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수 어머니가 직접 빚은 떨떠름했던 막걸리가 식혜처럼 달콤하면서 얼마나 마셨는지 모를 때쯤에는 얼마나 많은 불만을 쏟아냈는지도 몰랐다. 주제는 오로지 더러운 나라가 아닌 극악무도한 그 놈뿐이었다. 그러다가 꿈속에서인지 어디에서인지 모르지만 승용차 한대가 박을 듯이 달려오다가 튕겨내 버릴 듯이 거세게 지나가 버렸다.
그 순간에 마주친 눈에 들어온 사람은 인두로 협박하던 그 놈이었다. 그는 눈을 마주치자마자 알아차린 것처럼 비웃고 있었다. 그 후로 그때도 몸이 얼음창고에 감금된 것처럼 얼어졌고 꿈속에서도 전이돼 얼어졌다.
“으악!”
정미경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거긴 낯선 곳인지 집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두컴컴하고 두렵기만 했다. 마치 누군가가 또 인두를 들고 들어올 것만 같이 이불을 걷어차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때 누군가가 뒤 덜미를 잡았다. 오로지 공포뿐이었다. 발악하면서 뛰어나가 한참을 달릴 때 뒤 덜미를 잡았던 사람도 같이 뛰어 나왔다.
도망쳐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뛰다가 발을 멈춘 곳이 그 놈이 지나쳤던 한적한 시골길이었다. 옆에는 뿌연 안개로 덮어진 도랑이었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 들리기도 했다. 자연적으로 흐르는 소리를 따라 가다가 발이 멈칫했다. 안개가 곧 걷어지고 횃불이 도랑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때 또 뒤로 나자빠졌다. 차 속에서 곁 눈길로 비웃던 그 놈! 고문했던 그 놈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일어서던 몸이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어딘가를 향해 쫓아가고 있었다. 거긴 낮에 봤던 농약이었다. 몇 병을 잡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말했다. 이걸로 모자란다고. 그래서 또 달렸다. 그렇게 그 집으로도 달려갔다. 그 집에 있는 농약도 들고 도랑으로 쫓아갔다.
그런데 다시 간 곳에는 활활 타오르던 횃불이 모래사장에서 쓰러져 꺼져 가고 있었다. 꺼져 가는 횃불에 비친 그 얼굴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런데 증오가 사라지고 구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먼저 들어 뛰어갔다. 그때 누군가가 옷을 잡아 당겼다.
“이리 줘!”
들고 있던 농약병을 들고 시체가 된 그들 옆으로 쫓아간 그 사람이 도랑에 쪼그려 앉아 농약을 전부 붓고 병 껍데기를 옷으로 닦아 다시 물속으로 던져버리고는 옷을 잡아당겨 길 위에 올리고는 신발을 벗으라고 했다. 벗어 쥔 신발로 박수 치듯이 치게 하고 근수 집으로 끌고 온 그 사람이 고문시키는 듯이 입을 벌리게 하고 막걸리를 입 속으로 쏟아 부었다.
이런 동영상이 몽유병 환자를 TV에서 볼 때와 똑같이 꿈에서인지 과거에 실제 있었던 기억에서인지 그려지고 있었다.
“학생! 학생! 종점이야! 일어나!”
꿈이 아니었다. 몽유병도 아니었다. 실제도 그날 있었던 일이었다. 만약에 그들이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그렇게 죽였을 것이다. 살인은 하지 않았지만 살인할 의도는 확실히 있었다. 아쉽다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주 많이 헷갈린 상태로 졸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철저한 능구렁이며 사기꾼과 결혼을 하고 서울 갈현동 산중턱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하고 3년이 지났다.
“형님! 오늘도…….”
“내가 정말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온다. 아니! 허구한 날 아들, 아들 하면서 어떻게 집 한 채 안 주고 얹혀 살게 해. 애기 보기 얼마나 힘든지 알아. 이제 겨우 애들 중학교 보내고 한 씨름 놨나 했더니 이제 조카까지 키워야 할 처지라니. 이러다가 나는 바로 할머니야. 시아버지한테 가서 집 하나 사 달라고 해.”
정미경이 머리를 긁적이며 갓 돌이 지난 아들을 김근수의 하나뿐인 누나 가슴이 맡기고 출근길에 나서고 있었다.
“고모한테 귀찮게 하면 안돼.”
“아이고! 저 화상! 근수는 왜 안 들어 왔어?”
“차장님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문상 갔다가 바로 출근 한데요.”
김근수의 누나가 조카를 안아 흔들면서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착한지 멍청한 건지. 그 놈의 회사에는 차장이 수 천명이나 되나? 얼마 전에도 차장이라 했는데.”
그때 정미경과 김근수의 아들이 고모 가슴을 동동 차면서 울음보를 터트리고 있었다.
“아이고! 그래! 미안하다. 미안해! 어 휴!”
그 시각에 과장이 김근수를 가까이 오라며 손짓을 했다.
“너 정말 이럴래? 너는 새끼가 대가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 하여튼……. 어이구! 씨! 내가 참자.”
김근수는 과장 입에서 나올 말이 어떤 말인지 훤히 알고 있었다. 대가리 나쁜 놈들은 술집에서도 눈치가 없어 나설 자리 나서지 않을 자리를 구분 못한다는 말이었다. 김근수가 능글맞게 대처를 하고 있었다.
“아이 참! 과장님! 아가씨가 좋다고 하는 데 저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그렇게 부러우면 지금 여기서 쪼그려 앉았다가 섰다가 백 번하고 팔 굽혀 펴기도 하세요. 다리통도 가슴도 이게 뭡니까? 우리 아들보다 더 밋밋하네요. 남자가 이렇게 빈약한데 어떤 여자가 붙겠어요. 봐요! 제 궁둥이. 이게 태어나면서 물러 받은 것 아닙니다. 노력의 결실이라고요.”
김근수가 허벅지에 힘을 꽉 줘 과장 앞에서 으스대면서, 과장 가슴을 손바닥으로 탁 치면서 옷을 입고 있었다. 샤워장에서 나오던 과장이 김근수를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정수리를 한대 쥐어 박을 것처럼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너 이 새끼 사람들 보는 앞에서 그러기야. 창피하게. 그런데 무슨 놈의 경조사가 이렇게 많은지. 월급 받아서 경조사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어. 참! 김대리는 또 둘째 가졌다며?”
어깨를 축 처지게 내려 엄살을 떨면서 힘없이 말했다.
“과장님만 안 따라 다녔으면 우유 값 걱정은 없었을 건데. 갑갑합니다.”
과장이 김근수의 똥 방지를 걷어차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야 이 촌놈아. 너처럼 연줄 없는 놈은 내 똥줄이라도 잡아야 해. 임마! 이 자식이 오냐, 오냐 했더니 내 대가리 위에 올라 타려고 해. 그나저나 언제 돈 벌어 누님 집에서 나올래? 없는 자궁이 갑갑하다.”
“뻥 뚫어 드려요?”
“이 자식이 그냥!”
과장 주먹이 김근수 눈앞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김근수는 과장이란 사람을 교활한 사람으로 단정지은 상태였다. 둘이 있을 때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다정하게 토닥거리며 위로를 해주지만 업무상 문제가 생길 때, 특히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서슴없이 대학 이름까지 거론하며 차별성 발언을 해버리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돌 대가리 학교란 말은 못하고 그와 비슷한 비아냥의 눈으로 쳐다보면서 시선을 끌어들이는 능력을 가진 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