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촌 이내 집안에서뿐만 아니라 동네 부녀회에서도 노랑이 구두쇠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면서 가끔씩 표독스럽단 뒷말까지 듣고 다니는 정미경 여사가, 그까짓 빈 껍데기에 불과한 고급 승용차가 무슨 필요가 있냐며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동네 사람들을 보면서 비웃던 그녀가, 그녀답지 못한 크나큰 판단 실수를 한 데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늘 타고 다녔던 차로 보여 줄 사람인 이수경 때문이었다. 고 3이라며 얕보더니, 늘 남편 옆에서 기웃거리기만 하더니, 무슨 이유로 남편을 걷어찼는지 묻고 싶은 년. 그 년만 생각하면 남편을 철부지 막내 동생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년. 지금도 팬티를 드러내고 다니는 지 궁금하게 하는 그 년!
이런 과거들을 떠올리며 남편의 위세를 세워주고 싶어 늘 타고 다니는 차처럼 보여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저 똥으로, 똥 냄새로, 소 키우고 농사 짓는다고 광고하는 꼴이 돼버린 정미경이 그녀답지 않게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엉엉 소리까지 내가며 우는 모습에 난처하게 보다가 슬그머니 자기 차로 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김근수가 민망하듯이 웃으며 친구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을 했다. 그때 우는 소리가 집안에까지 들렀던지 이수현이 벌떡 일어서며 혼자 말로 화를 내고 있었다.
“저 새끼가…….”
이수현은 김근수의 불 같은 성격을 말을 하기 전부터 보고 온 터라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지 바로 알아차리고 문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김근수 딸이 이수현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모! 이것만 가르쳐주고 가. 이게 이해가 안돼!”
나갈까? 다시 앉을 까? 멈칫멈칫한 이유는 이수현이 김근수 자녀들의 과외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어서였다. 그렇다고 돈을 받고 하는 건 아니었다. 허구한 날 남자나 여자나 힘과 주먹이 최고라며 자녀들에게 자두나무에 매달린 샌드백을 걷어차고 주먹질하는 훈련만 시키는 꼴을 보다 못한 정미경이 이수현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이수현의 말도 듣지 않아서 윤성화와 백송희까지 찾아와서 설득을 하던 중에 백송희가 결정적인 한방을 날려 김근수의 고집을 꺾었다.
“근수씨! 세 명이 재산을 나누면 몇 년을 버틸까? 힘세다고 건들거리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쩔 거에요? 그런 일이 정치판에도 숱하게 벌어지는 데 이 시골 동네라고 안 벌어질 수 있겠어요? 미경이도 나도 감방에 보내 병신 되게 한 그 놈들 감방에 간 거 잊었어요?”
그때 윤성화가 거들었다.
“이제 나는 전경 아니다. 월급쟁이가 무슨 힘이 있겠냐?”
그날 후로 이수현이 퇴근 길이나 쉬는 날에는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이모나 김근수 자녀들 엄마 역할도 하게 되었다.
밖에서는 울고 있는 정미경을 난처하게 보던 김근수가 달래고 있었다.
“알았다. 알았다. 내가 깨끗하게 청소할 테니까 울지마!”
겨우 달래고 김근수는 똥차가 된 새 차를 헌 차로 만드느라 비지땀을 흘리며 며칠을 보내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미경이 호들갑을 떨면서 난리를 치고 있었다.
“여보! 여보! 빨리 이리 와봐!”
남편을 세워놓고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뒷밭으로 쫓아가 오이를 따오면서 애들을 가르치고 있던 이수현도 불렀다.
“언니! 빨리! 빨리!”
영문을 모른 이수현이 방문을 열었다. 김근수의 딸도 무슨 재미있는 일이 또 벌어지나 궁금한 것처럼 눈을 똥글똥글하게 뜬 채 이수현의 뒤에서 무릎을 꿇는 채 내다 보고 있었다.
“빨리 누워!”
김근수의 팔을 사정없이 당겨 마루에 누이고 이수현에게 오이를 건네며 명령하듯이 말했다.
“언니! 앞으로 일주일 동안 이 사람 절대로 햇볕 못 보게 감시해줘. 이 걸로 마시지도 해주고. 오케이?”
그렇게 일주일 내내 김근수는 햇볕을 절대 못 죄게 감시를 당하고 백옥의 피부인 정미경은 검게 그을리는 데만 애를 쓰고 있었다. 이유는 대답을 하지 않아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김근수에게는 귀찮은 날이고 정미경에게는 결전이 날이 되었다. 송년회 참석을 위해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구시렁거렸다.
“아니! 일주일 내내 뭐했어? 소 똥 냄새가 그대로네. 에이 씨! 정말! 어떻게 내가 한눈만 팔면 이 모양이야?”
김근수가 인상을 찡그렸다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물었다.
“보여주기 식 행사에 가면서 당신은 얼굴을 왜 그렇게 만들었어? 차에서 나는 소 똥 냄새가 문제가 아니라 당신 얼굴이 소 똥보다 더 새까맣다. 그렇게 만든 이유가 뭐야? 친구들 앞에서 내 만나서 고생만 잔뜩 했다고 광고하려고 했어? 그래 본들 뭐 하냐? 같이 사는 내만 알지! 다른 사람들은 탔는지 안 탔는지 몰라! 허허허!”
“정말?”
정미경이 손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면서 김근수의 얼굴과 비교까지 하면서 이내 실망스러운 얼굴을 하고 말했다.
“그렇네! 어떻게 당신보다 더 하얄 수 있지? 어이 씨! 하와이 같다가 행사 때문에 급하게 오는 길이라 하려고 했는데 김샜다. 문 좀 닫아! 무슨 찬바람이 이렇게 세?”
“밖에 봐라! 눈 온다! 지금!”
“어머! 그렇네!”
정미경이 차창 밖으로 손을 내 휘날리는 함박 눈을 붙잡으려고 손을 나불거리고 있었다. 김근수가 빙긋이 웃으며 정미경의 볼을 꼬집었다.
“하지마! 따가워!”
“왜?”
“어제 마구간에서 하루 종일 있었더니 얼굴이 엄청 따갑네!”
김근수가 빙긋이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서 엄마가 구들목이 뜨거워 잠을 못 잤다고 하셨구나!”
정미경이 시치미를 뚝 떼고 능글맞게 야단을 치며 물었다.
“또 엄마! 애들 배운다 좀! 아버님은 아무 말씀 없었어?”
“이제 존칭 해라. 애들 배운다!”
앞 창에서 함박 눈이 세차게 날려 오고 있었다. 차 안에서는 아내의 손이 얼굴에서 엄청 빠르게 살랑거리고 있고 앞 창문에서는 와이퍼가 엄청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찬바람도 엄청 빠르게 차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춥다. 문 닫아라!”
“안돼! 소 똥 냄새 다 없애야 해!”
옥신각신 하면서 졸업하고 처음으로 학교로 들어가다가 차를 멈추었다. 거긴 정미경이 쓰러졌던 자리였다. 춥다며 요란스럽게 앙탈도 부리고 수다를 떠는 와중에도 학창시절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던 정미경이 그 자리에서 차를 멈추자 눈물부터 흘리기 시작했다. 김근수는 차장을 올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펑펑 내리는 눈 사이로 여전히 초록의 색을 가진 탱자나무 속의 개구멍을 보고 있었다.
그날 수현이가 아니고 이 사람을 울러 매고 갔다면?
부부가 되지 않더라도 육체적 상처와 정신적 상처 속에서 떠나지 않은 수치와 모욕! 이식 수술을 한다고 해서 그 상처가 없어질 까?
정미경이 차에서 내렸다. 높다란 도서관을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 뒤로 돌아서 정문을 보고 있었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향해 팔은 활짝 펴지 않았다. 그때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쪼그려 앉아 그때 쓰러졌던 그 자리를 덮은 눈을 쓸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김근수가 차에서 내렸다. 아내 옆으로 다가 갔다. 그녀는 빠르게 그렸던 그림을 지우고 있었다. 그러나 김근수는 엎드려 진 채 탱자나무 사이의 개구멍을 맥없이 쳐다보고 있는 소녀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