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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면진(免震)
작가 : 디비
작품등록일 : 2018.11.2

이해하지 마! 우린 그저 세상이 돌아가게 만들 뿐이야. 누구 하나 몰라도 돼. 아니 몰라야 해.
우리 사훈(社訓)이 면진(免震)이야! 그러나 정세현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기업물][경제물][경영물][드라마][성장물]


소설을 처음 써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글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지명,단체 및 그 밖의 일체의 명칭, 그리고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로 창작된 것이며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우연에 의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인간 쓰레기들
작성일 : 19-06-09 16:08     조회 : 389     추천 : 0     분량 : 8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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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이 있겠습니다. 일동 묵념.’

 충청투자 사무실 안쪽 문 앞에 일렬로 선 덩어리들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실눈을 뜨고 서로 옆을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문창주의 눈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대통령 취임식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귀와 신경은 온통 수화기를 들어 통화를 하는 석정선의 입을 향하고 있었다.

 “네. 그럼 찾아뵐 실익이 있을까요?”

 전화하고 있던 석정선의 표정이 심각했다.

 “그럼 교통비라도?”

 석정선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소파로 걸어왔다. 걸음걸이가 이미 결과를 말해 주고 있었다.

 “뭐래?”

 문창주는 얼마 되지 않는 희망을 걸었다.

 석정선이 소파에 조심스레 앉았다. 문창주를 바라보며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창주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야. 석 이사. 넌 무슨 교통비 얘기를 하고 있어.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문창주는 아차 싶었는지 석정선에게 눈을 찡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야. 밑에 다방 가서 커피들이나 한 잔씩 때리고 와.”

 대통령 취임식 식순에 따라 애국가 제창을 준비하고 있던 덩어리들이 알아서 미스 김을 데리고 나갔다.

 “어머? 사장님? 제가 왜 같이 다방에 가요?”

 미스 김은 질질 끌려가며 울부짖었다.

 “왜? 너 보고 가서 티켓 끊으라디? 가서 거기 언니들 고충도 좀 같이 들어주고.”

 다들 알고 있었다. 문창주와 석정선만 알고 있어야 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덩어리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당장의 유흥이 좋았다. 호기심 천국은 미스 김이었다.

 사무실이 조용해지자 편안해졌는지 문창주가 기지개를 켜며 다리를 탁자에 올려놨다.

 “그래서?”

 “그게 업계 관행이라. 채권자가 가져갈 돈이 압류한 계좌에 있으면 으레 ‘교통비는 빠지겠네요.’ 또는 ‘헛걸음은 안 하시겠네요.’ 이런 식이거든요. 저희가 통장 압류 너무 늦게 한 거 같습니다.”

 문창주가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석정선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그때 보험금 그러니까 우리가 빨아 준 저축은행 계좌였단 말이지?”

 “네.”

 “아 시발. 재밌네. 안 그래?”

 “네? 무슨 말씀이신지?”

 문창주는 가슴이 답답한지 탁자에 올려놨던 다리를 내렸다.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켰다.

 “석이사. 너? 얘들 안 붙였어?”

 “저 그게. 며칠 돌리다가 아무 일 없길래…….”

 “그러니까 캐시로 다 땡겼다는 거 아냐?”

 문창주는 짜증이 날 때로 난 상태였다. 자기 할 말만 했다.

 “저도 그날 금선호텔 커피숍에서 처음 들어서……. 김창록이 뒤통수를 칠 줄은…….”

 “꿈에도 몰랐지?”

 “네. 그 후에 저희가 최대한 빨리 압류한다고 했는데.”

 “저희가?”

 문창주가 눈을 부라렸다.

 “아니요. 제가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이중 사기를 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눈이 멀었던 거지. 안 그래?”

 “네. 맞습니다.”

 “석이사. 너 지금 나 시험하냐?”

 “죄송합니다.”

 “그래. 과거는 잊고 미래를 생각하자. 오케이?”

 문창주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그 새끼 어디 있어?”

 “그게 행방이 묘연합니다.”

 “시발. 너 그게 지금 나한테 할 소리야? 죄송하단 말 한 번만 더 하면 입 찢을 거야.”

 “사장님 볼 면목이 없습니다.”

 석정선이 벌떡 일어나 허리를 꺾었다.

 문창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웃겨서 그랬는지 아니면 한심해서 그랬는지표정만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전화해서 얘들 올라오라고 해. 열불 나서 여기 있는 누구 하나 죽일 거 같으니까. 한 잔 빨아야겠다.”

 충청투자 사무실에는 문창주와 석정선 둘 뿐이었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다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분위기가 처지게 ‘하얀 나비’가 흘러나왔다. 그런 분위기에 걸맞게 창가 쪽 테이블에 노인네 둘이 앉아있었다. 근처 탑골 공원에서 놀다 점심을 먹고 입가심할 요령으로 들른 듯했다. 그 노인네 둘 사이에서 마담이 일어나 문창주와 석정석을 보며 손을 입에 가져다 대고 손 뽀뽀를 날렸다. 석정선만 가볍게 눈인사로 답례했다.

 “어머 오뽜. 진짜 오랜만. 요새 왜 이리 뜸했어?”

 머리를 빨강, 노랑, 보라 삼원색으로 염색을 한 여성이 문창주의 팔짱을 꼈다. 20대 초반이었지만 키는 작달막했고 몸은 펑퍼짐하고 탱글거렸다. 자리에 앉을 때까지 댕그랑대는 가슴을 문창주의 팔뚝에 비벼댔다. 나름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영업전략이었다.

 “체리는?”

 문창주가 자리에 앉자마자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오뽜? 그년은 왜? 배달 갔지. 뽀뽀가 여기 있잖아.”

 부녀지간이라고 해도 믿을 나이 차였지만 여기에서는 숟가락 들 힘만 있는 노인네였어도 다 오뽜였다. 업계 룰이었다. 뽀뽀가 자본주의 웃음을 지으며 문창주가 물었던 담배를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 성냥에 불을 붙여 한 모금을 빨고 다시 문창주의 입에 물렸다.

 “사람 새끼고 물건이고 경쟁력 있는 것만 팔려. 참 시발 냉정하다. 냉정해.”

 문창주가 뽀뽀를 바라봤다.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썩은 미소를 지었다.

 뽀뽀는 영업상 삐질 수가 없었다. 대신 성냥에 불을 붙여 성냥 대가리에 붙은 황이 다 타기도 전에 입바람으로 꼈다. 타던 성냥 황이 꺼지면서 아지랑이 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를 뽀뽀가 연신 코로 들이마셨다. 들이마신 성냥 황 연기를 담배 연기처럼 입으로 뿜어냈다. 반대로 입으로 빨아들여 코로 내뱉기도 했다. 점차 테이블 위에는 타다만 성냥개비들이 금세 쌓여갔다.

 “이년아, 그러다 폐 작살나.”

 “오뽜. 이 맛 들이면 끊지 못해. 코가 시큰시큰 쩡한 게 머리를 딱 때려. 오뽜는 알지도 못하면서.”

  다시 성냥에 불을 붙이려 했다.

 “가서 시야시 이빠이 된 삐루나 가져와.”

 “오뽜. OB하고 모둠 과일?”

 뽀뽀가 억지로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리며 석정선에게 윙크하며 눈웃음을 흘렸다.

 “저는 커피면…….”

 “야. 과일 말고 노가리 가져와. 노가리.”

 실룩샐룩 거리며 주방으로 멀어져 가는 뽀뽀의 엉덩이를 보며 문창주가 외쳤다.

 문창주가 담배를 다 피우기도 전에 뽀뽀가 마담을 앞세워 한 상 거하게 차려왔다. 예상대로 모둠 과일과 맥주가 메인이었고 노가리와 소주는 덤이었다.

 마담은 석정선 옆에 앉았다. 대추나무 연 걸리듯 마담의 몸뚱이에는 장신구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끼워질 만한 곳에는 다 끼워져 있었고 매거나 달아야 하는 부위에도 여지없이 매달려있거나 달려있었다. 얼굴은 눈과 입술이 인상적이었다. 유독 검게 칠한 마스카라와 과한 아이섀도로 두 눈은 판다 같았고 입술은 새빨갰다.

 “어머 자기는 웬 커피?”

 애초에 커피를 가져오지도 않았다. 석정선의 앞에 커피잔 대신 맥주잔이 놓였다. 맞은편에서는 뽀뽀가 시키지도 않은 과일을 문창주의 입속에 넣고 앵겼다.

  “노가리나 찢어. 그리고 음악이 이게 뭐야? 센스 하고는. 술맛 떨어지게.”

 뽀뽀가 입술을 내밀며 카운터로 향했다.

 

 ‘내~과거를~말하지 마라~’

 장철웅의 ‘내일은 해가 뜬다’가 흘러나왔다.

 “참 선곡하고는. 시발. 이 분위기에. 꼭 하자 있는 년들은 지들 하자가 뭔지 몰라요. 아니 있는지조차 몰라.”

 문창주가 못마땅해하건 말건 마담은 소주와 맥주를 섞어 폭탄주를 열심히 말았다.

 “오뽜? 이 노래 어때? 요즘 최신 인기곡인데?”

 뽀뽀가 다시 무거운 엉덩이를 문창주 쪽으로 들이밀었다. 문창주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담배만 피웠다.

 마담이 석정선을 바라보며 폭탄주 제조에 쓰인 휴지를 벽에 던지지 않고 자기 가슴팍에 붙였다. 젖은 휴지에서 스며 나온 폭탄주가 가슴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기야. 젖기 전에 쭉 빨아줘.”

 마담은 석정선을 향해 오므렸던 다리를 벌리며 고개를 젖혀 뒤로 약간 누웠다.

 뽀뽀는 하지 말라는 듯 마담에게 실눈을 떴다. 옆에 있던 문창주가 입에 담배를 물고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했다. 아직 충청투자 사무실에서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지 못했지만, 문창주의 기분이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았다. 가슴골을 타고 내려온 폭탄주는 이미 마담의 팬티를 적시고 가랑이 사이를 타고 흘렀다. 석정선은 가랑이 사이로 흘러내리는 폭탄주 대신 앞에 놓인 맥주잔을 들어 마담이 말아 놓은 폭탄주를 쭉 빨았다. 이제 다방과 술집의 경계는 무의미했다.

 “야 이년아. 봐라. 이 정도 매상 올려 주면 저 정도 쇼는 나와야. 좀 배워.”

 문창주는 옆의 뽀뽀를 바라보며 주먹을 들어 한 대 치려는 자세를 취했다. 물론장난이었다.

 “근데 이제 하지 마. 드럽게. 더 하면 추해.”

 문창주가 마담을 한 번 쳐다본 후 맥주잔을 들어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어머. 자기? 설마? 뽀뽀야. 확인해봐. 승질났나?”

  마담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가슴골에 붙어있던 화장지를 떼서 가랑이 사이에 흐르던 폭탄주를 닦았다. 뽀뽀가 문창주의 사타구니에 손을 가져다 대려고 했다.

 “내 좆 대가리 센서가 얼마나 민감한 줄 알아? 성낼 때 안 낼 때를 얼마나 잘 구분하는데. 한 번 승질났다 하면. 말을 말자. 말을. 얘를 뭘로 보고 말이야. 그치?”

 문창주가 고개를 숙여 자기 사타구니 쪽을 바라봤다. 서로 웃으며 화기애애했다.

 그때였다.

 “마담. 음악이 이거 왜 이래.”

 “시방, 우리 무시하는 거여? 뭐여?”

 창가 쪽에 앉은 두 명의 노인네였다. 마담을 뺏긴 불만의 표시이기도 했다.

 문창주의 낯빛이 어두워지며 한쪽 눈을 씰룩거렸다. 막 육두문자가 입에서 나오려던 참이었다. 문창주에게 나이는 별 상관이 없었다. 나온 것은 문창주 입에서 나온 욕이 아니었다. 석정선의 걸음걸이였다. 그 방향은 창가 쪽 테이블이었다. 마담이 석정선의 소매를 잡았지만 이미 뿌리친 뒤였다. 그런 석정선을 문창주는 묵묵히 바라봤다.

 석정선이 노인네 둘과 드잡이를 할 위인은 못됐다. 노인들과 짧은 대화가 오간 후 석정선이 다시 돌아와 앉았다. 마담이 궁금하다는 듯 옆의 석정선을 빤히 쳐다봤다. 창가 쪽 테이블에서 노인 둘이 일어섰다. 볼일을 다 봤다는 듯 중절모를 쓴 노인이 모자를 벗어 문창주 테이블 쪽으로 인사를 하고 나머지 일행 한 명과 빠르게 빠져나갔다.

 “어머? 시발. 오뽜들. 계산…….”

 일어나려는 뽀뽀를 문창주가 주저앉혔다.

 “그래? 겨우 커피 두 잔 값에 자존심을 팔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문창주가 나가는 노인네들의 뒷모습을 보며 석정선을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제가 커피 두 잔 값으로 노인네들 자존심 사 왔습니다. 사장님 기분이 안 좋아 보이셔서.”

 “참 인생 싸구려네. 싸구려야. 병신들. 그깟 커피 두 잔 값에. 조금만 더 값 쳐주면 몸까지 팔겠어. 아주.”

 노가리를 뜯으며 문창주와 석정선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뽀뽀의 눈이 커졌다.

 “오뽜! 커피 두 잔 아냐. 마담 언니 커피하고 내 것 오렌지주스까지 네 잔인데.”

 “뽀뽀야.”

 “응?”

 문창주가 빈 잔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뽀뽀가 문창주의 빈 잔에 맥주를 채웠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어.”

 “오뽜. 무슨 말?”

 뽀뽀가 문창주를 빤히 쳐다봤다.

 “예로부터 하자 있는 년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

 “오뽜? 무슨 말이야?”

 한심하다는 듯 문창주는 말없이 뽀뽀의 젖가슴을 한 번 움켜쥐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석정선도 술이 들어가 기분이 좋은지 빙그레 웃었다.

 “오뽜. 그러지 말고 티켓 끊어. 응?”

 뽀뽀가 문창주의 가슴팍으로 앵기려고 할 때 다방 문 종소리가 울리며 작업복을 입은 남자 셋이 들어왔다. 근처의 공구점 사람들인 것 같았다.

 “오뽜들. 어서 와.”

 이미 뽀뽀가 마중 나가고 있었다.

 “자기야. 잠시만.”

 마담이 문창주를 향해 윙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와 오렌지 주스로 자존심을 팔러 가야 했다.

 “여기 신경 쓰지 말고 음악이나 좀 바꿔.”

 마담이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고 일어서서 치마를 쓸어내렸다. 문창주의 테이블에 웃음을 흘리며 사라졌다.

 

 ‘새벽 비가 주룩주룩 철길을 적시네~’

 마담이 선곡한 곡은 혜은이의 ‘새벽 비’였다.

 한낮이었지만 음악 때문인지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김창록, 이 개새끼.”

 문창주가 맥주를 단숨에 비웠다.

 “죄송합니다. 다시 행방을 수소문해 보겠습니다.”

 “아직 국내에 있어.”

 “네? 저번에 김창록 공장에 갔을 때 사장님도 김창록 가족사진 보셨다시피 와이프하고 딸들은 외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 같던데요.”

 “걔네가 김창록한테 얼마 쐈다고 했지?”

 “누구요?”

 “누구긴 누구야. 너 정말 이럴래? 그때 왜 금선호텔 커피숍에서.”

 “죄송합니다. 12억 정도요?”

 “참. 겁대가리 없이. 지르는 배포는 마음에 드네.”

 “그게. 몇십 명이. 한 명당 평균적으로 청바지 100벌 정도 받는 정도니까요. 십시일반. 한 명 한 명 따지면 그리 큰 금액은 아닐 겁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포인트가.”

 “죄송합니다.”

 “12억. 만 원짜리로 사과상자에 넣으면 몇 박스쯤 나오지?”

 “한 10박스 정도 나오지 않을까요?”

 “그래. 작게 잡아도 7박스에서 8박스 나오겠지?”

 “벌써 부동산이나 주식, 금 같은 것으로 바꾸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이미 달러로 환전해서 외국으로 밀항했을 수도 있구요.”

 “아냐. 내가 김창록이라면. 일단 보는 눈이 많아. 부동산, 주식, 금 같은 건 너무 헤프게 흘리고 다니는 거지.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다고. 구린내는 금세 퍼지니까. 달러도 마찬가지. 그 많은 돈을 송금한다? 대번 걸리지. 석 이사 너 조선반도 공권력 무시해? 그건 아냐. 위로는 철책하고 빨갱이들이 딱 버티고 있고 또 뭐 밀항이 한강에서 오리배 타는 건 줄 알아?”

 문창주는 양손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사용해 콧구멍 양쪽을 번갈아 후볐다.

 “그럼요?”

 “어디 짱 박아 뒀거나 몸에 지니고 움직이고 있거나.”

 “사과 박스 8개 정도 되는데요.”

 “봉고. 승용차도 충분하고.”

 “그럼 엄청 불안하겠네요?”

 “김창록이가?”

 문창주가 쓴웃음을 지었다.

 “오뽜! 전화!”

 석정선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뽀뽀가 카운터에서 수화기를 흔들었다.

 “뭐야?”

 “글쎄요? 전화 올 때라곤 사무실밖에 없는데?”

 석정선이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으러 갔다.

 자리에 돌아와 앉은 석정선의 얼굴에는 미안한 표정이 가득했다.

 “왜?”

 “사무실에 일섭 군 와있답니다.”

 “일섭이가 왜?”

 “그게. 오후에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한 걸 깜박했습니다. 여기로 데리고 와도 될까요? 생각해 보니 사무실은 좀 적절하지 않을 거 같아서.”

 문창주가 알아서 하라는 듯 손짓했다.

 “그럼 한잔하고 계시죠. 제가 데리고 오겠습니다.”

 문창주가 내민 잔을 석정선이 잔을 들어 공손히 부딪쳤다.

 “그래도 하던 말은 마무리해야지. 김창록이 행방. 석 이사 니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알지. 무슨 말인지. 짭새가 됐든 공무원 할애비가 됐든 그 누가 됐든. 응? 게네들 자존심만 좀 세워주면. 걔네들 자존심 값이 커피 두 잔 값은 아닌 거 알고 있으니까.”

 석정선이 잔에 있던 술을 비우고 일어섰다.

 “아니면 아까 사무실에서 말 한대로 진짜 입 찢어 버릴 거야.”

 문창주가 입을 찢는 시늉을 했다.

 

 다방 문 종소리가 울리며 석정선과 문일섭이 들어왔다. 문일섭의 가슴팍에는 사무 봉투가 들려있었다.

 “어머? 오뽜!”

 작업복 남자들 사이에 앉아 있던 뽀뽀가 문일섭을 보고 다가와 팔짱을 꼈다. 문일섭이 많이 놀란 눈치였다. 뽀뽀에게 남자면 나이 불문 무조건 오빠였다. 문일섭과 뽀뽀 사이를 석정선이 갈라 세우고 뽀뽀에게 뭐라 이야기했다. 뽀뽀는 입을 삐쭉 내밀고 다시 작업복 남자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석정선과 문일섭이 문창주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미 문창주는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아들 웬일이야?”

 문창주의 혀가 살짝 꼬였다.

 “저 그게 석 이사 아저씨한테 도움을 받을 게 있어서.”

 “그래. 뭐든 물어보랬지. 근데?”

 “요즘 일섭이 사무실 근처 PC방 다닙니다. 근데 작업하려고 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저한테 S.O.S를 쳐서.”

 “집 근처에는 PC방 없어? 왜 여기까지 와?”

 “네. 종로 쪽 PC방 다니는 건…….”

 “그리고 저 서류 봉투는 또 뭐야?”

 “그게 쓰레기들입니다.”

 “뭐?”

 문창주가 문일섭이 가지고 왔던 서류 봉투를 집어 들어 안의 서류들을 살펴봤다.

 “어? 이 년놈들. 쓰레기들은 맞네. 인간쓰레기들. 근데?”

 “네. 그게 저 일단 일섭이가 본인 명의로 가입한 아이디를 쓰기 꺼려해서 방법을 찾다가 고민 끝에…….”

 문창주의 머리에 바로바로 입력되지 않았다. 담배를 물고 한동안 얼굴을 찡그려야 했다.

 “뭘 그런 걸로 고민했어. 돈 떼먹고 잠수 탄 악성 암 덩어리 같은 악질들인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직도 모르는데.”

 “그래서 저희가 쓰레기 같은 저 애물단지들 좀 써먹으려고.”

 이제야 이해가 됐는지 찡그렸던 문창주의 얼굴이 펴졌다.

 “얘네 신상명세로 가입할 겁니다.”

 “그다음에는?”

 “각 동호회 시솝? 맞지?”

 문일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접촉한 다음 청바지 작업하고 빠지면 깔끔합니다. 뒤탈 날 일도 없지만 뒤탈 나도 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년놈들 신상이라.”

 문창주는 완전히 알았다는 듯 눈을 감고 오른손 검지 손가락 하나만 펴 석정선과 문일섭을 향해 흔들었다.

 “근데 왜 여기 종로 우리 사무실 근처 PC방들이야?”

 “그건 저도 몰랐는데 일섭이가 알아보니까 평일에 이 근처 종로통 PC방들 대다수 손님이 중장년층이라고 해서. 쓰레기들 하고 연령대가 얼추 맞습니다.”

 문창주는 문일섭을 대견하게 쳐다봤다.

 “쓰레기들 재활용하는 셈이네. 안 그래?”

 “사장님. 너무 너그러우십니다. 저는 인간쓰레기들 소각한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듣기 싫은 말은 아니었다. 문창주가 석정선을 보며 시원하게 코를 풀었다.

 “그래. 재활용이든 소각이든 속 쓰리고 배고프네. 나가서 뭐 좀 먹자.”

 문창주는 문일섭이 앞에 있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셋이 다방 문을 나설 때 뒤에서 뽀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오뽜! 아까 노인네들 테이블하고 오늘 테이블 것 달아 놓는다. 또 마담 언니 커피하고 내 것 오렌지 주스도 따블로 합쳐서.”

  쳐다보지도 않고 나가는 문창주 일행을 향해 뒤에서 뽀뽀가 손가락으로 문일섭을 가리켰다.

 “아참 이 쌔끼 오뽜 것도. 응? 알았지?”

 실제로 마시지 않고 말로만 마신 것처럼 셈을 치른 마담의 커피와 뽀뽀의 오렌지 주스는 둘의 자존심 값이었다. 또한 장부에 외상을 달아 두는 것이야말로 문창주의 자존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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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굿바이(Good bye) 노랑이 2018 / 11 / 15 390 0 9016   
18 불놀이 2018 / 11 / 11 388 0 5890   
17 Here, I Stand For Money 2018 / 11 / 8 401 0 7497   
16 '돈(豚)됐구만'과 '와룡(臥龍)' 2018 / 11 / 4 411 0 6320   
15 뱃고동 2018 / 11 / 2 395 0 6728   
14 (昌祿實業) 창록실업 2018 / 11 / 2 405 0 6516   
13 충청투자 2018 / 11 / 2 389 0 5439   
12 전화위복 (轉禍爲福) 2018 / 11 / 2 402 0 4854   
11 여왕벌 2018 / 11 / 2 393 0 5947   
10 금선당 2018 / 11 / 2 419 0 6248   
9 지옥의 급행열차(2) 2018 / 11 / 2 396 0 5375   
8 밥상머리 교육 2018 / 11 / 2 429 0 5622   
7 지옥의 급행열차 2018 / 11 / 2 394 0 6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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