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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구역 19번째 무인 정거장 'WC‐S'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보급소로 가지 않으실 분들께서는 휴게실에 정차하신 후 반드시 관리자 모드로 실행 및 머무르실 일정을 플램에 제출 부탁드립니다. 그 이후에는 자유로이 무인 정거장 구경이 가능합니다. 보급소로 향하실 분들께서는 광장으로 이동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가볍고 안전한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안전한 하루라 좋지. 속으로 비죽 방송 내용을 비웃었다. 그리고 내 옆에서 출발할 때는 하고 있지 않았던 검은색 큐브가 장식된 목걸이를 요리조리 신기하다는 듯이 보고 있는 티아를 내려다보았다. 가볍고 안전하게.

　“그렇게 신기해?”

　“응.”

　“그냥 줄어든 것뿐인데?”

　“그러니까 신기한 거야, 오빠. 무인 정거장이 오빠 손바닥의 반에 반보다도 작게 줄어들면 어떨 것 같아?”

　나는 티아에 물음에 곰곰이 상상해봤다. 그건 좀.

　“멋지겠는데?”

　얻기 힘든 수정으로 만든 장식품을 얻은 기분일 것 같았다.

　“그치? 내 기분도 비슷해. 이렇게 작은 곳에서 그동안 먹고 자고 싸고 했다니.”

　노골적인 표현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말을 해도.

　“꼭 그렇게 이야기해야 돼?”

　“맞는 말이잖아. 근데 진짜 신기하다.”

　직접적인 내용에 얼굴을 구기는 나와 달리 티아는 전혀 상관없다는 태도로 구경모드로 들어갔다.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 티아가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목걸이의 정체는 콘이었다. 본래의 크기의 2%정도 작아진. 별거 없는 네모일 뿐인데 저렇게 좋을까. 저러다 쭉 콘을 목에 걸고 있을 것만 같은 티아를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고작 이거 가지고 저렇게 신기해하다니 앞으로는 굴러가는 돌멩이만 봐도 좋아하겠네. 투덜대기는 했지만 모름지기 처음 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이왕이면 티아에게 처음일 오늘이 늘 지금 같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웃음기 어린 말투로 말했다.

　“다른 곳도 관심 좀 가져줘. 항상 무인 정거장 내부가 어떨지 궁금해 하지 않았어? 맨날 나 혼자 갈 때마다 손매 붙잡고 따라가고 싶다고 떼썼잖아.”

　“아! 맞다!”

　그제야 목걸이에서 시선을-여전히 손에서 놓고 있지는 않았지만-뗀 티아가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떤 반응이 나오려나. 지켜보고 있는 내가 다 설렐 지경이다.

　“혹시 엘사가 만들었어?”

　“뭐?”

　엉뚱한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채곤 큰소리로 웃음이 터져버렸다. 덕분에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이상한 눈초리를 받았다. 나는 재빨리 입을 꾹 다물었다. 젠장. 정거장을 울렸던 내 웃음소리가 나조차도 민망했다. 하지만 엘사라니. 생각하자 또 웃음이 터질 것처럼 입술이 씰룩였다. 엘사는 티아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top10에 드는 겨울왕국의 주인공이었다. 아닌 척 하지만 티아는 공주나 동물, 귀엽고 아름다운 걸 좋아했다. 생각하는 것도 어쩜 그 나이대의 어린애다운지. 그러면서 매번 자긴 애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나 하고 말이야.

　“아니야?”

　“당연히 아니지. 그녀가 만든 건 궁전이잖아. 여긴 그냥 정거장일 뿐이고.”

　“그래?”

　여전히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겉보기엔 이래보여도 얼음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야.”

　“그러면?”

　관심을 보이는 티아가 귀여워 신이 났다. 듣는 사람이 즐거우면 설명하는 사람도 힘이 나는 법이다.

　“무인 정거장은 유일하게 화이트 큐브로 만들어졌다고 해. 우리 콘과는 반대지.”

　“화이트 큐브?”

　“어. 무인 정거장은 보급소로 가는 유일한 길이잖아?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소재가 화이트 큐브를 이루고 있는 ‘나스’이란 물질 속에 들어있데. 너도 기억하지? 플램에서 ‘이그노라빌리스(Ignorabills)’ 혹은 ‘이그리스’라고 불리는 신소재를 발견한 거. 그걸 정제해서 나온 게 니그(Nig)랑 나스(Nas)라는 가루야. 니그는 곱고 부드러운 검은색 가루로 블랙 큐브와 뉴라의 주재료이기도 하지. 그리고 나스는 은백색의 가루로 화이트 큐브로 활용되고 있어. 정확한 원리는 꽁꽁 숨겨두고 있어서 알 수 없지만 플램에서 설명하는 바로는 나스는 모양을 변형시킬 수 있고 차가운 속성이 있어서 나스가 들어간 것들은 대체적으로 냉기 속성을 띄고 있다고 해. 얼음은 아닌데 얼음처럼 느껴지니까 신기하지?”

　“오빠는 왜 그렇게 잘 알고 있어?”

　“나야 처음 왔을 때 미리 찾아봤으니까 그렇지.”

　“그렇구나. 그동안 이 신기한 걸 오빠만 즐기고 있었단 말이지?”

　마지막 말은 하지 말 걸. 반달로 그려진 입 모양이 어색하게 반쯤 내려갔다. 눈이 마주치기 두려워 시선을 살짝 옆으로 피했다. 내 손으로 무덤을 판 격이었다. 눈을 가늘게 뜨며 무섭게 쳐다보는 티아를 피해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보이지는 않아도 지금 티아는 마음에 들지는 않다는 기운을 풀풀 풍기며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난 바보인가. 근데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 다 자길 위해서였는데. 억울함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항의할 수는 없었다. 그래봤자 ‘나도 더 일찍 알 수 있었는데. 누구 때문에.’ 하면서 째려볼게 뻔해서.

　언제쯤 말을 걸까 고민하고 있는데 규칙적으로 들려오던 발자국 소리가 없어졌다. 화들짝 뒤를 돌아보니 티아가 제자리에서 멍하니 위를 보고 있었다. 나는 티아가 보고 있는 곳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달리 눈길을 끌만한 건 없어 보이는데.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이유를 찾지 못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티아에게 다가갔다.

　“축소가 된 것도 아닌데,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 보여서. 그리고 서로 뭉쳐있어.”

　친절하게도 내가 알 수 있게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켜주기까지 하는 티아덕분에 동생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음, 그렇긴 하네. 자리도 많은데 왜 저렇게 했지?”

　5-6개의 BChouse가 한 줄기에 띄엄띄엄 있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아는 사람들끼리 뭉친 건가. 흠, 별로 궁금하지는 않은데. 만약 티아가 더 알고 싶다고 한다면 확인할 방법을 찾아볼 생각으로 티아를 보니 이미 다른 쪽으로 흥미가 이동한 후였다. 내 동생이지만 호기심과 비례하게 변덕이 참 심하다니깐. 이번에는 휴게소의 구조가 궁금한 모양인지 연신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위를 올려다보면 마름모꼴의 얼음을 엇갈리게 쌓아둔 것 같이 보이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정착해 있는 큐브들 때문에 군데군데 먹은 포도 같이 보여.”

　피는 속일 수 없는 건가. 우습게도 별것도 아닌 것에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무인 정거장은 규칙 없이 엇갈리게 쌓아 올린 구조였다. 겹쳐지는 곳을 제외한 줄기로 보이는 부분은 넓이가 좁지 않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지는 형태가 아닌 반대로 아래로 향할수록 작아지는 탑처럼도 보였다. 그래서 멀리서 봤을 때 티아와 비슷하게 나는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얗다고 하기보다는 투명해. 게다가 모양도. 오빠가 말했던 것처럼 내가 보던 큐브 형태는 아닌 것 같아.”

　내 동생이지만 참 영리해. 티아의 말이 계속될수록 나는 속으로 굉장한 뿌듯함을 느꼈다. 연신 질문을 하는 모양새가 추리를 하는 탐정처럼 진지하고 눈빛은 신문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반짝거렸다. 때문에 진작 데리고 올 걸 그랬다는 후회가 내 양심을 쿡쿡 찔렀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런 마음이 들 것 같더라니. 티아와 관련되면 본능적으로 이렇게 되어버렸다.

　“우리가 본 것만이 전부는 아니니까. 우리가 모르는 신세계가 더 있을지도 몰라.”

　“그런 가?"

　“분명 그럴 거야. 가까운 걸로 예를 들자면 우리 집도 겉보기와는 다르게 숨겨진 공간이 많잖아?”

　티아는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지만 내가 한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내가 해준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다. 티아는 콘 내부에 있는 모든 공간을 가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 중에서 일부는 티아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고 또한 티아가 모르는 방도 분명 존재했다.

　“그럼 앞으로 나도 데리고 가는 거지? 오늘로 끝이라고 하면 화낼 거야.”

　티아가 제법 매서운 눈으로 나를 쏘아봤다.

　“물론이지. 네가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내가 수긍하자 티아의 볼이 기대감으로 발그레했다. 거짓말은 아니다. 다만 제한 없이 모든 곳을 데리고 가겠다고는 하지 않았을 뿐이다. 굳이 정정하지도 않았다. 티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계속 걸음을 옮겼고 나는 티아가 더 질문하지 않는 것에 안도했다. 때문에 호기심과 궁금증에 푹 빠진 티아도, 그런 티아를 보는 흐뭇하게 보는 나도 광장으로 가는 길이 거의 끝나간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변명하자면 나는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였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줘야할지 가이드라인을 미리 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티아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꺼내느라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젓가락 같았던 기둥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고, 그때서야 나는 우리가 저기에 발을 들였을 때 일어날 일에 대해 떠올렸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 곧 있으면 펼쳐질 터였다. 하지만 그 전에 일어날 일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건 모르고 당하면 화가 날 정도로 유쾌한 일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미리 경고하기 위해 몸을 튼 나보다도 티아가 입을 여는 게 빨랐다.

　“기둥이 엄청 큰가봐. 가까워질수록 기둥이라는 사실을 잊게 되네.”

　티아가 기둥을 제 몸에 가두려는 듯 두 팔을 양쪽으로 크게 벌렸다.

　“다 그런 건 아니야.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져. 나중에 시간나면 맨 밑까지 가볼래?”

　나는 티아가 마음에 들어 할 것이라는 생각에 주저 없이 권유했다.

　“그래도 돼? 웬일이야?”

　슬프게도 티아는 곧바로 의문을 표하며 나를 의심해왔지만 말이다. 계속되는 째림에 결국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흔쾌히 데리고 가려던 이유가 있음을 실토했다.

　“아래로 갈수록 사람들이 많이 없거든.”

　그리고 이어지는 티아의 질문에 애초에 꺼내려던 말을 할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버렸다.

　“그럼 그렇지. 오빠는 왜 사람들 많은 곳을 싫어해?”

　줄곧 궁금했던 질문의 답을 기다리는 티아의 얼굴은 격양되어 있었다. 직설적으로 물어올 줄은 몰랐는데. 나는 고민했다. 이 정도는 말해줘도 되겠지.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바로 말하지 않고 좀 더 고민하는 '척' 연기했다. 티아는 분명 이렇게 시간을 끌면 내가 말하기 힘들어한다 생각할 테니까. 나쁜 소식을 발표하기 전의 묘한 긴장감이 우리 주위를 감쌀 때까지 나는 나중에 보게 될 티아의 반응을 위해 열심히 뜸을 들였다.

　“사실.”

　실컷 뜸을 들이다 드디어 뚜껑을 열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내 말보다 또 다시 티아의 말이 빨랐다.

　“말하기 힘들면 안 해도 돼. 실은, 나 콘을 통해 찾아봤어·········.”

　내 말을 가로챈 티아는 심각하고 걱정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게 아닌데?

　“뭐?”

　뭘 찾아봤다고? 혹시나 싶어 긴장이 되었다.

　“난 괜찮아.”

　응? 혼자서 결론을 내린 티아 때문에 말문이 막혔다. 긴장은 무슨. 대체 이건 무슨 상황이지. 뭐라 해명할 틈도 주지 않고 티아는 무인 정거장으로 갈 수 있는 광장을 향해서 당차게 걸음을 옮겼다. 가기 전에 내 팔을 도닥이며 위로하기까지 했다. 어라? 완전히 황당한 나는 입을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바보 같았다. 나는 멀어지는 티아의 뒷모습을 멍청히 바라보았다. 뭘 알았다는 거지?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온갖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빨리 와, 오빠!”

　몇 걸음 걷던 티아가 내가 따라오지 않는걸 알아챘는지 멈춰 서서 나를 불렀다. 천진난만한 얼굴에 또 당황하는 건 나였다.

　“엉?”

　나도 모르게 나온 대답은 참 바보스러웠다. 난 언어 능력을 검사해봐야 할지도. 내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을 때, 내 반응을 본 티아가 고양이처럼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다시 걸어와 내 앞에 섰다. 시선을 내려 보니 티아의 얼굴에는 한방 먹였다는 듯 의기양양함으로 가득했다. 당했네. 당했어.

　“농담이야. 이유야 뻔하지, 바이러스 때문이잖아. 오빠가 장난치려고 하니까. 그냥, 한번 놀려본 거야.”

　이번엔 내가 이겼지? 혀를 내밀며 티아가 말했다. 허.

　“그래. 내가 당했네.”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대체 우리는 누구를 닮아 이런 성격인 걸까. 티아한테 내가 더 당하는 날이 조만간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흠, 방심하면 안 되겠어. 별 시답지 않은 다짐이지만 내 심장을 위해선 필요했다.

　서로를 타박하며 우리는 거의 동시에 광장으로 발을 디뎠고, 그 순간 눈앞이 흐려지며 앞을 보던 시야가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다. 광장으로 들어선 순간 중력의 방향이 틀어지며 광장 중앙에서부터 양 옆으로 나뉘어 발산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신체 역시 강제적으로 위치가 바뀌었고,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해 어지러움과 함께 뇌마저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잘못을 깨닫고 혀를 깨물고 싶어졌다.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