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이제 도랑에 가지마. 솔직히 굉장히 기분 나빠.”
눈치 따른 김근수가 정색을 하며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여보! 벌써 10년이 넘었고 태풍만 해도 서른 번도 넘게 왔다 갔다. 설령 당신과 송희씨가 아닌 내하고 성화가 그랬더라도 농약병은 벌써 물에 쓸려 지구 반대편에 가 있어. 그것 때문에 도랑 청소하는 건 아니야. 농약병을 찾으려면 앞 도랑에서만 찾지 내가 와 전국으로 돌아다니겠어. 그런 오해는 오늘로 끝내자.”
“좋아! 그러면 그토록 도랑 청소를 하는 이유가 단지 환경 때문이란 말이지. 그렇게 환경에 신경을 쓰면서 뒤 산에서 가서 나무는 왜 안 가져와. 내가 나무가면 당신이 하는 일이라고는 기계 돌려 톱밥 가는 것 밖에 더 있어? 뒷밭에 깔린 게 황토인데 흙도 안 퍼오고 왜 그래?”
“산에 나무 함부로 가져 안돼. 그리고 요즘은 약을 잘 쳐서 산에 가면 뱀밖에 없어. 황토도 한 트럭만 사다 놓으면 일년 내내 쓰는 데 뭐 하려고 밭에서 퍼와. 그러다가 밭 없어질라.”
정미경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빗자루가 있는 데로 쫓아갔다.
“아! 그래! 그래! 알았어. 갔다 올게.”
리어카를 끄집고 밭으로 가는 김근수 뒤통수에 대고 또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톱 들고 가. 태풍 때 부러진 밤나무가 지금 다 썩어가. 밤나무도 가져오고. 또 발효된 거 퍼오지 말고. 아이고 내가 저런 걸 뭐가 좋아서 왔는지. 힘만 셌지 순 돌대가리야.”
들고 있던 빗자루를 당장이라도 후려칠 듯이 휘휘 휘두르며 집으로 들어갈 때 지나가던 이수현이 불렀다.
“미경아! 오늘은 왜 또?”
“어! 언니! 어디 갔다 와?”
싸우면서 정이 들은 게 아니고 경계하면서 정이 들어버린 두 사람이 자매처럼 지내는 사이가 돼 있었다.
“시장에 갔다가 살 것도 없어 빈 바구니만 들고 오는 참이다. 왜? 또 속여?”
“말도 마! 분명히 어디 여자를 숨겨두었어. 틈만 나면 도랑 청소하러 간다고 나가서 이젠 일주일이나 있다가 오기도 해. 아무래도 이상해.”
이수현이 자기 집에 들어가듯이 정미경과 나란히 집으로 들어갔다. 김근수의 어머니도 예전처럼 계층을 두고 보던 시각은 없어지고 편안하게 반겨주었다.
“시장 갔다 오는 모양이네…….”
김근수 어머니 표정이 빈 바구니를 보고는 바로 어둡게 바뀌었다. 표시는 나지 않았지만 미소가 씁쓸해 보였다. 이수현도 김근수 어머니 마음을 눈치채고 밝은 소리로 말했다.
“집에 먹을 게 신통찮아서 시장에 갔는데 거기도 마찬가지라서 그냥 왔어요. 참! 어머님! 방울 토마토 모종 좀 가져 갈게요. 시장에 갔다가 깜빡 했습니다.”
“뭐 하려고 사! 뒷밭에 많이 있는데. 조금만 심어. 집에 있으면 몰라도 그것도 일이야. 회사 일도 힘들 건데 그냥 소일거리로 해. 없으면 퇴근 길에 따가.”
정미경의 눈이 번쩍 했다. 이수현이 그 모습을 보고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그렇게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이수현이 집으로 가고 저녁 무렵에 김근수가 톱밥 갈 나무를 한 짐 실어 왔다.
“아이고 허리야. 이 짓도 못하겠네.”
정미경의 눈에서 불화살이 장전되고 있었다. 얼른 일어나더니 또 낫과 갈고리를 들고 방귀 새듯이 슬그머니 나가려고 했다.
“또 청소하려 가?”
“아니! 돈 벌러. 심심하면 따라 와.”
이번에는 목소리가 진지하게 들렸던 정미경이 고개를 갸웃하며 따라 나섰다. 그런데 앞 도랑에 가지 않고 차를 타라고 했다.
“어디 가는 데 차를 타고 가?”
“그 말 많네. 지금부터 눈에 보이는 건 전부 못 본거야. 비밀! 알았어?”
결혼하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그것도 권위적인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정미경은 학창시절 교정에서 “야! 이 비겁한 새끼야! 그 언니 안 내려 놔!” 할 때 들었던 욕설을 떠올릴 정도로 바짝 긴장하면서 차가 멈출 때까지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차가 도착한 곳은 높다란 바위가 보이는 산 아래 개울이었다. 군소리 한마디 없이 따라가서 멈춘 곳은 모래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맑은 개울물 앞이었다. 앞에는 병풍 같은 바위뿐이었다.
물 속을 자세히 살피던 김근수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옷을 훌훌 벗어 정미경 팔에 올려주고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팬티는 입어. 사람들 보겠어.”
뭐 하는 지 물어보는 것보다 발가벗은 남편이 더 신경 쓰였던 정미경이 뒤로 돌아서 혹시나 지나치는 사람이 있는지 살피고 있었다. 김근수는 그러던 말던 궁둥이를 위로 치켜 올려, 불알이 덜렁거릴 정도로 흔들리는 데도, 물 속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갈고리로 물 속에 있는 돌멩이나 모래를 긁기도 하면서 뭔가를 집어내 물고 있는 흰 비닐 봉지에 넣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물 속을 보면서 난리를 치는 동안 정미경은 한마디의 말을 하지 못했다.
‘저 사람이 내 남편이 맞는가? 저렇게 진지한 면도 있었나?’
김근수가 허리를 펴면서 돌아서 정미경에게 물속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나도 발가벗어야 해?”
김근수가 짓궂은 표정으로 바꾸고 입술을 툭 내밀었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홀딱 벗고 와! 오늘 여기서 가진 애 이름은 황금으로 확정. 오케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거의 매일 보는 남편의 물건이 방이 아닌 야외에서, 그것도 하늘과 땅과 물과 산과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개울에서 보이는 건장한 근육질의 사내 나신에 정미경의 가슴도 설레고 있었다.
“정말이지? 벗는다!”
허락도 떨어지기 전이었다. 물이 있으니 자연스레 손이 바지에 먼저 갔다.
“안돼!”
그러나 벌써 정미경의 팬티가 바지에 끼어 같이 무릎까지 내려가 버린 뒤였다.
“임마! 빨리 올려. 저기 사람들 지나가잖아.”
“헉!”
깜짝 놀란 정미경의 고개가 무의식 중에 뒤로 돌아가면서 중심을 잃어버렸다.
“엄마야!”
팔도 다리도 비틀비틀 난리를 치고 있었다. 김근수도 허리가 반쯤 물에 잠긴 상태라 허둥대 정미경에게 갔지만 벌써 정미경은 물 속에 펑덩 한 뒤였다. 반쯤 내려간 바지처럼 김근수가 반쯤 웃으면서 정미경을 끄덕 들어 모래 사장에 올렸다.
“아이 씨! 사람이 있는지 보고 벗으라고 하지.”
누운 채 바지를 올리려고 바둥댈 때 김근수의 눈에 들어온 건 허벅지사타구니에 있는 불에 댄 상처였다. 십 년이 너머 가는 지금까지 내가 왜 저 흉터를 피했던가? 그렇게 흉측했나? 분명히 봤을 텐데 왜 처음 보는 것 같은가? 김근수가 정미경의 손을 잡았다. 어떤 위로를 하기 위해, 안쓰러운 마음에, 붙잡은 손이 아니었다. 정말 처음이었다. 불에 대인 흔적이 붉지 않고 시커멓게 보였다. 마치 소 여물을 끓이느라 불을 붙였던 볏짚이 시커멓게 타서 재가 된 것처럼 보였다.
‘왜 처음일까? 이렇게 망측했나?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나? 흉물이었나? 그래서 보는 걸 피했나?’
김근수가 뒤로 벌렁 주저 앉아 정미경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