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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잃어버린 자들
작가 : 라하비
작품등록일 : 2019.7.15


'록 바이러스(Lock Virus)'라는 전염병이 퍼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1부 시계 도시 中>

“오빠.”

잠시 침묵한 티아가 나직하게 나를 불렀다.

“응?”

대답을 하면서도 지금 티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웠다. 혹여나 안가겠다는 대답이 나올까봐 불안했다. 얼굴에 그런 생각이 드러난 것일까. 티아가 머그컵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무릎 위에 올려져있던 내 손을 잡는다. 따듯한 온기가 전해졌다.

“걱정하지 마. 내일 갈 거야.”

“그래.”

“대신에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줘.”

“부탁? 뭔데?”

티아가 싱긋 웃는 걸 보고도 이상하게 안심이 들기는커녕 이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져 손을 빼고 달아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실행하기도 전에 티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게 먼저였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내린 거야. 내일 추첨 용지 넣을 때.”

거기까지 들었을 때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안 돼.”

나는 다급하게 티아의 말을 끊어버렸다. 듣고 싶지 않아. 싫어. 공포와 경악으로 몸의 모든 장기들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를 악물며 처음으로 원망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악바리처럼 악쓰고 티아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에 나는 티아의 손 안에 갇혀있던 내 손을 빼고 어두운 눈빛으로 티아를 향해 다시 한 번 단호하고 절박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안 돼”

널 잃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야. 나는 티아를 노려보았다.

“알아.”

무엇을 아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티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록 바이러스에 걸린 걸 토큰에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나 알아, 오빠.”

티아의 눈에서 작은 빗방울들이 떨어져 내렸다.

.
.
<중략>
.
.

“오빠를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 미래는 내가 결정하고 싶어. 혹시라도”

잠시 말을 끊으며 숨을 고른 티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시설에 가야하는 일은 사양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나로 살고 나로 죽고 싶어.”


 
7화 무인 정거장(2)
작성일 : 19-08-01 23:44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7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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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와서 설명한들 티아한테는 변명으로 밖에 안 들릴 텐데. 물론 변명이 맞지만. 이대로 눈을 감고 기절한 척할까. 바보 같은 짓이지. 여기서 모르는 척을 한다거나, 적반하장 식으로 나간다면······. 오히려 티아에게 용서받을 기회를 하늘 높이 뻥 차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성을 하는 순간에도 어지러움은 가시지 않는다. 붕 떠오른 신체는 어느새 본래 벽이었던 곳으로 사뿐히 떨어졌다. 정말로 ‘사뿐히’ 내려줬지만 문제는 언제나 존재했다. 나는 티아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가, 내 오른쪽에 떨어진 동생을 보고 죄책감에 빠졌다. 티아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버둥대다가 착지를 제대로 못한 것 같았다. 무릎을 부딪쳤는지 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에 심장이 따끔한 나는 재빨리 티아의 상처를 확인하려고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고 했다. 고개를 돌린 티아의 살벌한 눈빛을 마주보기 전까지는. 아직 어린 동생이지만 나는 그 눈빛에 순간적으로 움찔해버렸다. 아빠 몰래 실험실에서 놀다가 중요한 자료를 태워버렸을 때가 갑자기 생각난다. 진짜로 망했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착 가라앉은 톤으로 이를 악문 티아가 나를 추궁해왔다. 큰일 났다! 평소에 인내심이 강한 티아는 한 번 화가 나면 무시무시했다. 그렇다고 폭력을 사용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게 더 무섭다. 나는 황급히 티아의 옆으로 가 일단 일어날 수 있도록 어깨를 감싸 부축했다.

 “미안. 많이 아프지? 내가 정신이 나갔어. 미리 말해줬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하다.”

 최대한 진실 된 감정을 담아 티아에게 사과를 건넸다. 티아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다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티아의 무릎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약간 부은 것 같은데. 집에 돌아가면 얼음찜질부터 해줘야겠다. 마음먹으며 티아한테 사과할 방법을 고민했다. 좀 비겁하지만 티아의 어린 마음을 좀 이용해야 될 것 같다. 첫 나들이를 내 실수로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사고 친 강아지처럼 눈썹을 八자로 만들며 티아의 눈치를 봤다. 연기가 20%라며 나머지는 정말로 눈치가 보였기 때문에 완전히 속이는 건 아니다. 자기합리화지만 지금만큼은 티아의 기분이 나아졌으면 싶었다. 집에 가서 얼마든지 날 혼내도 되니까. 미안함과 긴장감을 가지고서 티아의 반응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티아는 그런 나를 한참을 바라보다 치명적인 한마디를 날렸다.

 “치매야?”

 누가 머리를 때린 것처럼 멍했다. 아무리 그래도 치매라니······. 그건 현대 기술로도 완치가 힘들 정도로 꽤나 어마 무시한 거라고. 설마 치매라고 말할 줄은 몰랐다. 저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게 정답일까? 이건 심각한 고민이었다. 언성을 높이기에는 나로 인해 생긴 결과가 너무 참혹했고, 그렇다고 넘어가자니 인정하는 것만 같아 껄끄러웠다. 티아는 어떤 대답이든 인정하겠다는 얼굴이라 대답을 하는 게 더 힘들었다. 여기서 대답을 잘해야 되는데. 그때 내 시선에 딱 티아가 좋아할만한 게 눈에 들어왔다. 그건 누구라도 거부할 수 없는 종류의 거라서 비겁하다고 욕먹을지 모르지만 일단 화를 좀 가라앉혔으면 하는 마음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해본다.

 “위를 좀 봐줄래?”

 화제를 돌리려는 시도라는 걸 눈치 챘겠지만 티아는 호기심이 많았다. 팔짱까지 끼고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염라대왕처럼 단호하던 티아가 위를 가리키고 있는 내 검지를 따라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티아의 굳어있던 표정이 본인의 의도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서서히 풀려가는 걸 보며 한숨을 돌렸다.

 “와······.”

 티아는 예상치 못한 예술품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입을 살짝 벌리며 감탄했다. 티아의 반응이 뿌듯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은 나도 티아를 따라 다시금 위를 보았다.

 “아름답지? 뭔지 알겠어?”

 힌트 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제는 천장이 된, 광장 중앙에 설치되어 있는 무언가로 인해 나와 티아 얼굴 위로 수면이 반사되어 일렁거렸다.

 “너무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걸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이게 뭐야?”

 그 무언가에 시선을 떼지 못하며 티아가 속삭이듯 질문했다.

 “모르겠어?”

 깜짝 놀랄만한 선물을 준비한 사람처럼 나는 들뜬 목소리로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응······.”

 구경하느라 바쁜 티아의 대답은 느렸다. 오로지 시선을 잡아끄는 광경에 완벽히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쓰게 웃었다. 나한테 화난 걸 잊은 것은 좋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넘길 생각은 없었다. 나중에 꼭 다시 사과해야지. 무릎을 걷어차인다고 해도 말이야. 게다가 티아는 아직 부딪힌 곳의 아픔이 다 가시지 않은 듯 불편하게 서 있었다. 오른쪽 무릎을 어정쩡하게 굽힌 채 서 있는 걸보니 죄책감이 다시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휴게소에 있는 광장은 ‘아쿠아리움(Aquarium)'이라고도 불러. 사실 아쿠아리움 광장으로 많이들 알고 있지. 그 이유는 여기가 광장이고, 두 개의 수족관이 있기 때문이야.”

 미안함과 여러 복잡한 심정으로 내 목소리는 낮고, 부드럽게 광장을 울렸다.

 “아쿠아리움, 수족관······. 그렇구나, 저번에 가상체험 했던 게 이거구나! 오빠? 이건 또 왜 이야기 안했어?”

 눈이 얼음처럼 차갑고, 목소리는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살벌했다.

 “내가 또 말 안한 게 있었네.”

 그 외에 다른 할 말을 찾지 못해 어색한 웃음으로 무마하려고 했지만 당연히도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웃는 다고해도 용서 안 해. 집에 돌아가면 심부름 엄청 시킬 거야.”

 양 옆구리에 손을 얹으며 티아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자기 자신이 새끼 맹수가 아니라 성인이 된 맹수인 것 마냥, 자신이 지은 표정이 무시무시하다고 생각하는 듯해서 미안함도 잊고 나는 머리를 쓰다듬을 뻔 했다. 겨우겨우 올라가려는 손을 옆구리에 딱 붙이고 허벅지를 꼬집어 참았다. 다행히 티아는 보지 못했다.

 “심부름? 예를 들면 어떤?”

 두려움이나 걱정이 아닌 순수한 궁금함을 담아 티아에게 물었다. 티아가 절대 심한 일을 시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청소. 앞으로 한 달간 내 방 청소 오빠가 직접 해. 콘한테 시키지 말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티아의 답을 듣고 나니 비실비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허벅지를 꼬집는 것만으로는 참기가 힘들었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는 걸 막으려 입 안쪽 살을 깨물었는데, 살짝 피 맛이 났다. 생각보다 너무 세게 깨물었나보다. 피비린내 나는 액체를 삼키면서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봤다. 왜 티아가 나한테 심부름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청소’를 시킬 생각을 한 건지. 그건 정말 쉬운 문제였다. WC-S19로 출발하기 전 자동 청소를 이용하지 말고 직접 하라고 했던 것을 반대로 갚아주고 싶었던 거였다. 헛기침을 한번 한 나는 침울한 표정으로 티아에게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 다음, 곧바로 걱정되는 표정으로 티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괜찮겠어? 숙녀의 방에······. 오빠라고는 해도 들어와서는 네 물건을 치운답시고 건드릴 텐데? 뭐 나야 너만 괜찮다면야 청소쯤이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만.”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티아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아, 내가 생각하기에도 지금 건 좀 짜증나겠는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티아가 입을 삐죽이며 불만을 토로했다.

 “됐어. 오빤 정말이지 가끔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짜증나.”

 자기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 티아는 잔뜩 토라졌다. 그 모습에 나는 또 후회했다. 놀리지 말고 납작 엎드려있어야 했는데 슬프게도 나도 내 입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럴 때마저 져주지 않는 게 티아로써는 더 얄밉게 느껴졌을 것이다. 잘 알고 있다. 다만 성격이 이래서 슬프게도 티아한테 나는 종종 못된 오빠였다. 지금처럼. 아차, 싶었을 때, 티아는 짜증스러운 발걸음으로 나한테서 빠른 발걸음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절뚝이면서도 최대한 나와 멀어지려 빨리 걸어가는 모습에서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게 느껴졌다. 그런 티아를 보자 스스로에게 환멸감이 들었다. 쥐 죽은 듯이 있었어야지, 멍청아.

 “티아! 잠깐만! 미안해!”

 다시 미안한 모드로 돌아선 나는 바로 사과하며 티아를 따라잡기 위해 뛰었다.

 “흥. 퍽이나.”

 홱 고개를 돌리는 티아와 눈을 마주치려 노력하다가 실패하고는 축 쳐진다. 옆에서 나란히 걸어가며 힐끔힐끔 티아의 기분을 살폈다. 티아의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워서 마음이 많이 상한 상태인지 아니면 화가 풀리고 있는 중인지 알 길이 없었다. 어느 쪽이든 더는 기분이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가 이렇게 된 대에 아주 조금만 변명을 해보자면 때때로 직접적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충동이 들기 때문이었다. 나는 티아를 놀리는 것으로 그리고 그 반응을 보는 것으로 안도했다.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못할 감정 표현을 볼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러기 위해서 티아에게 좀 심하게 대하는 면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어리석은 방법밖엔 할 줄 몰랐다. 내가 멍청하게 굴거나, 짜증나게 굴 때면 티아는 다양한 표정과, 강렬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게 드러내니까. 말 그대로 이건 내 이기적인 변명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말하는 성격도 아니라서 티아는 분명 내가 이럴 때마다 재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다만 상황을 좀 봐서 자중할 필요가 있다는 반성은 들지만 말이다.

 “진짜 미안해. 대신에 바로 출발 안하고 여기서 구경 조금 하고 가자. 응?”

 기분이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티아에게 사과를 건네며 말했다. 티아의 눈이 좁혀지고 굳게 다문 입이 서서히 열렸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자연스럽게 긴장이 되었다.

 “각오해, 실컷 구경 다한 다음에 가자고 할 테니까!”

 안심 그리고 웃음. 쉽게 풀리는 건 또 누굴 닮아서 그런 건지.

 "응. 네가 원하는 만큼 있다가자."

 "그리고 다음부터 이러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다시 뱁새눈을 하고서 나에게 경고를 하는 티아에게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알았어. 정말 잘못했어."

 "알고 있으면 됐어. 근데 정말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다시금 수족관을 바라보는 티아에게 나는 은밀한 비밀을 알려주듯이 티아가 호기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탑승장으로 어떻게 가는지 알아?”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정해진 답을 알고 묻는 거다.

 “아니? 몰라.”

 티아가 고개를 젓자 양쪽으로 길게 묶여 있는 머리 또한 따라서 허공을 휘저었다.

 “수족관을 타고 갈 거야.”

 검지로 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반성한지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한쪽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간 짓궂은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자동반사적이라 깨닫고 나서는 좀 어색한 웃음이 되었다.

 “또!”

 “미안.”

 놀리려 한건 아닌데. 그저 나한테는 티아에게 뭔가를 알려주는 일이 즐겁고 기쁜 일이라서.

 “하지만 사실이야.”

 “거짓말.”

 조금 전 중력변환사건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게 분명했다. 티아가 불신의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경우 백번 말로 하는 것보다 보여주는 게 답이다. 몇 년간의 티아의-자칭-부모역할을 하면서 알게 된 지혜라고나 할까. 그리고 나는 바로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 양 옆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이상한데.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있는 건 보이는데, 아무도 이동을 안 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수족관 쪽을 시선이 닿는 대로 쭉 훑었지만 정말로 단 한 사람도 이동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구경을 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려고해도 모든 사람이 타려고 시도조차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타고 있는 사람조차 없다는 것은 나한테는 큰 문제였다. 아주 큰 문제.

 이상함이 의문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르고서야 나는 드디어 이동 수족관을 타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을 발견했다. 나는 티아의 손을 잡아끌고 아무런 설명 없이 일단 잘 보이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가 수족관 아래에 일정 간격을 두고 설치되어 있는 문 앞에 서 있었다. 꽤 거리가 있던 지라 소리까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남자가 뭐라고 중얼거리자 문 정중앙에서 빛이 한차례 뿜어져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빛은 아무런 반응 없이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잠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문을 째려본 남자는 한 번 더 같은 행동을 반복했으나 똑같은 결과에 분한 듯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분노가 행동으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곧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입을 꾹 다물고는 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기 때문이다. 대신에 남자는 한숨을 커다랗게 내쉬는 걸로 짜증스러운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현명하군. 보급소 내에서는 암묵적으로 정해진 규칙이라는 존재했으니까. 남자는 첫 번째 규칙을 어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첫 번째 규칙 ‘절대로 감정 과잉을 보이지 말 것’

 그게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플램에서 주시할 확률이 높았다. 분노, 불안, 초조함 같은 마이너스적인 감정의 경우는 특히나 더 그렇다. 물론 이런 규칙들은 나중을 위해 티아에게 출발하기 전에 일러준 후였다. 나 역시 남자를 따라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 일어난 일로 보아 사람들이 가지 않은 게 아니라 가지 못하는 상황인 게 확실했으니까. 의문이 확신으로 바뀌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내 얼굴에는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이래선 안 되었다.

 “잠시만.”

 소매를 잡아당기며 궁금해 하는 티아에게 단호히 말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왜?”

 티아는 내 반응과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잠깐만 기다려봐.”

 심각해 보이는 내 말투에 티아가 알겠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이 된 의문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나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살폈다. 2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났음에도 탑승장을 떠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무슨 일이지. 어째서 안내가 없는 거야? 나는 초조함에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리고 입술을 쓸며 고민에 빠졌다. 뭔가 일이 벌어진 거라면 플램이든 토큰이든 잠잠 했을 리가 없어. 하지만 이렇듯 광장에 사람들을 묶어놓은 걸로 봐서는 아무 일도 없다고 보기도 힘든데.

 “거짓말 한 거지? 아무도 수족관으로 이동 안하잖아.”

 이윽고 티아마저 이상함을 눈치 채고는 내 말을 더욱 믿지 못하는 투로 말했다. 아직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기에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그러게. 갑자기 이동 방법이 바뀐 건 아닐 텐데······.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처음 방문한 것도 말이 안 되고.”

 “수족관이 두 개라서 그런 거 아닐까?”

 “그럴 리 없어. 게다가 탑승장으로 가는 수족관은 한 개야. 나머지 한쪽이 귀환용이고. 그리고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어.”

 본의 아니게 날카롭게 티아의 말을 받아치고는 화들짝 놀라 말을 덧붙였다.

 “미안. 평소에 없던 일이라서 내가 좀 예민해졌나봐.”

 오늘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나는 연신 사과를 했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티아를 안심시키는 말을 주절주절 내뱉었다. 정작 말하는 나조차도 불안하면서. 당연하게도 불안의 씨앗은 그대로 티아에게 옮겨갔다. 하지만 티아는 못난 나와는 다르게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내 옆에 서서 나처럼 주위를 살피는 걸 택했다. 이런 점이 또래 아이들과는 다른 부분이었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잠시 씁쓸하게 티아를 보고서 다시 사람들을 살펴보던 중에 나는 인파들 중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설마, 혹시 오늘은 온 것일까. 놀란 얼굴로 나는 그가 내가 아는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뚫어져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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