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이 기가 찼는지 말을 잃고 김근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정미경도 마찬가지로 쳐다보며 속으로만 신음을 하고 있었다. 이수현도 백송희도 본인도 정치외교학이 전공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정치를 하고 있는가?
남편인 김근수는 전자계산학이 전공이었다. 그리고 한번씩은 전부 전공을 살려봤다. 본인과 이수현과 백송희는 짧았지만 학생운동을 하면서 정치판에 들어 가 본적이 있었다. 그래서 남는 게 무엇인가? 겉으로 드러나고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남은 건 전부 상처뿐이다.
세 여자가 그 전공을 택할 땐 세상을 바꾸는 데 작은 힘이라도 되겠다는 포부가 있었을 것이라고 정미경은 보고 있었다. 만약에 그들이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졸업장을 위해서 대학을 다녔다고 매도했을 것이다. 그런데 전부 그 세계에 들어갔다고 상처만 받고 나왔기 때문에 이수현의 말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을 가진 정미경이 한숨을 내쉬며 남편을 두둔하는 말을 했다.
“조금 진지하게 말 좀 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계속 하니까 그런 사람으로 사람들이 보잖아. 언니 이 사람 지금 농사 말고도 일 하고 있잖아. TV에도 종종 나오는 거 봤으면서 자꾸 몰아 붙이지마. 멋지잖아. 맑은 물을 위해서 청소하는 모습이 나는 멋지다고 봐!”
이수현이 바로 돌 직구를 날렸다.
“그런 소리 하지마! 남들이 들으면 배부른 놈의 허세로 보여. 지금도 근수를 아는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고 있잖아. 복 많은 놈의 허세라고 하지, 아무도 네가 좋은 일 한다고 우르르 보지 않아. 미친 놈이라고 하는 말도 들었다. 뭐 하려고 그런 소리까지 들으며 청소를 하고 다녀? 더 나이 들기 전에 뭔가를 해. 나도 여기 와서 하루 이틀 보내다가 한 달 두 달 지나가고 일 년이 지나가니까 무기력 해지더라. 밖에 나가는 것도 무서워지기 시작하니까 위축되는 기분이 들면서 괜스레 사람들도 피하게 되더라. 그래도 다행인건 친구인 네가 있고 미경씨도 있어서 내가 다시 일어섰지. 너희들 없었으면 나도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 거야. 그러니까 나이 들기 전에 뭔가를 해! 너 싸움 잘 하잖아. 하다못해 빈 땅에다가 도장을 차려서 애들 싸움이라도 가리켜!”
그때 정미경이 귀를 쫑긋하며 말을 했다.
“여보! 그러면 되겠다. 지금 젓소 키우던 마구간 비어 있잖아. 거기에 태권도 도장 차려서 소일거리고 애들 가르쳐! 응!”
김근수 인상이 일그러지면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에겐 소일거리지만 다른 사람에겐 생계야. 내가 직장을 그만둔 이유 중에 하나가 그것이기도 해! 애당초 취직 잘 된다고 전산과에 들어간 것부터 내게 허송세월이었는데, 회사에 도움도 안 되는 놈이 거기 있어서 뭐하겠나 하는 그런 마음뿐이었어. 물론 같은 대학끼리 패거리도 한 몫을 했지만 그건 핑계였지. 끝까지 남아봤자 머리도 안 돌아가는 내가 거기 있어봤자 민폐고 나 또한 고생이면서 다른 사람 일자리 빼앗는 짓이라 그만뒀어. 그런 생각을 한 내가 이 촌 동네 도장을 차려 기존에 있는 도장에 피해를 줄 순 없지. 특히 왕년에 한 주먹 한 내가 도장을 차리면 이 촌 동네뿐만 아니라 시내에서도 몰려 올 거다. 나는 그렇게 남의 재산에 탐낼 마음 전혀 없다. 절대 그런 말 하지마! 나는 전국을 떠나 전 세계를 떠돌아 다니며 내가 제일 잘하는 도랑 청소나 열심히 하면서 농사나 짓고 마음 편히 살란다. 내가 손톱의 때보다 더 작은 이물질로 골라내는 눈을 가진 건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시간 나면 따라와봐! 내가 증명을 시켜줄 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가야. 그러니 나의 행복을 깨지마!”
“내처럼 가난한 놈이 너처럼 배부른 놈에게 별 헛소리를 다 했다는 확신만 더네. 그럼 나도 배부른 따라서 헛배 부른 쾌감이나 한번 맛 볼까? 좋아! 청소할 때 나도 한번 가보자. 부자들이 맛보는 행복이 어떤 건지 나도 구경이나 한번 하자. 갈 때 한번 데려 갈 거야?”
김근수가 머리를 끄덕이기도 전에 정미경이 김근수의 짧은 머리채를 잡았다.
“언니! 가지마! 한번 따라 갔다가 죽는 줄 알았어. 모래보다 더 작은 쓰레기를 찾으려 물 속까지 들어 가더라. 찾는 사람도 힘들겠지만 하루 종일 개울에 쪼그려 앉아 기다리는 짓 할 수 있겠어? 언니! 황금을 준다고 해도 그 짓은 못하겠더라!”
이수현이 빙긋이 웃으며 귀를 기울이고 있는 김근수 딸의 머리를 비비 꼬면서 비꼬듯이 말했다.
“황금이 물 속에 있으면 평생 동안 기다릴 수 있지. 한번 따라 가 볼까?”
정미경이 손사래를 치며 허둥대면서 말했다.
“언니! 절대 가지마. 정말 미친다니까. 차라리 마구간에 도장 차리고 학원 차려서 애들 가리키는 게 나아.”
이렇게 말이 씨가 돼버려 일 년 뒤에, 이 자리에 정미경의 오빠가 와서 건물을 올리고 도장과 학원을 차리고, 도장은 동네 청년들 중에 취업을 못한 유단자들이 사범을 하고, 이수현과 정미경과 백송희까지 시댁으로 내려와 선생님이 되었다. 문제는 학생들이었다. 틈만 나면 김근수가 도장에 가서 태권도를 가르치질 않고 싸움을 가르치고, 세 여선생님들은 그녀들의 전공을 기반으로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을 위한 평등을 외치면서 아이들의 미래를 과거와 현재의 정치판을 빗대 부정적으로 세뇌시키고 있었다. 이런 작은 시골 촌 동네의 작은 변화 속에서 읍내에서도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가장 큰 수혜자는 정미경의 오빠였다.
건물을 잘 지었다는 입 소문이 돌면서 대 단지 아파트 주위의 상가 건물들은 대부분 정미경의 오빠가 지어 올리면서, 김근수가 직장생활을 할 동안 받았던 끼리끼리 문화의 혜택을 보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김근수의 땅도 재계발의 혜택을 보면서 천정부지로 치솟아 빈익빈 부익부의 견본임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세월이 제법 지나 김근수 소유의 고층 건물 옥상에 윤성화, 백송희, 정미경, 이수현과 이수현이 재혼하면서 만나게 된 이수현의 남편이 한자리에 모였다. 김근수가 종이 봉투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이수현만 빼고 빙 돌렸다.
“어! 이거 순금 목걸이네! 고맙긴 고마운데 무거워서 매달고 다니겠나? 허허허!”
눈이 휘둥그래진 이수현 남편이 입을 쩍 벌려 손까지 벌벌 떨면서 말했다. 그 뒤로 전부 입을 벌린 상태로 순금 목걸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하얀 구름이 몰려 와 바로 옆에 있는 일행도 볼 수 없게 하고는 사라졌다. 그러나 이수현은 그 구름을 보지 못했다. 분명히 자기 것도 준비할 걸 아는데도 유치하게 약을 올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받아야 할 지 고민하느라 눈을 감아서 구름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럴수록 기대보다 궁색해진 기분이 들어 화도 나오고 있었다. 더 이상 초라해지지 말자. 다짐한 이수현이 고함을 질렀다.
“야! 약 올리지 말고 빨리 줘!”
그렇잖아도 안개도 아닌 축축히 지나치는 구름 속에서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고함소리. 찬바람도 비켜 가버렸다.
정미경이 낑낑 대며 이수현의 무릎 위에 상자를 올렸다.
“언니 선물은 목이 부러질 것 같아서 금 목거리로 못하고 금 송아지로 했어.”
안개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주먹보다 더 큰 금송아지를 일행들 전부가 놀란 눈으로 보고 있을 때 김근수가 이수현의 남편에게 순금으로 된 반지를 주면서 귀속 말을 했다.
“이건 순금반지입니다. 제가 끼워주고 싶지만 눈을 부라린 마누라가 오해할 까 싶어서 못 끼워주겠네요. 너무 늦은 결혼 축하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건 원 플러스 원으로 남편 분에게 드리는 선물! 제가 알아서 준비한 커플 반지가 맞을 지 모르겠는데 안 맞으면 얘기하세요. 금은 수두룩하니까!”
정미경이 김근수 옆에 앉아 받아도 된다며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난 뒤 김근수의 똥 방지를 앉은 채로 걷어 차 버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