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한 정미경이 엉거주춤 반쯤 누운 채로, 먼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난 후, 투덜거리면서 바지를 올리고 있었다.
“아이 씨! 창피해! 어이 씨! 보고만 있지 말고 빨리 가려. 어이 씨!”
만약에 김근수가 정미경 입장이었다면 ‘뭐 하고 있어? 빨리 안 가려주고!’하면서 고래고래 고함부터 지르고 빨리 가려달라고 난리를 칠 대형 사고였다.
남편 앞에서 벌어진 사고에도 창피하다며 당황하고 있는 정미경이 안면불식인 남자 앞에서 강제로 바지뿐만 아니라 팬티도 벗겨졌을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것도 손은 뒤로 묶여지고 다리는 양 갈래 의자 다리에 묶여진 채 자궁을 드러냈을 때의 그 심정. 그 앞엔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구워져 버릴 인두! 인두를 든 손 위엔 위협적인 눈. 위협적인 눈 속에 감춰진 호기심으로 가득한 음흉한 미소.
나올 수 밖에 없는 눈물과 오줌. 그걸 본 이수현의 남편. 눈물과 오줌이 보기 싫어서 쑤시듯이 저렇게 지져놨나?
그건 미꾸라지를 잡을 때와 그 후에 호기심으로 보면서, 그 뒤로 쑤셔 넣을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당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합의에 의해서였다. 차라리 흔적을 남기지 않게 강간을 하지. 김근수의 심장이 요동치면서 정신으로 전이돼 천지사방팔방으로 분산돼 요동치고 있었다.
정미경이 무늬만 동공인 김근수를 보면서 지금 그의 심정을 꿰뚫는 말을 했다.
“뭐해? 뭐 새삼스럽게 그런 눈으로 봐? 내가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고 했지. 궁상 떨지 말고 빨리 일어나.”
그랬지! 아내의 다리도 몸도 마음도 맑은 개울물이지. 개울물도 가끔은 흐려질 수도 있지. 그 놈이 농약을 쏟을 때처럼.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흐려져 있었구나. 아내의 사타구니는 깨끗하게 정화시키지 않고 내가 무슨 짓을 했지? 왜 안중에 없었지? 이걸로 무슨 짓을 하려고 했지? 미친 새끼! 등신 같은 새끼! 둥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새끼! 김근수의 몸이 찬바람을 맞은 듯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야~~~ 궁상 그만 떨고 빨리 일어나! 춥단 말이야!”
졸졸 흐르던 개울 물이 깜짝 놀라 좔좔 소리를 내며 도망치고 있었다. 정미경이 화가 난 것 같았다. 벌벌 떨면서 차로 쏙 들어가 버렸다. 김근수가 물에서 풍덩 소리를 나게 하면서 사라졌다. 물 속에서 한창 동안 발악하듯이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정신 차려. 등신아!
그러나 김근수는 너무 추어서 더 이상 궁상을 떨 수 차로 달려갔다. 정미경이 뒤 좌석에 있는 수건을 김근수에게 던지며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어이 추워! 물 속엔 왜 또 들어갔어. 물속에 보물이라도 찾아왔어?”
“어이 추워!”
사시나무 떨듯이 떨던 김근수가 히터를 켜 한참을 벌벌 떨고 난 뒤에 흰 비닐봉지를 정미경에게 주면서 자세히 보라고 했다. 비록 개구쟁이이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로 사람들에게 시키는 짓은 하지 않는 남편이라 정미경은 집 앞에 있는 앞 도랑을 지나칠 때까지 봉지 속을 살폈지만 노란 모래 외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뭐야? 모래밖에 없는데…….”
정미경이 비닐봉지를 뒤 좌석으로 획 던져 버렸다. 집에 도착한 김근수는 끓여 놓은 여물로 소에게 저녁을 먹이고 밖에 누가 있는지 도둑놈처럼 살피면서 장독대로 갔다. 거기서도 주변을 살피더니 잽싸게 장독에 손을 넣어 뭔가를 한 움큼 비닐 봉지에 넣고는 손톱 사이에 낀 때 하나도 전부 털어내듯이 장독 속에 깨끗이 털고, 또 도둑고양이처럼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을 먹고 밤도 깊어졌다. 찬바람 부는 날 뜬금없이 찬물에 들어갔다가 나온 정미경이 콜록거리며, 여물을 끓이느라 태워진 장작이 들어가 있는 아궁이만큼이나 뜨끈한 구들목에 허리를 붙인 채 꾸벅꾸벅 졸기도 전에 코를 골고 있었다.
김근수도 정미경 옆에 누워 이불로 정수리 꼭대기까지 덮고는 정미경을 깨웠다.
“여보! 눈 떠봐!”
막걸리도 먹지 않았는데 막걸리 같은 뿌연 침을 베개에 질 흘린 정미경이 짜증스런 목소리로 칭얼대고 있었다.
“아이 씨! 한참 잠들었는데……. 왜?”
“눈 떠봐! 자기 금반지야!”
남편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게 장점이 돼야 하는 데 단점인 이유는 밖에서의 효력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우스개로 거짓말을 하면 바로 돌 직구를 날려 면박을 줘버리는 성격. 그 뒤로 이어지는 주먹질. 그걸 아들 딸 구분 없이 유산으로 물러주기 위해 자두나무에 샌드백을 매달아놓고 주먹질 단련을 시키는 인간. 힘이 있어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개똥 같은 철학을 가진 사람.
만약에 ‘자기 금반지’가 거짓말이면 자기 스스로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 정미경이 날렵하게 뻘떡 일어났다.
“어디?”
“쉿!”
김근수가 정미경의 목을 죄여 끌어 당겨 다시 이불 속으로 집어 넣는 순간에도 119 구급 대에게 긴급 구조 요청을 할 번호인 119 쳐놓은 휴대폰은 놓치지 않고 있었다. 정미경의 목을 풀어주고 주머니에서 손전등을 켜 두툼한 비닐봉지를 비춰주었다.
정미경이 엷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아버렸다. 손전등 불빛 탓이 아니었다. 노란 빛이 이불을 뚫고 천장을 뚫고 온 세상을 비출 정도로 황금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눈을 비비며 다시 눈을 떤 정미경이 황금 빛을 뚫어지게, 김근수가 지겨움에 잠들 정도로 쳐다보다가 물었다.
“이게 뭐야?”
“황금!”
“거짓말!”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어? 벌써 감정도 받았어.”
“어디서 났어? 혹시!”
“퍽!”
“악! 왜 때려! 아이 씨! 아파!”
“조용히 따라와!”
“또 있어?”
“바늘 실 어디에 있어?”
“뭐 하게?”
“입부터 꿰매야겠어.”
“알았어! 절대로 호들갑 안 떨게. 약속!”
정미경이 새끼손가락을 살포시 내밀었다. 김근수도 새끼손가락을 내서 꼭 끼고, 놓지 않고 밖으로 살금살금 기어나가 장독으로 갔다. 다시 한번 김근수가 입술에 손가락을 붙이고 정미경을 쳐다봤다. 정미경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도시였으면 차 소리에 장독 여는 소리가 묻혀질 수 있지만 여긴 촌이라 천둥번개나 소낙비가 필요할 때였다. 김근수가 정미경에게 손전등을 맡기고 숨소리보다 더 약하게 뚜껑을 열었다.
한 손에는 손전등, 한 손에는 입술! 그러나 눈이 찢어지는 걸 막을 손이 없었다. 정미경의 눈가가 찢어지기 직전이었다. 더 오래 뚜껑을 열고 있다가는 정미경의 눈이 완전히 찢어질 것을 우려한 김근수가 벌벌 떨면서 뚜껑을 닫고 있었다. 천만다행이 뚜껑이 장독에 부딪히지 않았다. 다시 나올 때보다 더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간 정미경이 김근수 귀에 대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