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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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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22 너를 위한 미끼가 되어 (2)
작성일 : 19-08-15 22:56     조회 : 304     추천 : 0     분량 : 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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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렉은 보따리에 짐을 쌌다. 그 모습을 방문 너머에서 체칠리아가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위험한 방법인 그것을 에어드부르가는 정답인 것처럼 말했다. 물론 나름의 이유와 미래에 대한 예지가 있기에 가능한 조언이었겠지만, 사람은 확고한 것에도 겁에 질리기 마련이었다.

 

  “정말 괜찮겠어요?”

  “네. 챙겨주신 물건도 넣었으니까, 어떻게든 될 거예요.”

 

  체칠리아가 챙겨준 것은 장미꽃과 다른 약초를 넣고 끓여 빛의 이름으로 축복한 성수다. 위급한 일이 생기면 몸이나 흡혈귀에게 뿌려 흡혈귀가 다가올 수 없게 막는 힘이 있다.

 

  “무슨 일 있으면 꼭 영원한 빛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그리고 성소로 돌아와야 해요.”

  “알겠습니다. 체칠리아 사제님.”

  “이제 출발하나요?”

  “캐서린 사제님.”

 

  흔치 않게 캐서린도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체칠리아는 그 표정이 꼭 자신의 첫 흡혈귀 사냥에 배웅해주던 그때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진심 어린 걱정과 안쓰러움이 섞인, 대신해줄 수 없는 아픔에 대한 위로.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원망하지는 말아요. 그렉. 이미 충분히 열심히 했으니까.”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그렉의 뒤를 따라가다 숲의 입구에서 그를 떠나보냈다. 멀어지는 그렉의 모습을 보면서 체칠리아가 말했다.

 

  “저의 첫 흡혈귀 사냥을 기억하고 계시는가요?”

  “잊을 수가 없지요.”

  “그때 캐서린 사제님이 느꼈던 감정이 지금 제가 느끼고 있는 감정일까요?”

 

  캐서린은 고개를 돌려 체칠리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렉은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숲의 중심을 지나는 길에 자신을 보호해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그 기도를 들어야 할 에어드부르가는 숲의 돼지들을 돌보러 갔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숲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에어드부르가는 알고 있다. 그의 기도 역시 들었겠지. 필요한 순간이 오면 그녀가 도와줄 거라고 그렉은 믿고 있었다.

 

  성소에서 숲의 중심까지 온 거리만큼 산맥을 향해 걸어가면 그믐달 왕의 무덤이 나온다. 며칠 전에는 급하게 뛰어가느라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나무들은 점점 검은색이 되고, 그림자도 잔뜩 껴 있었다. 마치 그믐달의 숲, 빛이 아직 내려앉지 않았던 시인의 숲처럼.

 

  그믐달 왕의 무덤을 눈앞에 두고, 그렉은 잠시 기도를 올렸다. 자신의 안전, 그보다 먼저 조지의 행복과 그의 순수하게 빛나는 모습을 찾을 수 있기를. 그는 거대한 나무에 손을 대고 가만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조지, 거기 있니?”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주변에 있을 거라고 그렉은 확신했다. 에어드부르가는 그가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을 흡혈귀라고 생각하는 이상, 영원한 빛이 다스리는 숲에 발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렉은 나무 아래에 짐을 풀고 앉았다. 그림자가 바람에 실려 천천히 움직이며 그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든 일이라, 그는 체칠리아가 그렉과 조지를 위해 써준 짧은 시를 꺼내 읽었다.

 

  그대는 자신이 어둠이라 했지만,

  나에게 그대는 빛나기만 했었다.

 

  그대여, 슬퍼하지 말아다오.

  내 마음의 빛은 꺼지지 않을 테니.

 

  그렉은 그 시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사제가 된 것은 그의 마음에 조지를 향한 빛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빛을 나눠주고 싶었다. 아니, 그 빛을 조지에게 돌려준다는 표현이 더 올바를 것이다. 만약 그가 기사가 되었다고 해도, 아마 조지를 지키는 기사가 되었겠지. 조지가 아닌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드는 자신을 이제는 상상할 수 없다.

 

  “있잖아, 조지. 너를 다시 만났을 때, 네가 흡혈귀가 되어서 슬펐던 것보다 너를 만나서 기뻤던 게 먼저였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흡혈귀가 되었든, 영원한 빛이 되었든 너는 너다. 그러니까 너를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쁘다. 그렉은 뒷말을 삼키듯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조지. 내 얼굴을 보러 와주면 안 될까? 나도 네 얼굴이 보고 싶어.”

 

  그렉의 말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저 나무의 그림자 사이로 햇살이 반짝거리고 있을 뿐이다. 그렉은 체칠리아의 시가 적힌 파피루스를 보따리 안에 넣어놓고, 잠시 바람을 느꼈다. 사실은 자신의 옆에 조지가 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눈을 잠깐 붙였을 뿐인데 석양이 내려앉고 있었다. 캐서린으로부터 한동안은 사제의 책무를 다하지 않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역시 기도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그 기도는 그 누구도 아닌 조지를 위한 것이니까.

 

  “생명이 살아가며 지은 죄를 사하고 그 죄로 말미암은 저주 또한 걷어내는 일은 영원한 빛이 내리신 가르침이요, 생명이 생명에게 베풀어야 할 마땅한 책무이니.”

 

  조지가 가는 길에 그런 것들이 남아있다면, 그것을 걷어내는 일은 그렉의 몫이다. 그렉은 짧은 기도를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조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렉은 나무에 기대어 앉은 채로 해를 가린 구름 사이로 뻗어나는 주황빛을 바라보았다.

 

  “기억나? 우리 되게 재밌게 놀았는데.”

 

  그렉은 둘이서 작은 비밀을 만들어가던 그 개울가를 떠올렸다. 가죽으로 만든 공을 던져 서로 주고받기만 해도 재밌었다. 개울을 오르내리는 물고기를 구경하는 것도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개울에 빠지면 혹시 싶어 가져온 낡은 모포를 덮어 몸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매일 똑같이 그렇게 놀았지만, 하루도 지루한 적은 없었다.

 

  “가끔 네가 용기를 내서 다른 아이들과 놀러 가면, 나는 멀찍이서 너를 지켜보고는 했어. 네가 혹시 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몸이 약한 네가 넘어져서 크게 다치면 어쩌나, 그렇게 걱정하면서. 네가 울면서 차마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했을 때, 너를 달래줄 곳이 필요했으니까.”

 

  그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 그때는 왜 깨닫지 못했을까. 기사도와 헷갈렸던 걸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때 깨달았다면 어땠을까. 조지는 흡혈귀도 영원한 빛도 되지 않고,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서 그의 곁에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말이 나온 김에 내일은 공을 들고 올게. 성소 창고에 있을지도 모르겠어. 가끔 마을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빌려주기도 하거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져 붉은 기운만 깔려 있었다. 고개를 들면 어느새 짙푸른 하늘에 별이 내려앉고 있었다. 언제까지 들어오라는 말은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녁 기도까지 내버리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그럼, 좋은 밤 보내렴. 나는 내일 또 올게.”

 

  그렉은 성소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채 여물지 않은 잎사귀 하나가 그렉의 앞에 떨어졌다. 그렉은 공중에서 팔랑거리는 그것을 잡았다.

 

  “기다리고 있을게.”

 

  그렉은 나무를 뒤돌아보고는 살며시 웃었다. 그리고 다시 성소를 향해 걸어갔다.

 

  밤이 깊어진 다음에야, 조지는 안개 속에서 몸을 드러냈다. 달빛도 거의 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구나.”

  “에어드부르가, 나의 옛 주인이여.”

 

  에어드부르가가 잠시 흡혈귀의 모습으로 그의 앞에 나타났다. 영원한 빛의 모습을 드러내면 그 찬란함에 눈이 멀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조지를 위한 배려였다.

 

  “오늘은 그의 곁에 있었으면서도 모습을 숨겼지. 내일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한낮에 모습을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너는 특별하지 않더냐.”

 

  그녀의 말에 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렴풋이 알고 있다. 자신은 흡혈귀지만, 어째선지 빛에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 시인의 숲을 해치려고 했던 그 라뮤로스의 말처럼, 자신도 어쩌면 특별한 힘을 가진 흡혈귀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에어드부르가는 그 착각이 언제쯤 깨질지를 헤아렸다.

 

  “조지.”

  “말씀하소서.”

  “배가 고프지는 않으냐.”

 

  그는 이상한 질문을 던지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시인의 숲에 저주가 서려 있을 때는, 살아있는 것의 피를 먹을 필요가 없었지.”

  “그랬지요.”

  “하지만 그 저주는 사라졌다. 흡혈귀에게는 축복이나 다름없던 그것이 사라졌기에, 아무리 그믐달 왕의 무덤에 붙어 있더라도 언젠가는 허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에어드부르가는 유혹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내가 허락하마. 만약 허기를 느끼게 된다면, 그렉의 피를 취해도 된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원한 빛인 당신께서 어찌 그런 선언을 하시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에어드부르가는 반쯤 가려진 진실을 읊조렸다.

 

  “그렉, 그 아이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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