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이 이런 형태로 동료들을 대했던 건 김근수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과장이 악한 사람인 것도 아니었다. 마음이 여리고 따듯한 사람이었지만 흠이 있다면 질투가 많은 성격이었다. 그는 김근수처럼 부자 집의 외동 아들이었지만 김근수처럼 누나도 없이 오로지 혼자서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랐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과장과 김근수의 차이는 먼저 도시와 시골이었고 과장은 부모의 보호아래 공무에만 집중하였고 김근수는 부모의 감시를 피해 온갖 개구쟁이 짓을 차이가 있었다. 이런 차이를 가진 두 사람의 공통점은 똥 고집이 바탕이 된 자존심 속에 숨겨져 있는 우월감이었다.
김근수는 이런 우월감을 어릴 때부터 맞봐온 사람이었다. 과장과 같은 대학을 나온 이수현은 어릴 때부터 성적으로는 비교대상이 안될 정도로 김근수는 탑에 있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경쟁 상대는 오로지 윤성화뿐 이었다. 이런 우월감을 김근수가 어릴 때 늘 맞보면서 생긴 버릇이 배려였다. 성적을 떠나 동생 친구들과 성적이던 집안 형편이던 그는 차별을 두지 않고 친구들과 늘 어울렸다. 그러다 어쩌다가 생각도 못한 친구의 성적이 뒤따라오면 경계를 하는 면을 가지고 있었다. 이 말은 김근수가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며 무기로 내세운 배려는 그 만이 알고 있는 감춰진 위선이었다.
김근수는 과장을 보면서 어릴 때 나와 똑 같은 짓을 하고 있다며 내심 비웃고 있었다.
김근수의 일부 친구들이 김근수를 기피했듯이 과장도 직장에서 기피대상으로 돼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 외로움을 달래 줄 도구로 하찮은 대학 출신인 김근수를 지정했다. 불을 보듯 뻔한 결과인 외톨이로 김근수는 전락되고 있었다.
출근은 사우나에서 과장과 같이 했지만 퇴근은 오늘도 아내인 정미경과 같이 하고 있었다. 정미경이 항상 반복되는 뻔한 대답을 알면서도 눈을 흘겨보며 물었다.
“자기 피곤하겠다. 상가에서 밤샜어?”
차라리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말을 했으면 정미경은 화가 덜 났을 것이다. 피곤해 죽을 인상으로, 애처롭게 봐 주길 바라는 듯이, 정미경의 불룩해진 배를 보며, 눈물겹도록 위하는 척! 거짓으로 포장된 눈으로 말을 했다.
“응! 엄청 피곤하네. 무슨 놈의 문상이 이렇게 많은지. 돈 벌려고 회사에 다니는지 경조사로 낼 돈을 벌러 다니는지 모르겠다. 참! 자기 휴가 내야겠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일을 해. 애도 애지만 당신이 건강을 잃을까 걱정된다. 제법 표시가 많이 나는데.”
‘아이고! 이 화상아! 이젠 새로운 변명거리를 만들어라. ’
복사기가 닳을 정도로 복사해온 용지를 읽느라 고생 참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노려보다가 갈 길로 시선을 원위치 시키고 말했다.
“휴가가 아니고 퇴사하고 나는 시댁에 가고 싶은데 안 될까?”
“안돼!”
“왜?”
“나는 농사 체질이 아니야. 뭐 하려고 사서 고생을 해. 갈려면 혼자 가!”
“언제는 농사가 딱 자기 체질이라고 했잖아. 나는 정말로 서울도 회사도 싫어. 자기야 같이 내려가자. 내가 자존심이 상해서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눈치가 보여서 더 이상 못 참겠어. 차라리 중소기업에 갔으면 이런 서러움을 받지 않았을 거야. 입사 첫날부터 보던 눈들이 아직도 그대로야. 정말 마음에 안 들었어. 우리가 같은 학교 같은 과 출신이라며 혹시나 무슨 연줄로 왔는가 눈치를 보더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니까 무슨 영재 취급을 하면서 붕 띄워주더라. 그 말이 뭐야? 자기들이 영재란 말이잖아. 그래 놓고 자기들끼리도 보이지 않게 패거리로 갈라지더라. 아무 편도 없는 나는 더 이상 못 버티겠어.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 봤자 나는 과장으로, 자기는 차장으로 끝이야. 내 소중한 청춘을 이런 데서 떠바치는 거 더는 싫어. 회사의 종놈으로도 버거운데, 명문대 애 새끼들 뒤치다꺼리까지는 도저히 못 참겠어. 지금은 표시가 나지 않지만 걔들 패거리의 후배들에게도 고개를 숙일 날이 얼마 안 남았잖아. 나 정말 그 짓 정말 못해. 차라리 죽어버리겠어. 처량해지기 싫단 말이야. 여보 야! 응! 자기도 지금 과장에게 무언의 협박을 받고 있잖아. 내가 전부 알고 있단 말이야. 그 새끼에게 밤마다 붙잡혀 가는 거! 굽실거리는 거! 더 이상은 못 보겠어. 내가 미칠 것 같아. 땅콩만한 그런 거 한 주먹에 날려 버리고 내려 가자. 응! 여보 야! 더 나이 들기 전에 내려가자. 응! 여보 야! 제발!”
김근수도 아내와 똑 같은 마음이었지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내 그럴 줄 알았다!’와 후배들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며 비아냥거리는 뒷말은 직장 동료들이라, 떠나면 그만이기 때문에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문제는 후배들이었다. 3년 만에 퇴사하는 걸 보면서 후배들은 정년퇴직이 임박하면서도 여전히 차장인 대선배들을 떠올리며 생각을 다시 할 것이다.
그렇다고 후배들을 찾아가 꿈을 접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입사했던 자체도 다른 이들에게는 피해밖에 되지 않았다. 돈의 기준으로 봤을 때 김근수는 굳이 취업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같은 부서 동료들 열 명이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십 원 땡 푼 쓰지 않고 모아야 봐야 김근수가 물려받을 재산 정도도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절대로 취업을 해서는 안될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취업을 한 건 자존심 때문이었다. 이수현에게 보란 듯이 최고의 회사에 취업하려고 칼을 갈았고 또 이뤘지만, 이수현은 지금의 김근수가 처한 현실을 그때 이미 파악하고 냉정하게 돌아서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었다.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란 걸 아내가 이수현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가졌던 생각을 지금에야 들은 듯이 대신 말하는 것처럼 김근수는 들으며 실감을 한 후에야 공감을 하고 있었다. 그 해 겨울 찬바람 부는 날 김근수는 보따리를 울러 매고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혼잣말로 말했다.
“물려 받을 재산도 많고 고향가면 대궐 같은 집이 있지만 만약에 반대라면 그야 말고 서글픈 현실이겠지. 남아 있는 97%들이 서글프네. 특히 없는 집 자식들이 눈물겹네. 그렇지 여보 야!”
다시 당돌하고 자신만만한 정미경이 돼 있었다.
“추억이 어디 좋은 건만 있어? 서글픈 추억도 추억이야. 배부른 소리 그만하고 내려가서 뭐 할지나 잘 생각해 둬. 나는 벌써 계획이 꽉 차 있으니까 내려가자 말자 말 걸지마. 나! 바쁜 사람이야!”
아내의 말처럼 김근수는 당돌한 아내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본인이었다.
무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