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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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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23 너를 위한 미끼가 되어 (3)
작성일 : 19-08-21 22:29     조회 : 283     추천 : 0     분량 : 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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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왔어.”

 

  그렉은 어제 말했던 것처럼 가죽으로 만든 공을 옆구리에 끼고 그믐달 왕의 무덤을 찾았다. 조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제 들은 그 분명한 목소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네가 나오고 싶을 때 나와도 괜찮아.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조용히 기도를 올린 그렉은 나무를 올려다보며 말을 건넸다.

 

  “내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 않아?”

 

  대답은 없었다. 그저 나무의 그림자만이 잔잔한 바람에 흔들릴 뿐이었다. 그 흔들림이 내는 소리를 조지의 답으로 삼고, 그렉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 요즘은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고 있어. 오늘도 가르쳐주고 오는 길이야. 일주일에 한 번 던스턴 사제님과 함께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잘 따라주고 있어.”

 

  그는 계속 말을 건넸다. 조지가 답을 해줄 때까지.

 

  “체칠리아 사제님은 이번에 내신 신간을 필사하고 계셔. 파피루스는 한 번 잘못 적으면 고칠 수도 없으니까 큰일이야. 그래서 체칠리아 사제님이 방에 들어가면 다들 조용히 해주고 있어. 집중하실 수 있게.”

 

  루카스는 얼마 전에 작품을 끝내고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사제로서 본분을 다하지 못했던 만큼 요즘은 성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캐서린 본당 사제님은, 네 안부를 물어보셨어.”

 

  캐서린은 공을 빌리러 찾아온 그렉에게 조지의 안부를 물어봐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오세요. 그 일을 위해 쓰는 시간은 절대로 낭비가 아니고, 그 일로 미뤄지는 다른 것 중에 절대로 그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답니다.”

 

  그렉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답장이 올 때가 이미 지나지 않았던가. 그는 조지에게 속삭이듯 목소리를 이었다.

 

  “있잖아, 조지. 나 정식으로 사제가 되었어. 아직 서품식은 안 받았지만, 아마 곧 받을 거야.”

  “잘된 일이네.”

 

  그렉은 갑작스럽게 들린 대답에 고개를 위로 돌렸다. 그렉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줄곧 올려다보고 있던 나뭇가지에 조지가 앉아 있었다. 창백한 피부의 조지는 햇살을 피해 나무 그늘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그렉을 내려다보았다.

 

  “낮에 돌아다녀도 괜찮은 거야?”

  “응. 나는 특별한 흡혈귀니까.”

 

  아직도 그렇게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렉은 씁쓸한 마음을 뒤로한 채 애써 웃었다.

 

  “대단하네, 조지는.”

  “응. 그러니까 사제가 된 그렉 형의 곁에 있을 수 있어.”

  “그렇구나.”

 

  조지는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려 사뿐히 그렉의 옆에 섰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에게 미소를 보여줄 뿐이었다. 조지는 그렉이 가져온 공을 가리켰다.

 

  “오랜만에 그거하고 놀까?”

 

  그거, 인가. 원래 공을 가지고 하는 놀이는 아니지만. 예전에는 둘이서 공을 주고받는 것으로도 재밌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하면 질리는 일이라서, 그들은 공놀이 방법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중 하나, 조지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있었다.

 

  “그럼 나부터 할게?”

  “응!”

 

  그렉은 공을 집어 들고 뛰기 시작했다. 조지는 천천히 시동을 걸더니 그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어느새 환한 장난기 어린 웃음이 크게 걸렸다. 그렉은 조지가 바짝 따라잡았을 때 순간적으로 멈춰서 그에게 공을 던지려 했다. 조지는 멈칫했지만 그렉이 던지는 시늉만 하고 다시 도망가자 재빠르게 따라잡기 시작했다.

 

  공을 가진 사람은 술래가 되어 잡히지 않게 뛰어다닌다. 그러다가 너무 가까워지면 다른 사람에게 공을 던지고, 공을 받은 사람이 술래가 되어 다시 도망간다. 공을 받아줄 사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놀이, 그렇기에 둘만이 할 수 있는 놀이었다.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서로를 잡으려고 하는 즐거운 긴장감이 마음을 훑고 가는 무료함과 우울함을 지워줬으니까.

 

  그렉은 달리다가 조금 지쳤는지 조지에게 공을 던졌다. 공을 받은 조지는 도망가려다가 그가 잠시 쉬는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그렉의 팔이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을 거리까지 다가갔다.

 

  “조금 쉬었다가 할까?”

 

  그렉은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드리웠다.

 

  “속았지!”

 

  갑자기 달려든 그렉에 놀라 조지는 그에게 공을 던졌다. 얼떨결에 공을 다시 받은 그렉은 다시 도망쳤다. 조지는 그를 뒤쫓으며 외쳤다.

 

  “정말! 놀랐잖아!”

 

  그 대답으로 들려오는 것은 그렉의 웃음소리뿐이었다. 그 웃음은 어느새 서품식을 기다리는 청년이 아니라, 때 묻지 않은 소년의 것처럼 느껴졌다. 조지는 아스라한 향수를 쫓아 계속 달렸다.

 

  “잡았다!”

  “우왓!”

 

  공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렉의 위로 올라탄 조지가 그렉을 내려다보다가 부끄러워졌는지 그의 옆으로 스르륵 누웠다. 가쁘게 두근거리는 그렉의 맥박이 느껴졌다. 그의 맥박과 함께 약간 달콤한 향도 맴도는 것 같았다.

 

  조지는 흡혈귀의 본능대로 그렉의 가슴팍에서 시작해 목덜미까지 코끝을 파묻었다.

 

  “조지?”

  “아.”

 

  그렉의 목소리에 조지는 순간 머리를 들었다. 이러면 안 되지. 어젯밤에 에어드부르가가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흡혈귀의 갈증을 이길 수 없게 될 거고, 사실 그렉은 자신이 조지에게 물리는 것을 바라고 있다고. 하지만 그건 이상했다. 그렉은 사제가 될 몸이다. 어째서 흡혈귀에게 몸을 허락한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피를 빤다는 것은 흡혈귀에게 있어 단순히 식사가 아니다. 동족을 늘리는 행위라는 점에서 생식 활동에 가깝고, 권속을 만드는 행위라는 점에서 누군가를 소유하는 계약에 가깝다. 나는 그렉과 그렇고 그런 행위를 하고, 그를 소유할 각오나 준비가 되어있는가. 그건 절대로 아니었다.

 

  조지가 물러서려는데, 그렉이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의 표정은 조지를 씁쓸하게 바라보면서도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조지.”

  “응?”

  “나는 괜찮아.”

  “뭐, 뭐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렉은 살며시 웃었다.

 

  “원한다면, 내 피를 마셔도 괜찮아.”

 

  그 말에 조지는 벌떡 일어섰다. 창백한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그는 나뒹굴던 공을 들어 옆구리에 끼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니까? 그냥 공놀이나 계속하자! 이번에는 내가 먼저 술래!”

 

  그렉은 어느새 나무 반대편으로 사라지는 조지를 보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를 쫓으려 계속 달렸지만, 그가 다시 술래를 뺏는 일은 없었다.

 

  “그러면 오늘은 이만 가볼게. 내일 또 놀자.”

  “응!”

 

  마치 마을에 살던 시절처럼 그들은 인사하고 헤어졌다. 석양이 내려앉고 있었다. 돼지 울음소리가 숲 곳곳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그렉이 숲의 중앙을 지날 즈음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들렀다 가거라.”

 

  그렉은 그대로 방향을 틀어 숲의 중앙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에어드부르가가 돼지 몇 마리와 함께 커다란 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그가 다가오자 그녀는 그를 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당황하는 눈치더구나.”

  “아쉽게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조금만 더 있었다면, 그대로 조지는 그렉의 목을 깨물고, 자신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을 텐데.

 

  “너무 조바심낼 것 없다. 안 그래도 내가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

 

  이야기를 들보니, 매일 밤 그녀는 흡혈귀의 모습으로 그믐달 왕의 무덤 근처를 돌면서 자신이 남겨둔 흡혈귀의 기운을 제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조지가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조금씩 없애고 있었지. 아마 오늘 밤이면 모든 흔적이 사라질 것이다. 이 숲에서 흡혈귀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거지.”

  “그렇게 되면 조지도 갈증을 느끼게 될까요?”

  “아마 그렇게 되겠지. 각오는 되어 있느냐? 아무리 거짓된 흡혈귀라고 하나, 그 착각이 신실한 것이라면 갈증에 몸을 맡겨버릴 때 나오는 충동은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렉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까도 자신이 조지를 부르지 않았다면 그대로 조지는 자신을 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완전히 갈증에 몸을 맡긴다면. 어쩌면 그는 거짓된 갈증이 시키는 대로 자신의 피를 전부 땅에 쏟을지도 모를 일이다.

 

  에어드부르가는 이 계획을 알려주면서도 끝까지 실패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영원한 빛의 미래 예지, 수많은 미래의 사건 중에서도 이것은 흔들림의 폭이 큰 미래다. 그렉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저는 조지를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이제와서 무섭다고 도망치거나 지나온 길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뻔한 대답이구나. 하지만 좋다.”

 

  너희의 풋풋한 사랑은 그렇게 올곧은 맛이 있어야지. 에어드부르가는 입맛을 다시듯 말했다. 그 사랑에 매료되어 아름다움을 느꼈던, 랴논시였던 자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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