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동네의 웃음거리가 된 버린 이수현은 집으로 향해 달려가고 김근수는 멋쩍게 머리를 긁으며 마당에 서서 호통을 받고 있었다.
“야 이놈아! 무슨 이유로 그러는지 모르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남편이 없는 애한테 그러면 어떡해. 저 집이 친정이 아니고 이게 제가 살 집이잖아. 망신스러워서 제가 어디 가서 살 거야. 아가야! 너도 이리 와 봐라!”
정미경을 고개를 푹 숙이고 다가와 엉거주춤 서 있었다. 시어머니가 호랑이 같은 눈으로 물었다.
“저 애가 사는 집이 어디냐?”
아직 불호령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호기로웠던 정미경이 훌쩍거리며 들리지도 않게 대답을 했다.
“친정…….”
“저 애 시댁은 있냐?”
“예?”
정미경이 이해를 못하는 듯이 찔끔거렸던 눈물을 닦고, 고개를 갸웃하며 똥글똥글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따지듯이 물었다.
“당연히 있죠. 남편이 없다고 시댁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여기 있는 것도 저는 마음에 안 들어요. 남편이 죽었다고 바로 내려 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 부모는 어떻겠어요? 아들 잃고 며느리 가버리고. 저는 이해가 안돼요.”
친척들도 그렇고 부녀회 아낙들도 며느리가 보통내기가 아니란 말을 듣고 자랑스러웠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말은 맞는 말이고 기분도 좋았지만 그건 옛날 말이라고 김근수 어머니는 생각을 했기에 이수현이 본가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보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하면서도 아들 때문에 가능하면 빨리 재혼을 해서 다른 동네로 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가 아주 마음이 들지 않아 시어머니도 반격 태세로 돌입했지만 멈춰야 했다.
아장아장 걸어온 손자가 정미경의 다리를 감싸 안고 제법 또렷하게 물었다.
“할머니! 우리 엄마 왜 울어요?”
“울기는……. 네 엄마는 호랑이가 나타나도 눈물 안 흘린 사람이다. 아이구 내 새끼!”
손자를 끄덕 안아서 마루로 가고 정미경이 고개를 돌릴 때 김근수가 낫과 삽과 갈퀴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장화 신고 가!”
김근수가 손을 뒤로 치켜들어 흔들고 간 곳은 도랑이었다. 농약으로 이수현의 남편과 이수현의 동생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 도랑에는 은어는 물론이고 피라미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다음해부터 김근수는 사람이 죽은 장소라는 꺼림칙한 기분도 있었지만 물고기가 다시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랑을 청소하다가 지금은 취미거리가 된 상태였다. 그런데 취미치고는 거의 집착에 가까워 동네뿐만 아니고 전국의 도랑이란 도랑은 모조리 찾아 다니며 청소를 해서 한번은 심하게 잔소리를 했다.
“도랑이 무슨 보물이라도 있다고 거기에 매달려?”
“당연히 보물이 있지. 우리 애들이 도랑에서 놀다가 만약에 그 농약이 남아 있어봐. 애들이 어떻게 되겠어? 그래서 이 몸이 도랑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중이니 잔소리하지 마세요.”
해거름 무렵까지 청소를 한 김근수가 모래사장에 쪼그려 앉아 잠시 쉬고 있을 때 다리 건너 맞은편에 개울을 보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수현인지 알았던 김근수가 도망치듯 일어서 돌아설 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임마!”
“왜 임마!”
어릴 적 불렀던 그대로 부르고 대답했지만 이번에는 김근수가 이수현에게 가지 않고 이수현이 김근수에게 조르르 달려왔다.
“야! 너! 나한테 왜 그래?”
두 손을 낀 채 손가락만 만지고 있었다.
“자식이 결혼하더니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네. 야 임마! 너답게 얘기해!”
씁쓸히 웃던 김근수가 검지를 추켜 올려 말했다.
“미꾸라지 잡으러 갈래.”
“어이 새끼!”
이수현의 주먹이 김근수의 어깨로 날아갔다. 그 후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물소리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노란 달빛뿐이었다. 이수현이 김근수의 어깨를 툭 치며 뭔가 내밀며 말했다.
“농약 아니니까 안심하고 마셔.”
세상에서 가장 무미건조한 반응이었다. 벌컥, 벌컥, 벌컥.
“야! 그만 마셔. 내 마실 것 없단 말이야.”
“가서 사와!”
“네가 사와!”
“자식! 많이 컸네. 어릴 땐 시키면 시키는 대로 쪼르르 가서 사 오더니. 나는 못 가. 가다가 집사람에게 붙잡히면 너 혼자 밤새도록 기다려야 할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어.”
“참! 핑계 한번 멋지다.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순간적으로 김근수는 ‘아차!’하고 있었다.
“거기 갈 거지?”
이수현이 그렇게 말하고는 붙잡을 틈새도 주지 않고 가게를 향해 쫓아갔다. 그 모습이 아버지가 술에 취해 소주를 사오랄 때 어머니가 잔소리 듣기 싫어 뛰어가는 모습 같이 보였던 김근수는 가슴이 찌릿한 걸 느끼며 수현의 뒤 모습만 보고 있었다.
어릴 적 그들만의 아지트인 김근수 밭에 있는 원두막으로 자리를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 이수현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어머니에게 들킬 줄 알고 얼마나 뛰었던지 숨 넘어 가는 줄 알았다.”
“우리 엄마 아직도 무서워?”
“응! 마귀 할멈이야. 네 각시 용케 잘 버틴다. 내 같으면 하루도 못 버티고 엄마야 하면서 친정으로 도망쳤을 건데. 호호호!”
어릴 때를 떠올리며 한참을 조잘대며 홀짝이던 이수현의 얼굴에 구름에 가렸든 달빛이 스치고 있었다. 발갰다가 노랗게 변할 때 김근수가 조용히 말을 했다.
“미안했다. 너한테 쌓인 감정이 아직 있다는 건 너를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거였지. 궁색하게 변명은 안 할게. 끈기가 없다는 말에 울컥해서 그랬어. 실제로 그게 나잖아. 나도 잘 알고 있는 데 내가 그러니까 더 화가 나는 거 있지.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란 걸 네가 제일 잘 알았잖아.”
허망한 듯이 눈을 깔아 내리며 말했다.
“자식이……. 내 할 말을 딱 끊어버리네.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지. 네가 내 심정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 믿었는데 네가 모른 척하고 지나치니까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 오더라. 옛날에도 그렇게 많이 당하고도 네 짓궂은 개구쟁이 버릇을 잊었지.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 네가 내한테 감정이 있을 게 뭐 있어? 나는 너한테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 미꾸라지 생각하면 지금도 열 받는다. 엉큼한 새끼! ”
미꾸라지라는 말에만 머리를 긁적였지 그 다음은 무슨 말을 하는 지 전혀 이해를 못하고 이수현을 멀뚱히 보고 있었다. 이수현의 미간이 점점 더 좁혀지고 있었다. 뭔가를 폭발시킬 때 했던 그 표정이었다. 김근수가 바짝 긴장해 이수현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정미경이 비닐 봉지에 뭔가를 가득 담아 집 앞으로 달려가던 이수현을 보고 이상한 낌새가 들어 마루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저 짓은 자취방에서 술을 마시다가 술이 떨어지면 내가 했던 짓인데……. 저 쪽은 우리 밭이 있는데 데. 가만! 거기엔 원두막이 있잖아. 그럼 이것들이!’
정미경이 소매를 걷어 올리고 이수현이 달려간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