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딸이 그렇단 말이지”

　“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 그 나이에 연애 못하는 애가 더 이상하지. 왜? 다른 애가 옆에 있었어? 그것도 걱정하지마. 사내가 그 정도는 돼야지. 미경이가 당신을 닮아서 그건 걱정거리가 아니야. 만약에 다른 애가 서성거리면 그 애는 그날이 세상 하직하는 날이잖아? 미경이가 당신이 닮았지 내 닮았냐? 그 참 별 걱정을 다 하고 있어.”

　“그 참! 내가 그런 게 아니고 당신이 지금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고 있구먼! 당신 말대로 마음에 걸리는 처녀가 하나 있어. 그 처녀가 아무래도 께름칙해!”

　“그 참! 별 걱정을 다하고 있네. 다른 애가 있어도 그 애만 불쌍하지! 미경이가 지금 우리 집에 오는 것보다 그 집에 가는 날이 더 많잖아. 아직 시댁도 그 놈 집을 친정 드나들듯이 하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아버지도 김근수 아버지를 떠올리며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다.

　‘구두쇠 피만 물려받고 바람기만은 제발 물려받지 말기를!’

　꺼림칙한 미래가 쉽게 떨쳐지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도 미니스커트의 도도한 처녀를 떠올리며 신경이 거슬려 남편을 보면서 넌지시 물었다.

　“여보! 나도 미경이가 아깝다고 생각을 하지만 몸이 저러니 애가 알아서 다른 남자는 만나지 않으려고 할거란 생각이 드네요. 고집하면 한 가닥 하잖아요. 서로 좋아할 때 눈 찔끔 감고 서둘러서 시집 보내버립시다. 그리고 할말은 아니지만 그 놈 옆에 얼쩡거리는 처녀가 있더라 구요. 옷 입을 걸 보니까 직장도 다니는 것 같고 얼굴도 사실 우리 애보다 낫더군요. 치마도 짧게 입고 반찬도 자취방에 거의 매일 두고 간다던데, 계속 그러면 안 넘어 갈 남자가 어디겠어요.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보냅시다.”

　생각이 오락가락하던 정미경 아버지의 인상이 굉장히 얹잖은 표정으로 바꾸고 말했다.

　“미경이가 어땠어? 뭐가 아쉬웠어 애를 팔듯이 시집을 보내. 솔직히 나도 그 놈이 그 대학 다니는 자체가 마음에 안 들어. 얼마나 머리가 나쁘면 그것도 대학이라고. 조금 더 지켜보자. 나도 지금 많이 헷갈려. 그 집안을 보면 보내고 싶지만 그 놈을 보면 속에서 천불이 나기도 해. 그렇게 능글맞기는 놈은 그 놈뿐이었다니까! 일단 지켜보자.”

　어머니가 ‘당신 딸은?’이라고 따지려다가 입술을 악물고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시각에 윤성화의 아버지가 허둥대며 김근수의 집으로 쫓아 들어가 김근수의 아버지 손을 끌고 뒷마당으로 데려 가 귓속말을 소곤거렸다.

　“형님! 창고에 농약 확인부터 한번 해봐야겠어요. 세 병이 남아 있어야 하는 데 한 병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께름칙합니다.”

　깜짝 놀라고는 있었지만 김근수의 아버지가 말은 하지 않고 농기구가 있는 창고로 허둥대며 쫓아갔다. 그때 김근수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나지막이 불렀다.

　“여보! 이 쪽으로 와봐요.”

　김근수의 어머니가 밖을 두리번거려 살피고는 뒤뜰에 뒤에 있는 대밭 속으로 들어가서 쪼그려 앉았다. 두 사람도 똑 같은 자세로 앉아서 귀를 바짝 대고 있었다.

　“그날 혹시나 해서 보니까 농약이 없더라고. 그래서 자네 집에도 가서 확인을 했는데 없더라고. 그래서 아들도 죽고 사위도 죽어서 경황없을 거라고 보고 내가 수현이 집에 몰래 들어가서 농약을 가져와서 자네 집에도 우리 집에도 놔뒀다. 자네 집에는 창고가 잠겨 있어서 대문 옆 화단에 봉지로 사두었네. 내가 얘기하려고 하다가 제 발등 찍듯이 제 목숨 끊을 짓을 해서 입다물고 있었네. 혹시라도 경찰이 오면 그때 사람이 죽고 난리가 나서 깜빡 했다고 하면 될 거란 생각을 했지. 지금에라도 잘 챙겨두게.”

　김근수 아버지와 윤성화 아버지가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아버렸다. 두 사람 입에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머리만 흔들고 있었다. 김근수 어머니가 다시 말을 했다.

　“너무 죄책감은 갖지 마세요. 우리 애들이 부은 건 양념 정도라고 봐요. 그 놈들이 죽을 짓을 하다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리세요.”

　꽤 오랫동안 한숨만 내쉬면서 주저앉아 있던 윤성화 아버지가 들릴 듯 말 듯 힘없이 말했다.

　“당분간 애들 못 내려오게 해야겠습니다. 그 집안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식이지만 정말 무섭네요. 며느리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아무리 미워도 어떻게 사람을 죽일 생각을 했는지……. 내 자식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애는 며느리 때문에 그랬다지만 근수는 왜 그랬어요? 뭐? 친구 강남 갔는가 요? 내참! 어이가 없네!”

　어머니 한숨을 내쉬면서 윤성화 아버지 손을 잡고 토닥거리고는 이유를 말했다.

　“그게 다 대학 때문이지요. 아시잖아요. 수현이 하고 죽기살기로 붙어 다니다가 그 놈의 대학 같다고 차였죠. 성화는 그래도 겉으로 드러난 이유나 있지만 등신 같은 놈이 가진 이유는 개가 들어도 비웃을 일이죠. 제가 그래서 말도 못하고 쿵쿵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여자친구가 생겨서 저놈이 가만히 있지, 만약에 없었으면 수현이도 아마 죽였겠죠. 내 배속에서 어떻게 저렇게 잔인한 놈이 나왔는지 이해가 안돼요. 그나저나 더 큰일이 남았네요.”

　윤성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애가 그러던데 근수는 수현이 붙잡으러 갔다가 같이 학생운동 한 걸로 기록에 남아 공기업에 취업이 어렵다더군요. 요즘은 정보가 공유돼서 기업체도 어려워서 취업할 생각이 아예 없다고 예기하던데 그 말이 맞는가요?”

　“그렇게 얘기 하던데 모르죠. 그런 정신머리를 가진 놈이 등록금 한번 내지 않도록 성적을 좋게 받아 왔겠어요. 제가 진짜 걱정하는 건 취업이 아니라 취업을 못하고 집에 있다가 청상과부 된 수현이하고 또 불 붙을까 봐 그게 걱정입니다. 며느리 될 애도 며느님처럼 상처받은 애인데 또 상처받게 할 수는 없잖아요. 농사도 잘 짓는 놈인데 어차피 여기서 농사를 지을 바에야 처가로 보내버릴까 생각도 하고 있어요. 그렇게 살다가 우리나이쯤 되면 고향이라고 찾아와도 되죠 뭐!”

　윤성화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놈이 죽었을 때 정말로 속이 후련했습니다. 그러다가 물은 다시 맑아졌지만 돌아오지 않는 은어를 보고 그 놈도 그렇고 형님 조부님도 원망스럽더군요. 머슴으로 받아주지 않았다면 이 동네에 그 집안도 없을 거고 도랑 물도 흐려 놓지 않았을 건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도랑 물을 보면 겉보기는 맑아 보이지만 은어는 고사하고 물고기가 없는 걸 보면 맑은 게 아니죠. 모래 속은 우리 가슴 속처럼 곪아 있는 거죠. 그렇다고 애들을 자수 시킬 수도 없잖아요. 형수님 말씀처럼 양념만 쳤는데 평생을 감방에서 살게 할 수 없고, 큰일이네요.”

　그때 김근수의 아버지가 손을 털털 틀며 일어나면서 호탕하게 말했다.

　“큰일은 무슨 큰일! 나는 오늘 들은 거 하나도 없네. 농약이나 잘 챙겨두게. 당신은 애들한테 얘기해서 빨리 상견례 자리나 만들게. 나도 이제 농사 못 짓겠다. 근수 빨리 오라고 해. 언제까지 내가 농사 지어야겠어? 있지도 않은 걱정일랑 하지 말게나! 빨리 뒈져!”

　김근수 아버지 말씀처럼 있지도 않는 걱정거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단정지은 김근수가 매몰차게 선을 그을 작정으로 도서관 휴게실로 이수경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