음은 모르고서 배려한답시고 괜찮다고 사양하고 있었지만. 밖은 싱그러웠고 뒤에는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문제는 내가 삼촌을 잘 알듯이 그 역시 나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이랄까. 티아보다도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삼촌이었다. 어쩌다보니 엘리베이터 유리창을 통해 고개를 돌리는 삼촌과 눈이 마주쳤다. 삼촌은 한 번에 내가 지금 상황을 재미있어한다는 것을 간파한 듯 올라가 있는 입매가 떨리고 있었다. 낭패다. 나는 바로 시선을 피했지만 삼촌이 어떤 표정일지는 보지 않아도 상상이 되었다. 삼촌이 욕설을 퍼붓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왜 그러세요, 삼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척 물으며 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 다 왔으니까. 빨리 내려!”

 한마디 하려고 벌어졌던 삼촌의 입에서는 하려던 말 대신 다른 말이 나왔다. 나만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욕이 섞인 호통을 쳤을 테지만 지금 여기에는 티아가 있어서 자제한 게 분명했다. 삼촌은 끓어오르는 화를 다스리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속으로 웃음을 꾹 참으며 나는 티아를 데리고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다음번에도 티아를 데리고 와야겠는데. 다음에 혼자 오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농장에 들어선 나는 다른 의미로 삼촌을 조금만 놀려야겠다고 반성했다. 다름이 아니고 티아의 관심이 삼촌에서 다른 곳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티아는 눈앞에 펼쳐진 낙원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마치 요정의 나라에 초대된 것처럼 신이나 돌아다녔고, 삼촌은 그런 티아를 보며 버려진 강아지마냥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짧긴 했지만. 티아의 관심을 다시 삼촌에게 돌려주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냥 티아를 따라 오렌지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 상큼하고 달달한 향기를 마음껏 맡는데 집중했다. 미안, 삼촌.

 농장 안을 걷는 동안 잘그락하는 소리가 발밑에서 들렸다. 이게 뭐라고 재밌다. 잠시 멈춰서 그 자리를 내려다보자 바닥은 온통 감색의 흙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각기 크기가 다른 돌멩이들을 밟을 때마다 좀 전에 들린 소리가 간혹 들려왔다. 나는 쭈그려 앉아 흙을 조심히 손 안에 담았다. 손 바닥안의 흙의 촉감은 차갑고, 부들부들하고, 축축했다. 티아도 나와 같이 조심스럽게 흙을 만져보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보았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나는 그대로 코를 흙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았다. 이런 걸 흙냄새라고 하는 건가? 칙칙한 색과는 다르게 묘하게 좋은 냄새가 났다. 한참을 냄새를 맡다가 손 안의 쥐고 그 감촉을 즐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들어 오렌지 농장을 시야에 담았다.

 내려와서 본 오렌지 농장은 위에서 본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정면으로 봐, 다른 방향으로 봐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되도록 많이 심기 위해서 넓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삼촌은 내게 일부는 환각이라고 정정해줬다. 그 엄중한 감시를 뚫고 이곳까지 발을 들이민 침입자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 설치한 또 다른 보안 장치라고. 그건 진실을 볼 수는 있지만 환각에 가려 만질 수게 만드는 장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것보다도 이 장치가 가장 껄끄러웠고 소름끼쳤다. 침입자가 환각임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을 테니까. 다시 현실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걸 듣고 연민이 들 정도였다. 끔찍하게도 환각에 갇히면, 손을 허공에 필사적으로 내저으며 누군가 올 때까지 빠져 나갈 수도 도망갈 수도 없이······, 철저하게 절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실제로 10년 전에 그런 경우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삼촌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쯤 되니 삼촌이 우리 삼촌이라서 다행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아니었으면 절대 농장 안에 들어올 수 없었을 테니까.

 더군다나 이렇게 귀한 오렌지까지 주고. 고마움이 가득 들어찬다. 이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게 다 있었다. 티아, 삼촌, 그리고 무성한 푸른 입들 사이로 오렌지라는 꽃이 피는 아름다운 장소까지. 느긋한 걸음으로 나는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싱그러운 향을 마음껏 들이쉬었다. 여유롭고 살랑거리는 구경을 하다가 전에 왔을 때는 없었던 하얀 공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춘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그것에서 시선을 고정한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삼촌에게 물었다.

 “저건 뭐에요? 한 번도 못 본 건데······?”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는 버럭 화부터 내려했다.

 “뭐? 네가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데······!”

 내가 말하면 조건 반사적으로 성질부터 내는 삼촌의 특성을 파악하고 있던 덕택에 나는 재빨리 그의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손으로 그 하얀 공을 가리켰다.

 “아, 저거?”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을 본 삼촌의 표정이 음흉해졌다. 나는 삼촌한테서 두 발자국 떨어졌다.

 “니스(NICE). 이쪽으로 와.”

 삼촌은 하얀 공을 향해 거만하게 손짓했다. 와, 기계한테 하는 거랑 사람한테 하는 행동이랑 별반 다를 게 없어. 혀를 내두르며 나는 삼촌이 혼자 일하는 게 다른 사람한테는 행운이라는 무례한 생각을 했다. 그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 사람 중에는 아빠와 내가 있다는 생각은 요만큼도 들지 않았다.

 <삐?>

 어린 새처럼 높고 얇은 소리를 내며, 니스라고 불린 하얀 공이 삼촌에게로 곧바로 날아와 안겼다.

 “뭐에요? 되게 귀엽다.”

 어느새 곁에 온 티아가 니스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만지고 싶다는 의지가 눈에 드러나는 티아 앞에 삼촌이 니스를 한 손에 잡아 놓아주었다. 나는 티아 덕으로 옆에서 그것을 꽤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는데, 니스라고 불리는 하얀 공은 눈도, 코도, 입도 없었다. 소리는 어떻게 내는 거지? 살짝 만져보니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병을 만진 것 마냥 차가웠다. 혹은 얼음을 만진 것 같았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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