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 적들이 청천강을 내줬다는데 이리 궁에 있어도 되는 것입니까?”
동이가 가마를 타고 서울을 벗어는 순간에도 인조는 설화의 품에 안겨 단꿈에 빠져 있다.
“전하, 서두르셔야 합니다. “
내관이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설화야, 내가 한 시도 너를 두고는 살 수가 없구나."
왕은 설화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뽀얗게 윤기가 흐르는 설화의 이마는 아프도록 아름답다.
천하의 난봉꾼 노릇을 일삼던 왕이 설화에게 순정을 바친 것은, 국정이 귀찮아 동이를 자신의 복제처럼 사용하던 왕이 나라가 위험에 처하자 스스로 스파이가 되겠다며 나선 것과 같은 이치였다.
“말은 준비되었느냐?”
인조가 소리쳤다.
“예, 분부대로 말 두 필을 준비하였습니다.”
설화는 남장을 하고, 인조는 분장을 한 채 둘은 말 두 필에 각각 나눠 탔다.
“청천강을 이미 내줬다니, 그럼 다음은 대동강인가?”
청나라 병사들은 날쌘 말을 타고 바람처럼 밀려왔다. 눈보라를 휘몰며 다가오는 적을 향해 인조는 말을 몰았다.
‘평양이 무너지기 전에 적을 칠 것이다.’
“전하, 옥체를 보존하소서.”
내관이 탄 말이 인조 옆으로 바짝 달라붙는다.
“만약, 내게 탈이 나더라도 절대 발설해서는 아니된다!”
내관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마른 제 입술을 핥았다.
“전하, 일국의 제왕이신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나라를 지키는 것은 왕의 마땅한 도리이거늘, 적과 맞서다 목숨을 잃는 것은 비겁하게 도망치는것보다 명예로운 일이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너는 동이가 일국의 왕 역할을 하도록 잘 도와야 할 것이다!”
인조는 여진의 족장인 누르하치의 목을 치겠다는 일념으로 말에 채찍을 가했다. 설화는 역시 그 동안 갈고 닦은 승마술을 보였다.
한편 누르하치는 만주의 부족들을 통솔하고, 명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 어서 적군의 진영으로 가자!"
왕의 드높은 목청이 들판을 가르며 눈보라 속에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