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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면진(免震)
작가 : 디비
작품등록일 : 2018.11.2

이해하지 마! 우린 그저 세상이 돌아가게 만들 뿐이야. 누구 하나 몰라도 돼. 아니 몰라야 해.
우리 사훈(社訓)이 면진(免震)이야! 그러나 정세현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기업물][경제물][경영물][드라마][성장물]


소설을 처음 써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글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지명,단체 및 그 밖의 일체의 명칭, 그리고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로 창작된 것이며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우연에 의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금선의 아이들(OB와 YB)
작성일 : 19-05-30 06:03     조회 : 381     추천 : 0     분량 : 7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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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현은 일찍 왔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나만 잘난 것이 아니었다. 나와 타인, 우리 모두의 생각이 같은 시점을 향하고 있다면 바로 지금이었다. 정세현은 부모님을 모시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지만 이미 자리는 숨 쉴 공간조차 없이 만석이었고 통로와 복도까지 사람들로 빼곡했다. 자식 자랑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 죽겠다는 듯 얼굴에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채 자부심과 기쁨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행사 참가자의 가족들이었다. 장내 열기가 더해 다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정세현만 지정된 좌석에 앉고 정세현의 부모는 간신히 입구 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입석이었다. 정세현의 아버지는 서 있을 힘도 없는 듯 벽을 짚고 섰다. 고집을 부려 쫓아온 금선 장학금 수여장이었다. 정세현의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릴 만도 했지만, 오늘은 입가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본 행사의 진행을 맡은 금선 사내방송 KSB 아나운서인……”

 

 금선당의 대형 모니터를 보고 있던 조판규가 고자춘을 보며 빙긋 웃어 보였다.

 “고자야. 내 소원이 있다.”

 “형님. 또 그 말씀이세요?”

 고자춘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매년 옥에 티인 거라. 알지? 성낙현이 머리 그리 못 자르겠다고 하드나?”

 “그 고집 누가 꺾겠습니까?”

 고자춘도 대형 모니터를 보며 웃어 보였다. 화면에 금선장학금 수여식 행사장의 단상이 보였다. 그 위에 앉아 있던 재단 이사들 중 백발의 성낙현이 유독 두드러져 보였다. 더군다나 단발이었다.

 “그건 고집이 아니라 아집이다. 아집. 얼마나 추한지 아나? 염색이라도 하든지.”

 조판규의 얼굴은 말과는 다르게 재밌다는 표정이었다.

 “조금 있다 오면 또 말씀해 보시죠?”

 “혼자라 그런다. 아직도 이팔청춘인 줄 알고 까분다. 사람이 싫든 좋든 마누라는 있어야 한다. 지 새끼도 낳아서 키워 보고 해야지. 무슨 피터팬이가?”

 대형 모니터 속의 피터팬은 엄중하고 진중했다.

 “다음은 한경 외국어 고등학교 영어과 정세현 군. 한국대학교 경제학과 입학 예정입니다.”

 단상 위에 정세현과 성낙현이 서로 마주 보고 섰다.

 “장학증서. 정세현. 내용은 같습니다.”

 장학증서를 전달받은 후 나란히 서자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졌다. 기념사진이 처음인 듯 정세현의 얼굴은 경직돼 있었다.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성낙현이 장학증서를 수여하며 길게 줄 서 있던 장학생들을 밀어내는 모습을 금선당의 대형 모니터 화면을 통해 보던 조판규가 고자춘을 바라봤다.

 “이번은 어떻나? 종자들 튼실 하나?”

 “500명 중에 한경외고가 100명입니다.”

 “그래? 그리 많나?”

 “법조계는 이미 밑에서부터 빠르게 한경외고 출신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한경외고 출신 아닌 판검사, 변호사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니까요. 이미 한경외고 얘들이 여러 방면에서 약진하고 있습니다. 성장 속도도 빠르고요. 남진 군 든든하겠습니다. 다 동문 아닙니까?”

 “그래. 분갈이하고 가지치기한다 해도 100명이면 그중에 분명 물건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팽이도 맨 위 손잡이 돌리면 밑에 나머지는 안 돌래야 안 돌 수가 없다. 나중에 저것들만 잘 돌리면 대한민국 돌아간다. 물 잘 주고 관리 잘해라. 다 투자고 자산이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성낙현은 단상에 서서 축사를 읽어 내려갔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재단 상임이사를 맡은 성낙현이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니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작금 년의 대한민국은 풍랑을 만난 난파선처럼……”

 밤새 준비해 온 원고를 읽느라 성낙현은 고개를 자주 숙였다. 그럴 때마다 단발의 머리카락이 눈을 가려 연신 귀로 머리카락을 넘겨야 했다.

 조판규와 고자춘은 그런 성낙현을 보고 박장대소했다. 유머코드가 특이했다.

 단상 밑의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름 밤을 새워 가며 가다듬은 성낙현의 축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정세현은 몇십 명이나 되는 한경외고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정작 성낙현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발 디딜 틈이 없이 꽉 차 있었기도 했고 기쁨에 겨운 나머지 사진을 찍는 사람, 이름을 부르는 사람, 들고 나는 사람들로 인해 실내는 어수선했다. 자식이 금선 장학금을 받는다고 부모의 인성까지 담보하지는 않았다. 한경외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정세현이 주인공이었다.

 “우리가 왜 뽑힌 거야?”

 “글쎄? 나도 몰라. 통보받고 오긴 왔는데.”

 “근데 우리 학교 엄청 많은 거 아니냐?”

 “선발 기준이 뭔지 알아?”

 “그걸 모르겠어.”

 “혹시 남진이?”

 조남진의 이름이 나오자 다들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특혜성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기도 했다.

 “뭘 우리가 못 받을 것도 아니고? 여기서 한국대 안 간 사람 있어? 없잖아? 받을 이유 충분해. 아니 많아. 안 그래?”

 정세현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또래 사이에선 리더였다. 그렇지만 아직 영글지 않은 풋내기들이었다.

 

 키가 큰 사내가 겅중겅중 금선당의 본당으로 걸어 들어왔다.

 “성가야!”

 “형님, 오랜만에 만나서 또 그 얘기 할라 그러우?”

 성낙현은 백발 단발머리를 한 번 흔들었다.

 “고자야. 니는 아나? 내가 무슨 말할지?”

 조판규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성낙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웃었다.

 “매번 볼 때마다 그 소리 아니우? 이제 농 레퍼토리 좀 바꿀 때 안 됐수?”

 고자춘도 조판규를 따라 말없이 웃었다.

 “형님, 이제 나 이거 그만해야겠어요. 힘에 부쳐요. 부쳐. 삶도 돌아봐야 하고.”

 “그래. 너 말 한번 잘했다. 니도 자려고 누우면 발밑에 검은 옷 입은 두 놈이 노려보고 있다. 맞나?”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에요. 무슨. 형님은 벌써부터 귀신 보셔? 우리 판규 형님도 다 됐구먼.”

 성낙현이 다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할 나이다. 그래서 결정했나?”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성낙현이 고자춘을 바라봤다.

 “니 와룡에서 종구 안 만났나?”

 “난 또 뭐라고. 조웅수 사장도 여의주를 입에 물고 하늘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물려줬나?”

 “형님이 더 잘 아실 거 아니우? 웅수 이무기인 거.”

 조판규가 고자춘을 바라봤다.

 “형님이 궁금하신 건 용이 못 될 구렁이라 소개를 안 한 건지 아니면……”

 고자춘은 조판규 대신 말을 받았다.

 “아니면?”

 성낙현은 다 알고 있다는 듯 고자춘과 조판규를 번갈아 응시했다.

 “이제 형님도 냉온탕에 한 발씩 걸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고 생각 안 하시는가 해서? 그러다 건강 해치기라도 하면.”

 고자춘이 다시 받았다.

 “이야, 마누라 자식새끼 없어도 내 몸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고.”

 성낙현은 옆에 앉아 있던 고자춘의 손을 포개 잡았다. 포개 잡은 두 손은 이미 검버섯들의 잔치였다.

 “니 묏자리는 우리가 봐줄 거다. 고자야 맞나?”

 “그럼요. 이제 온탕에 발을 담그고 있어야 할 나이지요.”

 고자춘이 안경을 고쳐 썼다.

 “형님, 이제 정말 고물상하고 거래 안 하는 거요?”

 “왜 니는 미련이 남나?”

 성낙현이 고자춘의 손을 다시 꽉 잡았다. 고자춘이 슬그머니 손을 뺐다.

 “벌써 시간이. 형님.”

 고자춘이 손목시계를 쳐다봤다. 조판규는 성낙현과 이별이 못마땅한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약속이 있으시군요. 그럼 전 이만 온탕에서 일어나야지요.”

 “성가야 회색은 머리 색깔로 충분하다.”

 “형님, 또 그 소리. 전 회색분자가 아니라니까요. 자유연애주의자지.”

 조판규를 향해 성낙현이 눈을 지그시 감고 활짝 웃어 보였다.

 “더 이상 줄타기는 안 된다. 그만 내려와야지.”

 조판규도 답례의 표시로 성낙현을 향해 웃어 보였다.

 성낙현이 조판규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 겅중겅중 걸어 나갔다.

 

 조판규는 성낙현에게 확실한 대답을 듣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고자춘을 향해 얼굴을 찡그렸다.

 “고자야? 꼭 봐야 하나?”

 “형님, 차 한 잔입니다. 늦었지만 새해 문안 인사받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자춘은 조판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래. 고자야. 내가 자연인이가? 법인이가?”

 “법인이십니다.”

 고자춘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맞장구를 쳤다.

 “맞다. 지금은 인간 조판규가 아닌 금선 그 자체다. 내가 금선이고 금선이 조판규 바로 내다. 맞나?”

 “지당하십니다.”

 “법인은 돈 앞에서 체면이고 그런 거 없다. 맞나?”

 “네. 지금 형님은 금선 자체이십니다. 법인은 인간처럼 희로애락을 느끼는 감정이 없습니다.”

 조판규는 명분을 만들어 자기 합리화를 시켰지만, 얼굴에서 열이 올라오는지 연신 부채질해 댔다. 고자춘이 인터컴을 눌러 비서를 호출했다. 고자춘이 문 입구에 서서 외부 손님 하나하나 맞이했다. 그 하나하나가 조판규를 향해 조선의 왕을 알현하듯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차를 한 잔씩 걸치자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져 정담이 오고 갔다.

 “그래. 내 자네들을 더 일찍 불렀어야 했는데 지금에서야 본다.”

 다들 어쩔 줄 몰라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금선의 심장부인 금선당의 본관을 직접 두 눈으로 봤다는 자체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충분했다. 금선의 조판규가 메이저 신문의 사장단을 만나 준 것 자체가 파격이었고 각 신문사의 사장 옆에 편집부장이 동석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물론 편집부장이 아닌 수석 논설위원이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온 신문사도 있었다. 어쩌면 다시 오지 못할 기회였을 것이다. 확실한 눈도장을 찍고 가야 했다.

 “다들 고생이 많다. 나라가 안팎으로 많이 시끄럽다.”

 조판규의 일방적인 연설이었다. 다들 머리를 조아리고 듣기만 했다. 간혹 고개를 끄덕이거나 차를 입으로 훔치는 정도였다.

 “선진일보 왔나?”

  조판규가 주위를 둘러봤다. 한 명이 일어서다 구부정한 모습으로 섰다. 그 옆의 사람에게 눈짓으로 다급한 신호를 보냈다. 그제야 앉아 있던 그도 구부정한 모습으로 섰다. 조판규가 손짓하자 그제야 다시 앉았다. 조판규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선진일보야? 지금 배 엔진실 바닥이 찢어졌다. 일단 힘을 합쳐 바닥을 막고 엔진을 살려 항구까지 가야 다 산다. 맞나?”

 선진일보 사장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조아렸다. 그 옆의 편집부장은 입술을 꾹 다문 체 아무런 말이 없었다.

 “지금 바닥이 왜 찢어졌나? 누가 찢었나? 이런 게 중요하지 않다. 왜 우리만 무릎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는 이 어둡고 좁은 곳에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그런 불평불만도 사치다. 아나?”

 선진일보 사장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무릎까지 찬 물이 허리춤, 목까지 차오르면 그땐 다 죽는다. 맞나?”

 조판규는 선진일보 사장 옆 사내도 번갈아 바라봤다.

 “이 친구는 선진일보 편집부장입니다.”

 고자춘이 조판규의 속마음을 읽었다.

 “그래? 편집부장아? 어디 아픈 데 없지?”

 “네. 특별히 아픈 곳 없습니다. 다 회장님 덕분입니다.”

 조판규의 질문을 받아 답을 한 사람은 선진일보 사장이었다.

 “그래? 근데 왜 글발이 내 오줌발보다도 시원찮나? 난 어디 아픈 줄 알았다.”

 금선당 안에서 선진일보 편집부장만 웃지 않았다. 선진일보 사장도 웃었으나 당황한 억지웃음이었다.

  “국민의 생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글발이 이 노인네 오줌발에도 못 미치면 국민들 정신 상태가 썩어 빠지게 된다.”

 조판규가 검지 손가락을 펴서 머리 옆으로 들어 흔들었다.

 “밀실야합, 계급투쟁이 아닌, 온당 경제적 논리…… 쓸 때는 이렇게 과감하게 써야 한다. 얼마나 글이 건강하고 보기 좋나.”

 “저희는 그동안 금선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쭉…….”

 사설을 작성한 신문사 사장의 상식을 벗어난 발언이었지만 금선당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하다는 듯 모두 웃었다. 사설을 쓴 수석논설위원은 한술 더 떠 결연한 의지를 표정으로 지어 보였다. 한 사람만 웃지 않았다. 선진일보 편집부장이었다.

 같이 미소를 띠고 있던 고자춘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비서가 다가와 귀띔한 후였다.

 “회장님, 저 잠시.”

 조판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판규의 인터컴이 울린 건 고자춘이 비서와 같이 나간 후 채 1분이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고자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판규는 얼굴이 일그러질 만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연인이 아닌 법인이었다. 어떠한 감정의 미동도 없었다. 얼마 되지 않아 고자춘이 금선당 본당의 문을 열고 들어와 문 앞에 섰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었다.

 “국민의 생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방향을 잡아 이끌어 가는 고급인력들 내가 너무 붙잡았다. 내 당신들 노력 모르는 바 아니다. 내 철칙이 뭔지 아나? 새벽에 신문은 꼭 읽는다. 유일한 낙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서 있던 고자춘과 악수하며 작별인사를 나누려는 찰나 소파에 몸을 파묻고 곰곰이 생각하던 조판규가 소리쳤다.

 “잠깐 다들 이리 와라. 사진이나 한 장 찍자.”

 연락받은 비서가 노련하고 능숙하게 사진 대열로 안내했다.

 사진기를 어깨에 멘 또 다른 비서가 90도로 정중히 인사를 했다.

 “회장님, 촬영하겠습니다.”

 각자 근엄하고 중후한 멋을 풍기는 표정을 짓느라 열을 올렸다.

 “셋에 촬영하겠습니다. 하나, 둘…….”

 “잠깐!”

 “촬영 중지하겠습니다.”

 이등변 삼각형 포지션 가운데에 서 있던 조판규가 앞으로 나와 양옆으로 서 있던 신문사 사장단을 돌아봤다.

 “지금 내 앞에 아니 우리 앞쪽으로 무시무시한 큰 곰 한 마리가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다. 보이나? 내만 보이나?”

 조판규는 촬영을 하려고 서 있던 비서를 향해 총구를 겨눠 쏘는 시늉을 한 후 뒤를 돌아 하나하나 쳐다봤다.

  “지금 쏴 죽였다. 근데 자네들 표정? 지금처럼 똥폼 잡고 중후하게 미소 띠고 웃고 있을 기가?”

 뚱딴지같은 소리였다. 기념촬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고 실장. 곰 죽었나?”

 “네. 회장님. 죽었습니다.”

 “맞나?”

 “네. 확실히 죽었습니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뒤에 서 있던 사장단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럼 내가 죽인 결과는 바뀌지 않는단 말이지.”

 “네. 회장님께서 죽이셨습니다. 확실합니다.”

 고자춘이 맞장구쳤다.

 “근데 고 실장아 이 사람들 표정들 봐라. 다 웃고 있다. 손뼉까지 치려고 한다. 우리가 사냥터에 와서 재미로 쏴 죽였나?”

 “아닙니다.”

 “두려워서 표정이 일그러지고 두 눈엔 공포가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맞나? 생명의 위협을 느껴 어쩔 수 없이 쏴 죽인 거다. 이 건 천지 차이다. 죽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죽인 게 중요하지 않다. 왜가 중요하다. 왜가!”

 “무슨 말씀하고 싶으신지 다들 알 겁니다.”

 고자춘은 사장단을 둘러보며 웃어 보였다.

 “너거들은 사람들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창들이다. 가면서 고 실장에게 조언들 좀 해라. 글쟁이들이니까 글로 하면 더 좋다.”

 조판규가 윤허했다.

 “회장님. 조언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민원하고 애로사항이나 청취해 보겠습니다.”

 고자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장단의 눈빛이 빛났다. 민원은 해결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민원인지가 중요했다.

 “셋에 촬영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사진 속 조판규와 고자춘만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나머지는 괴이하고 기괴한 표정들이었다. 선진일보 편집부장만 또 예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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