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미경의 어머니 눈은 세상에서 가장 환멸 하는 놈을 보는듯한 멸시하는 눈으로 노려보며 물었다.

　“뭐? 자네도 했어? 어디 보자!”

　가슴이 덜컹했던 김근수가 난감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면서 거절을 했다.

　“안됩니다. 볼 사람은 이 사람뿐입니다. 절대 안됩니다.”

　입술을 악물며 인상도 찡그리며 정미경을 똑바로 보면서 물었다.

　“어떻게 생겼어?”

　정미경도 놀라고 있었다.

　“자기 문신 있었어? 어디?”

　그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말이 나왔다.

　“뭐야? 너희들 한방에 있었던 거 맞아? 자네 고자야? 아니면 우리 애가 흉측해서 그래? 야! 이 놈 아주 웃기는 놈이네. 그래 놓고 우리 애를 오도가도 못하게 붙잡고 있단 말이야. 아하! 아까 그년이 정부인이고 우리 애는 첩이란 말이지. 이 자식 이거 내한테 죽어야겠네.”

　너무 빠른 시간 내에 시원시원하게 마시던 술의 효과에 말도 시원시원하게 나왔다. 김근수는 어머니가 휘두르는 팔을 이리저리 피하며 난감하게 정미경을 보고 있었다. 정미경도 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다. 처음 만나서 사귀는 과정에 오해했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을 까 심히 염려되는 상황이었지만 그건 김근수의 기우였다.

　“엄마! 잠시 릴리스! 잠깐만! 내가 설명해줄게. 흥분 가라 앉히시고.”

　김근수는 정미경 어머니의 흥분돼 일그러져가고 있는 얼굴을 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신으로 인한 상실감이 이런 거구나 깨닫고 있었다. 그건 이수현이 결혼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비참함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세상 전부를 잃은 얼굴이었다. 자기가 아닌 딸인데도 말이다.

　“잠깐! 미경아! 내가 얘기할게. 어머님! 제 얘기 듣고 그때 처분을 내려주십시오.”

　흥분은 아주 조금 가라앉힌 어머니가 귀는 기울이는 척은 했지만 속으로 ‘거짓말하고 쳐 자빠졌네’란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저는 이 반찬을 가져다 주는 사람에게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단지 같은 과 동기에 불과합니다. 둘이서 학교 밖에서 만난 적도 단 한번도 없습니다. 저도 계속 반찬을 갖다 놓아 신경이 거슬려 이런 짓도 하지 말고 오지도 마라고 했습니다. 미경이 손 잡고 우리 결혼할 사이라고까지 했는데도 계속 이러니 저도 징그럽고 몸서리가 쳐 집니다. 제발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도 어머님 집에 자주 가고 미경이도 우리 집에 자주 갑니다. 동네방네에 소문 다 내놓고 제가 어떻게 한눈을 팔겠습니까? 저 그런 무책임한 놈 아닙니다. 제가 마음 전부 입니다. 술 더셨다고 나중에 못 들었다느니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은 술 드실 때하고 깰 때하고 워낙 말이 자주 바뀌어서 제가 이 말도 이렇게 길게 해야 하나 후회하고 있습니다.”

　김근수가 말을 마치고 정미경 어머니 앞에 있는 소주잔 잽싸게 들어 마시고 한잔 더 따르고 마시려고 할 때 정미경 어머니의 손바닥이 김근수 옆 통수에 날아갔다.

　“이 놈이 오냐! 오냐! 했더니 나를 물로 보나? 나 아직 오십도 안됐다 이놈아! 아가씨 때 나도 한 주먹 한 사람이었어. 자식이 여자라고 무시하지마. 나도 임마 의리 빼면 시체야. 내가 이십 년 넘게 끊은 술을 이 놈이 고문 받고 오는 바람에 다시 술을 마셨지만 네놈을 보고 의젓한 장모가 되려고 했는데……. 어디다가 손바닥 뒤집듯이 요랬다 조랬다 하는 년으로 보고 있어! 에라! 씨! 개똥이다. 이놈아!”

　어릴 때 사십 대 후반의 집안 아주머니들을 보면 할머니로 보였고 정미영의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여자로써의 패기는 상실한 줄 알았던 김근수의 고정 관념을 완전히 뒤흔들고 있었다. 굉장히 흥분해 있는 예비 장모님의 비위를 더 이상 거슬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바꾼 김근수가 자세를 가다듬었다.

　정미경 어머니도 숨을 고르고 언어 순화만 했지 퍼붓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 내가 흥분했더니 자네한테 할말은 안 하고 쓸데없는 하고 말 뻔 했네. 앞으로 처신을 조심하게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것 봤어? 자네가 어수룩하게 처신을 하니까 저런 애들이 미련을 못 버리고 얼쩡거리는 거야. 남녀가 같이 오래 붙어 있으면 사고가 나기 마련이지. 남자의 유혹보다 여자의 유혹이 더 무섭듯이 여자가 거부하려고 다리를 꼭 오므리고 있으면 남자는 절대로 못해. 마음이 있으니까 다리를 벌리지. 그렇게 벌려놓고 나중에 강간이니 뭐니 하면서 책임을 남자한테 다 뒤집어 세워버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저런 애들은 절대 못 오게 해. 알았어?”

　김근수도 제법 술이 많이 취해 있었다.

　“예! 장모님! 그 부분만큼은 절대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방면에는 제가 세계 최고의 프로입니다. 염려 마십시오. 허허허!”

　정미경이 입술을 꽉 깨물고 김근수 입을 털어 막았다.

　“왜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해. 어휴! 이 팔불출! 5분만! 5분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5분만 참아! 엄마 지금 과부하 상태! 바로 주무실 거야.”

　그러나 정미경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야 임마! 저런 남자가 가장 위험해. 그런데 너는 지금 누구 편 드는 거야? 그 문신 한번 보자. 누구 문신이 더 잘 그려졌는지 한번 봐야겠다.”

　포장마차에서 한잔하고 들어올 때부터 두 사람이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고 본 정미경은 술 기운도 있었지만 지금 주객이 전도된 상태에서 잘못 끼어들었단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때 정미경이 엄마 손을 꽉 붙잡았다.

　김근수도 기겁을 하고 허벅지사타구니에 손을 쏙 집어넣어 가리고 있었다. 그걸 본 어머니가 사타구니까지 갔던 손을 내려놓으며 뒤로 덜렁 넘어가 버렸다. 그러다가 곧 코고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김근수는 아직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언젠가는 보게 될 정미경이 김근수의 바지를 내리려고 했다.

　“잠깐! 그 참! 질리도록 볼 건데 꼭 지금 봐야겠어?”

　바지를 붙잡고 물을 때 정미경은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했다.

　“응!”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던 김근수가 중요 부위가 보이지 않게 최대한 가리고 문신만 보여줬다.

　“어! 진짜 엄마하고 같네. 언제 했어?”

　“응! 얼마 전에. 너도 거기를 문신으로 그리면 표시가 안 날 것 같아서 했는데 오히려 사람들 이목만 더 끌게 되더라. 쪽 팔려서 목욕탕을 못 가겠어. 허허허!”

　어이없이 웃던 정미경이 물었다.

　“그런데 왜 이 꽃을 택했어?”

　“게발 선인장 꽃말이 불타는 사랑이잖아. 너는 엄마 문신을 그렇게 보고도 인터넷도 검색 안 해봤냐? ”

　자는 줄 알았던 어머니가 머리를 슬그머니 돌려 김근수 사타구니를 보면서 설명만 하고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아이! 엄마! 정말 주책이야!”

　이번에는 정말로 어머니는 주무시고 계셨다. 정미경이 한번 만 더 보자며 억지로 바지를 잡아 당겨 보면서 말했다.

　“너도 가관이다. 이건 생체실험이잖아. 어떻게 지워져?”

　“아니! 지워도 흔적은 남아. 너처럼. 그래서 지우려고. 누가 물으면 우리 엄마처럼 불에 댔다고 하면 되지. 너도 그러면 돼.”

　정미경이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