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그런데 이 동네에 술집이 왜 이렇게 많아. 방금 오면서 따개따개 붙은 집을 세어 봤는데 150개더라. 겨우 5분 걸렸나? 언니 만나는 사람 얼굴 한번 봤으면 좋겠다. 분명히 도둑놈 상 일거야. 이런 동네에 사는 남자들 뻔할 뻔 자지 뭐! 그러니 그런 대학에 다니지. 어이 징그러!”
정미경 어머니 인상이 자동으로 찌그러졌다. 입에서 끙끙 앓는 소리도 길게 나오고 있었다. 그때 오빠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너 어디 한번 두고 보자. 그 친구보다 못 난 놈 데려오면 바로 내쫓을 거다.”
그때 어머니가 앓았던 숨을 내쉬면서 거들었다.
“아예 시집도 못 가지 뭐!”
“뭐야? 벌써 잘 아는 사이야? 우리 집에도 왔었어?”
“그래 이놈아! 네 등록금 내는데도 매년 보태고 있었다. 그 많은 농사를 내하고 네 아버지가 어떻게 다 감당했겠냐? 그 사람이 와서 다 했다. 그러니 우리 집 식구가 되면 깍듯이 모셔야 한다.”
야단은 쳤지만 정미경의 어머니 생각도 막내와 같은 생각이었다. 만약에 볼품없는 집이었고 땅이 그렇게 많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고민에 휩싸여 밤새도록 술을 마셨을 것이다. 물론 김근수를 불러 바로 앞에 앉혀 놓고 자존심을 술 안주 삼아 잘근잘근 씹으면서 분통을 터트렸을 것이다. 머리가 복잡해져 인지 한동안 뜸 했던 알코올 증상이 도진 것 같았다.
“갑자기 술 생각이 나네.”
“저하고 하시죠.”
“아니! 술 친구 있다.”
불쑥 튀어 나온 말인데 김근수가 잊지 못할 연인이나 된 것처럼 마음이 바뀌었다. 어찌 보면 바뀐 게 아니라 원래대로 돌아 간 것이었다. 처음 봤을 때 그 마음으로 바뀐 것이었다. 단지 딸의 장래를 위해 김근수를 멀리 하고 싶어했지 싫은 건 아니었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김근수가 보고 싶었던 정미경의 어머니는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보름 뒤에 반찬거리를 들고, 낑낑거리며 김근수 자취방으로 갔다가 놀라서 뒤로 나자빠질 뻔할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심해도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팬티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아가씨가 김근수의 자취방 앞에 뭔가 내려 놓고 계단을 밟고 내려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뒤로 돌려 버렸다. 아가씨에 대한 어떤 의심 등등 숱한 상상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짧은 치마 속에 팬티뿐만 아니라 털까지 보여 망측해서 지나쳐 갈 때까지, 쿵덕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한숨까지 푹 내쉬면서 눈을 감고 피하던 중이었다.
도도한 아가씨였다. 단 하나 밖에 없는 방 앞에서 마주친 중년의 여자라면 당연히 김근수의 어머니로 여기며 인사를 하거나 아니면 김근수의 어머니를 안다면 누구인지 물어봐야 도리인데 어깨만 부딪히지 않게 조심스럽게 피했지, 나머지 행보는 도도하기 그지없었다.
‘이놈이 지금 바람을 피워? 아니지! 결혼을 안 했으니 양 다리!’
바람 난 사위를 현장에서 마주친 것처럼 배신감이 들었던 정미경의 어머니가 바로 학교로 쫓아가서 멱살을 붙잡을 기세로 돌아섰다.
그때 저런 머저리 같은……. 속에서 나오려고 하는 걸 참고 있었다. 내 딸이지만 어떻게 저렇게 해맑고 티 없이 예쁠까? 밝은 얼굴에 웃기까지 하는 모습에 눈물이 찔끔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옆에 있는 놈을 보면서 인상이 돌변했다. 내가 아가씨로 돌아가면 꼭 저런 놈을 만날 거란 생각도 한 순간에 날아가고 말았다. 만약에 어머니가 아닌 당사자! 미경이라면 바로 멱살을 붙잡거나 머리채를 뽑아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너무 해맑게 웃으며 눈물겹도록 행복해 보였다. 정미경의 어머니 눈에서 어느새 눈물이 쏟아 내렸다. 한번도 맞아보지 않았던 소박이란 이런 거구나. 차마 딸이 있어서 펑펑! 울분을 터트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능글맞은 놈! 시치미를 뚝 떼고 딸보다 먼저 쫓아와 부둥켜 안았다.
“어머님! 연락도 없이 갑자기 웬일이세요? 한잔 생각나셨어요?”
‘웬만하면 이 팔 치워라.’ 그러나 이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 동안 소박 받았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 같았다.
“야 이 나쁜 놈아! 자네가 이러면 안되지! 이 나쁜 놈아!”
김근수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다. 정미경이 눈만 휘둥그렇게 뜨고 한참을 보다가 눈물에 전염된 듯이 울먹이며 물었다.
“엄마! 왜 그래?”
정미경의 어머니가 들고 온 반찬을 집어 던지려다가 아까워서 차마 던지지 못하고 계단을 쫓아 올라갔다. 두 사람도 뒤따라 쫓아 올라갔다. 자취방 앞에 놓인 건 비닐봉지에 쌓인 반찬이었다. 김근수를 노려보며 추궁했다.
“이게 뭔가?”
망설이거나 미안해 얼버무리지도 않고 덤덤하게 대답을 했다.
“반찬입니다.”
“내가 그걸 묻냐?”
김근수가 말을 하려고 할 때 정미경이 김근수의 손을 잡고 일단은 들어가자고 했다. 흥분이 덜 가라 앉은 상태로 방으로 들어간 정미경의 어머니가 책상 겸 식탁인 앉은뱅이 책상을 펴고 봉지에 담아온 소주부터 꺼냈다.
“저는 가서 잔부터 가져 오너라.”
정미경이 후다닥 부엌으로 가서 물컵을 들고 와 내려 놓았다.
“소주 잔 없어?”
“응! 이 사람! 집에서는 술 안 마셔!”
“저리 치워라!”
그 다음으로는 김근수가 푸 소리를 내며 웃어버렸다. 어머니가 주머니에서 소주잔을 끄집어 냈다.
“어떻게 너희들 밖에 모르냐? 술을 안 마시더라도 항상 손님이 올 걸 대비해서 준비를 해야지. 손님보고 숟가락도 들고 오라고 그러지. 아이구 내가 널 잘못 키웠구나. 소주는 소주 잔에 마셔야 제 맛이 나지.”
어머니가 소주병을 김근수에게 내밀었다. 한잔을 받자 말자 한숨에 마시고 잔을 내밀었다. 김근수가 엉덩이를 들어 무릎을 꿇고 마시려고 할 때 불호령이 떨어졌다.
“계속 그렇게 앉았다 꿇었다 할 거야? 정신 사납게.”
세 사람의 주량이 평범하지 않은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소주 잔 하나가 회전목마보다 더 빠르게 돌아갔고 정미경은 슈퍼로 쫓아가 또 사와야 했다. 소주로 허기가 어느 정도 가신 어머니가 김근수 눈을 똑바로 보고 물었다.
“아까 그 보지 털 보이던 그년이 누구야?”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정미경이 어머니 입을 막으며 소리쳤다.
“아이! 엄마! 이 사람 앞에서 창피하게 왜 이래?”
잠시 동안 정미경 입술 앞에서 막고 뚫는 싸움이 벌어졌다가 정미경이 항복을 했다.
“그럼! 보지라고 하지 좆이라 하리? 그년 누구야? 얼른 불어!”
정미경의 어머니가 속에서 불이 났는지 윗도리를 벗어 던지며 눈알을 부라렸다. 그때 정미경이 어머니 어깨를 감추고 있었다. 김근수의 눈이 번쩍 했다.
“어! 어머님! 잠깐! 미경아 잠깐 비켜봐! 어머님! 껌 좀 씹으셨네요. 그런데 이 문신 어디서 했습니까? 저하고 똑 같네요.”
어깨에 그려진 문신을 보면서 감탄사를 쏟아내고 있었다.