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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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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16 기억 속의 그 아이 (1)
작성일 : 19-07-25 22:58     조회 : 290     추천 : 0     분량 : 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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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 년 전, 에어드부르가가 그믐달의 왕을 옥좌에서 끌어내고 얼마 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다. 흡혈귀들이 날뛰었던 그 밤은 피를 부른 비극이었지만, 그다음에 찾아온 비극은 마음의 피를 불렀다.

 

  아르티제는 흡혈귀들이 사는 숲을 끼고 있는 마을이었기에, 그들의 명령을 받는 인간 하수인들이 많이 있었다. 흡혈귀의 하수인이 되어 다른 선량한 이들 사이에 숨어 사는 것은 큰 죄였다. 그동안은 흡혈귀들의 권세에 밀려 교단에서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죄인들을 색출해 처벌할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아르티제는 그와 관련해 다른 문제가 있었다. 죄를 심문하고 벌을 집행하는 업인 형리, 아르티제에서 형리를 도맡던 가문이 흡혈귀들에게 몰살당한 것이다. 아르티제 성소는 새로운 형리를 아르티제로 불러들인다는 고를 냈지만, 그 어떤 형리 가문도 지원하지 않았다. 민심이 흉흉해진 마을에 외지인이 피를 보이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니까.

 

  그러던 중에 다른 마을과의 계약이 끝난 어느 형리 일가가 아르티제로 찾아왔다. 며칠 머무는 동안 마을을 살핀 그들은 고심 끝에 형리 계약을 맺었다.

 

  성소의 사제들은 형리와 그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다른 생명을 빼앗는 일은 정당한 이유가 있어도 용서받을 수는 없다. 이해받을 수는 있어도. 그러니 그들의 마음에 그늘이 져 저주가 찾아오지 않도록 방비하는 일은 중요했다.

 

  하지만 형리의 외동아들은 사제들의 기도를 거부했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사제가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고, 영원한 빛들이 그들의 마음이 상처 입는 것을 막아줘도, 그들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상처는 언제나 가까이에서 형벌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서 날카롭게 들어왔으니까.

 

  그믐달 숲의 일을 처리하고 정식으로 본당 사제가 된 캐서린은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핏 보기에는 교단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는 불신자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사실은 마음이 깊기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음이 깊은 아이구나. 네 이름은 뭐니?”

 

  그 아이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조지.”

  “그래, 조지야. 그래도 너를 위해 기도해주고 싶은데, 안 되겠니?”

 

  그때, 조지는 어떻게 답했더라. 캐서린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렉을 제외한 사제들이 모두 캐서린의 집무실에 모였다. 안토니오는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한 뒤 아르티제를 떠났다. 기억을 되감았던 캐서린이 눈을 뜨자, 방 안에는 적막과 씁쓸한 차의 향기만이 맴돌았다.

 

  “그렇게 된 일이었군요.”

 

  루카스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잘 떠올려보면 아르티제의 모든 사제는 스쳐 지나가는 길에라도 조지를 만난 적이 있었다. 흡혈귀의 모습을 뒤집어쓰면서 변해버린 외모와 분위기에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뿐.

 

  “교단의 가르침과 사람들의 모습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는 법이에요. 거기에 상처를 받는 사람도 분명 있겠죠.”

 

  흡혈귀에게 시달린 사람들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캐서린은 부단히 노력했었다. 하지만 이미 받은 상처를 없던 것으로 할 수는 없었다. 그건 흡혈귀가 아니라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조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아이는 교단의 가르침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어요. 그에게 생긴 변화도 그런 마음가짐이 영향을 줬을 겁니다.”

  “영원한 빛이면서, 자신을 흡혈귀로 착각하고 있는 이 상황 말입니까.”

 

  던스턴의 질문에 캐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뮤로스 드무스가 끝내 영원한 빛을 극복하지 못하고 소멸한 뒤, 사제들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조지를 바라보았다. 그를 공격하기 위해 일으킨 섬광은 아니었지만, 흡혈귀는 영원한 빛이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소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온전한 모습이었다.

 

  “에어드부르가, 저 흡혈귀는 당신의 권속인 거죠?”

 

  체칠리아의 질문에 에어드부르가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 흡혈귀, 당신의 권속을 자처하며 숲을 지키기 위해 싸웠어요.”

  “만약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영원한 빛이 되지 못했겠지.”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에어드부르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되뇌며 죽어가는 비극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지켜온 인내가 깨달음이 되어 그녀를 영원한 빛으로 만들었다. 그 인내를 버리고 조지의 피를 취했다면, 그녀는 지금 영원한 빛으로서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영원한 빛이 된 당신을 흡혈귀의 모습에 가두고, 저 아이를 흡혈귀로 만들어 당신과 묶은 존재가 있을 텐데요.”

 

  안토니오의 질문에 그녀는 손가락을 폈다.

 

  “저기에 있지 않으냐.”

 

  그녀가 가리킨 것은 조지였다. 에어드부르가는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네가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만.”

 

  사제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루카스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내 눈에, 저 흡혈귀는 흡혈귀가 아니라 영원한 빛으로 보입니다.”

 

  루카스의 눈, 허락받은 눈은 영원한 빛이 자신의 모습을 감추어도 바라볼 수 있다. 그들이 잠시 육신을 얻고 살아 있는 자들 사이에 숨어도, 루카스의 눈에는 바로 드러난다. 자신을 저주받은 흡혈귀의 모습으로 바꾼다고 해도.

 

  “조지는 자신이 죽어가던 순간에 에어드부르가를 보았습니다. 정신을 잃고 깨어났을 때는 에어드부르가가 자신의 피를 취했기 때문에 흡혈귀로 다시 태어난 거라 착각했죠.”

 

  영원한 빛이 세상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그의 뜻에 반하는 다른 영원한 빛이 없어야 한다. 빛과 빛이 부딪혀 서로의 힘을 흩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원한 빛이 자신의 내부에 힘을 가할 때는 막을 방법이 없다.

 

  “결국 영원한 빛이면서도 한없이 흡혈귀에 가까운 상태가 된 거죠.”

  “그렇다면 에어드부르가는 왜 흡혈귀의 모습이 된 거죠? 조지가 자신을 흡혈귀로 착각한 것은 에어드부르가가 흡혈귀의 모습에 갇혀 있던 것과 별개의 문제일 텐데.”

  “일반적으로는 그렇지요.”

 

  체칠리아의 질문에는 캐서린이 대답했다.

 

  “에어드부르가는 시인의 숲을 지키는 파수꾼이에요. 파수꾼은 흡혈귀가 아니어도 될 수 있지만, 영원한 빛보다는 흡혈귀 에어드부르가인 쪽이 더 강력하죠.”

  “에어드부르가가 그믐달의 왕을 죽였기에, 동족인 흡혈귀를 죽일 때 더 강한 힘을 쓸 수 있다는 것 때문인가요?”

  “맞아요. 거기에 자신을 주인이라고 믿는 조지가 있었기에, 그녀의 혼을 묶은 계약과 조지의 착각이 에어드부르가를 옭아맨 거죠.”

 

  체칠리아는 이 모든 현상이 복잡한 조건 끝에 일어났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에어드부르가에게 아쉬움과 미움이 남아 있었다.

 

  “최소한,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미리 알려줬더라면.”

 

  캐서린은 그녀의 마지막 원망에 그저 조용히 있었다. 에어드부르가는 그렉이 정식으로 사제가 될 준비를 마칠 때까지 조지를 숨겼다. 그리고 체칠리아가 마지막으로 흡혈귀에 대한 모든 원망을 털어낼 준비가 될 때까지 자신을 옭아맨 족쇄도 숨겼다. 체칠리아도 알고는 있지만, 이 복잡한 감정은 추스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면 저희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됩니까?”

 

  던스턴은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았다. 앞으로 언제까지일지는 알 수 없지만, 조지는 한동안 흡혈귀의 모습을 유지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에어드부르가 역시 그렇게 하겠지. 남은 것은 사제들이 어떻게 이 일을 다룰지에 대한 해답이다.

 

  캐서린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가, 사제들에게 역으로 물어보았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고 싶나요. 그렉에게 조지의 진실에 대해 알릴 건가요?”

 

  어쩌면 그 방법이 가장 좋을지도 모른다. 그렉에게 조지가 사실은 흡혈귀가 아니고 영원한 빛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면, 그렉이 조지를 일깨울지도 모른다. 그러면 조지도 영원한 빛으로서 자신의 원래 모습을 되찾을 것이고, 에어드부르가 역시 족쇄에서 벗어나겠지. 하지만 어느 사제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선뜻 답할 수 없었다.

 

  “캐서린 사제님.”

  “네. 듣고 있어요, 체칠리아.”

 

  체칠리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제게 시련을 주셨던 것처럼, 그렉에게도 정식으로 사제가 되기 전에 본당 사제로서 시련을 주셨겠죠.”

  “맞아요. 이미 주었답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그렉에게 진실을 알리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나요?”

 

  캐서린은 미소를 지었다.

 

  “잘 알고 있군요. 여러분들도 다 같은 생각을 한 거겠죠?”

 

  사제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결국 그렉이 스스로 해결할 문제고, 그렉이 조지와 같이 풀어야 할 문제다. 그들이 마음대로 답을 알려줄 수는 없다.

 

  “그러니 저희는 그렉에 문제를 풀 실마리만을 던지겠습니다. 소중한 일상을 살아가며, 저희의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좋아요. 여러분이 정말 자랑스럽네요.”

 

  캐서린은 그렇다면 그들의 결정에 더 얹어서 하나의 숙제를 주겠다고 말했다.

 

  “여러분들도 어렴풋이 조지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겁니다. 그것을 떠올려보세요. 그렉에게 어떤 실마리를 줘야 할지 깨닫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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