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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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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18 기억 속의 그 아이 (3)
작성일 : 19-08-01 23:26     조회 : 303     추천 : 0     분량 : 4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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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 년 전, 던스턴이 오랜 공부 끝에 아르티제로 돌아왔다. 정식 사제의 서품은 원래 아르티제로 돌아와서 받을 생각이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작곡 공부를 받던 지역과 아르티제의 중간에 있던 지역이 전쟁터가 되면서 지나갈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지의 가족은 그사이에 성소를 떠나 아르티제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집을 옮겼다. 마을 한가운데에 형리가 사는 것을 사람들이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캐서린과 루카스는 마을 순찰을 하면서 카말과 조지를 만나곤 했다.

 

  던스턴은 아르티제의 새로운 사제가 왔음을 마을 곳곳에 알리면서 마을을 돌았다. 캐서린의 권유에 따라 그는 조지의 집까지도 걸음을 옮겼다. 그가 없는 사이에 비극의 뒷정리를 해준 고마운 사람들이니 인사를 올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가 아르티제를 가로지르는 작은 개울을 지나가는 길인데, 수풀 사이로 아이가 웅크리고 있는 게 보였다. 검은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었고, 몸집도 작았다. 그는 그 아이의 곁으로 조심히 다가갔다. 팔다리에 생채기가 나 있고, 머리에 먼지를 뒤집어쓴 것을 보니 흙길에서 구른 것 같았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던스턴의 목소리에 그 아이는 화들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갈색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웅크리던 몸이 주저앉아 바닥에 떨어지고, 그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가, 갈게요. 혼내지 말아 주세요.”

  “네?”

  “잘못했어요, 이제 여기 안 올게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갑자기 용서를 구하는 상황에 던스턴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 아이는 왜 여기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때 반대편 수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금의 던스턴에게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지, 거기 있는 거야?”

 

  던스턴은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갈색 머리의 소년이 가죽으로 만든 공을 들고 나타났다. 그 소년은 던스턴을 보고 인사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농민의 아이는 아닌듯했다. 손에 들린 공도 잘 보면 가죽을 여러 겹 덧대서 만든 고급품이었다.

 

  “그렉 형.”

  “아주머니가 찾고 계시더라. 빨리 가자.”

  “응.”

 

  두 아이는 개울가의 수풀을 건너 어두운 골목길 사이로 사라졌다. 던스턴이 가려던 방향과 같았다. 던스턴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의 아들인 그렉과 형리의 아들인 조지를 만나 제대로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아직도 마음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모순된 마음 탓에 마을을 구한 은인이나 다름없는 형리와 그의 가족들을 마을의 먼 곳으로 몰아내려 한 것이겠지. 그 일은 전혀 올바르지 않았다. 만약 체칠리아가 조금만 더 일찍 아르티제로 돌아왔다면 사람들에게 며칠에 걸쳐 설교했겠지.

 

  흡혈귀 에어드부르가와 계약을 맺어 비극을 정리한 것이 미봉책을 고른 것에 최악 다음을 골랐을 뿐이라는 중앙의 평가를 받으면서, 당시의 아르티제 성소는 여러모로 약해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흡혈귀의 접근을 막기 위해 형리를 두어 하수인들을 처리한 것도 한몫했다.

 

  지금이야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더 큰 일이 벌어졌을 거라는 걸 알고 캐서린의 선견지명에 모두가 감사하고 있지만, 그때는 그게 아니었으니까. 작은 비극의 씨앗이 이미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에 던스턴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고성이 있던 자리를 채운 거대한 나무가 나타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시인의 숲이 완전히 정화되어 아르티제의 것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축제가 열렸다. 사람들은 어두운 그늘만 있던 숲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숲의 땅바닥으로 밝은 햇살이 사이사이 들어오고, 좀처럼 듣지 못했던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돼지들을 풀었다. 돼지들은 처음 들어가는 시인의 숲 입구에서 머뭇거렸지만, 해묵은 도토리를 숲길에 던져주자 도토리를 쫓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숲 안으로 들어간 돼지들은 도토리와 버섯을 찾아 먹으며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아르티제는 돼지를 칠 수 없는 마을이었다. 하지만 이제 저주받은 숲은 없다.

 

  거대한 나무 아래에서 숲을 수호하는 에어드부르가가 영원한 빛의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자, 마을 사람들은 그녀에게 예를 표했다. 아르티제의 사람들도 그녀의 고결함을 받아들인 것이다. 비극으로부터 십 년, 그리고 에어드부르가가 견뎌온 무수한 세월 속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은 모두에게 그녀는 축복을 내렸다.

 

  숲과 아르티제의 안녕을 바라는 기도를 끝으로 축제는 끝이 났다. 마을 사람들은 돼지를 숲속에 내버려 두고 돌아갔고, 에어드부르가는 돼지들이 울음소리를 내며 숲 곳곳에 퍼져 있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흡혈귀가 되기 전에는 그녀가 아르티제의 마지막 돼지치기였다고 했던가.

 

  사제들은 에어드부르가에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올린 뒤 성소로 돌아갔다. 축제가 끝나면 진이 빠져서 사제들도 아무것도 못 한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던스턴은 그렉의 연습을 잠시 봐주기로 했다.

 

  “오늘은 축제도 있었으니, 좀 쉬어도 괜찮습니다만.”

  “그래도 사제 서품을 받는 날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연습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렉은 던스턴이 보기에도 바쁘게 지냈다. 어제는 연습 끝나고 축제 준비를 돕다가 방 청소를 하는 것 같더니. 오늘은 축제를 끝내고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부지런한 것은 대견한 일이지만, 너무 자신의 몸을 혹사하는 것은 아닐까. 던스턴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럼 오늘은 조금만 하는 거로 하죠.”

 

  그렉은 고개를 끄덕이고 오르간 앞에 앉아 악보를 펼쳤다. 잘 보면, 악보를 펼치는 그렉의 손에 무언가 달려 있었다. 먼지를 먹어 검게 변한 실반지였다.

 

  “그렉, 그 실반지는 어디서 났습니까.”

  “아, 이거요. 제 방 청소하면서 찾았습니다.”

  “원래 실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만.”

 

  그렉은 그렇게 말하고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실반지의 무늬는 검게 물들어서 잘 알아보기 힘들지만, 그렉의 방에서 나온 실반지에 던스턴은 무언가 떠오른 게 있었다. 옛날에 형리 카말의 집에 갔을 때, 카말과 그의 가족들이 실반지를 하나씩 하고 있었다. 조지의 손에도 끼워져 있었던가. 그것까지 기억나지는 않았다.

 

  그들은 한동안 성소에 머물렀으니, 그들 중 누군가가 잃어버렸던 것을 그렉이 찾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조지와의 추억을 떠올렸다면,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욱 열을 가할 수 있는 거겠지.

 

  “연습이 끝나면, 조지에 대한 이야기라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생각해보니, 조지나 조지의 가족들과 몇 번 식사를 같이했던 기억이 있더군요.”

 

  던스턴의 말에 그렉의 얼굴에 미소를 뛰어넘은 화색이 돌았다.

 

  던스턴이 형리 카말의 집에서 저녁을 대접받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날도 조지는 식사가 시작되기 직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처럼 흙길에서 구른 모습으로,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고 카말의 한숨이 들리는 듯했다.

 

  카말의 삶은 풍족했지만, 외동아들인 조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조지를 때리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필요한 만큼의 옷을 입고, 어디 가서 굶고 다닌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만큼만 먹였다.

 

  형리의 일을 물려받기에는 타고난 성정이 유약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그는 조지에게 형리의 일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만큼 형리 집안에 태어나서 얻을 풍족한 삶도 주지 않은 셈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잘못된 겁니다.”

 

  던스턴이 지나가는 소리로 카말에게 말했지만, 카말의 표정은 어두웠다. 차라리 조지의 유약함을 핑계로 이 더러운 일을 이번 대에 끝낼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했던가. 교단의 가르침을 앞에 두고 조지가 겉으로 드러내는 거부반응을, 카말도 내심 거절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뒤로 던스턴이 카말에게 조지의 일을 가지고 설교한 적은 없었다. 그들이 아르티제를 떠난 날, 던스턴은 그들을 보지 않았다.

 

  “그렉, 제가 조지의 일에 관해서 후회하는 게 있다면, 서로 가르치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던스턴이 거기서 카말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고, 조지를 보호하는 아버지로 바꿀 수 있었다면. 조지의 이른 죽음은 오지 않았을까. 흡혈귀의 모습이 되어 자신의 진실을 깨닫지 못하는 조지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세상의 일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릅니다. 그러니 바꿔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면, 바뀔 때까지 노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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