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녹지 않으리라 약속했던, 영롱한 푸름의 벚나무가 있었다.
얼음조각과도 같은 그 몸통에는 눈 덮인 숲의 모습이 비치고
엷은 싸락눈에 뒤덮인 벚꽃들은 풍성하고도 새하얬다.
『너는, 어째서 봄을 저버린 거야?』
질량 없이 부유하는 눈발 속을 홀로 방랑하던 어느 날.
동산의 정상에서 마주한 그 나무에게, 나는 물었다.
하지만 그 나무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거울 같은 그 몸통에 나의 얼굴을 비출 뿐이었다.
누더기 옷에 장대 하나에 의지한, 한 걸인의 행색.
헝클어진 머리가 가린 두 눈 아래로
코며 입술은 벌겋게 부르터 있었다.
새하얀 입김에 자꾸만 자취를 감추려든다.
『그게 너의 대답인 거야?』
한차례 불어온 거센 바람에 하얀 잎들이 눈과 섞여 휘날리고
나의 옷가지는 부풀어 펄럭였다.
『그렇구나.』
자각하지 못했지만, 나는 벌써 한 달 째 매일 이 나무를 찾아오고 있었다.
걸쳐두려했지만 결국 미끄러진 장대가 눈밭에 박혀들고
나는 그 나무에 등을 대고 앉았다.
엉덩이며 등이 차갑게 젖어왔다.
“봄은 아프지?”
언덕 아래로 펼쳐진 설산의 풍경 너머로, 단란한 빛을 비추며 모여 있는 마을이 보였다.
“반드시 아플 걸 담보로 행복해진다는 건, 이 손시림보다 더 가치가 있는 일일까?”
마을 위로 내리는 눈들만은 어쩐지 붉게 빛나는 것 같았다.
고개를 살짝 돌려 어깨너머의 유리로 눈길을 주니, 그곳 또한 마을의 붉은 빛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었다. ―발그레. 무뚝뚝하게 볼을 밝힌 나무는, 조금씩 녹아내려 거울 위로 물줄기를 흘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빠른 속도로 녹아가기 시작했다.
주르륵, 주륵. 눈물이라도 흘리듯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 않고. 흠뻑 젖어가며 녹아가는 나무에 맞춰 등을 기댈 뿐이었다.
등이 서서히 바닥과 가까워져갔다.
“.....잘 가.”
이윽고 전부 녹아내리고, 하얀 벚꽃들마저 나비가 되어 사방으로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그나마 입고 있던 누더기 옷조차 탁하게 물들인 채
그 찬 바닥에 완전히 드러누운 나는
시린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받으며―
흙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서, 영롱한 푸름의 벚나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